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발언, 그녀의 죄는 '천기누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오랜 세월 여성의 몸은 상품으로 취급되어 왔다. 남성들은 재력을 키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을 사왔고, 여성들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어 왔다. 그 연원을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오래된 이야기다.

그러나, 젊은 여성의 50%가 성형수술을 하고, 얼짱, 몸짱 열풍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어대며, 생얼, 동안 등 심각하게 과열된 외모지상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시점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모순들을 속속들이 잉태시킨 외환위기 시점이었음을 다시 환기시킨다.

외환위기와 몸의 등장

이전까지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부여안고, 자질구레하게 끼고 살던 자잘한 삶의 제동장치들로서의 가치들은 생과 사가 홍해처럼 눈앞에서 좌우로 갈라지던 환란 속에서, 일제히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본능의 생살들이 서로 맞부딪히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생존의 벌판에 모두가 맨발로 선다.

그 때, 우리의 욕망은 더욱 단순하며 집요해졌다. 인문학이 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몸>이 급작스럽게,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사회 전반에서 부상한다. 예술계는 몸을 새로운 테마로 부각시키고,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몸을 가꾸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전국 방방곳곳에는 휘트니스 클럽이며 요가강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피부과가 피부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피부미용을 위한 각종 시술을 하는 공간이 된 것도, 치과가 충치를 뽑기 보다는, 치열을 교정하는 일에 더 열을 올리게 된 것도 대략 이 시점부터 일어난 변화들이다. 모든 것을 팔고 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몸은 우리가 제값을 주고 팔아야 할 첫 번째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쁘지 않은 여자들을, 취직도,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는 철저한 세상의 낙오자로 만들어 온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다. 화장을 안 하고 돌아다니면 친구들로부터 ‘민폐’라는 얘기를 듣고, 화장을 꼼꼼히 안 하고 면접시험을 보러 가면 ‘사회에 반항하냐’는 말을 듣는다.

각자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도 아니고, 누구 누구처럼 예뻐야 한다. 여자들이 성형외과에 다녀올 때마다, 김태희, 한가인, 김혜수를 조금씩 닮아간다.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얼굴에 칼질을 하는 여자가 절반인 세상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를 떠나, 더 이상 맑은 정신으로, 정체성이니, 자아니 이런 것들을 움켜쥐고 살아가기 힘든 혼란의 시대에 우리 모두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왜 비웃음이 아니라, 분노인가

누구나가 인정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아닌가. 상위 20%가 아닌 떨거지들, 비정규직들, 일류대학에 못간 인간들. 알아서 먹고 살든지 말든지 알 바가 아닌 세상 아닌가. 세입자들은 생존권을 주장해도 감옥에 가고, 부자들은 세금을 몽땅 도둑질 해도, 언제나 집행유예가 되는 세상 아니던가.

몸이 화폐가 되는 이 시대에, 예쁘지도 않은 여자, 키 180도 안 되는 남자, 돈 없는 남자, 다 루저로 취급되는 세상, 지금 우리 살고 있지 않나. 왜 여인네들은 죽어라 명품백 하나씩을 장만하려고 하는가. 20%인 척,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척, 지배계급인 척 하고 싶은 것이다.

취향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고, 남들이 나를 돈 좀 있는 여자로 봐주기를 바라는, 그 가련한 희망을 우린 명품백에 하나에 간신히 매달고 살고 있지 않나. 꿀벅지니, 찰벅지니 하는 게걸스런 용어들이 버젓이 활자화되어 언론 매체 위를 기어다니는 세상에 우리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이 스무살 먹은 한 여대생이 방송에 나와, 한국사회가 그녀에게 주입한, 이상적 남성상을 언급했다. 매우 직설적인 어휘를 동원하여. 결혼해서 같이 살 남자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그녀의 발언이 과연 한국사회에서 놀랍고 비상식적인 것이었나?

이미 한국사회에선, 애틋한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남녀가 별종으로 취급되기 시작한지 한참 되었다. 각자 자신의 취향은 잘 키우지도, 내세우지도 않으며, 세상이 알아주는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고, 거기에 맞는 상대를 골라 거래를 하며 짝을 지어온 지, 그래서 서로 괴롭게 된 지 오래다.

그 여자의 상식적인 답변

각자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개발하며, 자신만이 가진 매력으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유혹하는 일은 이제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얘기처럼 아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기준에서 자신이 얼마만큼 값나가는 존재가 될지를 계산하며, 턱을 깎고, 코를 세우며, 무리해서라도 비싼 차를 뽑는다. 이게 새삼스런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가.

2009년도를 휩쓰는 한국사회의 최대 유행어 중 하나가 <스펙>이다. 그것은 외모, 학력, 경력 등, 결혼시장이든, 직장에서든 나를 팔고자 할 때 내세울 수 있는 신상명세를 말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선 두 명의 결혼 후보자의 스펙을 나열하며, 어느 쪽을 선택할지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등장한다. 기꺼이 어떤 거부감도 없이 스펙만으로, 둘 중 한쪽이 훨씬 났다, 라는 평가가 이루어진다. 둘 사이의 애정의 강도와, 서로가 느끼는 호감 따위는 당연히 배제된다.

문제의 여대생이 마치 자신의 취향인 것처럼 말한, 키 크고 돈 많은 남자는 한국사회가 주입한 값나가는 남자의 평범한 기준치이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현재의 대한민국 여대생들이 갖고 있는 가장 상식적인 답변을 해준 셈이다.

만약 그녀가 유명 연예인이었거나, 사회적인 권위를 가진 학자였다면, 공인으로써 할 말이 따로 있다는 둥, 사회적인 책무가 뒤따르는 교수, 학자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둥 하는 목소리가 드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스무살 먹은 일반 여대생의 발언이며, 그 발언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고정 출연자들인 외국 여성들의 가차없는 질책이 이어졌다.

“당신은 결혼 같은 것은 하면 안된다”. “남자가 경제력이 없으면 당신이 벌면 되지 않냐.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 외국 여성들이 해당 여학생을 혐오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 또한 여과없이 방영되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린 여대생의 발언을 두둔한다고 느낄만한 여지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사회가 온통 빠져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는 그 순간을 우린 함께 보았고, 우리가 아름답고 건강한 가치관이 아닌 줄 알면서도 주구장창 주입시키고 살아왔던 그 스펙만능주의가 외국 여성들의 지당한 지적으로, 통렬하게 깨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예쁘지도 않은 게, 내를 루저로 만들어?”

여대생의 발언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광적인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녀의 발언이 우습다면, 무시하면 될 일이다. 법원에서 키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고 판결한 것도 아니고, 좋아하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 이별을 고하면서, “너의 작은 키가 싫었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자신과 무관한 한 여학생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그걸 자신의 몸에 박힌 대못으로 여기고, 원통해 할 이유는 진정 무엇인가.

그 얘기를 듣고 분노를 표출하며 기꺼이 루저의 난에 나선 모든 남자들은, 자신들이 예쁜 외모, 어린 여자를 밝혀왔듯이,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키 크고 돈 많은 남자들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 그러한 연애시장의 룰을 너무도 잘 알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오는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여대생의 말이, 진정으로 어처구니 없고, 자신의 볼품없는 인격만을 노출시키는 발언이었다면, 실소하고 말 일이다. 나, 진정한 속물이거든요, 하고 밝히는 그녀의 대담무쌍함에 대해 한마디 해주면서 말이다.

그러나, 외모 이데올로기에 넋 놓고 빠져있던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정네들이, 적나라 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서, 아픈 곳을 제대로 난타당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자 이들은 즉각적인 전투 모드로 돌입했다.

24시간이 되지 않아, 그녀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이루어졌다. 그녀의 과거의 발언이나 사진, 신상에 대한 모든 정보, 심지어는 친구, 선배들의 발언까지 인터넷에 상세히 캡쳐되어 만인에게 노출되어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학교에 해당 여학생을 제적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등장했고,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 폐지운동까지 전개된 상황이다.

루저의 난(亂) 일으킨 그들, 진정한 루저

그 어떤 각별한 사회적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닌, 평범한 여대생의 발언에, 루저의 난이라 불릴 정도의 비분강개가 인터넷을 넘쳐흐르게 하고, 사이버테러에 나서는 이 남자들이야 말로 루저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인간들이다. 그들의 광분하는 모습은, 얼마나 그들이 진정한 루저들이었는지,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스스로가 가세해서 열심히 만들어온 이 외모지상주의 세상이다. 그녀의 발언이 온당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여기서 당신이 할 일은 그럼 ‘C컵 아닌 여자는 루저다’라고 받아 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여성에 대한 가치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80:20의 세상,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슬쩍 이탈하여 독자의 가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함께 만들어 온 세상에서, 고스란히 그 세상의 이데올로기를 주입 받아, 이 시대의 정답을 순진하게 발설해 버린 한 여학생이 아니란 말이다.

사태를 바라보노라니, 연초 프랑스를 공중파 방송사에서 언급된, 한 속물의 발언이 떠오른다. 자크 세겔라(Jacques Séguéla)라는 유명한 광고인이 있다.

미테랑 대선 때, 선거 광고를 진두 지휘했고, 그의 고객과 마찬가지로 이후 쭉 우향우의 삶을 살아온 그가, “나이 50에 로렉스 안 차고 다니면, 그 인생 망한 거 아니냐”는 발언을 방송에서 했다. 연초에 벌어졌던, 사르코지에 대한 세간의 속물 논쟁에서, 나름 사르코지를 옹호 하는 발언을 한답시고, 그 따위 말을 지껄인 것이다.

프랑스의 속물과 사회의 반응

세겔라의 발언은 즉각 여러 매체에서 회자되었고, 세겔라는 이 나라 대표 속물로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샀다. 그는 사르코지한테 아부 한 번 하려다가, 망신이나 당한 멍청이로 회자되었다. 나이 50에 로렉스 시계 안 차고 다니는 게 정말로 망한 인생이라는 인식이 프랑스 사회에 있었고, 50넘은 남자들이 그의 발언에 자격지심을 느꼈더라면, 이 발언에 대한 반응은 비웃음이 아니라 분개였을 것이다.

홍대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이 부끄러운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드러내준 천기누설죄다. 그녀가 드러낸 천기가 차마 인정할 수 없는 악몽이라면, 모두 힘을 합쳐서 그 악몽을 우리의 삶에서 제거해 내자.

당신만의 그녀, 그를 찾기 위한 취향의 목록을 지금 당장 작성하시라. 키 작은 남자를 좋아하는 키 큰 여자가 그 남자의 콤플렉스를 감내하지 못해 떠나야만 하는 사연도, 이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슬픈 에피소드의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2009년 11월 16일 (월) 09:01:57 목수정



TAG 루저, 루저의난, 목수정, 천기누설
  1. 동감 2009/11/16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저의 난, 보면서 정말 열폭이 심하네 이랬습니다. 저도 그 여대생 발언을 듣긴 했지만 '정말 용감하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하고 코웃음치고 말았는데 아주 난리가 났더군요.
    속물적인 저 대답에 가장 어울리는 대응은 비웃음이면 됐을 겁니다. 난씩이나 일으킨 건 그냥 열폭으로밖에 안 보이더군요.

  2. ㅁㄴㅇㄹ 2009/11/16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글 쓰신 분이 이상합니다. 주위에 다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주위에는 아무도 그런 사람 없는데요. 사적으로 이상형을 말할 때도 "키는 크게 상관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 많은데요. "키가 좀 크면 좋죠" 정도가 대부분 아닌가요? 제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데요.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되는가봅니다.

    그리고 용감한 게 아니고 멍청한 겁니다. "루저"는 욕입니다. 그냥 "전 키 큰 남자가 좋아요"라고 자기 취향을 말한 거면 상관이 없습니다만 키 작은 남자(사실 작은 남자도 아니죠.)들을 루저라고 말했다면 그건 대중들을 향해 욕설을 한 겁니다. 연예인들 나오는 토크쇼에서도 이상형 말할 때 키 좀 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흔해빠졌습니다만 저렇게 대놓고 욕을 하지는 않죠. 그런데 욕을 편집하지 않고 방송에 내보낸 제작진이 훨씬 문제죠. 글로벌 토크쇼라면서 제작진은 별로 글로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 2009/11/28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옳으신 비판,,,임돠,,,,,,,역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신듯,,,,글쓴이가 아주 모자란 분이군요,,,,도무지 문제의 핵심을 잘모르시는듯,,,,,,,,,,,,방송에서 대 놓고 욕하는 것과,,,,,,,,,,그냥 사적으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것의 차이를 모르는분이 글쓴듯,,,,,,,,,,,즉 난 뚱뚱한 여자가 싫다는 사적 감정 표헌과,,,, 뚱뚱한 여자는 실패인생이라는 마치 이미 그런 판단을 유도하듯 단정적 규정한 말을 공적인 방송서 했을때의 차이를 모르는 좀 무식한 분의 글을 잘 비판하셨어요,,,ㅉㅉㅉ

  3. 비동감 2009/11/16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폭이 아닌 정당한 비판이죠.

