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그러나 필수적인
    [책소개] 『더티 워크』(이얼 프레스/ 오윤성(옮긴이) / 한겨레출판)
        2023년 05월 27일 10:4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미국의 21세기 ‘불가촉천민’을 조명하는 통렬한 르포르타주

    눈앞에 더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우리는 즉시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얼른 자리를 옮길 것이다. 사실 “지저분하거나 끔찍한 것을 목격하지 않으려는 욕망 자체는 새롭지 않다.”(31~32쪽) 우리 사회는 혐오스럽고 오염된 것을 부단히 ‘뒤편’으로 격리시켜왔다. ‘문명화’의 이름은 물리적으로 더러울 뿐 아니라 규범 문화에서 벗어나거나 ‘야만적’인 모든 부적절한 것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 사회 역시 불결한 것들을 ‘치워버림’으로써 번듯하고 깨끗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존재는 보이지 않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비가시화된 더러운 존재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이 그들을 ‘더럽다’고 낙인찍었는가? 어떻게 그들은 대중의 시선 너머에 방치되었는가?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이자 “조지 오웰과 마사 겔혼을 잇는 작가”, 이얼 프레스는 바로 그런 질문들을 가지고 사회 뒤편의 장면들, 대중이 고개 돌린 채 알려고 하지 않는 ‘더러운’ 문제들로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돌려놓는다.

    《더티 워크》는 교도소 정신병동·대규모 도살장·드론 전투기지처럼 사회의 뒤편으로 숨겨진 노동 현장부터 바다 위 시추선과 실리콘밸리의 첨단 테크기업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 곳곳의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필수노동을 다룬다. 마치 거대한 실뭉치의 끝을 놓지 않고 풀어가는 것처럼, 저자는 르포르타주의 형식으로 낙인찍힌 노동자 ‘더티 워커’의 초상과 이를 감추는 권력의 그림자를 생생하고 집요하게 써내린다. 교도관·드론 조종사 등 노동자의 말에서 시작해 노동 환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 관련 전문가와의 인터뷰,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를 촘촘히 덧붙임으로써 개인의 맥락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키며, 마침내 이러한 ‘더티 워크’가 결국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떠맡겨지는지 그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낸다.

    더티 워커의 공통된 문제적 양상은 비인간적인 산업 시스템, 지역 사회·정부의 겉핥기식 대응, 자본주의·소비자 사회의 과도한 이윤 추구 그리고 여기에 대중의 무관심이 합쳐지며 지속되고 심화된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추천사를 빌리자면, 저자는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아웃소싱하는 더티 워크에 사실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밝힘으로써 대중이 노동의 불평등을 생각해보도록 촉구한다.” 더 나아가, 더티 워크를 둘러싼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공동체적 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며, 타자화된 채 격리된 더티 워커를 사회 내부로 불러들이고 사회의 ‘더러운’ 구석구석을 함께 적극적으로 응시하기를 호소한다.

    더티 워크 역시 보이지 않는 계약의 산물이다. 이 계약은 더티 워크를 용인하고 거기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더티 워크에 대해 깊이 알 필요가 없도록 보장한다. 인종차별 계약과 마찬가지로 더티 워크의 계약은 공식 문서로 작성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기 쉽다. 그뿐만 아니라 더티 워크가 눈에 띄거나 눈앞에 들이밀어질 때도 쉽게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외부의 힘을 원인으로 들먹일 수 있다. 그러나 틀렸다. (…) 전쟁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부터 가장 취약한 시민을 어디에 감금할 것인가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우리가 더티 워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드러낸다. 우리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승인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있는지를 드러낸다._35~36쪽

    “그들은 폭력의 가해자일까, 시스템의 도구일까?”
    더티 워커의 도덕적 외상과 끝없는 트라우마, 이를 방치시키는 권력의 공모 관계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작가 리베카 솔닛이 소개한 바와 같이 “사회를 떠받치는 일련의 잔인한 산업에서 ‘노동이 도덕 원칙을 사보타주하는’ 상황을 고발”하며 “사회적 희생양이 된 사람들과 이를 감추는 힘”을 드러낸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는 재소자를 관리하고 정신 상담을 진행하는 교도소 정신병동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본다. 이곳의 재소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은 학대로 굴러가는 운영 시스템을 따라 이들을 처벌하거나 내부 폭력을 묵과할 것을 종용받는다.

