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용비리, 성과주의 논란에도
    금융지주 회장들은 연임, 연임, 연임
    거수기 전락 사외이사····노동이사 등 제도개선 필요
        2020년 09월 23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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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지주회사 회장 선출 문제로 금융권은 물론 시민사회계와 노동조합, 청년단체, 청년 국회의원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6일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최종 후보로 낙점한 윤종규 KB국민그룹 회장이 오는 11월 2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3연임을 할 수 있을지는 최대 관심사다. 내년 차기 회장을 뽑는 하나금융그룹도 김정태 현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4연임이냐, 또 다른 유력 후보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의 선출이냐를 두고도 벌써부터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회장 측은 4연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 3월 금융위원장와 5대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 모습(박스 왼쪽 위 시계방향 조용병 윤종규 손태승 김정태)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연임, 연임, 연임

    임기 3년짜리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3~4번씩 연임을 하며 10년 이상 장기 집권하는 상황은 공공성이 강조되는 은행권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올해 윤종규 회장도 거의 확정이라는 점을 포함하면 벌써 3개 은행의 지주회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3월 26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3월 25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데 이어, 윤종규 회장도 3연임을 위한 회장 최종 후보자로 선정됐다. 3곳 지주의 회장이 모두 연임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연임에 성공한 회장들을 비롯해 연임을 기대하는 김정태 회장, 유력한 회장 후보인 함영주 부회장은 모두 임기 중 채용비리 의혹과 사기 사모펀드 등의 논란에 휘말렸다.

    회장님들의 못 말리는 연임 ‘집착’
    ‘억’ 소리 나는 연봉…3연임하면 최대 270억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은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서서 자기 영향력 아래 사외이사를 모으고, 회장 후보 들러리를 세우고, 금융당국과 법정 다툼까지 불사하며 연임을 고집한다. 그 배경이 무엇일지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연봉이다.

    윤종규 회장은 2017년 9억 2600만원을 받은 데 이어, 2018년엔 상여금 6억 3800만원을 포함해 14억 3800만원을 받았고, 지난해는 상여금 7억 9500만원을 포함해 15억 9500만원을 받으며 그의 연봉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4연임 논란을 받고 있는 김정태 회장의 연봉은 금융지주회사 회장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지난해 받은 연봉은 급여 8억과 상여금 16억 9500만원을 포함해 24억 9700만원이다. 김정태 회장은 2018년엔 17억 5300만원, 2017년엔 12억 4200만원을 챙겼다.

    금융권 안팎은 장단기 성과 주식이나 법인카드 사용 등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기준 김정태 회장이 30억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임기 3년 동안 90억, 3연임을 하면 무려 270억이다.

    보수 총액의 상승세를 주도하는 쪽은 상여금이다. 김정태 회장의 경우 8억 전후로 고정된 급여보다 상여금이 배로 많았고, 2018년 9억 5100만원이었던 상여금은 올해 상반기 기준 17억 9300만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윤종규 회장도 마찬가지다. 2017년 상여금으로 3억 9600만원을 받았지만 지난해엔 7억 9500만원을 받았다.

    연임 위해 뒤로는 채용 비리, 앞에선 성과주의 압박

    수조원대의 피해액을 낸 사모펀드 판매는 과도한 성과주의 문제와 연결된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비이자 수익을 강조하는 판매 정책을 추진하며 사모펀드를 집중적으로 판매해왔다. 일례로 하나은행은 영업력 극대화를 위해 노골적으로 ‘전 직원 PB화’를 추진, 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하나은행은 치매에 걸린 노인을 DLF에 가입시키고, 신한은행은 한 부부가 평생을 모은 전 재산 2억을 라임펀드를 가입하는 데에 쓰게 했다. 피해자들 모두 DLF와 라임펀드가 전 재산을 잃을 수도 있는 고위험도의 사모펀드인지 안내받지 못한 채 가입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9천 800억원의 펀드 판매 수수료를 거둬들였다. 신한은행, 신한금융투자, 우리은행 등은 펀드 돌려막기 끝에 환매가 중단된 라임펀드를 판매했는데, 라임펀드는 판매 규모만 1조 6600억원에 달한다.

    은행의 수천억원대 비이자 수익은 지주회장 연임 평가에서 “경영성과”로 포장된다. 매년 상승하는 지주회장의 상여금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에 앞서 국민은행(368건), 하나은행(239건), 우리은행(37건)이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됐다. 신한은행도 22명이 부정하게 입학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판 중이다. 국회의원, 금융감독원 임직원 등 고위직의 청탁을 받은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다.