  4. 불판 2009/11/16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취향이 남성의 키가 180이상의 어느정도 스펙이 되면 좋겠다. 그 정도로 끝냈으면,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저 여자의 취향이니까...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80 이하는 루저로 못을 박아버렸다는겁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말인데, FUCK보다 더러운 말이 LOSER로 알고 있습니다. 그 쪽 사람들도 루저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는 말로 알고 있는데, 나이 26~27살 먹은 여자가 저런 말은 했다는거 자체가 웃기는 소리죠. 내일 모레면 30살일텐데, 곧 있으면 결혼도 할테고, 학교 간판도 어느정도 되고, 장학생으로 알고 있는데, 공부는 많이 했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대한 배려는 없는것 같더군요. 자기 속으로 키 작으면, 루저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공중파 방송 KBS에서 대놓고, 루저라니요. 설사 작가의 대본되로 읽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겁니다. 소식을 들어보니, 서로 주장이 틀리던데, 그리고 홍익대 총장도 180이 안되서 루저로 만들어버리고, 대통령도 루저인가? 삼성가의 이건희 전 회장도 루저로 재 탄생하고, 저런 여자들 보고, 개념이 없다, 정신이 나갔다고 하는겁니다. 학교이름 똥칠하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부모얼굴의 똥칠하고, 대한민국 남성들 80%정도 패배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키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키로서 워너가 되고, 키로서 루저가 된다는 발상자체가 웃긴다는 말입니다.

    • 박범준 2009/11/24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신은 여자를 외모로 평가한 적이 한번도 없나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저사람을 욕할 수 있는겁니까? 다른 남자들이 다 욕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그동안 미팅나온 여자들한테 '원폭'이니 '지뢰'니 하는 말들을 무수히 써 오지 않았던가요? 그런 말들이 '루저'라는 말보다 듣는이에게 훨씬 더 큰 상처가 될 꺼란 생각은 안드나보죠?

  5. 이종범 2009/11/16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한 글 잘 보았습니다. 조롱이 아니라 분개한 것은 정말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보면 여자들에게만 들어대왔던 외모지상주의의 잣대를 여성이 시원하게 반격을 한 셈일 수도 있죠(성대결은 아니고 ^^;;) 아무튼 이번 루저 대란이 우리나라의 보이기 싫어했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6. 나 참... 2009/11/16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글들이 점점 나오는 걸 보니, 벌써부터 된장들의 반격이 시작된 느낌이네요.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상식적인 발언했는데 열폭 심하다구요? 용기 있다구요? 말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천기누설한 죄뿐이라...
    키가 크면 좋다라고 말한게 아니라 키가 어느 선을 넘지 못하면 '루저' 하고 표현한 걸 그리 말하면... 글쓴사람 C컵이하는 루저라고 표현하는 남자들한테는 또 어찌 대꾸할려나, 여자 키 얼마 이하는 루저다 라고 하면 또 어찌하시려나... 조목조목 반박하려다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글이라.. ㅉㅉ

  7. 여기 블로거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정찰보냈냐? 2009/11/16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165 이하의 여자들은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뻐도 키작은 여자는 요즘같은 외모시대에
    안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미수다에 나온 여자말대로 반대로 표현하면 여자역시 쭉쭉빵빵하면
    좋은거 아닌가요?)

    저는 인서울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여자들을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인서울엔 남녀공학 외에도 여대도 몇개나 있어서 인서울 대학가기는
    여자가 더 쉽습니다)

    저는 가슴이 최소 B컵이 안되는 여자들은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성형으로 해결이 안되죠,,게다가 모유를 먹어야 건강한 2세가 되죠
    분유먹이면 아이가 모유먹인 아이보다 지적능력 및 건강이 약하다는
    평가는 이미 널리 알려진거죠)

    저는 여자이면서 능력으로 돈잘버면서 남자는 "남자니까 더 벌어야한다"는 내부심리적 남성우호론자는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사랑하는 남자보단 돈있는 남자"를 택하는
    여자들을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능력 부족해서 결국은 능력있는 남자에게 애낳아주고 살림해주는거 아닌가요?)

    결론적으로 저는 자기 키가 크니까 남자는 더 커야하고 돈도 더 잘벌어야하고 사랑보단 돈있는 사람을 택하는 그런 여자를 "진정한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미수다에 나온 그 여자에 생각에 동의하는 여기 블로거도 결국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되므로 능력없어 남자에 찌질거리는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고발한다면서 알라딘 광고띄우는 개념을 상실했기에 또한번 앞뒤가 안맞는 "루저"라고 지칭하겠습니다

    당신은 "루~~저!!"


    PS:루저라고 소리들으니까 기분 어떻나요?

    • 불판 2009/11/17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 블로거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정찰보냈냐?님 조금 오버하신듯...
      장애를 가지고 있는(또는 사고로) 사람들도 있고, 외소증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신장 크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키가지고 조롱하지 않더라도, 키 작은 분들 스트레스 장난 아니게 받습니다. 키가지고 조롱하는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으로 편가르기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구요. 아무든 키나 신체적인 부분 가지고, 루저로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8. 패닉 2010/01/14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쓰신 님 말씀이 꼭 우리 나라 절반의 남성을 가지고 말씀 하시는듯한 글 입니다,, 다 읽고 나니 왠지 허전한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편드는 것이 아니라.. 먼가 잘 몬된 것에 대한 질책을 하고 있는 남성들의 인격은 방영 되지를 않았다고 생각 하지는 않습니까.. 루저 발언으로 해서 자기의 아버지와 자기 친척들을 꺼내어 놓고 욕하는 그런 발언에 ..말입니다...우리 나라는 여섯 사람 걸치면 다 친척이고 이웃 사촌 입니다..거기에 대한 루저라는 발언..자기를 욕하고 이웃 사촌을 욕하는 그런 행위에서 더욱더 아닐한 발언 이라 생각 되고 또한 그에 편드는듯한 글을 쓴 님도 또한 어떠한 자기 자신만을 위한 하나의 독단에 빠져 사는 그러한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를 않네요 그것이 루저..이발언이 천기누설..이라 그렇다면 이세상 사람 살아 가는데 있어 천기누설 아닌 말이 어디 있습니까? 지가 님에게 이런 글을 쓰는것 또한 천기누설?? 님의 독단이 실린 글처럼 보이는 댓글을 님에게 말하는것이 천기누설 아닙니까??천기누설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기누설이란 모든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하늘이 행하기도 전에 먼저 인간이 그것을 알고 퍼뜨리고 행하는것이 천기누설 이라고 알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한마디로 말하면 한집안의 여자가 무엇을 알고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서 사람들에게 천기누설을 하는지?? 저 루저라는 여학생의 말은 자기들끼리는 흔히 쓰이는 말이고..서로가 등돌리고 있으믄 쓰는 말이라 생각 되는 언행으로 보여 집니다 그것을 티브이라는 방송 매체에서 했을 뿐이고,, 그것에 의와 도를 모르는 인간의 발언으로 생각 되어서 남자들의 질타가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여성들 또한 이건 아니다 하는 여성들도 또한 많았다고 보고 들었습니다...한 예로 자기 남편 170도 안되는 키로 같이 살고 사랑하는 한여성도 또한 자기도 또한 루저라 생각 된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 입니다.......



죽은 최진실마저 갈취하는 호러영화 '자본주의'

최진실 패소? 그녀는 죽었다. 지난해 가을, 가장 슬프고 외로운 방법으로. 국민 모두가, 전직 대통령도 무엇도 아니었으나 늘 우리 옆에 있었던 그녀를 잃은 슬픔으로 그 가을을 보냈다.

그런데, 죽고 나서 그녀는 자본주의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한다. 5년 전, 남편에게 맞은 얼굴의 상처를 언론에 노출한 채 인터뷰했던 행동 등으로, 아파트 모델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이 죽은 그녀에게 내려진 죄목이다.

돈을 받고 광고했고, 광고주가 모델의 사생활로 인해 기업이미지에 손상을 가져올 경우 2배로 배상한다고 계약했으니, 남편에게 맞아 멍든 사진을 언론에 노출시킨 모델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건, 자본의 논리로 보자면 나무랄 데 없이 명료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낱낱이 드러내는 단순명료함으로 이 사건은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자본의 논리가 그것을 적시하기만 한다면, 죽은 누이의 무덤을 파헤쳐 간이라도 떼어 파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그 사실에 우린 문득 마주쳐 버리는 것이다.

문득 마주쳤다, 한국 사회의 본질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상식, 도리 따위는 거추장스런 포장지나 되듯 던져버리는,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하게 익숙해져온 한국 사회의 가장 거대하며 질긴 토대의 본질과.

자본주의는 자기파괴적이다. 그것은 같은 인류를 파멸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켜 결국 제 뿌리가 썩어가도 정작 썩어서 푹 쓰러질 때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파멸을 계속한다.

건설사는 자신들이 지불한 모델료의 12배에 해당하는 30억 5천만 원을 최진실에게 배상하도록 요구하면서, 계약을 파기한 후에도 그녀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신한건설이라는 회사에 실추될 이미지 같은 것이 있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가장 효과적으로 그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건설사가 당신 때문에 실추되었다고 호통치며 달려드는 그 ‘이미지’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마치 아파트가 마음 바뀌면 버리고 하나 더 살 수 있는 소비재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아파트 회사들이 너도 나도 미녀 모델들을 내세워 방송이며 신문광고를 하는 광경은 90년대 말부터 가열되기 시작한 한국적 초현실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분양가 자율화 지역이 확대되면서, 아파트 회사들은 브랜드화를 서둘렀고, 아파트 이미지 광고는 광고시장 20%를 차지할 만큼 비대해졌다. 모든 아파트 브랜드들은 미녀들을 하나씩 내세워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 공간을 경쟁적으로 조작해냈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아파트 원가공가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아파트 건설업은 서민경제를 압박하는 조폭적인 수준의 폭리를 취하는 사기(詐欺)업이며, 권력을 얻은 노무현이 금세 그 공약을 포기하게 할 만큼, 건설조폭들의 권력은 거대하기도 했다.

아파트는 사기

수십억을 들여 거짓 이미지를 실어나르는 광고를 하고, 입주자들을 주저없이 사지로 내몰고, 도저히 원가를 밝히기 민망한 수준으로 폭리를 취해온 건설조폭들. 그것이 그들의 실체이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다. 그들이 대법원의 검은 가운을 입고 법의 권위를 빌어 죽은 누이의 어린아이들의 주머니를 갈취하는 것을 ‘합법’이라 부르는 세상에 우린 산다.

가고 없는 그녀, 최진실은 물론 이 모진 자본주의 세상을 열심히, 격렬하게 살아낸 또순이였다. 그녀는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던 60년대의 가련한 여공은 아니다. 90년대를 CF퀸이라는 영광스런 명예를 거머쥐며 살아냈고, 대부분 한국의 연예인들이 그러하듯, 최대의 수입원에 해당하는 광고를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그리고 우린 해마다 저축상을 타는 최진실을 보았다.

한국사회에서 연예인에 대한 최대의 욕도 “광고 다 끊겨라”이고, 그들의 시세(?)를 입증하는 가장 유효한 기준도 출연 광고의 개수이다. 우리는 묻지 않는다. 그들이 선전하는 보험에 정말 그들도 가입했고, 그들이 선전하는 화장품을 정작 그들도 발랐는지를. 어차피 광고는 대부분 사탕발림이고 소비를 충동질하는 거짓 선동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가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고 또 다른 이미지로 도약하기 위한 내공을 쌓기보다는, 잘 팔릴 때, 최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팔아버리는 이 나라의 배우들의 행태에 대해 우린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알았어야 했다. 그녀에게 한없이 관대하던 그 자본주의는 결국 뒤에서 그녀를 갉아먹고 있었고, 그래도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을. 이 자기 파괴의 본질을 가진 자본주의는 전설의 고향에서처럼, 죽은 그녀에게까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서를 날리며 그녀를 괴롭힐 거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죽어도 끝나지 않고 결국 모두가 자멸해 버리고 나서야만 끝나는 한 점 아량도 온정도 없는 호러영화, 그게 자본주의다.

아량도 온정도 없는 호러, 자본주의

광고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아무 의미없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지어내면서, 스스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하게 부유하는 현실 속에서 살고자 했다. 그러다가 광고쟁이가 되면서 이건 자신에게 최상의 직업이라고 감탄한다. 어차피 광고쟁이는 거짓말을 하는 직업이라는 것. 현실에 대한 부정과 자기 환멸, 착시와 환각을 거듭하며 꾸역꾸역 이 거짓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안쓰럽긴 하지만 경멸스러운 건 없다.

그러나 이 뻔한 스토리에서, 어차피 자본에 머리를 조아리기는 마찬가지면서, 권위의 옷을 무겁게 걸치고 있어야 하는 사법부의 꼴은 심히 역겹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 사법부의 권위가 이미 개밥그릇 속에 들어간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이 상황에서 원고 승소의 판결을 감히 내지를 수 있었던 건 노골적인 마초, 조폭정부인 이명박 정부하였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싶다.

질긴 대법관 신영철의 이름은, 죽은 최진실에게 손해배상을 명한 이 대단한 판결(주심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박일환, 대법관 신영철)에서도 보인다. 그도 조폭들과 같이 먹고 사느라 나름 바쁜가 보다.

거대한 건설조폭 패밀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이명박은 22조 원을 퍼부어주기 위해 4개의 강가에 공사를 벌리시겠단다. 그 강들이 모두 썩고 나면 이 긴 파멸의 스토리는 끝이 날까?

2009년 06월 11일 (목) 10:19:31 목수정 redian@redian.org


TAG 건설조폭, 목수정, 신영철, 신한건설, 이명박, 자본주의, 최진실, 최진실 패소
  1. 자살이 벼슬인가?? 2009/06/1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애초에 자살전에 제기된 소송이 지금 끝난거고......최씨의 패배로 판결이 났고 장본인이 없으면 재산상속한 자식이 당연히 배상해야되는거 아닌가?? 재산은 상속하고 채무는 자살했으니 그냥 좋게 넘어가자고?? 말이되냐??