    1장 〈학대로 얼룩진 시설로 들어가다〉에서는 재소자가 샤워실에서 다른 교도관들에게 80도가 넘는 뜨거운 물로 고문당해 사망한 사건을 목격한 정신건강 상담사 해리엇의 이야기를 토대로, 교도관이 경험하는 끔찍한 심리적 고통과 딜레마, 도덕적 외상에 주목한다. 2장 〈어떤 시스템이 교도관을 잔혹하게 만드는가〉에서 저자는 훈련 교육·급여·인력 충원·재소자 관리 등 모든 측면이 열악한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하는 커티스를 만나, 교도소라는 가혹한 노동 환경과 지역 사회가 교도관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 사이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3장 〈인권 대신 이윤을 좇는 교도소 자본주의〉에서는 첫 번째 파트의 지역적 배경이 되는 플로리다주를 기반으로, 공공보건의 문제를 형사처벌의 영역 혹은 민간 사업 부문으로 떠넘겨 값싸고 편리하게 해결하려는 정부의 태만함을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플로리다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교도소 담장 밖으로부터의 차별과 낙인찍기는 담장 내부의 폭력과 상처가 끊임없이 반복되도록 만든다.

    이어 두 번째 파트는 계속되는 전쟁에서 기지에 격리된 채 드론 영상을 분석하고 표적암살을 돕는 드론 전투원들이 마주한 현실을 다룬다. 4장 〈드론 조종사의 고립된 몸과 마음〉에 등장하는 크리스는 유능한 드론 조종사였지만, 인간으로서는 명백히 위태로웠다. 마치 VR 게임처럼 손쉬운 살인과 실제로 누군가를 죽였다는 현실적인 감각 사이에서 그는 고통스러운 괴리를 느낀다. 크리스와 같은 드론 조종사들은 실제로 “그 경계를 매일 넘나든다.”(190쪽) 한편 정부는 ‘정밀하다’처럼 최첨단 기술의 세련됨을 강조하는 언어로 대중의 인식 속에서 드론 전투를 유혈 이미지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렇게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 이 일자리에 누가 왜 지원하는 것일까? 5장 〈가난과 폭력의 상관관계〉에서 저자는 낙후된 지방 소도시에서 먹고살기 위해 드론 전투원이 된 헤더의 삶과, 일을 쉬면서 헤더의 기지 앞에서 반전 시위를 펼치는 블로메의 삶을 비교한다. 헤더는 블로메에 비해, 교육 수준·거주 지역·사회적 위치와 같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취약하다. ‘괜찮은 일자리’인 드론 전투원으로 오기까지 삶의 갈림길에서 헤더에게는 늘 선택지가 없었다. 저자는 현실로부터도, 대중으로부터도 소외된 드론 조종사들의 조각난 일상과 마음을 모아 기록하고, 폭력과 가난의 상관관계에 특히 초점을 맞추어 미국의 기울어진 ‘희생 분담(shared sacrifice)’ 정신을 꼬집는다.