    은행의 수장들은 채용비리에 깊이 개입한 의혹이 있다. 윤종규 회장은 자신의 증손녀를 ‘할아버지 찬스’로 입사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김정태 회장도 채용비리 연루 정황이 확인됐다.

    그러나 지주 회장들은 채용비리의 모든 책임에서 빗겨 갔다. 채용비리 건수가 가장 많았던 국민은행은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고 인사팀 실무자 5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윤종규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고 3연임을 앞두고 있다. 온갖 비리와 특혜 제공 의혹을 받고도 3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회장은 채용비리 연루 정황이 확인됐음에도 불기소 처분을 받고 현재 4연임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나은행 관계자 5명이 채용비리로 기소된 것과는 딴판이다.

    신한은행은 인사 실무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채용을 청탁한 국회의원은 소환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조용병 회장 역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회장직 수행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금융지주회사 회장만 채용비리 책임에서 빠져나온 셈이다. 회장이 지주회사는 물론 자회사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환기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시민사회계는 지주회장들이 연임에 대비하기 위해 뒤로는 인사와 채용 청탁을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대외적으론 성과주의를 압박해 경영성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들과 금융소비자를 기만한 결과물이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지주회장 연임인 것이다.

    출처-금융정의연대 / 16일 kb금융 본사 앞 기자회견

    지주 회장 비리 방치하고 연임 도운 사외이사

    채용비리와 성과주의가 지주회장 연임의 도구로 활용되는 상황의 반복의 원인은 회장 측근으로 구성된 사외이사들에게 있다.

    KB금융 회추위는 윤종규 회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하면서도 순위와 득점을 공개하기를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종 후보자를 가리기 위한 평가에서 윤종규 회장이 1위를 하지 못했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온다.

    앞서 윤종규 회장은 2연임에 성공했을 당시에도 ‘셀프연임’ 비판을 받았었다. 차기 회장 최종후보를 선정하는 회추위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뽑는데 여기에 지주회장도 들어가 있다. 회장을 선임하는 사외이사를 회장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가 뽑는 격이다. 현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에 지주회장은 배제되지만 사외이사 자체가 사실상 지주회장이 추천하거나 회전문 추천 방식이라 회장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2018년 김정태 회장 3연임 반대 기자회견 자료 사진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이 사실상 확정됐던 지난 2018년 때도 회장 선출 과정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 김정태 회장은 ‘최순실 금고지기’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특혜승진 등의 의혹을 받으며 금융권 적폐인사로 유명세(?)를 탔다. 그럼에도 회추위는 김정태 회장을 최종 회장으로 낙점했는데, 나머지 후보 2명이 김정태 회장 연임을 위한 들러리라는 말이 나왔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가 된 상태에서도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했다. 외부인 채용청탁과 은행 고위직 자녀 부정채용, 성차별 채용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지만, 이사회는 유죄가 예상됨에도 조용병 회장의 연임 쪽에 섰다. 법원은 조 회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회장직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임직원은 기소만 되어도 업무에 배제되는데 회장은 연임까지 성공한 것이다.

    경영진을 견제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지주회장의 연임을 오히려 돕고 있는 상황인 셈인데, 이런 지적은 금융행정혁신위원회 보고서에서도 나온다.

    금융행정혁신위는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부 금융지주회사 회장 선임 과정이 불공정하며 불투명하다”며 “현행 법제 하에서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이사 중 1인으로, 이사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서 추천되고 있다. 하지만 이사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는 현 회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후보 추천에 내부 인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 정상화 대안은

    사외이사가 지주회장 거수기가 아닌, 정상적 견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그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행정혁신위는 “기존 회장(최고경영자)의 참호구축을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방법은 회장 후보 및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회장 및 사외이사를 추천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인재 풀을 회장 및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행정혁신위는 노동이사제나 노동추천이사제를 사외이사 정상화 방안의 긍정적인 대안으로 거론했다. 노동자 대표가 경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거나, 노동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혁신위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로 내부 견제가 이루어져 경영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노동추천이사제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므로 이해관계자 간 심도 있는 논의 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1대 국회에선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노동자 대표 1인 포함하는 내용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엔 지주회장 연임 시 이사회에 회장 선정의 전권을 위임하지 않고 외부기관의 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채용비리, 사모펀드 사태 등의 문제를 일으킨 회장이 경영성과만을 이유로 연임할 수 없도록 외부의 견제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계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사외이사를 선출하는 방식도 주목하고 있다. 노동이사제나 노동추천이사제가 아니더라도 집중투표제로 사외이사 구성의 다양성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란 한 주 당 선출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로 소수파 주주가 이사를 선임할 확률을 높여주는 제도다.

    21대 국회에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경제3법’ 중 하나인 상법 개정안에 집중투표제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단계적 도입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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