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능 거부운동하면 안돼요?"

『88만원 세대』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 등 10대와 20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책을 펴내,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우석훈 박사는 얼마 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부터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제안이 하나 들어있었다. 먼저 문제의 메일을 살펴보자.

"어제 밤에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읽은 고2 학생입니다.
대학입시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책에 용기를 얻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10대의 운동에 대해 미숙하지만 구상해본 것이 있습니다.
20대 만만치 않게 힘없는 10대입니다.
여지 것 10대의 입시지옥에 대해서 학생의 목소리를 수용한
근본적인 논의는 해본 적이 없는 걸로 봅니다.

아직 초보적인 구상단계이지만,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덧붙여 제가 생각하는 형태는 일단 과격하지만 '수능 거부운동' 입니다."


우석훈 박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고2 학생의 메일 내용

우석훈 박사는 이 고등학생으로 받은 메일 내용을 지난 3일 자신의 블로그 ‘임시연습장(☞바로가기)’에 공개했다. 우 박사는 이 내용을 소개하면서 “요렇게 생긴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답변은 어떻게 해줘야 할까”라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해당 게시 글에는 댓글 논쟁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6일 현재 5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여기에는 자신을 학부모, 대학생, 재수생, 고등학생 등으로 소개한 다양한 네티즌들의 의견과 올라왔다. 급기야는 메일을 보낸 고2 학생도 논쟁 대열에 합류했다. 

용기에 박수는 보냈지만...

다수의 네티즌들은 그의 ‘용기 있는’ 제안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보냈지만, ‘수능 거부’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명확히 엇갈렸다. 우선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를 읽은 뒤, ‘혁명’을 꿈꾸게 된 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지켜본 일부 네티즌들은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젊은 노인(닉네임)’은 “수능 거부가 혹시 반향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피해가 너무 막심하다”며 “또 단순히 개인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교육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엄마(닉네임)’는 “‘68혁명’ 때와 같이 (학생들의) 동참을 이끌어낼지 의문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부정적”이라며 “소위 ‘좌파’라는 부모들조차 일류대에 목숨을 거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아이들도 부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좌파 학부모'들도 일류대에 목숨 거는 현실

하지만 ‘수능 거부’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석훈 박사가 저서인『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에서 제안했던 ‘진(陣)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들도 제기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석훈

‘쇳소리(닉네임)’은 “수능 거부를 혼자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최소한 (수능을 보는) 수험생 중 700명 정도라도 수능 대신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침묵시위'라도 해야지 파장이 있을 것”이라며 “결국 조직화가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로시단테(넥니임)’은 “(혼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단합해서 ‘수능거부’에 나선다면, 분명히 (교육 당국은) 쫄 것이고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어떤 형태로 동참하느냐가 문제겠지만, 수험생 1만 명 정도가 참여한 집회라면 꽤 성공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 박사에게 메일을 보낸 고등학생은 댓글을 통해 “수능이라는 대학입시 제도 아래 우리들은 완전경쟁에 내몰리게 된다“며 “‘수능거부운동’이기 때문에, 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수험생 전체로 확대되면 좋겠다. 재수생 분들도 참여해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되겠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쟁이 당장의 수능 거부 운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당사자에 의해 이처럼 '극단적(?)'인 제안이 나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우 박사는 『88만원 세대』(2007년 발간)를 펴낸 후 가진 독자들과의 대화에서 현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은,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제 아래, 수험생들의 '수능거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으며, "수년 내 학생들로부터 수능 거부하자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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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히'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요즘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이 단어를 듣다 보면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무수히 많은 엄마 친구의 아들딸 나아가 아빠 친구의 아들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내 친구 아들은 전교 1등을 도맡아서 한다더라, 내 친구 딸은 서울대에 붙었다더라….

하지만 나는 괴롭지 않았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들의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씌우고 피부색이 안 보일 정도로 붉은 여드름을 상상 속에서 그려 넣었다. 거기에, 전체에서 한 문제 틀렸다고 신경질을 부리다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 되는 설정까지 더하면 나의 승리였다. 어렸을 때 내 목표는 전교 1등을 하거나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적당히’ 공부 잘하고 또 ‘적당히’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나는 '적당히'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내 주변에는 예쁜 친구가 많았다. 그 친구들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호의를 보면서 한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었지만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공부는 내가 더 잘해.’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친해진 친구가 나보다 얼굴도 예쁘고 ‘성적’도 좋았던 것이다. 위안 삼을 것이 없어진 나는 방황했다. 그 후로 반년을 변변찮은 친구 하나 없이 지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간의 시간들을 거듭 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학급 인기 투표에서 항상 순위권에 들었고, 여중에 다니던 시절에도 학원에서 만난 다른 학교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쌍꺼풀이 없는 눈, 주근깨 있는 피부, 곱슬머리 때문에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주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는 한편 자존감도 쌓으면서 살았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모두 예뻤다. 그렇지만 더는 ‘경쟁’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언가 결핍된 듯한 상태는 그대로였지만, 이후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므로 학교 밖의 공기를 마음껏 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수 시절은 무척 행복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사귀었던 친구에게서 받은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말씀하시던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이 정도로는 더는 엄친아 혹은 엄친딸 대열에 끼지도 못했다.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외모 좋고, 성격 좋고, 스타일까지 좋은 그들을 나는 누구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왜 예뻐져야 했을까

전세는 역전됐다. 내가 무심코 던지는 엄친아, 엄친딸 들의 아빠, 엄마의 직업과 재력에 관한 이야기에 부모님은 그 친구들 부모에게서 흠을 찾곤 했다. “직업 좋고 돈 많은 부부 중엔 화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의사라고 다 돈 잘 버니? 요샌 돈 많이 버는 의사는 따로 있다더라.” 이런 식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많은 사람이 나에게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유히 떠다니는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나의 발은 물 밑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엄친딸들과 비교해 내가 유난히 매달렸던 건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래 삼 년 동안 즉,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부산스러웠다. 보통 수업 시작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전신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화장을 했다 고쳤다를 반복했다.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새운 다음 날에도 잠시 눈을 붙이는 대신, 바로 씻고 화장하고 옷을 골라 입고 학교 가는 쪽을 택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피부 관리도 받았고 그냥 두면 관리 안 되는 곱슬머리 때문에 미용실도 자주 찾았다. 비싼 옷을 사 입을 형편은 안 되어도 계절마다 옷과 구두, 가방 따위를 샀다. 그러다 가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쳐도 엄친아, 엄친딸 들이 멘 명품 가방과 그 친구들이 신은 수제화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적잖이 괴로워했다.