자유로운 '주둥이 권력'의 속물적 행태들

갈수록 점입가경이긴 한데, 갈수록 힘은 더 빠진다. 그들이 입을 벌릴수록 우리의 심증은 더욱 확실한 형상으로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황석영이 한 발언들과 그가 벌인 일들 가운데 놀라운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화들짝 놀란 척하는 진중권이 더 놀라운 지경이다. 작가 황석영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그의 '자유로운 주둥이'를 통해 조금씩 흘러나와 주변 사람들은 죄다 그의 내면을 알게 된 지 오래다.

황석영과 노벨상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지난 수년 주목받았던 고은의 대외적 행보를 겨냥하며 “노벨상 캠페인은 그야말로 아이들 말로 쪽이 팔려서 벌린 적이 없다"며 신랄한 조롱을 날렸던 그가 지난 수년간 영국과 프랑스에 머물며 출판계 인사들을 접촉하고 다녔던 일은 그의 노벨상을 향한 포석이었음은 한국 출판계가 공유하는 정설이다.

2007년, 파리에 머물다가 일시 귀국하여 손학규를 중도 주자로 내세운 대선 바람몰이에 김지하와 함께 나설 것을 천명하면서, 그는 세상을 바삐 휘젓고 다녔다. 그 때 문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오늘은 <중앙일보> 사주를 만났고, 얼마 전 <조선> <동아> 사주도 만났지. 한국문학의 발전, 아니 세계문학의 부흥을 위해 큰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유했지. 예컨대 노벨문학상 상금이 현재 100만달러인데, 당신들이 나서서 300만 달러의 상금을 주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프랑스의 르 끌레지오 같은 작가를 제1회 수상자로 하고, 나를 2회 수상자로 한다면 노벨문학상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권했지. 그러면서 나는 <조선> 사주에게 내가 이름 팔 일이 생기면 이제 글을 써주겠다고 했어."

노벨상을 타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탈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이 이런 식으로 분출된 걸까. 세상에 그 어떤 제 정신 박힌 작가가 자신을 포함하여, 직접 수상자의 수상 순번을 거명하면서 언론에게 문학상 제정을 제안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상금을 노벨문학상의 3배로 늘이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이 된다는 발상을 그 누가 감히 할 수 있단 말인가. 김지하는 이 또한 작가적 상상력이며 바람같은 사내의 자유로움이라고 말할 것인가.

자유로운 주둥이와 황구라

그가 북에 갔을 때에도, 그는 김일성을 7차례에 걸쳐 만나면서 적잖은 돈을 요구했고, 결국 상당한 액수의 활동비를 북으로부터 받아낸 사실로 남에서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이 대목에서는 북에서조차 ‘자본주의 사회의 작가들은 다 저런가’ 하며 그의 돈에 대한 밝힘증에 진저리를 쳤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개성공단까지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북과의 관계에서의 난국에 처한 이명박이 황석영을 대북용 열쇠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어쩌면 현실은 이 점에서도 반대일 수 있다.

통일에 대한 열망, 혹은 작가적 호기심이 그를 북에 가게 했을 수는 있지만,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신의 가문을 우상화하며 세습 독재권력을 구축한 김일성을 한반도의 영웅적 인물로 치켜세웠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진실성과 거리가 먼 황구라로서 존재할 뿐이다.

김지하는 말한다. “작가·예술가들에게는 주둥이의 자유를 줘야 한다고.” 자유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고 누리는 것임을 그는 알 것이다.

글쟁이들인 이 두 사내는 누구보다 더 폭넓은 '주둥이의 자유'를, 자유가 지나쳐 '주둥이의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자유의 색깔에 대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촌평 정도할 권리가 있다. 웃기는 건, 그들은 자유를 가졌으되 그들의 선택은 예술가도 뭣도 아닌, 속물들과 같은 방향이란 것이다.

나그네의 발길 닿는 곳, 왜 계속 오른쪽일까

“작가는 언제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자이며, 저의 장기는 바로 월경(越境)이기 때문에 행동자체가 논의의 출발” 이라고 황석영은 말했다.

그들이 예술가의 자유, 월경이란 거창한 수식을 빌어 감행한 행동은 우리가 지난 세월 숱하게 보아왔던 (김문수, 이재오, 손학규 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행렬에의 동참일 뿐이다. 둔탁해져가는 그들의 눈빛은 일찌감치 정치권에 들어가 스타일을 구겨주고 있는 그들의 오랜 동지들을 닮아가고 있다.

김지하는 그들의 이토록 방자한 자유에 대한 변명을 이렇게 늘어놓는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독재에 저항할 수밖에 없던 미션을 가졌던 예술가·작가의 굴레를 벗겨주고, 상상력의 자유를 줄 때가 됐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광범위하게 목격되는 이 현상. 이 자본의 독재는 정치, 군사적 독재와 그 형태를 다소 달리하여, 많은 어제의 전사들은 이제 무언가 극복되었다고 착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한심하긴 하지만 저항의 대상이라고 보진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용을 표방한 이 정부는 단지 효율을 향해 질주하는 경제적 독재를 행할 뿐 아니라, 상습 시위 참여자 2,500명을 색출하여 “우선 검거”하겠다는 대단히 부지런한 신공안정부이다.

김지하는 말했다. 황석영은 나쁜 놈이 아니라고. 내가 그를 잘 안다고. 마치 자신은 신이고 그의 판단은 그 어떤 입증 논리도 필요없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듯. 진중권은 백치이며, 이문열의 작품 가운덴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도 했다.

우리가 이문열의 노골적으로 추한 말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적어도 이문열의 초기 작품들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김지하야 말로 <오적> 이후 그 어떤 작품으로 시인이라는 자신의 공식 타이틀을 입증해왔는지 말해야 할 것이다.

김지하의 생존방식

꾸준히 책을 펴냈으나, 그의 글과 말은 시대를 꿰뚫지 못하고 겉돌았고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다. <조선일보>에 뜻밖의 말을 던지는 식으로만 그는 격렬하게 생존해 왔을 뿐이다.

진중권이 이번 사건에서 좀 웃기긴 했으나, 그건 선배 김지하의 격한 발언에 잠시 꼬리를 내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이며, 황석영의 행보를 비판한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카피들을 제대로 뽑아냈다.

한때는 격렬하게 증오의 대상으로 삼던 미국을 방문하며 김지하가 “미국 땅을 밟으니 만성 두통이 싹 사라졌다”며 그 나라에 헌사를 바친 행위는, “반미면 또 어떻습니까”라며 객기를 보여주던 후보 시절의 노무현이 미국을 공식 방문하여 조지 부시를 만나면서 미국과 형제가 된 것을 감격해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현상에 대한 파렴치한 아전인수격의 해석에서도 김지하와 황석영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그들은 손학규를 중도로 규정하더니, 이젠 이명박을 중도라고 말한다. 차마 그 말을 담지할 수 없었던 김지하는 황석영의 실언을 “중도이길 바라는 희망일 것”이라고 친절하게 해석까지 해준다.

자신들과 말을 섞어주고 만나주면 다 중도로 보이는 걸까. 당내 경선에서 씨알만한 가능성도 안보이자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오기 직전까지 손학규는 “내가 곧 한나라당이다.”라며 호언해 왔던 사람이다.

광주를 사태라고 불러서 구설을 불러왔던 이명박과 가까이 하면서 황석영은 급기야 광주를 사태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의 궁색한 해명은 “내가 곧 광주다”라는 손학규식의 과대망상적 문장을 카피하는 것에 머문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명박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의 진보 세력에 대한 가차없는 폄하에서도 둘은 닮아 있다. 지난해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 별> 출간을 기념하여 열린 독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오고 간 한 독자와 황석영 사이에 오고 간 대화이다.

"선생님.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의 몫이라고 단테는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항상 서 계셨는데 이번 촛불집회를 보면서 작가 황석영이 아니라 이 땅의 개인 황석영으로서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이 대답했다. "이 땅에 진보가 어디 있나. 제대로 된 진보는 본 적이 없다. 촛불은 시위가 아니라 문화적 코드로 풀어야 하는데 그 뜻은 이미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그러니 이제 기다리고 지켜봐야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명박과 이야기를 하는데 잘 알고 있더라. 그러니 우리는 이제 눈을 멀리 돌려야 한다."

그러고선 몽고에 식량기지를 만들고, 우랄 알타이 계열을 연방으로 묶어 우리가 맹주가 되자. 몽고는 뭐 거의 동의 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어쩌고....하는 이야기. 그 자가 이명박을 홀렸다는 그 이야기를 이미 그 때부터 독자들한테 설파했다.

91년,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은 김지하의 생경한 꾸짖음 “죽음의 굿판을 멈추라”는 학생들을 죽음으로 모는 세력을 탓하지 않고, 죽음으로 저항하는 자들에 대해서만 엄중한 목소리를 가장 반동적인 언론을 통해 내질렀다는 면에서, 그의 말 자체가 크게 그르지 않음에도, 김지하 변절의 분기점으로 기록된다.

그 후 대한민국 좌파에서 김지하는 낯선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촛불 정국에서 김지하는 그 동안의 피해의식을 모조리 쏟아내고 만다.

외롭고 억울했던 김지하

촛불정국이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 그는 좌파들이 촛불을 정권탈취를 위한 횃불로 만들려 한다고 분노하며, 프레시안 기고(직후 조선일보가 1면을 통해 보도했던)를 통해 이렇게 토로한다.

“(좌파들)그들은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의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

소설가 김훈이 아직 청년기자이던 75년, 그는 석방되는 김지하를 취재하려 영등포 교도소 앞에 언발을 녹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날의 표정을 김훈은 이렇게 묘사했다.

“고은, 천승세, 조태일, 김광협 들이 목이 터져라고 만세를 불렀고, 학생들이 김지하를 무등 태워서 캄캄한 교도소 앞 광장을 미친 듯 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김지하는 그 때 무등 위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종신형을 받았다. 이제 풀려나니 세월이 미쳤는지 내가 미쳤는지 아니면 둘 다 미쳤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부패한 정권, 무능한 권력과 끝끝내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김지하가 무등을 타고 기세를 올린 후, 그의 지지자, 찬양자들의 무리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승용차에 올라타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지하는 외로웠고 두려웠고 억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석방될 때의 풍경을 보건데, 그는 자신의 진영으로부터 감옥에서 죽도록 사주된 자는 아니었다.

황석영 또한 비슷한 원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음을 2007년 기고를 통해 토로한 바 있다. “나의 방북을 결정하고 지지해 주었던 벗들이 뒤늦게 제도 정치권에의 입문으로 뿔뿔히 흩어져 갔다. 나는 마치 헹가래를 받다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채 경기장에 불이 꺼지고, 선수와 관객들도 모두 사라진 어둠 속에 홀로 누워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했다.”

김지하, 황석영 그리고 손학규

헹가래를 받고 무등을 타던 그들은 그 아래로 내려왔고, 더 이상 영웅이 아닌 자신들. 땅에 내려온 그들은 이후 정치권으로 흡수되어 한 자리씩 차지하던 옛 동지들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위 생명사상에 대한 심취로 또 한세상을 건너왔던 김지하는 세계적인 생태운동가, 학자들을 불러 토론하는 '세계평화생명포럼'이란 걸 개최해 오기도 했다. 이 우아하고 어찌보면 호화로워 보이기까지 한 포럼이 4년간 개최되어 온 데에는 당시 경기도지사 손학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생태와 생명과 환경을 전 세계 석학들과 함께 논하는 가운데, 바로 옆에서는 그 이름도 낯뜨거운 한류우드(韓流-wood) 사업이 2조5천억 원이란 예산을 들여 진행되고 있었다. 한류스타들을 테마로 하고,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한 테마파크 조성이다.

손학규 스스로가 작명했을 정도로 그의 정성과 야심이 담긴 이 사업은 그 명칭부터 적나라하게 식민지적이며, 이명박의 전매특허라고 알려져 온 맨땅 파서 경기부양하는 식의 건설 프로젝트였다.

또한 배용준 거리, 최지우 동산으로 펼쳐지는 한류우드의 구상은 김지하, 황석영이 극찬한 손학규의 문화적 감수성의 수준이란 걸 제대로 보여준 바 있다. 손학규의 모순에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김지하는 그가 내미는 단물을 고맙게 받아 마신 바 있다.

조선일보나 한나라당 말대로 소위 좌파정권이라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심하게 시달렸던 것 같다. 누군 정부의 지원으로 계속 노벨상 캠페인을 벌이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데 누군 자기돈 써가며 그 짓을 해야 했다. 누군 장관도하고 하다못해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라도 하는데, 목숨 바쳐가며 싸웠던 자신은 아예 판에 끼워주지도 않으니 그 심정이 참 억울했을 법도 하다.

이명박 정권의 공적

그나마 젊은 시절, 같이 연극을 하고 운동하던 옛 동지 가운데 한나라당의 탈을 썼을지언정, 그들과 여전히 교유하고 때론 재정적 지원도 해준 손학규가 상당히 멋져 보였던 것이고, 자신이랑 말을 섞고자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명박은 가짜 좌파정권보단 쓸 만하다고 기대들 하셨던 것 같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 황석영은 <어둠의 자식들>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실제 저자에 대한 자기 고백까지 해야 하는 궁지에 단단히 몰리셨다. 이 의심스런 두 작가들을 잔인하게 커밍아웃하게 해준 것까지 어쩌면 이명박 정권의 뜻하지 아니한 공적에 올라가게 될 듯하다.

