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의 최대 당면 과제
한국 사회 갈등 지수는 매우 높다. OECD 가입국 가운데 거의 최고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2016)가 조사한 결과, OECD 가입국 30개 나라 중 세 번째로 높다. 한국은 정치 갈등 4위, 경제 갈등 3위, 사회 갈등 2위로 종합 3위의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갈등 해소 센터」가 한국리서치를 통해 수행한 『2022 제10차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1)고 응답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한국 사회 갈등 수준이 ‘갈등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위험수위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념 갈등 – 계층 갈등(빈부 갈등/노사 갈등) – 젠더 갈등 – 세대 갈등 – 지역 갈등 순으로 갈등 수준이 위험수위를 치닫고 있다. 특히 수위를 달리는 이념 갈등은 아직도 냉전 반북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징표다. ‘반공’이라는 과잉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채, 여전히 이념 전쟁 중이다. 노사 갈등의 경우, 정부가 사용자 집단에 치우쳐 왔음을 가리키는 지표다. 다시 말해 정부가 갈등 관리자로서 ‘균형’ 있게 노사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려는 정책적‧행정적 노력이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한국 사회갈등 해소 센터」가 2013년 사회조사를 시작한 이래, 지난 10년간 사회 갈등 지수에서 변화의 조짐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그만큼 지난 시절 정부의 역할이 미약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 갈등 지수는 2000년대나 2010년대나 높은 수준에서 변함이 없다.(2) 오히려 2000년대보다 2010년대 이후 갈등이 점증하면서 최고 수위로 치달았다. 이는 정부가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를 드러냈고 결국 갈등의 증폭과 사회 갈등의 악순환을 자초했다.
사회 갈등은 정치 사회 불안을 초래해 정부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국가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실제로 장기간 지속된 사회 갈등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GDP를 감소시킨다. 사회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할 경우, 갈등 조정자로서, 그리고 갈등 관리자로서 정부에 대한 신뢰 또한 추락한다. 게다가 ‘공익’을 표방하는 정부의 정책 집행력조차 동력을 상실한다. 정부가 갈등 관리자로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국면에 접어들면 ‘공익’을 추구하는 국가 정책조차 강력한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에 가로막혀 좌절할 수도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의대 설립 정책이 대한의사협회라는 이익집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한국사회 공공의료 기관은 2019년 12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 4,034개 가운데 221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5%대로 북서유럽 선진국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고 공공병상 수도 9.6%로 취약하다.(3) 북서유럽 의료 선진국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공공병원은 OECD 평균(53.5%)의 1/10 수준이고 공공병상 수 또한 OECD 평균(74.6%)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4)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동체 구성원인 전체 국민에게 돌아간다.
2020년 3월, 신천지로 인해 코로나가 대구, 경산 지역을 덮쳤을 때 병원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급성 폐렴으로 숨진 고3 학생 정유엽 군이 대표 사례다. 정유엽 군은 고열 속에서 병원 진료를 거부당하는 바람에 1주일(3/12-3/19) 동안 병원-집-병원-집-병원을 반복하다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고 정유엽 군의 죽음은 한국 사회 공공 의료체계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빈약한 공공병상 수와 의료 공백이 불러온 근원적인 비극이었다. 한국 사회는 복지 선진국 북서유럽과 달리, 교육과 의료 서비스 분야를 민간 영역, 바로 시장에 내맡겨 공공성이 매우 취약한 상태다. 결국 갈등 관리자로서 ‘정부의 효과성’ 내지 ‘정치 효능감’이 부재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사회 갈등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부가 ‘균형되고 일관성 있는 사회 갈등의 조정자’로서 제 소임을 다한다면 사회 갈등은 오히려 발전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사회 갈등이 발전의 강력한 에너지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 갈등이 전면화했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이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첨예한 사회 갈등 상황에서 정부가 ‘갈등 조정의 균형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을 때 정부에 대한 신뢰도 또한 크게 오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의식이 고양되고 민주주의는 더욱 성숙할 수 있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통과 대화가 자리 잡고 상대방(이해당사자)의 생각을 이해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실에서 사회 갈등 지수가 10% 떨어지면 1인당 GDP는 6%~7% 이상 증가한다. 한국 사회 갈등 지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만 떨어져도 1인당 GDP는 27% 증가한다(5)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갈등 지수(1.02)는 조사 대상 37개국 중 32위에 위치한다. 만일에 우리나라가 스웨덴과 같은 갈등 지수(0.21)로 현격히 줄어든다면, 한국의 1인당 GDP는 $34,178에서 $41,652으로 증가한다. 이는 2015년 기준 스웨덴 1인당 GDP($45,679)와 격차를 크게 줄이는 효과를 창출한다.(6)