"너 페미니스트 아니지?"

하지만 나를 더 괴롭힌 것은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여겼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친절한 오빠들 덕에 삶이 편한 편이었다. ‘남녀차별’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진 모르겠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과 내가 시작한 공부가 모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치장은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경쟁에 나는 자발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던 것은 아닌가. 고민이 밀려왔고 이 일로 또다시 방황하게 되었다.

“너는(예쁘장하게 하고 다니니까) 페미니스트 아니지?” 하며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싸우는 일도 지겨웠다.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그 욕구를 발현하는 방법은 각자 다른 것이라며, 충분히 성찰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어떤 외적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다고도 말해 주었다. 친구들의 그런 말에 어떤 때는 힘이 나다가도 곧 자신이 없어지는 등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사고'를 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익숙해진 차림을 쉽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다 휴학했던 학기에 급기야 ‘사고’를 쳤다. 오지랖이 넓은 덕에 학교에 입학한 이래 삼 년을 휴일, 방학도 없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 살았다. 어느 날 문득 그 생활이 지겨워져 한 학기 휴학을 했던 것이다.

휴학하는 동안 연극도 배우고, 제과제빵도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 안심시킨다고 토플 학원에 등록하고 말았다. 결국 영어는 영어대로 공부 안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못 배우면서 시간만 허비했다. 휴학 기간을 이렇게 보낸 것이 아쉬워서 한 일이, 토플 학원이 있던 강남역 앞의 모 성형외과에서 한 쌍꺼풀 수술이었다.

실은 전부터 쌍꺼풀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진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건 충동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일은 저질러진 뒤였다. 복학하고 나서는, ‘성형수술’까지 했는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느니, 예전이 더 낫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더욱 치장하는 일에 매달렸다. 한동안 끊었던 피부 관리도 다시 받기 시작했고, 쇼핑도 자주 했다. 두세 달에 한 번 가던 미용실 가는 횟수도 잦아졌다. 예뻐졌다는 말은 기분 좋았지만, 그만큼 고민은 깊어졌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라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피부 관리를 받는 것은 기본이고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말 더 가치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해서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갖는 걸까? 그래서 화장도 하고, 성형수술도 하고, 매일 저녁 부은 발을 주무르면서도 내일 아침 또다시 하이힐을 신고 나서는 걸까?

예쁨에 대한 사회적 기준

나는 이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자 일곱, 남자 세 명이 모여 ‘나는 왜 예뻐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닥치는 대로 실천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예쁨’은 무엇인지 몇 주에 걸쳐 이야기해 보았고, 내가 예뻐지고 싶어서 하는 일들은 무엇인지도 찾아보았다. 나는 왜 예뻐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서로 묻기도 했다. 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기만족’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지만, ‘잠재적 연애 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나오면서, 실제 ‘자기만족’도 타인의 평가에서 나온다는 의견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도 함께 보았고, 성형외과에 가서 ‘견적’이란 것도 내 보았다.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나이듦에 대해서 당당히 말하는 할리우드 여배우들 모습은, 주름지지 않은 얼굴을 ‘예쁨’과 밀접하게 여기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성형외과에서 낸 견적은 우리의 신체 각 부위마다 사회가 예쁘다고 인정하는 기준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게 해 주었다. 쌍꺼풀을 하거나 코를 높이는 정도의 성형수술만을 알고 있던 우리는 상담을 받으면서 수술 부위와 종류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예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소와 다른 나로 변신도 해 보았다. 매일 예쁜 차림으로 학교에 가기 위해 분주했던 나 같은 경우에는, 맨 얼굴로 머리를 질끈 묶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학교에 갔다. 평소에 늘 단정한 차림이었던 친구들의 경우에는 최신 유행 스타일로 꾸미고 학교에 왔다.

어떤 식의 변화인가에 따라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우리는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차림새가 낯선 것도 그 이유였지만, 자신의 외양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답이 있는 질문인 것도 같고 없는 질문인 것도 같았던 프로젝트는 한 줄로 요약되는 결론 대신에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한 시각에 변화를 주면서 끝이 났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주변 사람 중 누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뒤에서 흉을 보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친구들과 “저 사람 성형한 것 같지?” 하며 비난조로 자주 얘기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나는, 누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본인이 만족하는지를 먼저 묻게 되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연예인들의 과거 사진을 볼 때에도 그 연예인의 성형수술 여부에 관심이 생기기보단, 누구의 몸을 유희거리로 올려놓고 수술인지 아닌지 논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게 됐다. 그리고 예뻐지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느라 스트레스도 받지 않게 됐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살련다

