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그 위험성과 다른 대안은?
    [기고] 대중 주체와 지식인의 역할
        2023년 03월 27일 01: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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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선거제도 개혁이 왜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 위로부터 문제제기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이것은 과거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 사회가 치러냈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러다가 우파 정당은 개악(?)하고 자유주의 정당은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하다가 개혁이 좌절된 뒤에 어느 지식인이 신문 칼럼에 “근본적(?)개혁”을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지 두렵다.

    그렇다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민주당은 왜 이렇게 어정쩡하고 무기력해졌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체제가 중산층과 서민을 갈라쳐서 서민대중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체제라는 걸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면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그래도 서민을 위하는 것처럼 쑈를 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후자의 경우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유명한 지식인이 있다. 누구를 말하는지 다들 아실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가 유투브에서 지적하듯이 부동산 정책 분야에서 그랬다.

    여야를 막론하고 강남에 사는 부유한 일부 상층 중산층 또는 특권 중산층이 전문직(의사, 교수, 고위관료, 대기업 간부 등)의 지식과 인맥을 활용하여 글로벌 성공주의(소비주의)로 치장하며 자식들에게 특권을 세습하려는 새로운 계급투쟁을 하고 있다는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의 지적(경향, 2023.3.23.)에 공감한다. 그들이 나머지 계급에게 “일종의 강요 혹은 문화적 압력을 주고 있다”는 말이 날카롭다(예를 들어, 지난번 글에서, 오은영 박사의 상담프로를 언급했는데 마치 친언니, 오빠 또는 형이 동생에게 잘못된 라이프스타일을 강요하는 것을 동생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처럼 사람의 인식 틀은 무서운 것이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민주당의 주류는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은 소위 산업화-독재시대에 극우 기득권 집단에 의해 감옥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한 사람들이다. 이때는 우리 사회의 최고 상층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산층과 서민 모두 하나 되어 독재에 대한 이들의 투쟁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했다. 물론 일부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러나 역사가 바뀌었다. 1997년 IMF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전면적으로 체제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1997년 이후 민주당(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까지)은 핵심지도부를 전부 다 교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부라도 새로운 시대 변화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는 사람들로 교체했어야 했다. 적어도 2인자를 그런 사람으로 채워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잘못을 방임한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달랐다. 예를 들어, 멕시코 대통령인 안드레스 마누엘 오브라도르는 과거 진보 야당인 PRD에서 이탈하여 더 왼쪽으로 가서 MORENA(이 단어는 흔한 까무잡잡한 혼혈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라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핵심적인 동기가 신자유주의 체제 비판이었고 그의 선거 구호는 ‘모든 이를 위한 민주주의’였다. 대중을 소외시키지 않고 대중과 함께 했다(그의 주특기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대중과 함께 시내 중심가의 길거리를 점거하고 몇 달씩 노숙농성을 하거나 장거리 도보 행진을 하는 것이다. 기본이 약 백만이다). 그럼에도 선거 부정의 조직적, 구조적 한계(?)로 인해 2006년, 2012년 패배하고 201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오늘날 그에 대한 멕시코 시민들의 지지가 높은 것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물론 그도 진보 엘리트그룹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어찌 쉬웠겠는가? 과거에 비해 얼굴도 늙었고 흰머리도 많이 는 거 같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8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에서 라틴아메리카 대중은 유럽과 북미 학자들의 주류(헤게모니를 가진)이론과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대중이 역사의 주체로 나선 것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칠레와 페루의 도시 변두리의 가난한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이념 지향적 계급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사회연대를 실천했다). 이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도 새로운 개념을 해석하면서 상응하였다. 예를 들어 보아벤투라 산투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궤적을 훝어보면, 그 문화적 의식, 바로크 에토스(ethos)는 사회적 연대성과 사회적 주체성을 재구성하게 만들고 있고 이에 따라 반 헤게모니 세계화의 도전을 감당할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정치적 문화의 힘은 대중의 (일상적) 경험에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도 대중의 강한 문화적 힘(K-컬쳐)을 현재 전 세계에 떨치고 있다. 그리고 촛불시위를 통해 어리석고 잘못된 지도자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대중 스스로가 “대중의 요구”를 정치권에 조목조목 제기하고 로드맵이 들어있는 ‘약속어음’을 그들로부터 받아낼 정도로 조직화, 집단화 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언론도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이름난 진보 매체들도 이해할 수 없는 기사를 아직까지도 내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아르헨티나의 아주 높은 인플레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아르헨티나의 2월 물가 상승률이 100%를 넘어서면서…..”(경향신문, 2023.3.15.일자).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유수 언론을 보면, “인플레가 2월에 6.6% 상승했고….”(Clarin, 2023.3.15.). 우리나라의 인플레도 2023년 2월에 전년 동월에 비해 소비자 물가지수(cpi)가 4.8% 상승했다(통계청). 특히 가계지출에 민감한 식품이 물가 상승을 견인했으므로 당연히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지만 아르헨티나의 물가가 102.5% 상승했다는 것은 일 년치로 환산한 수치다.

    서울대 사회학과의 모 교수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이중화(양극화)되었다고 하지만 삼중화된 것 같다. 즉, 극우가 힘이 막강하고(적어도 스페인과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극우가 힘을 못 쓴다), 또한 자유주의 세력(민주당 등)도 막강하고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은 체제에서 배제되어 살기 힘들다. 물론 기득권층(재벌 등)과 특권 중산층은 여유만만하게 살고 있고 양대 정당은 이들만을 대표한다. 최근에 와서 정부 여당은 계급이 아니라 세대와 젠더를 기준으로 갈라치기하면서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고 야당은 어정쩡하지만 위 정당의 약점을 잡고 움직이고 있지만.

    긴 얘기는 각설하고 좌파 정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삼중화된 사회에서 당연히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을 견인하고 극우를 위축시키는 전략목표와 전술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싱크탱크의 중요성이다. 즉, 지식인이 중요하다. 미국이 아직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에서 패권(헤게모니)을 잃지 않는 것은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인들 덕분이다. 우리가 알기보다 훨씬 좌파의 힘이 강한 곳이 미국이다. 주류 자유주의 세력이 이들 좌파를 활용(?)해서 정책을 거국적으로(공화, 민주 양당, 월가, 대학, 언론 모두 하나가 되어) 만들고 있다. 가끔 핵심 엘리트들이 실수할 때도 있지만 모르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주류 자유주의 세력은 잘 모르고 하는 일도 많은 것 같다. 면밀하고 신중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도부가 잘 모르고 추진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차베스혁명의 경우 우리는 1998년 대선 승리와 그 다음 해의 정권 출범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차베스는 생각보다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지식인이었고 1980년대부터 자신을 포함한 일부 군부와 지식인 그리고 일부 대중까지 참여하여 혁명의 전략을 둘러싸고 토론을 계속한 비밀 핵심그룹(MBR-200)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권력을 잡자마자 개헌과 정책 비전의 로드맵을 바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겉으로 레토릭은 ‘혁명’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개혁’이었다. 그만큼 전략적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좌파는 철저하게 연구, 토론하고 전략과 비전을 가다듬어야 하고 지도부는 일부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내부 정책 역량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앞으로 머지않아 분명히 ‘좌파’에게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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