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와 '사과' 사이
    [컬렉터의 서재] 민화의 세계, 보는 게 아닌 읽는 것
        2021년 10월 29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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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수업 풍경

    박선생, 수업시간에 조선후기 모내기법 확대가 가져온 사회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박선생: 애들아! 쌀을 한자(漢字)로 뭐라고 하는지 아니?

    학생들: (여기저기서) 미(米)요! 미(米)요!

    박선생: 그럼 이 미자(米字)를 파자(破字)하면 뭐가 되는지 아니?

    학생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요. 모르겠어요.

    박선생: 미(米)를 파자하면 말이야 ‘八十八’이야. 왜 쌀이 ‘88’일까? 어떤 이들은 쌀을 생산하기 위해서 사람 손길이 88번 필요하다고 해서 그런 글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한단다. 쌀이 그만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작물이라는 거야. 벼농사에서 가장 많이 일손을 잡아먹는 작업이 김매기인데, 김매기는 잡초 제거를 말한단다. 벼농사에서는 대표적인 잡초는 ‘피(稗)’라는 놈인데, 문제는 이게 벼랑 비슷하게 생겨서 초보 농사꾼은 피 뽑으러 갔다가 벼를 다 뽑기도 한단 말이지.

    그런데 이앙법, 즉 모내기법은 기존의 직파법에 비해 이 김매기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어. 왜 모내기법이 김매기 노동력의 절감에 기여했는지의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줄게. 동일한 면적을 농사짓는데 기존 직파법으로 100의 노동력이 필요했다면 모내기법은 20으로 가능했다고 해. 그럼 어떻게 되겠어? 결과적으로 농촌에 80의 노동력은 남아 돌게 되겠지. 이들은 결국 농촌 사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겠지. 영국 역사의 엔클로져운동 결과와 비슷하게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나 광산으로 몰려들어 임노동자층 형성으로 이어지는 거고. 영국에서는 ‘양(羊)’이 농민들을 도시로 내몰았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앙(移秧)’이 농민들을 도시로 내몰았다는 이야기! 이앙도 빨리 발음하면 ‘양’이니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결국 ‘양’이 계층 분화의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지.

    [사진] 조선후기 경직도 중 모내기 그림, 작자 미상 (독일 게르트루드 클라센 소장)

    학생A: 쌤! ‘양(羊)’하고 ‘이앙(移秧)’이 어떻게 같아요? 휴∼ 맨날 아재 개그….

    학생B: 쌀이 ‘88’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신기해요.

    박선생: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88세’를 지칭할 때 ‘미수(米壽)’라고 했던 거야. 8월 18일이 쌀데이, 즉 쌀의 날로 지정된 이유도 그런 거고.

    학생C: 쌤! ‘쌀데이’란 것도 있어요? 11월 11일이 가래떡데이라는 건 들어봤어도 그건 처음이예요.

    박선생: 그럼 있고말고. 쌀이 남아도니까 쌀을 많이 소비하자는 취지로 지정된 날이야. 농사 짓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쌀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의미를 담았지.

    학생C: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은 표정으로) 선생님! 여기 달력에 8월 18일 쌀 데이라고 표시 안되어 있는데요.

    박선생: 응. 이게 정식 기념일이 아니라서 달력에는 표시가 없어. 2015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이 날을 ‘쌀의 날’로 지정했는데, 그 후로 매년 8월 18일이 되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 등의 주관하에 쌀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단다. 그리고 너희들이 잘 모르겠지만 쌀데이처럼 농축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제정된 데이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야. 아는 거 있으면 말해 봐.

    학생D: 삼겹살 데이요. 3월 3일.

    박선생: 빙고! 그리고 고기 육(肉)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6월 6일도 육육데이라고 해서 고기 먹는 날이야. 현충일에 고기를 먹는 게 좀 그렇지만 말이야. 또 뭐가 있을까?

    학생들: (서로 갸우뚱하며) 글쎄요…

    박선생: 그럼 3월 3일 삼겹살 다음부터 가보자

    3월 7일 삼치데이, 어떤 이들은 참치데이라고 하고

    5월 2일 이 날은 오이데이. 이날 등산로 입구 같은 데 가면 관련 단체들이 나와서 오이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지. 이날을 오리데이라고 하자는 이들도 있어.

    학생들: (어이 없다는 듯 웃으며) 선생님! 말도 안돼요.

    박선생: 뭐가 말이 안돼. 얼마나 창의적이냐. 그 다음 8월 8일은 포도데이.

    학생들: 그래도 삼치, 오이는 이해가 되는데 8월 8일은 왜 포도데이에요?

    박선생: 8자를 여러번 그려 봐. 그러면 풍성한 포도 송이가 그려질 걸.

    학생들: (웃으며) 좀 억지스럽네요.

    박선생: 어떤 이들은 8월 8일을 라면 데이라고 부르기도 해. 라면 끓일 물이 팔팔 끓는다고 말이야.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야. 은연 중에 내가 아재개그 하는 거로 오해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10월 달로 넘어가자. 10월 달은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연속으로 나오니 잘 들어야돼. 10월 22일은 배데이, 10월 23일은 인삼데이, 10월 24일은 사과데이.