각종 알파벳으로 설명되던 우리 세대에게 우석훈 선생님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셨다. 88만원 세대. 알파벳이 붙었을 때 우리 세대는 공통적으로 ‘개성’과 ‘다양성’으로 설명되곤 했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가 된 우리는 알아 버렸다. 우리에게 ‘개성’과 ‘다양성’은 없었다. 그것은 ‘구입’해야 할 것이지 애초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우리는 명품을 살 수 없음에 괴로워했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쫓기 위해 바둥거렸다. 우리는 경쟁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구입했던 개성과 다양성을 버려야 했다. 스펙을 쌓아야 된다고 하던가. 남과 같은 것을 갖되 더 높이 쌓아야 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경쟁했다. 최근 유행하는 엄친아 혹은 엄친딸은 20대인 우리가 이러한 사회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사회가 정해 놓은 어떤 기준안에서 평가받고 경쟁하는 것이 재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최근의 일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면, 나는 예전만큼 열심히 치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뻐지고 싶은 일에 전혀 관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생겼다. 나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시를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재산이라고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 오래된 빌라 한 채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인 우리 부모님, 명문대 간 딸이 결국에는 그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성공’하리라고 순진하게 믿고 기다리시는 부모님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 마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누구는 나더러 철이 없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굶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책도 봐야 하고 고민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술도 마셔야 한다. 요즘은 자연스레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아져 몇 년을 공들여 가꾸어 놓은 피부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물론 요새도 옷장에 가득한 옷들을 보면서도 입고 나갈 옷이 없어 고민한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본 프로그램에서 같은 과 출신 선배가 엄친딸로 출연한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살련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고 사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 이 글은 우석훈 박사가 최근에 『88만원 세대』후속작으로 펴낸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에 실린 글이다. 『혁명은...』에는 '대학생들의 20대 관찰기'라는 장에서 7명의 대학생들이 쓴 88만원 세대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하나.

필자는 1년간 스터디팀에 참가했던 학생들 중에서 가장 가난했던 것 같다. 언제나 리더십을 발휘하며 리더로 움직였던 친구다. 필자는 연세대 운동권의 대모 중의 한 명이고, 맨 앞에 서기보다는 뒤에서 서로 다른 조직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학생생협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연세대의 생협운동과 생태운동을 대표한다. 공부를 아주 잘하고, 성격도 명랑, 쾌활하다. 성적이 좋고, 수업과 학생운동 모두에서 좋은 성과를 낸, 80년대 운동권과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여 주는 친구다. 최근 졸업을 앞두고 학자가 되는 것과 현장 활동을 계속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강연회에서 이 친구를 만나고는 새로운 대학생 모습에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방영화 /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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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88만원 세대 선동 "혁명을 상상하자"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연세대 문화인류학 강사)가 그 후속편인『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를 가지고, 다시 20대들 앞에 나섰다. 그와 독자들 간의 만남은 30일 저녁 성균관대 경영관 원형극장에서 열린 출간기념 강연회에서 이뤄졌다.

이날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우 박사의 모습은 그 자신이 마치 20대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88만원 세대』가 나온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정말 20대들을 많이 만났다”며 “저는 한국에서 20대를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인 것 같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청바지 입은 박사, 20대와 만나다

강연회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 20대 대학생들이었지만, 자신을 ‘고졸 비정규직 출신’이라고 소개한 20대 남성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88만원 세대’의 문제가 학교를 다니는 젊은이들에게는 걱정거리로, 사회초년병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100여석 규모의 원형극장은 행사 시작 전부터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진 가운데, 우 박사 특유의 소탈하고 재치있는 화법은 간간히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우 박사가 이날 강연에서 꺼내든 화두는 ‘혁명’이었다. 그가 불쑥 물었다.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봐요." 몇몇이 손을 들었지만, 주변을 돌아본 뒤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손을 내렸다. 혁명은 아직 20대들에게 생소하고 부담스러운 단어였다.

아직은 낯설고 부담스런 혁명

“요즘 (한국의) 20대들에게 혁명이라는 단어가 잊혀진 것 같다. 그래서 이 단어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 변화에 대한 에너지가 가장 강한 게 혁명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변화가 왔고, 자민당 집권체제를 바꿔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일본의 20~30대들이 만든 성과이다.”

우 박사는 20~30대의 성과라는 대목에 대해 학생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것처럼 보이자 △극우성향의 밴드 활동을 하던 중 좌파 영화감독과 영화를 찍으면서, 빈곤 운동의 선두주자가 된 여성 보칼리스트 아마미야 카린 △도쿄대 법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지만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반빈곤네트워크' 결성을 주도했던 유아사 마코토 등 일본의 대표적인 20~30대 당사자 운동가의 활동과 성과를 사례로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이어 “일본과 한국의 20대 개개인들에게 ‘사는 게 힘드나’고 질문을 하면, 일본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국은 ‘좋은 학교에 다니고 집안에 돈도 많고 토플점수도 높다’고 말하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고 지적했다.

우 박사는 혁명보다 경쟁에 익숙해져있고, 노동자가 되기에 앞서 CEO를 선망하고 있는 요즘 20대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당사자 운동’을 제안했다. 또 이를 위해 리더와 ‘진(陣) 짜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리더와 ‘진 짜기’의 중요성

“지금 대학등록금이 천만 원이 된 것은, 자기문제를 스스로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학생운동은 ‘대리 운동’이었다. 대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언급하면, ‘치사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노동자 농민만 이야기했다. 결국 ‘당사자 운동’으로 바뀌지 못했고, 20대들은 자신들의 대변자나 함께 할 조직이 없었다.

쫄지 않으려면 '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 운동과 유니온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20대들은 리더와 ‘진’도 없이 포위된 상황이다. 강의석 씨는 영웅은 맞는데, 20대들이 너무 싫어한다. 리더는 일도 잘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야 한다. 또 10만 명의 20대들이 단체를 만들어, 한 달의 1만원씩 내면 어떨까.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큰 운동단체가 될 것이다.”

우 박사는 이 밖에도 지역적인 ‘진 짜기’의 방법으로 편의점․주유소 알바노조 등을 제안했다. "샤넬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샤넬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어서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독자들은 학문적인 궁금증부터 개인적인 근황까지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다. 한편, 이날 강연회는 저녁 7시 30분부터 약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우 박사의 이번 강연은 신간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이 책에는 20대 권리선언 제안문과 20대의 기초의원 진출에서 알바노조 건설에 이르기까지 '당사자 운동'의 다양한 사례들이 제안되고 있다.

참석자1 =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널을 뛰는 등, 안정적이지 않은 이유는?