스웨덴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처럼 민주주의 지수, 국가 투명성, 정부 신뢰도, 그리고 복지국가 순위에서 최고 수위를 점할 만큼 사회 갈등 지수가 매우 낮은 국가다. 이른바 노르딕 5개국이라 표현되는 북유럽 국가들은 아이슬란드(1위) – 노르웨이(2위) – 스웨덴(3위) – 네덜란드(4위) – 독일(5위) – 스위스(6위) – 덴마크(7위) – 핀란드(8위) 순위에서 보듯이 사회 갈등 지수가 매우 낮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북서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 지수와 삶의 질이 매우 높다. 따라서 OECD 평균에 비해서 대한민국 사회는 삶의 만족도(27위)가 낮고 행복도(34위) 역시 최하위권이다. 그리고 자살률 1위, 합계 출산율(34위)이라는 부정적 수치(7)를 보이는데 이러한 현상은 위험수위를 치닫는 사회 갈등 지수와 관련이 매우 깊다. 「세계 행복 보고서 2020」에서도 조사 대상 국가 153개국 중 61위로 행복 점수가 매우 낮고 OECD 가입국 가운데도 현저히 낮다.(8)
따라서 한국 사회 갈등 지수를 낮추고 우리 사회를 건강한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선 ‘역사‧사회의식을 갖춘 지성인’을 길러내는 ‘민주시민교육’이 절실하다. 건강한 민주사회는 ①‘비판하는 시민’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안목으로 정치‧사회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한다. 나아가 건강한 민주사회는 불의한 정치‧사회 현실에 저항할 줄 아는 시민들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공화국 시민으로서 공동체 문제에 적극적으로 ②‘참여하는 시민’ 또한 요구한다.
다음으로 민주사회는 타인을 존중하며 다문화‧다인종 사회 속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③‘공감하는 시민’ 또한 필요로 한다. 그리고 능력 만능주의로 치닫는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탈락한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고 그분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④‘연대하는 시민’을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사회는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미디어 세계에서 정보를 분별할 수 있는 ⑤정보 문해력(미디어 리터러시)을 간직한 시민을 요구한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튼튼한 반석 위에 지속할 수 있는 적극적 시민은 ①비판하는 시민, ②참여하는 시민, ③공감하는 시민, ④연대하는 시민, ⑤정보 문해력(미디어 리터러시)을 간직한 시민을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80년대 중반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정부처럼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민교육 과목을 필수과목화한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2022년 윤석열 정권 들어서서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를 교육부 직제에서 없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지우기가 아니라면 하루빨리 복구하고 지속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21세기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화급을 다투는 가장 중요한 교육과제이기 때문이다.
<참조>
1. 「2022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https://www.kadr.or.kr) 검색일시 2023.3.26. 11:57
2. 박준 외(2018). 「사회갈등지수와 갈등비용 추정」. 『KIPA 연구보고서 2018-09』. 한국행정연구원. 2018. 115쪽. <OECD 회원국과 러시아, 브라질, 남아공을 포함한 37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2005년, 2010년, 2015년 내내 똑같이 5위로 갈등 수준이 매우 높았다.>
3. 김정회 외(2020).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전략」. 『ISSUE REPORT』. 건강보험연구원. 2020년 11월호. 8쪽.
4. 박정연(2020).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 5.8%···OECD 평균 1/10 수준」. 『데일리 메디』. 2020. 10. 19.
5. 박준(2009). 「갈등 지수 10%↓ GDP 7%↑」. 『나라 경제』. KDI 경제정보센터. 2009년 9월호. 65쪽.
6. 박준 외(2018). 앞의 연구보고서. 130쪽.
7. 김상호(2016). 『OECD 국가의 복지 수준 비교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보고서. 75-79쪽.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매년 28.7명이 자살한다. OECD 조사대상국 34개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낮은 국가는 터키(2.6명), 그리스(4.2명), 멕시코(5.2명), 이스라엘(5.5명) 순이다. 삶의 만족도(27위)와 행복도(34위), 합계 출산율(34위)은 최하위권이거나 꼴찌이다.>
8. 이태진 외(2021).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 국제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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