그러나 심사가 심하게 뒤틀린 두 늙은 광대들의 슬픈 코미디는 이제 이쯤에서 막을 내려주었으면 한다. 슬픔이 너무 무거워지면 우울로 번지고 인간에 대한 좌절로 확대될 수도 있으니까.

2009년 05월 20일 (수) 08:36:06 목수정 webmaser@redian.org



TAG 김지하, 레디앙, 목수정, 황석영
  1. 아나 2009/05/20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들 안도와준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정명훈이라는 사람을 매장하려 시도했던 인간들이 속물 운운하는거 보니 왜이리 웃기냐;;;

    • 운서 2009/05/20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주나 하면서 손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되는... 알았어요. 알았어.”

      이거 누가 그랬을까?
      이 말 누가 했을가?

    • 그러게요... 2009/05/20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40년전에 미국에 빌붙어서 먹었으니...(사실,우리나라 남북으로 분열된 것,미군정의 책임은 없는 지?? - 제발,근현대사책 좀 읽으세요. 네??)

      지금은 미국에서 똥을 갖다 주어도 먹어야 하죠...

      참 생각없이 살아...

      미국애들이 쓴 책들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책들... 읽고 좀 역사를 아셔야죠..

  2. 알지 2009/05/21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주의자들이 전쟁을 만들지 돈을 위해
    미국애들이 좋아라하는



송윤아가 '남의 가정 깬 년? 아프면 치유하자'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주지만 늘 어두워 보였던 설경구와, 예쁘고 어쩐지 신뢰 가는 송윤아가 결혼 발표를 했단다. 그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송이 눈물을 보였다길래, 그들이 곡절 많은 사랑을 해왔던 것 같아 공연히 가슴이 따끔해졌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듯하다. 아니 스포츠 신문 같은데 굵은 활자로 찍혀 있는 글을 지나가면서 본 듯하다. 설경구가 별거, 이혼을 했다고.

사랑으로 만난 하나의 커플이 와해될 무렵, 또 다른 사랑이 주변에 다가오는 일은 흔하고도 자연스런 일이다. 종종 우린 그 시간 차이의 미묘함으로 예민해지곤 하지만, 그래봐야 그 인과 관계를 자로 재듯 측정하기란 힘들며, 따라서 전후관계를 규명하려는 혹은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일은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가슴이 약간 따끔했지만 농익은 배우들끼리의 결혼 발표. 덤덤하게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충격은 그 다음에 찾아왔다.

지난 9일 배우 설경구와 송윤아의 결혼발표 기자회견

여러 모로 존중할 만하다고 여겨왔던, 82쿡(http://www.82cook.com/) 사이트가 설-송 결혼 발표로 폭탄 맞은 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거다. 이유는, 설경구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송윤아한테 가기 때문이었다. 송윤아는 '남의 가정을 깬 년'이고, 설경구는 바람나서 '가정을 버린 놈'이었다.

그러면서 박정희도 조강지처를 버리고 육영수와 결혼하는 바람에 둘 다 비명에 가는 운명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더불어 따라다녔다. 박근혜는 장녀가 아니라 차녀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이참에 박근혜도 싸잡아서 공격하자는 듯이.

다음 아고라엔 설경구 전처의 가족들이 올린 글들이 사람들의 의협심을 부추기고, 급기야 다음날엔 설경구 송윤아 결혼 반대 서명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전처가 “가정만은 지키고 싶어” 이혼 안 하려고 발버둥 쳤다는 이야기는 순교자의 거룩한 마지막 말 같은 아우라를 풍기며 네티즌의 공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었다. 모두들 합심해서 전처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해가며, 친정식구라도 된 것 처럼 공분하는 이 광경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유교가 쳐놓은 그물은 이다지도 단단하고, 한국 사람들의 틀에 대한 강박은 이다지도 질긴 것이었단 말인가. 촛불정국의 중요한 주체 중 하나였던 82쿡이 일상 전반에서 드러내 주는 정치적인 진보를 늘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터라, 이번 일에 대한 반응은 제대로 충격이었다.

관계와 틀

이 사건, 즉 설경구-송윤아의 결혼에 대한 ‘대중의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은 관계가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죽어라 틀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고통스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에겐, 남편 혹은 아내라는 공식적 타이틀을 가진 누군가보다 서로를 보듬어 주고, 사랑의 에너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그리하여 더 창조적이고 유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상대가 필요하다. 틀을 유지하는 동안 남들에겐 정상적인 가정으로 ‘보여질 수’ 있을 지언정, 우리의 영혼은 포근한 은신처를 잃고, 삶은 어느새 공허한 위선으로 가득 찬다.

‘틀보다 관계가 더 소중한 것 아닌가’ 하는 투로 82cook에 말을 던져 보았다. “결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남는 건 섹스와 싫증뿐이다” 라는 답변이 즉각 돌아왔다. 이는 바로 한국사회의 중심지배계층인 중산층 남성들의 삶의 패턴을 반영하는 말이다.

그들은 집안에 있는 마누라를 돌같이 볼지언정, 어지간하면 이혼하지 않고 살고, 대신 다각도로 심오하게 발달한 이 나라의 매춘시스템을 활용하면서 허전함을 달랜다. 그들에겐 가정을 함께 유지하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소비하는 여자가 있을 뿐, 그들이 혼신을 다해 사랑하고 마음을 교류하는 여자가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술집 여자'를 소비하는 것은 사회적 관례이고, 아내 아닌 여자와 마음을 나누며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일은 불륜이다. 성(性)은 관용하되 애(愛)는 결코 용서 못한다.

10년 넘게 모래알같이 부서져 버린 허울만 남은 가정을 지켜오면서, 자신은 줄곧 술집여자를 소비하던 박철이 다른 남자를 사랑한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위자료를 챙기려했던 모습은 설송의 결혼, 혹은 사랑을 무섭게 비난하는 대중의 사고와 매끄럽게 연결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지배계급의 사고가 사회 전체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여성들이 가부장제가 만들어 놓은 덫으로서의 결혼, 가족제도를 열렬히 옹호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혼제도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출현한 것이다. 노동집약적인 농업사회로 넘어 오면서, 자손들에 대한 소유권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에 의해, 여성들의 성적인 자유를 박탈하고 한 남자에 영원히 복속되는 강박적인 정조를 요구하는 사회질서가 지배계급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던 것이다.

여자가 한 남자를 위해 수절하는 것을 독립투사 떠받들듯 대단한 덕망으로 칭송하는 모순된 풍습을 조장하고, 칠거지악(남편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사유: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 아들이 없음, 음탕함, 질투함, 나쁜 병이 있음,말이 많음, 도둑질을 함)같은 족쇄를 만들어 여성을 유용한 가축 정도로 취급해오던 유교가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흔적을 강렬하게 지니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누려야 할 삶에서의 감정적 만족과 성적인 즐거움등을 작위적으로 틀어막았던 사회에서 매춘이 최대의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회에서 그 최대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열녀문을 세워주던 사대부들과 똑같은 어조로 결혼의 금 밖에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두 남녀를 엄중하게 꾸짖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남의 가정을 깬 년"

가정. 가족. 한국사회에서 이처럼 무지막지한 권력을 가진 단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도 감히 공격할 수 없다는 면에서 천하무적이다. 아무도 가족은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어야 하고, 가정은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위와 현실이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가정은 또한 권위와 권력이 학습되는,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사회를 형성하는 최초의 단위이도 하다. 남자에게 가정은 그들이 잘 다스려야할 최초의 조직이고, 그것을 잘 하고 난 다음에 더 큰 조직을 다스리고 군림하도록 훈련되어져 왔다.

   
  ▲ 설경구와 송윤아가 함께 공연한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한 장면

이런 구조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위선은 가족 내에서의 질서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조했고, 거기서 많은 불행이 재생산되었으며, 그 불행은 침묵으로 감춰지도록 강요되어 왔다. 모든 가족 구성원은 가부장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다스려지는 가정의 이미지를 위해 크고 작은 희생을 언제나 감수해 왔다.

최근들어,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 <달려라 아비> 같은 소설들은 붕괴되어 가는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을 부수고, 가정이 가지고 있던 위선의 허울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송윤아를 향해 쏟아지는, 남의 가정을 깬 년 이란 비난은 결혼을 기반으로 하여 아버지와 어머니,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틀의 가정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입되어 온 이 하나의 틀만이 우리가 그토록 벌벌 떨며 유지하고자 하는 '정상'의 틀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엄마와 아이들 만으로도, 혹은 결혼이라는 법적인 제도를 거치지 않은 커플만로도, 혈연관계가 아닌 자매들, 형제들끼리도 가정은 얼마든지 형성되며 유지된다. 중요한 것은 그 구성원들이 나누는 소통과 애정의 밀도이지,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틀 자체가 아닌 것이다.

대체로 유일신을 가지지 않은 사회는 다원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삶의 틀이 존재한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민간신앙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던 한국사회에서 유교적인 지배계급의 사고가 이토록 좁은 정상의 틀을 제시해 놓고, 시대가 진화하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그 좁은 틀에 사람을 가두고 있다는 사실은, 독재로 점철되어 온 현대사가 유교의 권위주의를 제대로 활용해 온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성정치, 성해방이 대한민국 진보진영에서 가장 부실한 논의의 토대를 가지고 있는 영역인 것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도덕을 들어 신랄하게 공격받기 너무도 쉽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정치적인 해방의 문제로 이해시키는 데는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덕인가?

분명 누군가는 도덕 따위는 그럼 필요없단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도덕의 시금석은 그것이 인간들의 생활을 더 풍부하고 더 조화롭게 만드는 데 적합한가에 따라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동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생활의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 도덕이어야 한다.

지배계급에 의해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탄생한 가치가 오늘날의 도덕적 요구로 지속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도덕은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데, 그 누구의 행복을 위해서도 기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만 쓰이는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배계급들이 만들어 놓은 그 도덕의 틀을 수호하자는 목소리를 드높이는 순간, 우린 현상을 관통하는 본질을 놓치고 만다. 예를 들어, 촛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 답답한 품위와 예의를 통쾌하게 깨 부숴준데 있었다.

대통령한테 쥐박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쓰레기 같은 기사를 써오면서 수십년 동안 우리의 사고를 조종해온 언론사 앞에 쓰레기 더미를 과감하게 던져주는 이 품의와 예의를 상실한 태도가 비로소 우리의 삶을 옭아매던 자들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해주었다.

아프면 치유하자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선 물론 떠나간 사람이 원망스럽다.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아이와 함께 남겨진 엄마의 입장에서, 삶은 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겪은 일은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삶의 한 과정이다.

우린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때론 떠나고 때론 남겨진다. 마음이 떠난 사람과 허울뿐인 관계를 부여잡고 있어봤자, 상처만 더 커질 뿐이다. 이혼하지 않고 원수처럼 지내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더 크다.

공연히 더 큰 원망을 키우기 보다는 인간사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추스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떠나간 남자에겐 적어도 아이 아빠로서 절반의 양육을 위한 책임은 확실하게 묻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다른 사랑을 만나든, 다른 삶의 터전을 가꾸든,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설경구와 송윤아가 결혼을 하든 말든 앞으로 광고는 다 끊겼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저주를 퍼붓는 네티즌들도 그들에게 광고가 끊긴다고 누가 더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설경구-송윤아 결혼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한 분들을 위해서는 모두 정신치료를 권하고 싶다. 그들이 결혼하지 않아도 그 누구도 행복해 지지 않는다. 간통한 자들의 행복이 당신들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간 그 모든 남자들을 간통죄로 고발하자는 서명운동부터 하시라. 간통은 되지만 사랑은 안 된다? 그렇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아픈거다.

2009년 05월 18일 (월) 06:40:11 목수정



TAG 82쿡닷컴, 가정 버린 놈, 남의 가정 깬 년, 목수정, 설경구, 송윤아
  1. 할램디자이너 2009/05/18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강지처 버린 설경구는 천벌을 받아야함...

    • 이명박 2009/05/19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당신 치유가 필요하다자나

    • 음.... 2009/05/19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프고 치유가 중요한게 아니라
      아프기전에 미리 예방주사라도 맞고 막았어야죠.


      뭐든 너무나 합리화시키네요.(글 쓴 분)




      솔직히 개인사야 왈가왈부하기 그렇지만
      이 글은 좀 아니네요.

    • 솔직히 이 커플 결혼한 저로선 남녀관계야 본인들 빼고 어떻게 알까? 2009/05/19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글 읽고 저 커플이 싫어질려고 합니다.

      글 쓴 분 아무리 기를 쓰고 옹호하려고 해도

      인간적으로 이해는 해도

      저들이 잘 못한건 맞습니다.

  2. 반 더 빌 트 2009/05/18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보는 명문이네요.

    한국 사회의 폐단을 제대로 짚어 내셨습니다.
    설경구랑 송윤아랑 결혼을 하든말든 왜 자신들이 난리랍니까?

    자기들 삶이나 온전하게 꾸려 가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런 집단주의적 사회 현상은 외국인들이 알까 두려울 정도에요.
    사실 이런 게 진짜 나라 망신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군요.

    암튼 글 잘 보았구요.