우석훈 = “미학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웃음) 한국 사람들은 ‘미감(美感)’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마디로 아무리 잘해도 못 생기면 싫다는 이야기다.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전략은 TV토론회에 나가지 않은 것이었다. 경제를 살린다고 하지만, 하는 걸 보면 ‘이건’ 아닌 것 같다.” 

참석자2 = 요즘 20대들은 자기만 잘난 줄 안다. 친구들에게 집회에 같이 가자면 ‘과제를 해야 한다’, ‘학점을 잘 따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거절한다. 이명박 정부에 맞서 연대를 해야 한다. 그냥 조용히만 있으면 혁명이 안 될 같은데?

우석훈 =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에 20대들이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올 것이다. 혁명을 상상할 때 움직일 수 있다. 아직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을 것이다.”

참석자3 = 현재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하이에크의 경제이론이 무너지고 있는데, 다시 ‘케인스주의’로 갈 건지 아니면 다른 경제이론이 주도할지 궁금하다.

우석훈 = “자본주의가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지만, 저는 칼 폴라니의 생각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시 ‘케인스주의’로 가기는 어렵다. 당시에는 원유 등 자원사용의 제약 같은 게 없었다. 하지만 21세기는 희소성의 시대다.”

참석자4 = 우석훈 박사께서 곧 시골에 내려가서, 우리 밀을 기르고 술을 내리면서 살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

우석훈 = “낙향은 내년 3월 정도에 생각하고 있다.(웃음)”

참석자5 = 오늘 강연에서 20대들의 ‘당사자 운동’을 제안했는데, 나중에 30~40대가 되면 어떻게 운동을 해야 되나?

우석훈 = “20대에 ‘당사자 운동’을 했던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던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여러 문제점들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석자6 =
20대들이 집회에 참여할 때 ‘간지 나는’ 각오로 나서지만, 전경들이 진압에 들어오는 등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대책은?

우석훈 =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의 집회시위 방식이 80년대에 썼던 것 그대로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바뀌었다. 스크럼을 짜는 등 간지가 나는 방법도 좋지만, 다른 방식을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참석자7 = “우리나라에서 20대 ‘당사자 운동’의 리더가 나올 가능성은 있는가?

우석훈 = “당연히 리더가 나올 것으로 본다. 한국도 거리에서 ‘영웅’을 많이 만드는 사회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누가 리더로 적합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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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88만원 세대를 위한 신년사 "'스펙' 경쟁 무찌르자"

기축년의 새 아침이 밝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한 해를 보내면서 새로운 한 해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살면서 이렇게까지 새로운 해가 오기를 바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해를 정하고 달을 정한 것에 불과하지만, 또 사람들의 삶 역시 그러한 장치들에 의해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장치들을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소 뒷걸음에 쥐 잡는 해

어쨌든 한 해가 다 가고 연말이 되어서야 지난 해가 Year of the Rat, 쥐의 해였고, 새로 오는 해가 소의 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이 쥐의 천국이라서, 연말에 고양이를 새로 들이는 둥, 쥐와 실랑이를 하다보니 이런 것이 다 새롭게 느껴졌다. 소의 기운이 쥐의 기운을 몰아내는 이 신년, 옛말처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 같은 예기치 않은 행운이 서로들 덕담으로 오고간다.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은 아직 이름을 붙이지는 못한 12권짜리 한국경제에 관한 일련의 책의 1번 타자인 셈인데, 100개도 넘는 이름들 중에서 결국 최종으로 남은 이름이었다. 계수 조정을 하기 이전의 119만원 세대와 배틀로얄 세대가 마지막까지 경쟁하던 이름들이었다.

가장 낮은 숫자로는 72만원 세대까지도 있었다. 이 이름과 관련해서 가장 피해를 받은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20대 당사자 운동을 개척하고 있는 희망청이라는 곳의 활동가들이 상징적으로 88만원의 생계비를 받고 있는데, 이들이 가끔 조금 상향된 새 책을 써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72만원이든, 88만원이든 혹은 119만원이든, 이러한 수치는 상징적 수치들이며 동시에 미래형의 수치라는 점이다.

조금 덜 받더라도 더 많은 자율적 삶을 살 수 있는 것들이 생태주의에서 일종의 미래 노동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한국은 아주 많이 받고 거의 자유가 없거나, 혹은 아주 조금 받고 '몸의 자유'가 사실상 사라진 저급한 노동에 시달리는, 그 두 가지 형태가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래 노동의 모습

시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라면 아주 많은 제도와 장치들로 제어하지 않았을 때, 이것이 지독할 정도로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에서 시장이 가장 극성에 달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북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고대 상업문명이 끝까지 갔을 때, 인간은 결국 사람도 상품으로 만들어서 이걸 사고 파는 노예 상인의 시대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쨌든 2009년은 2~3%를 제외한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괴로운 시대가 될 것 같은데, 특히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토호들은 물론 민주당의 호남 토호들까지 온통 '삽질'로 나서게 되면서 이 경제 위기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2009년 하반기 혹은 2010년 상반기에 걸쳐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조심스러운 전망이다. 그리고 이 시기, 특별히 20대를 위한 배려의 장치들을 만들지 않는다면 시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중일이라는 극동의 세 나라의 분위기만 외형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이 가장 시끄럽고, 중국이 그 다음이고, 한국은 가장 조용한 것이 내가 살펴본 형국이다. 일본은 '격차사회'라는 말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일본식 줄임말인 '네오 리베'가 이미 한참 유행 중인데, 여기에 '워킹 푸어'라는 단어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지난 몇 달간 '파견 킬'이라는 살벌한 단어가 등장했다.

토요타에서 수천 명의 파견 노동자에게 핸드폰으로 해고 조치를 알린 이후, '대면관계'에 익숙한 일본 사회가 들끓고 있다. 생각해보면 기륭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비정규직들의 해고는 통화가 아니라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전달되었는데, 이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에 대해서 최소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 '길거리에 나선 30대'라는 표현으로, 30대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 사태에 직면하면서 일본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대결 국면으로 가는 중이다.