    학생들: 하∼. 점입가경이네요. 10월 22일은 왜 배데이가 된 거예요?

    박선생: 일단 10월 배가 나오니까 10월이고, 배는 배(培)와 발음이 같지? 그래서 건강도 두 배, 행복도 2배라고 배 먹는 날로 10월 22일이 정해진 거지. 10월 23일은 인삼 데이. 이건 왜냐? 인삼과 ‘2(이)’, ‘3(삼)’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야. 원래는 ‘2월 3일’ 또는 ‘2월 23일’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가 10월 23일로 변경되었단다. 아마 행사하기에는 겨울보다는 가을이 더 좋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 마지막 10월 24일은 왜 사과데이인줄 아니?

    학생들: (음전해진 상태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요.

    10월 24일 사과데이 그리고 ‘개 사과’

    10월 24일은 왜 사과데이로 정해졌을까?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 보시라.

    사과데이는 사과 향이 그윽한 10월에 ‘둘(2)이서 사(4)과한다’는 의미로, 친구나 연인끼리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정된 날이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apple)’를 주면서 ‘사과(apology)’하는 날인 것이다. 여기에 의미를 덧붙여 감사(4)를 전하라는 뜻도 있다. 사과데이는 지난 2000년 <학교폭력예방센터>가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과를 통한 화해를 목적으로 제정했는데, 사과라는 매개물을 통해 오해와 갈등을 풀고 화해와 용서를 하자는 취지였다. 2002년에는 경북농협과 능금조합의 후원으로 ‘애플데이 선포식’을 가졌고, 이후 해마다 10월 24일이되면 관련 행사를 갖고 있다.

    [사진] 10월 24일은 둘이서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취지로 제정된 사과데이다. 왼쪽 위는 사과데이 기념로고, 나머지는 사과데이 행사 모습들이다. (윗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북도민일보, 연합뉴스, 뉴스 스토리 사진)

    수업 풍경과 사과데이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사과데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제정 후 대략 20년이 되는 올해 10월 24일 사과데이를 앞두고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개사과 사건’으로, 이 사건은 10월 하순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았다. 사건의 진상은 대략 이러하다.

    사건은 국민의 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전직 검찰총장의 전두환 관련 발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0월 1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부산 당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전두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여야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다수의 국민들은 이를 거세게 비판했다. 이 발언이 예상외로 큰 파문을 일으키자 윤 전 총장은 21일 “설명과 비유가 부적절했다는 많은 분들의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유감을 표한다”며 한발 물러섰고, 이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구하다”고 사과의 글도 올렸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과를 할 때 가장 나쁜 것이 변명을 하는 것이며,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윤 후보측은 이 말을 새겨 들었어야 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하는 일들은 그 직후 일어났다. 사과 후 하루도 지나지 않은 10월 22일 자정쯤 윤 후보의 인스타그램에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일명 ‘개사과 사진’)을 올린 것이다. 개에게 사과를 주는 이 사진 말고도 이미 사과를 쥐고 있는 돌사진 등 2장의 사과 사진을 연속으로 올린 후라 사람들은 사진들이 뭔가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사과는 개에게나 줘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을 개에 비유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사과는 하기 싫은데, 반발을 달래기 위해 사과는 해야겠고, 자기 나름의 자존심은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이를 계기로 덩달아 과거 “민중은 개돼지‘라고 하여 막말 파문을 일으켜 파면됐던 전 교육부 고위관료도 소환되었다.

    [사진] ‘개사과 사진’ 논란을 보도하고 있는 뉴스의 한 장면 (MBC 뉴스데스크 2021년 10월 23일 보도화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윤 후보에게 그렇게 관대했던 『조선일보』 조차 사설에서 그를 비판했을까. 조선일보는 ‘王(왕)자 무속에 이어 개 사과. 윤석열의 이해못할 행태’라는 제목의 10월 23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전두환 정권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며 “독재자의 통치 행위를 거론한 것은 옳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윤 전 총장 측은 사과 직후 인스타그램에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렸다. 당장 ‘개에게 사과했다’는 뜻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을 개 취급하는 거냐”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본인이 하는 말과 행동은 상식과 거리가 멀고, 공정과 법치와 부합하는지도 의문스럽다. 국가 발전을 위한 미래 비전을 보여준 적도 별로 없다……이러고서 어떻게 나라를 바로 세우고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건가.

    윤후보 측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또 사과데이와 우연히 겹칠 것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어쨌든 2021년 10월 24일 사과데이는 이 웃지 못할 ‘개사과 사건’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이 사진은 2021년 사과데이를 장식할 역사적인 스냅샷으로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이 사진은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사과데이를 주관하는 관계자에게 당부드린다. 사과데이가 제정된 지 20년이나 지났건만 이를 모르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좋은 취지를 가진 날을 제정해 놓고도 그동안 홍보가 부족했음을 깊게 반성하시라. 우연히 올해 사과데이를 전후한 시기에 일어난 ‘개 사과 사건’은 사과데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길 바란다. 그리고 관계자들은 앞으로 윤 후보를 사과 데이 홍보대사로 임명하시라.