    좋은 한 주 보내세요!^^

    • 반더빌트님 2009/05/19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사회의 폐단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대중들이 분노하게 된 발단을 제공한 것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설의 위선이 이혼한 전처와 그 가족들의 상처에 불을 질렀고... 그에 공감하는 대중들이 같이 분노하게 된거죠. 설-송이 그냥 조용히 결혼을 했거나... 적어도 설이 이혼만은 막고싶었지만...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자신의 귀책사유를 상대방에게 돌리고 자신들의 사랑을 미화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런 발단이 없었는데 대중이 지금과 같이 떠든다면 그건 오지랖이 맞겠죠.

    • 이것보시게.. 2009/05/19 0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또 외국인 타령하고 앉았다.. 나라망신은 지극히 개인 애정사로 부터 오는 건 더더군다나 아니란다. 간만의 명문이란 표현은 이런 시덥잖은 주제로 쓴 글에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 z 2009/05/19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님 강도만나서 죽기직전이어도 신경안써도
      되겠네요...자기삶을 알아서 잘 살아가실테니깐...죽든말든..

  3. 지나던 이 2009/05/18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체 뭐하는 분이신지... 다 좋다고 치구요,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 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님 말대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알면서도 배려하지 않으시는군요.

  4. 러블리 2009/05/18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봤습니다.
    아주 속시원히 이유를 제시해가며 논리적으로 써주셨네요.
    왜 남의일에 배놔라 감놔라 간섭들인지...
    자기네들 인생이나 똑바로 살았음 좋겠어요.
    남녀가 이혼함에 있어 어느 한쪽만의 문제로 이혼하는경우는 없죠.
    또 당사자가 아닌바에야 표면적으로 드러나있는 이유만으로
    모든걸 추측하고 매도해가며 싸잡아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보구요.

    '아프면 치유하자'
    라는 말에 절대공감합니다.
    이미 지나간 인연, 과거에 얽메이며
    더이상 본인 스스로 아물어가던 상처 건드려서 곪아 터지게 하지말고
    이미 끝난 인연이니 마음 좀 추스렸음 하네요.

    새출발 하겠다는 사람 매장시키겠다는것도 아니고
    그 주장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왜 이제와서 이러는지 알수없네요.
    그렇게나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면 이혼당시엔 왜 침묵했는지요.

    이런다고 뭐 달라질건 없고,
    결국 상처받는건 본인과 본인딸이라는걸 명심했음 좋겠구요.

    • z 2009/05/19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너나잘하세요. 딴사람들 생각이 어떻든지 자기 생각적어놓은거에..감놔라 배놔라 하지마쇼.

  5. 천두 2009/05/19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영리한 사람들은 항상 '결혼은 여성의 속박을 위해 만든 제도'라는 식의 영리한 아이디어들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 1부 1처의 결혼 제도는 '유혹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의 근본이 같으니 겉으로 드러난 것에 현혹되지 말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가 되어 함께 이어나간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 아니었나요? 다른 아이디어를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나라 남자들이 발달된 매춘 시스템을 애용하며, 이혼을 거부한다.'는 내용에서 미움이 가득 느껴집니다.
    물론 남의 일입니다만, 글 쓰신 님은 너무 단정적으로 사회를 매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혼은 이 사람 저사람 만나도 실제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남성 우월주의로 인하여 종교를 이용,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입하여 한 사람에게 종속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사실 종교는 남/녀 모두의 방종을 경고하지만, 사실 남자들은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 여성 만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고), 자본주의는 부자들이 빈자들을 더욱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훈민정음은 백성들의 지능을 약간 올려 더 통치하기 쉽게 하기 위해 창제된 것이고, 유교는 백성들을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아니면 정부가 유교를 그렇게 이용한 것이고... 그걸 모르면 아직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고... <-이런 식의 아이디어가 아주 크게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우울하고, 사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6. 2009/05/19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송윤아-설경구는 일반인이 아닙니다. 비난 받을 것에 대해 비난받고 책임 져야 합니다. '아프면 치유하자'라니 먼저 아프게 한 사람은 저 두사람이고 치유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죠...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7. 2009/05/19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8. forfun 2009/05/19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인이고 공인이고 남의 가정사에는 크게 관련하지 않는 편입니다만은, 이번 설송커플의 결혼 발표는 그냥 씁쓸하네요. 원글의 대략적인 아이디어에는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이혼과정에서 설경구씨가 보여준 모습은 꽤....충격적이었다고 생각해요(물론 사실이 아닐수도 있지만, 일단은요). 살다가 다른 사랑이 찾아올수도 있죠. 하지만 이혼하면서도 지킬 건 지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예를들어 친권이라든가. 친권은 그렇게 막 포기해도 되는 권리인가요. 친권이라 하니 무슨 권리인양 하는데 그거 의무기도 한데...). 뭐, 제 이야기도, 제 주변 사람 이야기도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큰 관심 없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제 설경구씨랑 송윤아씨한테 호의있는 관심은 보이지 못할 것 같네요.

    • 친권 포기 2009/05/19 0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권 포기는 아버지로서 권리를 다 포기하겠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아닙니다. 만일, 아이를 엄마가 기르겠다고 하면(양육권), 친권이 엄마에게 없을 시 아이를 기르는데 엄마가 여러가지 불편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권까지도 포기해 주는 경우가 많아요.

  9. ㅆㅂ 2009/05/19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저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설경구가 전마누라에게 했듯이 당했는데 이따위글 볼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저희 어머니 몇번이고 자살충동에 지금도 피해의식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데 공인이고 연예인이랍시고 남의 남자 꼬신 송모녀ㄴ 이나 마누라 버릴라고 지랄했던 저런 놈은 절대로 용서가 안되네요. 남에 개인사니 가정사니 하는데 과연 당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당했어도 그런말이 나올까? 아..화나네...

  10. illi 2009/05/19 0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바하지마세요 다들,...모든사람들이 그렇듯 자기합리화에 의존한 글을 올립니다 남의이야기는 그냥 이야기 입니다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설경구랑 안살아 봤죠? 그럼말을하지말고 그의 부인과는 살아봤나요? 아니죠? 그럼 말조심 하세요..속내용은 아무도 모르는법
    모두 이유가 있겠죠? 또하나 연예인은 공인이 아닙니다!!!

    • 한가지만 따지자면 연예인은 공인 맞습니다 2009/05/19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논리적으로 연예인은 자신의 이미지, 연기, 초상권등을 파는 직업입니다.
      그런만큼 사회에 대한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사회의 공공적인 면에 영향을 줄수있기 때문에 공인으로 보는게 정확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미디어를 통해서 공개되게 했기때문에
      그에 대한 조절과 책임도 자기 자신에게 있는것입니다.

    • 와 닿는다. 2009/05/19 0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에서 엉터리교수~ 그것도 행정학 나부랭이 계열을
      가르치는 교수가 권위를 들먹이면서 연예인 딴따라 광대 나부랭이는 공인이 아니다.라고 근거도 없이 씨부린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무식함 의 극치...

      연예인이 왜 공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니 생각 근거를 듣고싶다. 머리 텅텅 빈 인간~

  11. 현횬 2009/05/19 0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경구씨와 전처의 관계가 인터넷에 떠도는 글처럼 사실이라는 가정하게 몇 자 적습니다.--

    글쓴 분은 이슈에서 벗어난 말씀을 하시는 군요. 그리고 댓글 단 분들

    중에 이런 황당한 말씀을 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간만에 보는 명문이네요.

    한국 사회의 폐단을 제대로 짚어 내셨습니다.
    설경구랑 송윤아랑 결혼을 하든말든 왜 자신들이 난리랍니까?

    자기들 삶이나 온전하게 꾸려 가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런 집단주의적 사회 현상은 외국인들이 알까 두려울 정도에요.
    사실 이런 게 진짜 나라 망신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군요 <---

    이런 글 쓰신 분 있는데 어이가 없군요.
    집단주의적 사회 현상? 왜 클린턴이 바람폈을 때 미국은 그렇게 크게 난리 쳤는지 모르겠네요? 미국도 그런 집단주의적 사회 현상으로 욕 먹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남편이 바람피면 욕합니다. 그것을 한국 사회의 폐단으로만! 생각하시다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결혼제도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출현한 것이다." 노동집약적인 농업사회로 넘어 오면서, 자손들에 대한 소유권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에 의해, 여성들의 성적인 자유를 박탈하고 한 남자에 영원히 복속되는 강박적인 정조를 요구하는 사회질서가 지배계급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던 것이다. <--- 이런 글 쓰셨는데요. 고대에는 어머니가 "짱"이 었던 시대였죠. 그때도 결혼제도가 있었는데 왜 예문에 성립되지 않나요? 단편적인 면을 보고 왜 모든 것을 판단하시죠?

    레드 아이님께서 '송윤아'씨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직도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죠. 하지만 설경구와 송윤아씨의 결혼발표에서 레드 아이님의 주장을 끌어 낼려는건 억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그 어떤 시험 보다 어렵고 힘들고 가장 긴 시간을 요구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결혼은 레드아이님이 책이나 교육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제도가 아닙니다. 예전에 신해철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혼은 남자 여자 두 사람이 하나가 되서 바다에 빠지지 않게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결혼식 보다 더 중요한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겁니다. 결혼을 한 남녀가 결혼 전 보다 더 신경쓰고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전 궁금합니다.설경구씨가 결혼 생활을 잘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그런 글이 어디 올라와 있나요? 심지어 설경구씨 전 부인께서 아이를 데리고 이민 갔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설경구씨의 행동은 한 여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고 아이의 성장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을지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설경구씨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만남으로....욕먹어도 쌉니다. 자신이 없었으면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변명도 이유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 송윤아씨는 유부남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유부남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됐든 설경구씨와 가족의 인연이 뜯어져 나가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전 설경구-송윤아 외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면 크게 분노하고 화를 낼겁니다. 제 생각으로 절대 옳지 않기 떄문이죠. 전 감히 물어보고 싶습니다. 내 아빠가 지금 설경구씨와 같은 행동을 했을면 어땠을지.......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는것이 과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선 물론 떠나간 사람이 원망스럽다.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아이와 함께 남겨진 엄마의 입장에서, 삶은 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겪은 일은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삶의 한 과정이다.

    우린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때론 떠나고 때론 남겨진다. 마음이 떠난 사람과 허울뿐인 관계를 부여잡고 있어봤자, 상처만 더 커질 뿐이다. 이혼하지 않고 원수처럼 지내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더 크다.

    공연히 더 큰 원망을 키우기 보다는 인간사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추스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떠나간 남자에겐 적어도 아이 아빠로서 절반의 양육을 위한 책임은 확실하게 묻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다른 사랑을 만나든, 다른 삶의 터전을 가꾸든,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

    레드아이님 이 부분은 앞으로 써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당사자가 당한 정신적 충격은 레드아이님은 여지껏 겪어보지도 못한 것이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12. 문제의 발단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닌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09/05/19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가 문제의 발단이 되었는지를 잘 모르시는가본데요. 문제의 발단은 설-송의 결혼발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설의 위선이 문제였던거죠. 이혼만은 막고 싶었다는 그 말이 설의 가증스러움을 폭로하게 만든거죠. 거기에 2007년을 유독 강조한게 기름을 부은 것이구요. 송이야. 그런거에 관계없이 좋아했을 수 있겠죠. 설이 송을 어떻게 꼬셨는지를 모르는 한 송에게 가정을 깬 년이라는 욕은 가혹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설은 그렇게 간단한게 아닌거죠. 그냥 자기가 돌맞은거 맞고 가겠다고 각오하고 그렇게 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않된거죠. 문제의 시작은 거기에 있는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13. 참내.. 2009/05/19 0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그렇다치고..
    제목만 보면 조회수에 환장한 또라이 같다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제목이 노출되는 지 뻔히 알면서
    제목을 이따위로 뽑아?? 당신 미쳤어?
    송윤아씨가 당신 딸이야? 하여간..
    뭘 얼마나 관심 끌어보겠다고 이러는 건지 원..
    누가 당신 글보고.. "미쳐 지랄 발광하는 글? 그럴까?" 라며
    제목 써주고 내용해명은 클릭해서 보면 기분 아주 좋겠수다?
    당신이야 인터넷에서 혀놀림 몇번하고 끝이겠지만
    송윤아처럼 알려질데로 알려진 사람한테는 치명적인거..
    알면서 이렇게 제목 다는 거 보면 못됐다는 생각만 들어.

  14. 주인장이 안티 2009/05/19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좀 잠잠해져 가는데 왜 죽어가는 불을 들쑤셔서 다시 살리려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왜 그러세요? 조회수가 탐나세요?

  15. 지나가던 사람 2009/05/19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사람은 때리고 한 사람은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때린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글에서는 때린 사람이 벌을 받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고 말합니다. 어려운 이론을 들먹여가며...
    아픈 사람은 병원에 보내주면 되는거 아니냐며...
    사랑이란 이유로도 다른 사람을 때리면 그것도 폭력은 폭력인겁니다.
    사랑이란 이유로 모든걸 덮을수는 없지요.

  16. 와 닿는다. 2009/05/19 0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보는 명문이군요...
    뻥 뚫리는 느낌... 그래서 말인데...
    당신과 있지도 않지만 혹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당신 자식들이
    설경구 전처와 아이들의 처지가 되보기를 축원합니다.
    쩝. 그때도 당신은 아마 쿨하게... 배신하고 떠나는 남편에게 한마디 할수있을거애요.
    사람 입장이란게 참 . 다르거든요.
    그쵸^^ 쿨한거 좋아하시는 개패미시군요.
    편협하고 배려를 모르는 독선적인 성격으로 봐선 종교는 분명 개독.