중국의 경우는 '단절'이라는 표현에서 상위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분석되던 대학 졸업자들의 실업이 처음으로 발생하면서,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대해서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중국 사회가 술렁이는 중이다.

한중일의 경우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이상한 고용통계가 아닌 약간 정석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면, 한국의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해보이는데, 기이할 정도로 침묵하고, 매스 미디어와 정치권에서 '하나마나한 소리'의 레토릭 장식품처럼 '청년 실업'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 대책으로 일부에서 대학생 자격고사 같은 것을 만들자고 하는 걸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 총공급과 총수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데, 대학생 졸업자격을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고사 같은 것을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이제 대학생마저도 사교육 열풍에 밀어넣겠다는 '적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요즘 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부 관료들이나 혹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과 토론할 때 주로 하는 얘기가 있다. IMF 경제 위기 때, 어려웠지만 우리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도입하면서 복지사회의 기반에 해당하는 인프라를 만들었었다. 이번 경제위기는 더 길고 추울 것이지만, 어쨌든 이 기회에 '사회적 일자리'와 함께 '사회적 경제' 혹은 제3부문이나 제4부문을 본격적으로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건 나의 본심이다.

최근 아주 공개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부연구원에서 추정한 게 있는데,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1% 정도의 생산을 하는데, 고용은 전체적으로 5%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활과 같이 '사회적 일자리'에 해당하는 것들, 이제 막 시작한 사회적 기업 그리고 생협과 같은 협동조합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 노무현 시절에 이헌재 부총리가 농업을 해석하듯이 한다면, 5%나 되는 '시민'들이 1% 밖에 GDP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이는 퇴출되어야 할 사람들이 될 것이다.

물론 이걸 사회적 경제라는 눈으로 본다면, 단 1%의 돈만 가지고도 5%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중이니까, 사회적 안정성에 대한 기여가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난 20대들

최근 정부에서 시범사업격으로 실시하는 몇 개의 사회적 기업에 관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3년 정도를 지원해주고 여기에서 제시하는 임금은 76만원이었다. 서울에서 이 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도시 빈민임에 틀림이 없는데, 이 돈이라도 받고서 일을 하도록 해야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이 금액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주는 돈, 아니 정부에서 주는 돈은 절대로 받을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열려있는데, 내 생각에는 일단은 그렇게 해서라도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두 축만이 '우아한 직업(decent job)'을 제공한다는 극도로 천박한 '개인적 해법'에 대한 다른 해법들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3년간, 정말로 많은 20대들을 만났고, 아마 한중일의 20대라고 한다면, 내가 가장 많이 만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의 일부는 아주 힘 있는 부모들의 자제이고 컨설팅 회사나 로펌 같은 데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방대학에 가느니, 차라리 집안 일이나 도우면서 살겠다고 근실한 결심을 했지만, 결국은 농촌의 '마을 형들'하고 천렵하고 술 마시면서 몇 년을 보냈다가 알콜중독이 심해져 있었다.

이런 속에서 '20대를 위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은 어떻게 열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여전히 내 머리 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펼쳐져 있다. 방향은 알겠는데, 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

대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내가 만난 20대들의 일부는 '근자감' 즉,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희망에 가득 차 있었고, 많은 20대들은 잔뜩 겁에 질려서, 졸업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번 학기 채점을 하면서 학생들이 왜 이렇게 줄었지라고 생각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휴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자, 어쨌든 신년이 밝았다. 수년에 걸쳐 20대의 문제를 싫든 좋든, 연구목록의 하나로 넣을 수밖에 없던 나도, 주활동 무대를 금융경제연구소에서 연세대학교의 문화인류학과와 청년문화원으로 옮겼다. 비정규직 시간강사라는 나의 신분은 변함이 없다.

두 과목을 맡으면 학기 중에 대체적으로 90만원 약간 넘는 돈을 받는다. 사람 값이 임금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적 원칙이겠지만, 아무리 자본주의라도 사회와 문화가 그렇게 기계적으로 '경제의 철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올해에는 나도 좀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쥐의 해에 겪었던 어려움들은 좀 털어버리고 뭔가 좀 해볼 생각이다. 작년에 미루어두었던 '20대 권리장전'도 정리를 좀 해보고, 20대 당사자 운동을 위한 세부 프로그램들도 이제 새로 생긴 20대 활동가들과 함께 정리해볼까 한다.

프랑스의 학생 아파트 같은 것들은 방향도 선명하고, 상징성도 높아 보인다. 복지 특히 지역복지라는 눈으로 본다면, 어렵다고 해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양안정성의 사회

<레디앙>의 20대 독자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소의 해를 맞이해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신년사를 바치고 싶다. 작년에는 10대 좌파 소녀들에게 신년사를 바쳤다.

20대 여러분, 어려운 건 알지만, 여러분 스스로도, 정말로 사람 한 점 한 점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점을 보아 하나의 면이 될 때, 다양하면서도 안정성이 있는 그 '다안성'의 한 점이 될 것이다. 작년에는 점을 놓기 위한 점바둑을 우리는 펼쳤던 것 같다. 올해는 그 점을 이어서 본격적인 포석을 두기 시작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신년, 부디 취업과 삶에 시달리는 많은 <레디앙> 독자들 여러분들의 삶에도 밝은 빛이 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자본의 음모에 의해서 만들어진 스펙 경쟁부터, 올해는 무찌르자.




TAG 88만원 세대, 기륭전자, 레디앙, 스펙 경쟁, 우석훈
  1. 애독자 2009/01/05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 효리사랑 2009/01/05 2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올해 대학교 4학년인데, 힘을 얻을 수 있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3. 88세대 2009/01/06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저희의 정신을 깨게 하는 글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

  4. 우왕굳 2009/01/06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웠고요 ^^ 그런데 장난 섞인 말이라도 '좌파' 라는 말은 좀...그넘의 왼,오른쪽 구호에 질려버려서요. 자라나는 학생들은 좌우를 떠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ㅋ 제가 좀 예민했네요.ㅋ 또 공부하러 오겠습니다 ^^

  5. 88만원 세대 2009/01/06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최근에 88만원 세대를 읽고 등골이 서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조직의 재발견을 사서 읽고 있고, 촌놈들의 제국주의도 미리 사놨드랬죠.