    세 번째 파트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닭고기 소비량을 쫓아가기 위해 꼼짝 않고 닭 머리를 뜯는 도살장의 이주민 노동자와 정육산업을 들여다본다. 6장 〈착취의 연결고리가 된 도살장 노동자〉에서는 멕시코 출신의 플로르가 성추행을 일삼던 의붓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미국의 닭고기 정육공장에 취직한 이후의 삶을 조명한다. 미국 내 도살장과 정육공장은 대부분 멕시코계 이민자와 흑인으로 채워지고, 특히 플로르와 같은 미등록 이주민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된다. 도살장에서는 이들이 잘라내는 동물의 살처럼, 이들 자신도 ‘고문당한 몸’이 된다. 1분에 65마리씩 닭을 갈고리에 건다. 화장실 갈 시간도,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주문량을 맞추라고 야단치는 “관리자를 무서워하는 일부 여성 노동자는 작업복 안에 바지를 한 겹 더 입고 선 채로 오줌을 쌌다.”(280쪽) 7장 〈정육산업을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저자는 도살장 내부의 착취를 은폐시키는 정육산업의 구조와 소비자 사회를 연결지어 분석한다. 결국 도살장은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백인이 유색인을, 관리자가 노동자를, 사회 구성원이 성원권을 갖지 못한 사람을, 소비자 사회가 납품업체를 그리고 다시 자본주의가 인간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드러낸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에서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자본주의의 이면에 존재하는 더티 워크를 살펴본다. 8장 〈시추선 생존 노동자를 둘러싼 모순된 시선들〉에서는 석유시추선 ‘딥 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 이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시추선 생존 노동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생존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다니던 회사가 안전 점검을 게을리해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배신감, 노동자의 생존보다 원유 유출로 인한 해양 오염에만 초점을 맞춘 사회적 반응을 향한 분노, 동시에 환경 오염을 염려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화석연료를 시추하는 자신의 노동이 ‘더러운’ 일이었음을 자각하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과 허무함을 두루 담았다. 9장 〈실리콘밸리의 어두운 이면〉은 비윤리적 목적으로 개인 정보를 오·남용하는 테크업계의 악습, 아프리카에서 착취 노동을 통해 채굴된 코발트가 손 안의 핸드폰에 들어가는 과정을 뒤쫓으며 디지털 혁명을 일으킨 무선 디바이스과 테크산업에 얽힌 다양한 문제들을 밝혀낸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더티 워커에게 빚지고 있다”
    어둠 속 필수노동자에 대한 연대와 책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달라진 점 중 하나는 필수노동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수의 언론사가 의료진을 덮친 곤경을 보도했고, 병원 의료진·돌봄 노동자·택배 및 물류창고 노동자 등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필수노동자에 대한 말하기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사회를 떠받치는 또 다른 ‘필수노동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더티 워커의 고통은 다른 어디에서도 말해지지 못했다.

    저자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일관되게 우리 모두가 더티 워커에게 빚지며 살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며, 이 책에 등장하는 더티 워크를 사회의 필수노동으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교도소·도살장·드론 전투에서의 더티 워크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었을 뿐, 기성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456쪽)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더티 워커가 폭력의 가해자이자 직접적인 방관자임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을 비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집요하고도 냉철한 태도로, 문제의식을 필수노동의 작동방식과 그 너머의 사회구조로 뻗어나간다.

    이 책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 시스템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나쁜 노동자’를 만드는 사회구조와 이들에게 기대어 살아감에도 문제를 묵과하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배달노동자·청소노동자 등 조명받지 못한 필수노동자를 낙인찍는 방식,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퀴어문화축제·점거 및 파업 투쟁처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의 ‘불편한 투쟁’을 향한 차가운 시선들, 사회적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비가시화시키는 점잖은 배제는 저자가 비판하는 문제상황과 결코 다르지 않다. 저자가 강조하는 ‘동료 시민으로서 책임과 연대’는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린다.

    결국, 도덕적 불평등은 취약한 노동자가 마주하는 중첩된 불평등의 단면을 드러낸다. 부도덕한 개인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이를 감추는 힘”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저자는 더티 워커를 둘러싼 은밀한 권력의 공모 관계, 즉 사회적 차원에서 얽히고설킨 문제들과 선량한 사람들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고려하고, 이제는 더티 워커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공모를 시작할 때임을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사회를 떠받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라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은 일을 하는 그들을 우리의 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빚, 그들의 섬뜩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빚을 졌다. 그 이야기가 불편하기는 당사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해리엇 크로지코프스키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데이드 교도소 경험에 대해 쓴 트라우마 내러티브를 들려주었다. (…) 감정이 격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치유’된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오래 기억했다. 내가 그런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큰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큰 치유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_〈나가며〉 중에서, 461쪽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