  17. 지럴허고 2009/05/19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어도 아이 아빠로서??? 필자의 말대로 유교적이거나 도덕적의 고리타분한 틀이 아니면 왜? 아빠라는 틀에 얶매여 양육비를 책임지워야 하느가? 도덕성도 필요 없는, 즉 억압된 틀에서 벗어 나야 된다면, 헤어진 그 자체로 모든 개체의 관계가 끝이어야 하지 않는가? 필자의 뜻처럼 쿨하게...글의 맥락으로 봐선 이사회를 살아가는데 유교적인 틀이나 인간이 지켜야할 도덕성이란 것들이 다 필요없는 족쇄라고 보기 때문에 싫어지면 가정도 쉽게 포기 할 수있고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그런 놈들 잘되는거 못봤다는 어른 들의 말씀이 맞음을 알때는 이미 죽을 만큼 잘 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 뿐,,,

  18. 와 닿는다. 2009/05/19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덕 예절 배려 윤리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 그래..
    발정난 개처럼 맘껏 싸지르고 살고싶어.
    쿨하지 못하게 왜들 이래~

    라고 쓰셨군요...

    존경합니다. 미국 드라마를 너무 보셨군요.
    요즘은 꼬맹이들도 수퍼맨이 현실이 아니란거 알던데..

  19. ring 2009/05/19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을 안할수가 없네요.
    책임져야할 일이 있으면 책임지면 되는 것인데 남의 집 살림살이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20. 너무 개방적 2009/05/19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프면 치유하지는 말엔 동감합니다.
    물론 이혼하고 새롭게 결혼할 수 있습니다.
    다들 한두번 씩은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할려고 노력도 하니깐요.
    살인자도 새사람이 될 수 있드시 말이죠.
    죄가 있다면 사랑한 것이 죄일 수도 있으나, 그들을 동정하기 위해서 쓰신 글이 그들을 더 욕먹게 하기도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별겨 후 재결합 의사가 없었는데 설경구가 자신은 재결합하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말에서 발단이 된거죠. 유승준처럼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그런거죠. 설경구가 이혼했을 때 누가 뭐라 했습니까? 설경구는 욕먹을 짓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랑을 한것이 죄가 아니라, 거짓말한 죄를 받고 있는 거죠!이들을 빗대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정당회시키진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사랑하는 상대가 당신을 배반했을 때도 똑같은 말이 나오진 않을 테니깐요. 설경구 전처와 아이를 위해서 더 큰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장 큰 슬픔은 설경구의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설경구라는 사실을 다신 입밖으로 내면서 살 수 없다는 아픔입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간 전처의 행동이 참으로 현명한 처사인 것 같네요.

  21. cyan 2009/05/19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야 원..
    뭐 쭉 읽어보니까..
    설송은 서로 사랑해서 그 지랄 하는 거니까.. 괜찮은 거고..
    이혼당한(? 확실하진 않지만) 설경구 전처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붙잡고 있던 집착많은 여자라는 건가요??
    진짜 미드 너무 많이 봐서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미국가서 살아요 그럼..
    어줍짢게 논리적인 척 하지 말고..

  22. 글쎄요... 2009/05/19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집 여자'를 소비하는 것은 사회적 관례이고, 아내 아닌 여자와 마음을 나누며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일은 불륜이다. 성(性)은 관용하되 애(愛)는 결코 용서 못한다...
    누가 술집 여자를 소비하는 것을 관례로 보고 용서한답니까.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설송커플에 대한 비난이 결혼제도의 뻣뻣함에서 온다기보다는 인간성의 부재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23. gold 2009/05/19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하나의 주홍글씨를 만드는 사람들...
    겉모습만 보고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혼한지 25년....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모름...
    부부만이 아는 사실...
    모름면 가만히 있는것이 좋은 사람
    남의 애정사에 감. 대추 말하지 말기를 바라며...
    새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착한 마음으로 축복을 주시기를... 봉건시대도 아니고... 참.. 답답합니다...

  24. gold 2009/05/19 0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홍글씨가 필요한 세상이다.
    윤리 도덕이 타락하고
    이기심 개인주의 물질만능 자기편의만 주장하는 세태가 도래했다.

    적당히 하자.. 혼자만 살라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

  25. 어째됐건..송윤아가.. 2009/05/19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정 깬년은 맞잖아~!....웬만하면 댓글안쓰는데...왜~이딴일을

    들먹이면서 까지 블로그에 올리는 글쓴이가 이해안가네...

    뭐냐??? 이렇게까지 이슈화가 된게냐??ㅡㅡ;; 참 내~~

  26. 무슨 개소리야... 2009/05/19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닥치고 광고나 어찌해라....글도 못보겠네...

  27. 거미줄 2009/05/19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웃긴글이네...당신 아내가 바람나도 그렇게 쿨한척 할수 있겠어요? 소문이 맞다면 가정깬년 맞구요..책임감없는 놈도 맞네요..치유는 설-송이 받아야겠구요..글쓴님도 좀 윤리의식이 희박한분 같구요..

  28. 이 글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2009/05/19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보면 대학교 때 선배가 생각이 나네요.

    절대로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엄청난 논리의 소지자였죠.

    처음에는 후배들이 다들 존경했었는데, 3, 4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발견이 되었는데 본인의 이익에 대해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고 논리를 대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다들 그건 논리가 아니라 괘변일 뿐이야라고 다들 짜증을 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본인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인 사람으로 알아요.

    비슷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참 많지 않나요? 변절한 XXX, 철새 XXX 등등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그런 행동이 구국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니까...

    레드 아이님도 정치권 입문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네요.

    ======

    1. 아, 위와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누군가는 광주항쟁을 일으킨 분을 옹호하며 이미 지난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면서 광주항쟁을 일으킨 것보다 그 이후로 한 나라당을 용서하지 않고 투표하지 않는 광주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죠. 예... 과거는 과거로 흘러버리고 죄를 묻지 말아야 겠죠.

    2. 옥소리 문제는 정말 문제였을 수 있는데요. 아마 옥소리가 남편이 2차를 나간 것을 증명해 보이지 못 한 거 아닌가요? 2차도 바람핀 걸로 인정되지 않나요? 옥소리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29. 지나가다 2009/05/19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 없는 결혼을 지속하는게 무의미하고...성을 소비하느니 사랑을 추구하는게 더 나은 삶의 지표라는데 동의하지만...이번 일을 제도적 틀을 깨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결혼이 쌍방의 동의하에 이루어졌듯이 이혼도 쌍방의 합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납득할 만한 이유와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혼의 과정이 아름답기를 기대하는건 무리지만 적어도 한 때 사랑했던 배우자에게 되도록 상처를 주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야지요.
    그런면에서 설 쪽에서의 대처는 잔인했다 여겨집니다. 친권도 양육권도 포기한 그 모습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지요. 저는 송을 욕할 마음은 없습니다. 결국 관계를 끊고 새로운 시작을 할지 선택을 하는 것은 설의 몫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여자가 꼬리치고 남자는 어쩔수 없이 넘어간다는 식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송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만...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설의 모습이 드러난 이상 비난을 감수해야겠지요.

  30. 설송커플에게... 2009/05/19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들은 이미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자들입니다.
    누군 성공을 위해 모진고생을 해서 목표에 도달하곤합니다.
    당신들도 그러했을 수 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들의 치부가 드러난 이상 당신은 팬들로부터 존경과 선망의
    대상은 되지 않아야합니다. 비난을 감 수 하세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 또한 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하긴 이 세상엔 돈만 있으면 그런것 쯤이야 별문제가 되질 않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손가락질 받을만한 짓을 한건 분명해요...
    그리고 이글 을 쓴 사람...
    당신부터 청신치료를 하세요. 꼭이요...

  31. 지나가는 사람 2009/05/20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잘 정리하셨습니다. 왠만하면 이런 글 남기지 않는데, 처음 남기네요.
    전적으로 님의 글의 동감합니다. 두아이를 가진 결혼 한 사람이지만 결혼이란 제도가 분명 가부장제를 옹호하기 위해서 나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지금도 여전히 dominant narrative로서 우리들 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씨가 송씨를 만난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설씨 부부의 불화가 먼저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설씨 부부의 관계가 좋았다면 아마도 송씨와도 그런 관계를 갖지 못했겠지요. 이것은 가족상담이나 치료에서도 그렇게 말하지요.

    그래서 설씨와 송씨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정말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32. 김미선 2009/05/20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가, 더우기 아빠가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한 경우라면....전처가 아이랑 같이 이민가서 산다면... 양육비라도 보내는걸까? 남자들 결혼생활하다가 바람나 눈뒤집어지면 아이도 버린다.그래서 친권, 양육권 다 포기하는거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겠지만... 몇이나될까... 아마 설씨도 딸아이가 학비나 뭐 기타 어려운일로 도움청하면 전번부터 바꿀것이다.어떻게 아냐구? 내가 그런케이스거든...아들하나 키우느라 고생하다가 희귀병들어 대학학자금지원해 졸업만 시켜달라구 했구만... 결국 외면하드라...대학1년때까지 연필하나두 안사줘본 아빠라는게... 참고로 집이 두채나된다. 전형적인 중산층이지... 설씨가 욕먹는 이유는 나와 같은 전처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금씩 색깔만 다르지 내막은 결국 같드라...어느 기자가 인터뷰에서 그러드라...설씨가 좋은거에 꽂히면 올인한다구... 그말 한마디면 많은것을 알수 있지 않을까? 거창하게 유식한척 하지말구 너와네가족이 겪을수 있는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이런쓰레기같은글은 쓰지 않을것이다.

  33. asdf 2009/05/20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을 하지말라 서명하는건 좀 과잉반응이긴 한데 그렇다고 설-송 커플을 옹호하는 것도 웃기다고 보는데요. 이혼한 사실을 떠나서 그 이혼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은, 연예인이고 뭐고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서 쓰레기 같은 짓 아닙니까. 웃기지도 않는 논리로 쓰레기같은 행동을 포장하지마십쇼.

  34. 2009/05/31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82쿡서 감동먹은 좌파 '배운녀자'

"아니, 이렇게 착한 인터넷이"…최고 인기남은 진중권, 송호창
 
참 재미있는 건, 결정적인 순간에 저쪽 아저씨들이 꼭 자살골을 넣어 준다는 거다. 촛불정국 시작되고 나서 진보신당,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나름 ‘밤의 대통령’이라는 명예로운 별칭도 얻었건만, 지지율은 참 지지리도 안 올랐다.

결정적 순간에 자살꼴 넣어주는 아저씨들

특수임무수행자회가 당사 한 번 '댕겨가시고' 나서 지지율 2배로 껑충(6.9%), 후원금도 듬뿍, 당원도 2000명 급증! 선관위가 눈에 불을 켜고, 사전선거운동 하지 말라 어쩌라 하는 바람에 네티즌들 간신히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날짜만 알리던 중에 우리의 조갑제 아저씨, "주경복 교수 절대 찍지 말라"는 통에, 네티즌들은 그저 그 말만 웹상에서 하면 된다. “조갑제가 주경복을 찍지 말래요.” 이거 선거법 위반 아닐 거 같다.

<조선일보>가 하고 많은 불매운동하는 까페들 가운데 콕 찍어서 82cook닷컴에 협박공문 보내는 바람에, 그날부터 82cook닷컴은 투지로 똘똘뭉친 여전사들의 성지가 되고 말았다. 협박공문 이후 약 1만5천 명 넘게 신규가입, 7월초 현재 12만5천 대군이란다.

 
  ▲조선일보의 불매운동 경고 공문에 항의하는 82COOK 회원들 (사진=82COOK
     줌인줌아웃 ‘엉클티티’)

‘이런 게 있었어? 조선아 고맙다’ 하면서 82cook닷컴으로 우루루 몰려든 여자분들 가운데 나도 있었다. 요리하는 것도 보기와는 달리(남들이 다 그런다) 좋아하고 맛집 찾아다니는데도 빠지지 않으며, 이제 좀 살림의 지혜들도 익혀야 부엌에서 손발이 덜 고생하겠다 싶었는데, 마침 잘 됐네 했다.

‘조선아 너 참 고맙다’

<레디앙>이나 전에 몸담고 있던 민주노동당 '당게'의 그 살벌하게 피 튀기는 진검승부의 장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이 훈훈하다 못해 따뜻할 정도로 착한 익명의 웹공간이 있다는 것이 거의 믿어지지 않았다.

눈 씻고 찾아봐도 악플(어쨌든 <레디앙> 수준의 악플은)은 없다. 다 존대말 꼬박꼬박 하고, 장난으로라도 욕하는 사람도, 고의적인 낚시질 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 남편들, 아님 82cook닷컴 누님들이 궁금해서 '댕기러 온' 총각들도 있지만, 이들도 분위기에 동화되어 샤방샤방한 말투를 구사한다.

뭔 말을 해도 어깨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뜬금없는 얘기로 분위기 싸하게 만들어도, 사람 어색하지 않게 웃으면서 잘 이해해 준다. 과거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가입한 6월 20일 경부터는 자유게시판은 95% 촛불 이야기다.

쇠고기 사태로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새롭게 한눈에 들어오신다는 아줌마. 못 ‘배운 녀자’들 땜에 속상하다는 하소연. 질기고 질긴 <조선일보> 끊기의 애환. 삼양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주민소환제 요령까지.

최근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도 올라왔다. 아마도 두 당 중 한 당에 가입을 신중히 고려 중이신 듯.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사람과 민주노동당 지지자라는 사람의 답글이 나란히 올라왔다. 판세는 약간 진보신당 쪽으로 기울어 보인다.