    쉬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면 이제 졸업을 해야할 시기이지만 저도 한 번 미래를 개척해보고자, 휴학을 하고 있었드랬죠. 대한민국의 5퍼센트가 되어보고자 말이죠.

    그 와중에 읽은 88만원 세대는 충격이었습니다. 20대이며, 20대를 매일 만나며,20대의 생각을 매일 듣고 있는 저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던 현실, 막연한 불안감만으로 서로를 재단하며 개미지옥을 탈출하기 위한 수싸움에 몰려 있는 제 모습이 바로 그책에 담겨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저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책에 담긴 내용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연세대학교에서 활동하신다니 무척 반갑기도 하네요. 20대를 살펴보시기에 꽤 괜찮은 공간이니까요
    그리고 연세대학교...4년째 다니고 있지만 돈에 관한한 20대에게 정말 무시무시한 학교이기도 하구요.

    기회가 된다면 강의라도 한번 꼭 듣고 싶네요..그럼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6. 을파소 2009/01/0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입니다. 퍼가서 다른 사람과 나눌께요.

  7. 머털이 2009/01/08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자신의 현재 입장이 88만원 세대인지라. 더 가슴에 와 닿네요.
    우석훈 교수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우석훈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레디앙>의 지면을 빌어 개인적으로 내가 한국에서 가장 '믿는' 이재영 선배의 질문에 답하는 몇 가지 얘기를 해볼까 한다.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직문직답의 형태는 아닐 것 같고, 이래저래 책 뒤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달고 싶었던 얘기들의 일부를 이번 기회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1. 에피소드,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졸저 『괴물의 탄생』은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88만원 세대』에서부터 시작한 4권짜리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문장이니까, 굉장히 많은 문장들과 표현 중에서 고르고 고른 문장이라는 점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더 고백을 하자면, 이 표현이 바로 이재영의 표현이었다는 점이다.

시기를 회상하면, 『88만원 세대』를 결국 <레디앙>에서 출간하기로 하고, 이광호 대표가 출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승용차를 팔았던 그 시점 어느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우리는 모두 너무너무 돈이 없었고, 당장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한 차비도 주머니에 없던 일이 종종 있던 그런 시절이다.

나도 예금이 다 떨어져서 누군가가 밤에 잠깐 보자고 할 때에 택시비가 없어서 "오늘은 못 나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생활을 꾸리기가 어려웠었는데, 그 때 이재영도 당장 하루 살기가 빡빡했다. 그 어느 즈음에 이재영의 통장에 원고비 20만원이 들어왔다.

그때 그 시절

그 때 "난 지는 법이 없다"라고 이재영이 말했었는데, 그 얘기가 참 재밌었다. <레디앙>은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서 상근하던 기자들을 떠나보내고 있었고, 이광호와 이재영 둘이 겨우 사무실을 지키고, 몇몇 필자들은 원고비를 '후불' 즉 외상으로 하더라도 <레디앙>을 지켜야 한다고 기고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1권 이후의 책들이 <레디앙>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은, 순전히 출판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1, 2권이 동시 출간되었었는데, 1권의 출간비를 대기에도 <레디앙>은 벅찼고, 첫 출간이라서 이래저래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느라고 그 뒤에 2권이 나올 때에야 겨우 1권이 나오게 되었다. 1주일 차이지만, 사실은 개마고원의 2권이 1권을 추월해서 먼저 나오게 되는 소소한 사고도 벌어지게 되었다.

그 시절에 "난 지는 법이 없지"라고 하는 이재영의 낙천적인 표현들은 휘발성이 강했던 것 같다. 대선이 끝나고,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면서 몇 개의 독자 모임 같은 곳에서 나는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꽤 오래된 나의 독자들 중에 일부는 다른 곳에서도 그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 시리즈의 마지막 결어는 <레디앙> 그리고 이재영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같이 넘어갈 때, 그 때 우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말이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이 표현의 원저작권이 이재영에게 있음을 밝히고 싶고, 다시 한 번 그의 낙천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2. 시대의 전위는 어디에 있는가?

졸저 『괴물의 탄생』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학부 대학생용 교재 정도로 수준을 맞추고자 했던 이 책에서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시대의 전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노동자 정당'이 시대의 전위인가, 아니면 다분히 아카니즘적이며 생태주의적인 공동체 혹은 직접 민주주의의 작동 요소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다층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전위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10년 전에 유행했던 표현대로라면 cummunalism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코뮌에 해당하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 보다 더 전위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내가 가지고 있고,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논의 축보다는, communism-communalism-코뮌적인 것, 그렇게 이어지는 논의의 축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논쟁보다는, 지역-풀뿌리-공동체-생태로 연결되는 논의와 활동들이, 만약 '신좌파'라는 개념을 설정한다면 훨씬 더 전위적이지 않을까라는 것에 내 생각이 더 끌렸다. 아직은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에 내 스스로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준비하면서 줄곧 후자의 논의 축을 생각했다.

전체 시스템보다 '요소'가 중요 

본문에서는 '제3부문'이라고 표현을 하였는데, 사회경제이든, 시민경제이든, 혹은 최근의 UN 용어대로 NGO(비정부기구)-NPO(비영리단체)가 되었든,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시도들이 어쩌면 경제적인 의미에서든 혹은 정치적인 의미에서든 더 전위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다.

