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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움과 자랑스러움...
    [낭만파 농부] 새벽 빗소리에 깨다
        2022년 05월 27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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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1시 30분. 빗소리에 잠을 깼다. 아니, 밤사이 비가 내릴 거란 엊저녁 일기예보에 사로잡혀 있던 무의식이 흔들어 깨웠는지도. 어찌나 반갑던지 저도 모르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폰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내 오밤중이건 말건 벼농사두레 단톡방에 “비온다!” 외마디 탄성과 함께 동영상을 올린다.

    안 그래도 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톡이 줄줄이 올라와 있던 참이다. “기우제를 지냅시다!” “비소식 떴는데…” “이번엔 제발 ‘뻥’이 아니길” “내일은 비님이 꼭 와주시기를”

    이 얼마 만이던가. 느낌으로는 몇 달은 되었지 싶은데 기록을 뒤져보니 딱 한 달 만이다. 물이 한참 아쉬운 농사철에 한낮으로는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이른 더위까지 겹쳐 이 가뭄이 도드라졌던 게다. 작물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건 당연하고, 흙에서는 먼지만 풀풀 날리니 풀꽃은 싹을 틔우지 못할 지경이다. 날마다 수돗물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려주던 터다.

    이런 와중에 내려주었으니 비록 흡족하지는 못할지라도 ‘단비’라 아니할 수 없겠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벼 못자리다. 모판을 앉힌 지 일주일 남짓 지났는데, 두둑 바닥이 고르지 못해 물이 닿지 않는 곳의 볍씨가 말라가던 참이다. 따라서 애가 타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비로 위험한 고비는 넘긴 듯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얼마만의 ‘운무’이던가

    가뜩이나 올해는 볍씨 때문에 모판 작업에서 두 번 일을 했던 터다. 밥맛은 좋지만 병충해에 약한 ‘신동진’ 품종을 지어오다가 올해부터 대체품종으로 개발된 ‘참동진’ 볍씨를 파종해 못자리에 앉혔는데 끝내 싹이 트지 않는 ‘참변’이 벌어진 것. 신품종은 낱알 껍질이 두꺼워 촉을 틔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다. 결국 연인원 70여명이 염수선-파종-못자리 작업에 쏟은 벼농사두레의 노고가 말짱 헛일이 되고 만 셈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다시 되풀이하는 수밖에. 부랴부랴 볍씨를 다시 받아다가 이번엔 ‘발아기’의 힘을 빌려 촉을 틔운 뒤 볍씨를 모판에 넣는 작업을 벌였다. 파종기계를 써서 하는 작업이라지만 못 쓰게 된 2천개의 모판을 일일이 들어내 싹이 트지 않은 볍씨와 상토를 털어내자니 쓸개를 씹는 기분이라고 할까.

    파종을 마친 모판은 사흘 동안 숙성시켜 싹을 낸 뒤 못자리에 앉히게 된다. 그런데 파종작업을 휴일에 하다 보니 못자리 작업 날짜는 평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되면 작업인원을 모으기가 난감해진다. 벼농사두레 회원들은 대부분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자인 까닭이다. 파종과 못자리 작업을 한날에 해치워볼까도 했지만 숙성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어쩔 수 없이 평일로 날짜를 잡고 작업 참여를 읍소하고 나섰다. 모판을 못자리 끝까지 옮기자면 길게 줄을 지어 ‘릴레이 작업’을 펼쳐야 하는데 그러자면 적어도 스무 명 가까운 사람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일일이 옮겨 날라야 하니 힘은 힘대로 들고, 작업시간도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걱정은 태산인데 상황을 낙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른을 훌쩍 넘는 이들이 공동작업에 함께 한 것이다. 누구는 연차 하다못해 반차를 내고, 누구는 친구들을 부르고, 가게 문을 닫거나 몇 시간 비우고 달려온 이까지. 이 고장 탐색캠프인 ‘완주탐험-석달 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 넷이 일손을 보탠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못자리에 모판 앉히기 공동작업

    일손에 여유가 생기니 작업 또한 느긋하게 진행됐다. 한 시간 남짓 만에 누군가 “그만 쉬었다 합시다!” 하면 그것으로 휴식(새참)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못자리 바로 옆에 마을 모정이 자리하고 있어 쉬엄쉬엄 일하기에는 그만이다. 막걸리 한 잔 또는 캔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저마다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간식을 집어 든다.

    다시 한 시간이나 일했나 싶은데 어느새 점심시간. 땀 흘려 일한 뒤끝이라 읍내식당에서 날라온 국수와 보리비빔밥이 꿀맛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루룩 털어 넣고 막걸리 몇 순배 돌리고 나니 “자, 다들 모입시다!” 초면인 경우가 많으니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2천 개 모판이 못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고 부직포를 덮으면서 작업은 오후 3시쯤 모두 끝났다. 뒷정리를 하고 씻고 나서 읍내 치킨집에서 길게 이어진 뒤풀이로 ‘두 번 일’은 모두 끝났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벼농사두레가 자랑스럽다.

    누군들 이 상황이 답답하지 않았겠냐만은 다들 두레를 아끼는 마음으로 견뎌냈을 게다. 누가 그랬다. “폭탄 터지니 더 막강해지는 벼두레”라고. 그렇다. 위기 앞에 더욱 단단해지는 우리 벼두레의 저력을 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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