최고 인기남은 진중권, 송호창

82COOK 최고의 인기남은 진중권이다. 그는 천재에다 미학자라서 지식도 감성도 풍부하단다. 어떤 분은 배용준 이후 처음으로 유명인(?)을 좋아한다는 고백도 하신다. 그 다음은 민변의 송호창 변호사. 이 분 나오시면 남편 분들이 모두 삐치신단다. 머리 좋아, 정의로와,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요즘 ‘배운 녀자’들의 새로운 로망으로 떠오르셨다.

그렇게 며칠째 82COOK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의 화려한 정치적 진화를 따라가던 중, 갑자기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글이 떡하니 올라온 것을 목격했다.

제목은 “루이비통 가방 어디서 사면 좋은가요?” 집에 하나 있는데, 잘 안 쓰고, 이번에 남편이랑 유럽여행 가는데, 남편이 하나 사준다고 해서, 어느 나라에서 살까 고민 중이시란다. 그리고 어떤 스타일로 살지에 대한 조언까지 부탁하셨다.

순간 이것은 알바의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금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배운녀자들의 성지에 찬물을 끼얹고자 한 누군가의 소행?

아니나 다를까, 몇몇 댓글은 파리 샹젤리제 매장 어디가면, 하고 알려주시기도 하셨지만, 몇 분들은 핀잔을 주신 분도 계셨다. 철없다…, 된장녀의 투정…, 그럼 그렇지. 사람 마음은 역시 비슷하다니깐 하면서, 난 안심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루이비통, 된장녀? 다양성?

“된장녀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어쩐지 판 깰려고 일부러 한 질문 같다”고. 그리고 맘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문득 새벽에 다시 눈을 뜬 나는 중독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82cook.com의 자유게시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루이비통 질문자를 가볍게 꾸짖은 댓글들은 이미 자진 삭제된 지 오래. 내 댓글만 남아서 온갖 구박을 다 받고 있었다. 서른 개가 넘는 댓글이 어떻게 루이비통 가방 질문한다고 사람을 면박 주냐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원래 루이비통 가방 질문,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던 데다”, “아무리 시국이 그렇다고 해도 일상적인 얘기 좀 했다고 비아냥거리면 그 질문하신 분이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겠냐”, “82cook의 생명은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있다”

다양성이란 단어에 뜨끔했다. ‘그래, 이분들에겐 이것도 다양성일 수 있었구나. 난 다양성에 목숨 거는 사람인데. 왜 난 이분들처럼 루이비똥 가방을 다양성으로 생각할 수 없었을까.’

댓글 중 압권은, “이런 댓글 쓴 사람은 평생 명품 가방 하나 못 들 거다.” 바로 밑에 분은 이 말이 너무 심했다고 보셨는지,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너무 심하다”고 화가 나신 위의 분을 타이르셨다. 바로 보셨다. 난 천으로 된 가방만 든다. 그게 많이 들어가면서 안 무거우니까.

신입이어서 몰랐던 건가 보다. 여기 회원분들에게 루이비통 가방은 일상이었나 보다. 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꼬리를 탁 내리고 변명했다.

“객관적으로 판을 깬 건 저인 것 같다. 신입이어서 예전 분위기가 어땠는지, 이런 질문이 일상적인 것이었는지 몰랐다. 한 열흘 정도 드나들면서 한 번도 못 본 종류의 질문이기에…. 하지만 파리 루이비통 매장의 주 고객이 한국, 일본사람인 거. 유학생들이 다단계 알바로 엮여서 루이비통 사주고, 루이비통 매장에서는 이 다단계 막으려고 한국 사람한테는 하나씩밖에, 혹은 인상 봐서 알바 같으면 아예 팔지 않는 부끄러운 광경을 보면서 이 메이커에 대한 사람들의 숭배를 좋게 볼 수 없다”라고 쓰고 씁쓸하게 내려왔다.

‘잠이 올 리 없지’… 82cook 중독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올 리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명품 숭배를 너그럽게 인정한다는 건 모순이다. 자기만의 안목이 있고,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들고 다니지도 않았던 명품을 또 하나 사겠다고, 어떤 스타일을 살지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루이비통 가방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는지, 이전 게시판을 들여다봤다. 당장 네 개의 글이 올라왔다. 그 중 하나는, 다음의 패션 전문 동호회 소울드레서에서 루이비통에 대한 불매운동과 광고압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중앙일보>에 루이비통이 광고를 게재했던 것이다. ‘우린 조선에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요? 중앙까지 하는 건 벅차다’는 등의 얘기가 댓글로 올라왔다. ‘으흠, 그래.’ 다른 배운녀자들은 불매운동도 한다는데, 여긴 지금 한가하게 그거 어디 가서 사는지 알려주기 바쁘다? 그건 좀 곤란한 거 아닌가. 조중동은 한 핏줄인데, 불매운동까진 못해도, 이렇게 산다고 광고까지 내고 다니는 건 좀….

냅다 다시 문제의 그 질문을 찾아갔다. 이렇게 좋은 반격의 논거를 찾았는데 기회를 놓칠 수가 있나. 그런데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질문자가 자진 삭제 한 거 같다. 이럴 수가.

다들 자기 편 들어주는 글들만 남았는데 왜 그랬을까? 아니면 운영자가? 허탈. 그러나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에 더 깊숙이 발을 들이미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던, 루이비통과의 전쟁이 스윽 사라져주자, 비로소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하루 종일 루이비통 대전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녀들의 진화가 아직은 들쭉날쭉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혼자서만 다양성을 부르짖었지, 결국은 편협했던 것일까. 어쨌든 존경과 애정을 담뿍 보내던 82COOK의 선배들에게 호통을 들은 뒤라, 정신적 외상이 며칠을 갔다.

‘생활은 정치고, 정치는 생활이거든요’

 
▲ 82COOK 6.10 촛불번개 (사진=82쿡 나라사랑모임)
 
잠시 중독에서 헤어 나와 있다가 오늘 슬쩍 들어가 보니, 정치이슈를 17일부터 이슈토론방으로 분리한다는 운영자의 공지가 떴다. 그러면서 루이비통 사건을 슬쩍 언급하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이런 이런.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엔 찬성의견이 많았는데 뒤로 갈수록 압도적으로 반대의견이 우세다. 심지어는 그새 하룻만에 전향하신 분도 있다. “첨엔 찬성했는데, 듣고 보니 반댈세”, “일상은 정치고, 정치는 일상이라고. 일상과 정치 사이에 벽을 만들면, 결코 우리가 배운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저는 더 이상 예전의 제가 아니에요. 82COOK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분리한다면 실망하게 될 거에요’ 등등.

82COOK닷컴은 요동치며 진화 중이다. 회원들 간 투표를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뜨겁게 타오르고 격렬하게 충돌하고, 민주주의의 시끄러움, 다 알면서 크게 실천하지 못하는 속터짐, 학교는 다닐 만큼 다녔어도 엉뚱한 소리만 하는 주변의 “못 배운 여자”들의 억장 무너지는 소리들…, 겪어내며 이 가파른 촛불정국을 힘차게 가로지르는 중이다.

난 더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선배언니들의 진화를 따라가 볼 참이다. 맛집 소개 코너에도 내가 가본 맛난 음식점을 하나 소개했다. 늘 이 음식점을 만방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 풀었다. 며칠 동안 추천 하나 없길래 삐치기 직전이었는데 방금 전, 누가 추천을 꾸욱 눌러줘서 맘 풀렸다.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도 먹는 얘기, 속없는 남편, 맘을 알 수 없는 여친 얘기도 좀 올라오고 그럼 재미있겠다. 생활은 정치고, 정치는 생활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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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역겨움…변태성욕?

[기고] "이제 우리는 그를 분리수거할 수 있게 됐다"

촛불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민주공화국이라고 믿는 선한 시민에서부터, 집회장에서 청춘을 누려온 전문운동가들까지. 유모차에 태워진 아가들부터 수녀님들, 예비군 형님들, 할머니들까지. 헤아릴 수 없이 폭넓은 스펙트럼의 촛불들을 반격하기 위한 대오는 의외로 간결하다.

우리는 이를 강렬한 세 컷의 장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갑제의 어린이 영혼추행범, 방송사에 가스통을 들이대는 고엽제전우회, 그리고 이문열의 촛불장난과 의병이 그것이다.

산소가 부족한 뇌

내뱉는 말마다 진심으로 그 영혼의 무늬가 궁금해지는 조갑제의 발언은 과연 그의 명성을 줄기차게 이어가게 하는 그것이었다. 고엽제전우회 아저씨들이 선택한 가스통도 극우의 선정성을 그 보다 더 잘 드러낼 순 없었을 듯한 적당히 화끈한 그림이었다.

우리를 진정으로 잠시 놀래킨 것은 이 두 장면 보다 한 술 더 떴던 우리 시대의 작가 이문열에 이르러서다. 명색이 그는 작가였(여전히 작가이기도 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사법고시의 답안지를 적어내듯이 정확하게 재단된 소설공식으로 풀어내는 글로 독자를 쥐락펴락 하는 실력에 대해서는 한동안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던 그가 아니던가.

새삼 글로 다시 옮겨적기도 싫어지는, 산소가 부족한 뇌에서 나온 듯한 그의 표현은 단지 그가 사상의 오른쪽 극단에 서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착시의 징후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처음 언론에서 그의 발언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몹시 민망스럽게도, 길에서 자신의 아랫도리를 버젓이 드러내고 여자들 앞에 나타나는 변태성욕자를 마주쳤을 때의 황당함과 역겨움이었다. 대개 50대 후반의 나이에 얼굴에는 번들거리는 기름이 흐르는 그 아저씨들은 자신의 직설적인 저속함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상대방을 욕보이고, 거기서 쾌락을 취한다.

이 땅의 맑고 맹랑한 여학생들이 촉발시키고, 하이힐부대, 유모차 부대가 온가족을 광장으로 이끌어내, 거대한 평화적 시민혁명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어쩌면 한국이 세계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의 한 갈피를 숨가쁘게 써가고 있는 이 시점에 그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저속한 어휘들로 이 아름다운 시간을 그저 욕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변태성욕자 이문열

문득 8년 전 보아버린 한 장면, 이후, 이문열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안에서 쓴물이 솟구치게 하던 그의 소설 <아가(雅歌)>가 떠올랐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당편이라고 하는, 정신과 몸이 불편한 한 여성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데, 중년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화자(話者)와 그의 친구들이 당편이에게 성추행과 조롱을 하는 장면이 마치 구수한 고향의 정취라도 묘사하는 듯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우리가 성적인 측면에 집착한 것은 그녀의 불행을 즐기는 잔혹 취미가 아니라 불완전한 그녀의 성적 기호를 보완해 주는 의미가 있었다고. 우리는 진심으로 그녀의 여성성을 승인했으며 방법은 달랐지만 틀림없이 그녀를 한 여성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교활하고 세련된 언어로 이문열은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을 승화(?)시키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자신의 조악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홍위병 발언으로 젖소부인과의 유착관계를 한동안 형성하던 그가, 이번에는 '홍'자만 슬쩍 뺀 <의병>발언을 했다. 오늘의 집단난동을 의병들이 진압해야 한다! 고.

창작의 샘이 고갈되기라도 한 듯, 한동안 중국 고대소설만 옮겨 적는 걸로 과업 삼더니, 그의 정신은 여전히 먼지 날리던 고대 중국의 만주벌판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는 걸까.

범여성계의 분노를 촉발했던 소설 <선택(1997)>에서 “시 짓고 글쓰는 일은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안채와 부엌을 떠나지 않고 여자의 본업을 하겠습니다”는 식의 표현으로 조선 사대부 여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집밖을 나대는 여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던 그가 <조선일보>를 위협하고, '명박산성' 아래서 깔깔거리며 국민엠티를 즐기는 여인네들을 보고 최소한의 이성을 상실한 것일까.

이문열, 분리수거 가능하게 되다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입증해준 통렬한 역설은 이를 진압하려는 그 모든 세력들이 오로지 촛불에 기름을 한 드럼씩 릴레이로 부어주는 일에 기여할 뿐이며, 불나방처럼 촛불을 능멸하려 달려드는 순간, 자신을 감춰주던 포장을 잃고 적나라하게 실체를 노출하게 된다는 데 있다.

7.4%로 지지율이 내려앉은 이명박과 그 와중에도 계파 갈등에 여념이 없는 거대한 지리멸렬의 집단 한나라당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길 곳을 잃었고, 조중동, 경찰, 미국, 그리고 이문열도 이것으로 기나긴 위선의 세월에 깨끗한 종지부를 찍었다.