스웨덴이든, 스위스든, 아니면 독일형, 프랑스형, 혹은 일본형 생협모델이든, 아니면 이재영이 얘기한 북부 이탈리아든, 중요한 것은 전체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요소'들에 있다고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요소들은 <자본론>에는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충분히 계급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공통으로 발을 걸치고 있으며, 반자본 혹은 비자본적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축적이 고도화됨에도 불구하고 보존되거나, 재생산되거나, 확대되거나 혹은 '재발견'되는 요소들이 과연 전위적인 것인가, 아니면 계급 사이의 충돌에서 우연히 등장했지만 결국은 사라질 것들이 전위적인가라는 것에 대한 판단이 문제의 핵심일 것 같다.

나는 '재발명(reinvented)'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들은 나라나 문화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인 요소' 그리고 '공공선'의 요소로서 자본 관계에 개입하며, 정치적 결정은 물론 국민경제의 작동에도 개입하며,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서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국자본주의의 외부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전위적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 "다른 것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아직 충분히 전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작은 목소리로, 최소한 한국 자본주의의 외부를 볼 필요가 있다고 소곤거리고 있는 셈이다.

자, 상상해보자. 노조가 만약 스웨덴이나 프랑스의 경우에서 종종 발견하듯이, 그 스스로 일종의 생협을 가지고 노동자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배반인가, 아니면 또 다른 경제에 대한 요소를 노조 내에서 스스로 잉태시키는 일인가? 나는 오히려 지금의 민주노총이 스스로 소비자협동조합 같은 것을 잉태시키는 것이 더 전위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녹색당과 정치운동

90년대 이후로 한국에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 운동 사이에 묘한 협조와 갈등 그리고 질투와 도전 같은 것들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시절에 유행했던 단어를 다시 환기해보면, '정치운동'이라는 단어와 '운동정치'라는 단어가 있었다.

정치 자체가 운동이라는 흐름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정치세력화'와 '녹색당 창당'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두 개 전부 현실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고, 지난 대선 때 열린우리당에 대거 입당하는 정도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흐름 속에서 '운동정치'라는 단어는, 점잖은 표현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비판력을 가지고 있던 단어였다.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메이저 시민단체는 사실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결국은 준정당의 위상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아무리 학술적이거나 개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노빠'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이다.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결국 권력을 만끽하고, 여차하면 '감시와 참여'라는 미사여구를 뒤집어쓰고, 정부 내의 높은 자리나 탐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운동정치'와 '노빠'

이러한 현실 속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열린우리당 근처로 수렴하려는 하나의 힘과 훨씬 더 좌파 쪽에서 활동의 영역을 찾으려는 녹색당 흐름, 두 개의 힘으로 분화되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두 개 다 상처만 남은 실패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3~5% 정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아마 한국에서 녹색당이 창당이 되고, 그 클라이막스에 달한다면, 10% 정도를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력과 진보신당 혹은 민주노동당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졸저 『괴물의 탄생』에서 전개되는 세계관은 다분히 녹색당적인 정책 대안이고, 그런 점에서는 현재의 진보정당과는 구분되는 논의의 세계이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힘들이 기계적으로 진보신당에 합류하게 되는 일은 현재로서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국의 녹색당 운동은 많은 활동가 혹은 시민들을 대변하는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래서 어떤 특정한 인사들이 진보신당의 녹색정치를 지지한다고 표명하여도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기가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녹색의 대안적 정책 틀과 한국경제 대안

원래 녹색의 작동방식이 좀 그렇기는 한데, 한국에서는 특별히 더 대중스타 혹은 많은 활동가들이 인정할 수 있는 인사가 없던 형태였기 때문에 더 그렇다. 즉 '협의' 혹은 '협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누구와 얘기하면 될까? 그런 사람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령 더 많은 것을 양보하고 협상을 한다고 해도, 그 대상이 없다.

두 번째는, 여전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 녹색을 표명한 사람들과 꿈 그리고 이상을 공유하기에는 그 철학적 틀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녹색당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녹색당이 구현해보고 싶었던 정책적 틀에 관한 논의가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에서 소박하게나마 전개해보고 싶었던 얘기들이다.

이 정도면 이재영의 대부분의 질문에 몇 가지 간접적인 답변은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기회에 '파시즘'과 '중산층'에 관한 내 견해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 답변을 마무리하고 싶다.

4. 우정과 환대

'우정과 환대'라는 표현은, 내년부터 집필할 본 시리즈 중 세 번째 시리즈인 '국가의 기본'과 몇 개의 번외편에서 키워드로 사용하기 위해서 최근 준비 중인 표현이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몇 개의 논의그룹에서 '환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몇 개의 논의를 해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중요한 개념인 것 같다. 참고로 작년과 올해, 내가 썼던 일련의 책들은 '생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MB 파시즘이라고 원래는 이름붙이고자 했던 그 정치체계는 한국에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졸저 『괴물의 탄생』의 또 다른 결론 중의 하나이다. 올 가능성은 다분했었는데, 이명박 자신이 파시즘적 인간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치사회구조는 물론 문화적 정치까지도 한국은 파시즘을 향해서 달려가는 중인데, 불행히도 이명박은 '불안한 중산층'을 유혹할 수 있는 아무런 인간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파시즘 시도는 하지만, 정치체계로서의 파시즘은 등장하지 않고, 다만 경찰국가로서의 전환, 즉 폭주하는 경찰 현상 정도를 보게 될 것 같다.

'증오'와 '편가르기'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는 생각보다 깊고, 향후 2~3년 동안 한국의 사회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은, '증오'와 '편가르기'가 될 것 같다. 이것은 파시즘의 또 다른 전형적인 요소들인데, 경제는 계속해서 어려워지면서도 중산층은 물론 민중들까지도 '증오'라는 감성적 요소를 특징적으로 가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대단히 매혹적이면서 인간적 매력에 가득 찬 소위 '아름다운 인간'이 등장하면, 대단히 빠르게 한국형 파시즘이 완성될 것이라는 게 내가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시즘 시나리오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시기가 '불안한 중산층'의 동요에서 시작되어 민중들까지 그 '증오'를 공유하면서 완성되었다고 할 때, 거의 유사한 형국이 2010년에서 시작되어 2012년에 마무리되는 그 정치의 계절이 이런 파시즘의 전개가 극성에 달하게 될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맞서는 '환대의 경제'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졸저 『괴물의 탄생』에서 '제3 부문'으로 표현된, 자본과 국가에 환원되지 않는 요소를, '환대의 경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세밀하게 그려보고 싶다.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마무리한 첫 번째 시리즈 이후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리즈에서 이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물론 아직은 뿌옇게 요소들만 볼 정도다. 나는 그렇게 눈이 밝은 사람인 편은 아니다.

