• 진보정치 실종된 총선의 위험
    [기고] 위험 맞설 '진보정당'에 힘을
        2024년 04월 05일 11: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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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에서는 인물이 조직을, 조직이 바람을, 바람이 구도를 이기지 못한다. 근 70%에 이르는 국민이 무능 무도한 대통령을 반대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좋은 구도에서도 민주당이 공천파동 등 그 이상의 자살골을 연이어서 넣는 바람에 자칫 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연이어서 더 큰 실수를 범해주는 바람에 정권심판론이 정권지원론을 약간 넘어섰다. 대표의 내로남불이 법정에서도 공인되었음에도 조국혁신당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혐오정서를 바탕으로 바람을 몰고 오면서 민주당에 실망하지만 윤석열은 혐오하는 국민들을 끌어안는 구도를 만들었다. 초원복국집 사건에 잘 나타나듯, 정치는 생물이라 9일까지는 지켜보아야 하지만, 정권심판론과 조국혁신당 돌풍 구도가 유지되는 한 야권이 승리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을 지켜보는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진보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언론과 국가, 자본의 카르텔이 더욱 공고해졌다. 디지털사회로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확증편향과 반향실효과(echo chamber effect)가 강해지면서 공론장은 붕괴되고 여론은 갈라치기가 되었다. 촛불을 들어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루어냈던 광장은 반으로 나누어졌다. 팬덤정치가 소수의 옳은 목소리는 물론 컨센서스를 거친 여론마저 압도한다. 보수 양당은 아무런 부끄럼 없이 또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하는 위성정당을 만들었는데 진보당과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도 거기에 가담하였다. ‘비호감의 각축전, 자살골 덜 넣기’ 선거 국면에서 정책논쟁도 사라졌다. 이런 불리한 국면에서 진보는 분열된 것으로도 모자라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하거나 보수 신당이나 위성정당에 합류하여 자기부정을 해버렸다. 이 추세라면 아직 처연하게 진보의 깃발을 들고 있는 녹색정의당과 노동당의 원내 의석이 0이 될 듯하다.

    이렇게 총선이 마무리된다면 설혹 야권이 압도적인 승리를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필자도 윤석열에 대해 치가 떨리고 그의 퇴진운동에 발품을 보탰지만, 민주당 2중대를 자처하며 신당에 간 진보인사나 위성정당에 합류한 진보당과 시민사회단체에 다시 묻는다. “만약 윤석열을 퇴진시킨다면 더 나은 미래가 있는가. 이미 문재인 정권에서 학습하고도 깨우침이 없는가?”

    진보가 국회에서 사라지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위험한 것은 복합위기로 인한 파국의 직격탄을 한반도가 가장 먼저 맞을 가능성이 농후하리란 점이다. 기후위기, 불평등의 극대화, AI로 인한 노동과 교육, 인간 정체성의 위기, 패권의 변화와 전쟁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등 복합위기는 모두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부문별로 극대화한 양상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근본을 추적하면 자본주의 체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체제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며 주체의 역량과 현실에 따라 정거장을 하나씩 점유해야 한다. 현 추세대로라면, 기후위기가 파국에 이르는 시점은 5년, 미국, 독일 등 선진국 기업의 평균이윤율이 0%에 이르는 시점이 2056년이다.(에스테반 마이토)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

    둘째로, 한국에서 정치는 종언을 고하고 보수정당의 정쟁이나 행정만 난무할 것이다. 과장이나 비약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여 가치를 분배하는 타협의 기술이다. 복합위기로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서민,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이주민들인데,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국회의원이 없으니, 이들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일터나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대부분 무시될 것이고 어쩌다 여론을 형성할 때만 정치권은 듣는 척하되 결국 제도, 정책, 예산 배정 등 가치 배분은 거의 하지 않을 것이고 하더라도 생색내기용으로 그칠 것이다.

    셋째로 유토피아가 사라진다. “유토피아의 오아시스가 말라 버리면 진부함과 무력함의 사막이 펼쳐진다.”(위르겐 하버마스) 유토피아가 있어야 극도의 절망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고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분석하면서 모든 진부한 주장들에 신선함을 더하고 게으른 말들을 편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파시즘의 도래를 막을 수 없다. 점점 기업의 평균이윤율이 0에 수렴하고 생산성과 평균축적률, 성장률이 모두 저하하고 있기에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를 통해 세계화, 노동의 유연화, 공공영역의 민영화, 금융수탈을 통한 축적, 시장의 확대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본 기업은 이제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 외에는 남은 술책이 없다. 국제로봇연맹이 지난 1월 12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 것이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1012대로 한국은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점하였다. 지금도 생존의 마지노선에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더 고혈을 짜내고 대량해고를 강행한 다음 이를 인공지능과 로봇,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하려면 국가와 연합하여 폭력에 의존하고 극우이데올로기로 이를 합리화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는 점점 파시즘에 다가갈 것이다. 파시즘적 정책이나 제도화가 행해질 때 과연 누가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방패막이가 될 것인가.

    길이 아무리 험해도 함께 할 동지가 있고 어두울수록 별은 맑게 빛난다. 10일 총선에서부터 한 걸음 내딛자. 내 자식의 미래가 좀 더 환하기를 원한다면, 선거에 꼭 참여하여 이런 네 가지 위험에 맞서서 희망의 꽃을 피울 두 진보정당에 물을 주자.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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