제법 심각한 어조로 ‘계속 이렇게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서 조선일보의 장사를 방해하면, 우리가 민형사상의 절차를 밟아 다칠 수가 있을 테니 아줌마들 알아서 하쇼’ 하고 조선일보가 82쿡닷컴에 보낸 공문은, 숱한 여인들이 “조선일보가 보내서 왔다”며, 서버가 다운되도록 하루 종일 82쿡닷컴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조선일보, 아줌마들을 건드려! 너희들 다 죽었쓰..." 하며 회심의 미소를 가입 인사로 타전했다.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을 위대한 작가로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손쉽게 조갑제, 고엽제전우회와 나란히 그의 이름을 분리수거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받아치기도 귀찮을 정도의 저급한 수준의 몇몇 인간들이 한국의 “우파”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 나머지 모든 정치의식이 있는 부류를 좌로 구분하는 기계적 분류가 횡행하니 노무현에서부터 주사파까지 한국의 좌파는 참 발 딛을 틈도 없이 바글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 자리가 그리 탐나나

홍세화 선생이 일찍이 한국 언론계에 대해 일갈한 바대로, 상식이 없는 부류, 상식이 있는 부류가 있을진데, 굳이 자기네들이 우파라고 우기니 애꿎은 사람들이 모두 좌파 아니면 좌파의 선동에 넘어간 어리석은 이들로 엮이는 이분법의 야만에 대적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이문열 망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또 하나의 세간의 추측은 개각의 폭을 저울질하고 있는 이명박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한 제스처란 것이다. 자신보다 한참 수준 낮은 소설가 김한길도 지나갔던 문화부 장관 자리를 삼국지, 열국지에, 초한지까지 고대 중국의 고전을 섭렵하며, 영웅들이 전하는 권모술수의 핵심기술을 익힌 그가 차지해서, 한 번 구사해 보고 싶을 수도 있었겠다.

60평생을 그가 탐해온 것이 결국은 권력이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까지 하며 정치권을 기웃거렸던 이문열이 아닌가. 난국에 이미지 구겨가며 센 발언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으려 했던 그 애틋한 마음을 그 분은 아실까.

(글/ 목수정)



TAG 목수정, 이문열, 촛불, 촛불문화제
  1. 실비단안개 2008/06/19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결국 그것이었군요!



여성 본능과 시민의 발랄함 승리하다

[촛불혁명] 어떤 프랑스 68세대 "그런데 당신들의 문화주권은?"

08촛불혁명 : 아나키즘의 화려한 탄생

08촛불혁명은 정치조직들이 어물어물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사이, 어린 여학생들의 즉각적인 감성이 터뜨려낸 21세기 한국사회의 축복이다.

독일이 아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듯이, 부동산 선거에 각자의 주권을 묻어버린 암울한 한국사회에 전세대가 연대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실천되는 시민혁명이 이루어질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누구를 조직하거나 지휘하지 않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 둘씩 모여서, 자신의 목소리와 의지를 전하며 서로가 서로의 더욱 굳건한 배후가 되는 기적. 평등과 자유를 양손에 나누어 쥔 채,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순간 순간 현상에 반응하며 탄력있게 대처해 나아가는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들의 행보를 언제 한 번 연습해 본 적도 없이 곧바로 실행해 가고 있다.

“'엄마, 이명박 물러가라' 하러 가자." 네 살 딸아이의 요청으로 아빠 희완이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날 밤을 이 가슴 울렁이는 한국식 아나키즘의 체험장에서 보냈다.

유치원에서 유기농 소녀로 불리는 딸아이 칼리가 “이명박이 나쁜 고기를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했다”는 엄마의 설명으로 즉각 의식화되어, 집에서만 외치던 “이명박 물러가라”를 드디어 외치게 된 것이다.(초기 집회에 참석한 바 있었지만 그땐 아직 우리 집에서와는 달리 “이명박 물러가라”까지 구호가 진전되지 않아, 실망했던 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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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든 칼리. (사진=희완)

집회가 시작되는 도로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우리. 오른쪽 옆에는 두명의 고3 여고생, 앞으론 과묵한 아들 둘을 데리고 연신 분위기를 주도하시는 40대 후반의 아주머니, 뒤로는 연신 화장을 고치는 예쁜 20대 언니였다.

왼쪽 옆으로는 나의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인인 조카가 자리했다. 집회가 시작된 지 1시간쯤 뒤, 뒤에서 화장을 고치던 그녀의 남친이 여친의 구박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다. 08 촛불혁명의 상징이 촛불소녀이듯, '女초에 女주도'가 사방으로 뚜렷하다.

여성들, 삶의 정치에 눈을 뜨다

08촛불혁명의 가장 아름다운 성격은 평화다. 카랑카랑 거침없는 목소리로 초기 시위를 압도한 여중고생들, 하이힐을 신고 시위장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는 젊은 여성들, 유모차로 아이를 데려와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수다 떠는 엄마들이 대거 등장한 이상, 이 집회는 태생적으로 비폭력과 평화와 다양성을 깊게 아로새겼다.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들려오는 비폭력의 구호는 그 본질을 되새김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은 살림과 돌봄을 본능으로 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생명을 살려내고 돌보는 것을 주관하는 자들의 근본적인 요구이므로 그 어떤 어정쩡한 타협도, 정치적인 이용도 통할 수 없는 직설적 요구이다. 쇠고기 문제로 거대 언론들의 기만을 직시하게 된 이들은 삽시간에, 정보의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현명함과 생활이 곧 정치인 현실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시절 혼자서만 팔랑거리는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 복장으로 시위대 한가운데 끼어있던, 생뚱맞은 존재였던 나는 수많은 여성 동지들과 설명할 필요없는 동질의 신념 속에 묶여 집회장에 앉아 있는 현실에 흥분했다.

엄마와 함께 부르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가 대형스피커를 타고 연신 들려오는 것에 칼리는 어깨를 들썩였고, 가장 흥분해서 사방팔방으로 집회장을 헤집고 다녔던 사람은 그의 아빠 희완이었다.

희완이 본 몇가지 뼈 아픈 진실

68혁명 시절, 열정적 파릇한 청년으로 아름다운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던 그가, 2008년 서울에서 당시의 발랄한 모반의 흔적을 보려 했다. 68혁명은 아주 단순한 사안에서 시작되었다.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를 방문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구닥다리의 규율에 대해, 더 이상 이런 촌스런 굴레 따위를 집어치우라고 들고 일어선 남학생들이 그 시발점이었다.

대학생들의 이 '일상적인 분노'는 좌우를 막론한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의 모든 구태들에 대한 저항으로 번졌다. 먹거리 안전의 문제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정권에게 직접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경제를 살리기 전에 국민의 건강한 삶을 살리는 것이 우선임을 가르치는 전면적인 생활정치의 혁명으로 번지는 지금의 모습은 68혁명과 묘하게 닮아 있다.

몇몇 운동권 단체들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줄줄이 이어지는 복고풍 연설의 시간이 없어진 것에 대해 환호하고, 놀랍도록 평화롭기만 한 분위기에 나름 긍정하였던 희완이 결정적으로 긴 한숨을 내쉬게 한 것은 여전히 거리를 가득 메우는 영문으로 된 티셔츠와 모자 차림이었다.

“왜 CHICAGO, BOSTON, NEW YORK이라고 잔뜩 써 있는 티셔츠를 여기까지 와서 봐야 하는가? 굳이 저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도시 이름을 옷에 적어 다녀야 한다면, 왜 한국에는 서울, 부천, 수원 이렇게 써 있는 티셔츠는 없느냐. 'US ARMY'라고 써 있는 티셔츠를 입고 전경에게 두들겨 맞는다 해도 동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티셔츠의 2/3 이상에는 크든 작든 영문이 적혀 있다. 한국에서 쭉 살 때에는 내게도 그 사실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5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을 때,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현상이 그런 것들이었다.

의류 뿐 아니라, 학용품, 과자 등 거의 모든 일상의 공산품은 불필요한 영문으로 도배되어 있다. 집회장에 굳이 '국민이 이긴다' '촛불 소녀'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오는 것은 우리의 분명한 의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그 일상의 일부인 시위 현장에서도 이미 오래 전 미국화된 우리의 의식은 자각을 완강히 거부한다. 시카고, 보스턴, 뉴욕 따위의 티셔츠는 그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우리의 삶이 그들을 쫓아가고 있음을 질기게 역설하고 있음에도.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시청과 마주서있는 플라자호텔은 명당 현판 자리이다. 거기엔 뮤지컬 'CHICAGO'를 선전하는 대형 현판이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전세계 쇠고기 거래의 중심지이자 맥도날드사의 본사가 있는 시카고가 버젓이 미국산 쇠고기로 빚어진 이 거대한 민주주의의 축제를 내려다 보고 있는 이 광경은, 한국을 자신들의 쓰레기통쯤으로 여기는 미국의 오만방자함, “그래봤자 너흰 이미 우리 식민지잖아” 하는 조롱처럼 희완의 눈에 해석되었다.

연신 사진기를 눌러대는 희완은 여러 차례 한국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느끼느냐?”

“나는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새롭게 깨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자각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신자유주의에 휩쓸려 있는 전세계를 깨어나게 했으면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문화를 동시에 쉼없이 소비하고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는 10초마다 하나씩 지나가는 대형 영문티셔츠를 손가락을 가리켜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도시 뭔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익숙한 티셔츠가 미국문화에 대한 프로파간다라고 우린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

식량주권에 대한 위협에 파르르 떨지언정 문화주권은 이렇게 자발적으로 헌납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걸까.

여성들은 말한다 : 돈보다 삶이 더 소중하다

이명박이 국민들의 뜻을 도통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 국민들이 분명, 어디서 이상한 자들의 조정을 받는 것처럼 지금껏 오해하고 있는 상황은 집회장에 돌아다니는 “귀 좀 파라”, “여보 청와대에 보청기 놔드려야겠어요”등의 문구들이 암시하듯, 우리를 가장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점이다. 그런데 난 그의 몰이해가 살짝 이해가 된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피까지는 안 묻혔지만, 상처는 수없이 입어가며” 수천억대의 재산을 모은 인물이다. 그것을 온 국민들이, 한나라당내 경선과정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학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묻지마 선거'는 그를 청와대로 보내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의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돈 한 가지에 주력”하는 그 주특기에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좀 구리긴 해도, 미국, 일본에 가서 굽신거려 가며, 딴에는 장사 좀 더 '씨언씨언'하게 해보겠다는데,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그는 도통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자기처럼 돈에 눈멀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생명에 더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도화선이 된 이슈가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고 이것이 여성들의 본능을 직격탄으로 자극했던 것에서 해답은 찾아진다. 결국 같은 부모이지만,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통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 것을 감지했던 것은 아빠들보다 엄마들이었다.

뉴타운 지정되어서, 집값 상승의 평범한 재산증식을 한 번 누려보기도 전에, 아이들의 머리에 구멍이 송송 뚫릴 수도 있음을 알려준 언론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선 조갑제의 지적은 명확하다. 지금 상황의 그 첫 번째 배후는 'PD수첩'이었다. 그 이후는 물론 모두가 아시는 그대로다.

정부는 어쩌면 그렇게 하루도 안 빠지고 국민들을 투사로 만들어주는 데 공을 들였고, 정보를 소통시켜주는 거대한 토론의 장 '아고라'가 우리에게 있었다. 6년 전 희생된 여중생 2명이 수백만의 촛불을 처음 점화하였듯이, 이번엔 언니들이 남친들을 끌어들였고, 엄마들은 아들들은, 아내들은 남편들을 광장으로 끌어들였다.

군화발에 머리가 짖이겨진 음대 여학생이 밋밋하던 서울대생들의 가슴에 불을 당겨주기도 했다. 집회 내내, 그들의 저명한 한 선배는 집회장 맞은편 전광판에서 연신 민망한 엉덩이춤을 추고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최근 급속히 회자되는 핀란드식 교육에서 배운 것이 “경쟁이 창의력을 죽인다”는 명백한 사실이라면 이번 08 촛불혁명을 통해 배우는 것은, 그동안 운동세력에 의해 계획되고 조직되던 운동이 이토록 순식간에 창궐할 수 있었던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엄숙하고 무거운 운동집단의 의식(儀式)으로 차단해 왔던 것은 아닌가에 대한 자각이다.

시민들의 발랄한 정치의식은 한발자국 걸을 때 마다 순식간에 진화를 거듭했다.

“명박 지옥, 탄핵 천국” 광신 기독교도를 패러디 한 아저씨. “야옹아 잡어” 고양이 머리를 그려서, 쥐박이를 잡으러 나선 여고생들. 마우스를 길게 끌고 가는 청년. “새우깡에서 이명박 머리가 나왔어요” 새우깡 봉지를 들고 깔깔대며 외치는 젊은 아가씨들.

나는 광장의 발랄함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재치와 패러디의 자가발전장으로 시위장은 발전(?)했다. 이렇게 한 번 상승한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쓰레기 언론사 앞에 쓰레기를 모아다 놓을 줄 아는 이 똑똑한 사람들이 적당한 사탕발림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지 않다.

“나의 배후는 … 나의 마음”

측량할 수 없이 빨리 진화한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그동안 붉은 띠, 붉은 깃발로 상징되는 직업적 운동가들의 고전적 행동양식이 막아 온 것은 아닐까. 심상정도, 노회찬도 자유발언할 기회를 간신히 얻을까 말까한, 권위를 거부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아나키스트적 직접 민주주의의 폭발은 한국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기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엄마 나 좌빨 아니야” 라고 하던 촛불소녀들. 그들은 확실히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좌빨이 아니다. 그들은 이 시대에 새롭게 탄생한 아나키스들이다. 집회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배후는_______입니다” 라고 적힌 A4용지가 돌려졌다. 난생 처음 집회장에 온 초등학교 6학년 조카 상목이는 거기에 “나의 마음”이라고 적었다.

이번 촛불혁명이 이뤄낸 성과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신나는 점은 더 이상 재미없는 집회는 감히 이 땅에서 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ㅎㅎㅎㅎ. 대통령과 시민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다른 정당들과 달리, 원내로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마냥 원외에서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진보신당도 운수대통했다는 생각도 든다.

(글 /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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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4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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