'우정과 환대'라는 거울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비추어보면 과연 어떤 모습이 보일까?

그렇게 정치경제학을 넘어 사회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가보고 싶기는 한데, 과연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서 사회경제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직은 답하기가 쉽지 않다.

2008년 10월 13일 (월) 06:47:52 우석훈 webmaster@redian.org



TAG 88만원 세대, 괴물의 탄생, 노빠, 레디앙, 사회경제학, 시대의 전위,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석훈, 운동정치, 이광호, 이재영, 정치경제학, 한국형 파시즘
  1. wlsWk 2008/10/13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가지가지한다.
    다음이 책장사하는곳인가요?
    민망하지 않은지..

  2. 풀무쟁이 2008/10/13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인가 대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녹색당이나 진보신당도 그 대안으로 서기에는 미미하다"라고 하시는 걸로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지 않는다라는 선언과는 모순으로 보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질 수 없다라고 말해야 하는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88만원 세대-전태일 평전' 1, 2위… ‘그날이 오면’ 베스트셀러 목록

서울대 들머리에 자리잡은 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그날이 오면’이 지난 7월 28일 발표한 ‘2008년 1~7월 그날이 오면 도서판매순위’에 따르면 『88만원 세대』가 1등이고, 『전태일 평전』이 2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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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이 오면' 후원회가 주최한 저자와의 대화 모습 (사진='그날이 오면' 홈페이지)

‘그날이 오면’이 부정기적으로 집계 발표하는 도서판매순위에서 『88만원 세대』는,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작년 하반기부터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전태일 평전』은 매년 상위를 지켰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는 이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해 “『전태일 평전』의 경우 입학한 새내기들이 교양 차원에서 많이 찾고, 학회나 동아리의 세미나에서 권하기 때문에 많이 팔리며, 『88만원 세대』도 비슷한 이유로 많이 찾는다”라고 판매 원인을 진단했다.

김 대표는 또 “이 책들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졸업생이나 연구자, 사회단체 사람들도 있지만, ‘그날이 오면’의 특성상 서울대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밝혀 서울대 학생들의 독서 경향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날이 오면’에서 판매 상위를 차지한 42권 중에는 ‘국방부 권장도서(?)’로 선정된 『나쁜 사마리아인들』, 『소금꽃 나무』도 있었는데, 김 대표는 “이미 많이 팔리고 있어서 인터넷서점에서와 같이 판매량의 큰 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판매 상위 42권에 이름을 올린 저자로는 맑스가 『공산당선언』, 『자본론』 등 네 권으로 가장 많고, 우석훈, 박노자, 하종강, 최장집의 책이 두 권씩이다. 출판사로는 일곱 권을 낸 후마니타스가 가장 많았다.

                                                           * * *

2008년 1~7월 그날이 오면 도서판매순위

1.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 레디앙
2. 전태일 평전 / 조영래 / 돌베개
3.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이순희 / 부키
3. 사회주의와 자유 외 / 장 조레스 / 책세상
5. 법률사무소 김앤장 / 임종인, 장화식 / 후마니타스
6.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 장귀연 / 책세상
6. 페미니즘의 도전 / 정희진 / 교양인
8. 고삐풀린 자본주의 1980년 이후 / 앤드류 글린 / 필맥
9.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 박노해 / 느린걸음
10. 사회학에의 초대 / 피터 버거 / 문예
10. 인간의 역사 / 조성오 / 동녁

12. 박노자의 만감일기 / 박노자 / 인물과사상
13. 공산주의 선언 / 마르크스. 앵겔스 / 박종철출판사
13. 소금꽃나무 / 김진숙 / 후마니타스
15. 촌놈들의 제국주의 / 우석훈 / 개마고원
16.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하종강 / 후마니타스
16.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 갈라파고스
18.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 강상구 / 문화과학사
19.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 알렉스 캘리니코스 / 책갈피
19.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 슬라보예 지젝 / 새물결
19. 지 식인을 위한 변명 / 사르트르 / 이학사
19.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 한겨레
19.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 리오 휴버먼 / 책벌레

24.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하종강 / 한겨레
24. 일반화된 마르크스 주의와 대안 좌파 / 윤소영 / 공감
26. 방법서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 데카르트 / 문예
26. 퀴즈쇼 / 김영하 / 문학동네
28.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 나남
28.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 김동춘 / 창비
28.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 후마니타스

31. 어떤 민주주의인가 / 최장집 외 / 후마니타스
32. 자본론 1-상 / 칼 마르크스 / 비봉출판사
32.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 시대의창
32.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러미스 / 녹색평론
32.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조지 레이코프 / 삼인
3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 돌베개
36. 임금 노동과 자본 / 칼 마르크스 / 박종철출판사
36. the left / 제프 일리 / 뿌리와이파리
39. 한국 경제의 뿌리와 열매 / 박세길 / 돌베개
39. 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 / 한국성폭력상담소 / 동녘
39. 자본의 반격 /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 필맥

42. 문화대혁명-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 백승욱 / 살림
42.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앵겔스 / 책세상
42.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 장시복 / 책세상
42.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 책세상
42. 여성 해방과 생태학 / 토니 클리프 / 책갈피
42.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브란튼베르그 / 황금가지
42. 당신들의 대한민국 1 / 박노자 / 한겨레
42.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 최장집 / 후마니타스
42.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 진보정치연구소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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