    민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윤 후보 측은 ‘개사과 사진’을 통해 2021년 사과데이를 오래도록 기념할 에피소드를 남겨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기여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뜻밖에도 조선시대 옛 그림 특히 민화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방법론을 대중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민화 읽는 법? 이건 무슨 말인가?

    지금부터 윤 캠프가 친절하게 던져 준 민화 읽기 팁(tip)을 가지고 민화 읽기의 세계로 입문해보자.

    집들이를 할 때 사람들은 세제와 두루마리 휴지를 선물로 들고 간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찹쌀떡이나 엿, 혹은 도끼나 스푼 모형을 선물한다. 이런 물건들을 선물로 택한 이유는 여기에 어떤 상징이 담겼기 때문이다. 집들이 선물 중 세제는 단순히 빨래하는 세제가 아니라 거품이 일듯이 빨리 재산이 불어나기를 바라는 상징이며, 휴지는 생활용품으로 요긴한 물품이기도 하지만,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리라는 상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에게 주는 엿과 찹살떡은 음식이 잘 붙는다는 것에 착안하여 대학에 척척 잘 붙으라는 상징을, 도끼와 포크 모형은 문제를 풀 때 잘 찍으라는 상징을 담아 선물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상징의 세계이다. 조금만 신경을 써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런 상징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미 상징의 세계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경험하고 실천하고 있다.

    어느 식당 앞에 돼지 조각이 놓여있다면 이 돼지는 손님들이 많이 먹고 돼지처럼 살찌라는 뜻이 아니다. 돼지는 복과 부귀를 상징한다. 손님들이 많이 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정치 영역으로 가보자. 만약 국회의원 공천(公薦)을 간절히 원하는 어느 정치인이 그 염원으로 ‘천 개의 공’이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하자. 이 때 공 천개는 단순한 공(ball)이 아니라 ‘공천’을 상징한다. 사과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시겠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10월 24일 친구에게 사과 하나를 준다면 이 때 사과는 ‘사과(apple)’가 아니라 ‘사과(apology)’를 상징한다. 윤 후보 측이 올린 사진 속 ‘개에게 주는 사과’는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한 사과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그것이 단순히 ‘apple’로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과’와 ‘사과’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고도 가깝다.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수많은 ‘상징’들을 만나고 경험한다. 조선후기 서민문화를 대표하는 민화(民畵)는 이런 ‘상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봐야하는 그림이다. ‘상징 코드’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화는 ‘본다는 것’보다는 ‘읽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그림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민화는 조선후기 환쟁이로 불렸던 작자 미상의 떠돌이 화가들이 서민의 소박한 꿈과 기복적 염원을 그린 그림이다. 이때 서민의 꿈과 기복적 염원을 표현한 방법으로 다양한 상징 코드를 활용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물론 민화 중에는 산수화(山水畵)도 있고, 책가도(冊架圖)도 있고, 화조도(花鳥圖)도 있고, 문자도(文字圖), 심지어 풍속화(風俗畵)도 있다. 그 전체를 획일적으로 그렇다고 규정할 수 없지만 그 중 상당수는 상징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상징을 통해 민화 읽는 법을 간단히 연습해보자.

    먼저 고추, 수박, 오이, 석류, 포도를 그린 민화가 있다고 하자. 이것은 무엇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것일까? 이것들은 모두 씨가 많거나 알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산에 대한 염원이다. 백 명의 동자가 어울려노는 백동자도(百童子圖)도 역시 다산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바위, 거북, 소나무, 학 등 십장생을 그린 민화는 어떤가? 이건 ‘십장생(十長生)’이란 말 속에 답이 들어있다. 장수(長壽)에 대한 염원을 그린 것이다. 모란꽃을 그린 것은 무엇에 대한 염원일까? 부귀이다. 모란꽃은 꽃이 매우 풍성하기 때문에 보통 부귀를 상징한다. 옛날 결혼식에보면 모란 병풍을 배경으로 많이 했던 것도 결혼해서 부유하게 살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새 두 마리를 그린 민화는 부부 사이의 애정과 금슬을 상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란꽃을 배경으로 새 두 마리를 그리면 부부 사이의 애정과 부귀를 같이 결합시킨 것이다. 부부 둘이 사이좋게 살면서 부귀를 누리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박쥐를 그린 민화가 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박쥐는 복을 상징한다. 박쥐를 뜻하는 한자 ‘복(蝠)’의 발음이 ‘복(福)’과 같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은 민화 ‘황계도’로 석류나무 아래 병아리를 거느린 닭 한 쌍을 그린 것이다. 부부 사이의 애정과 다산의 염원을 담았다. 오른쪽은 모란을 그린 민화로 부귀를 염원하는 그림이다. (인터넷 사진, 소장처 미상)

    오리가 연꽃과 함께 그려진 그림도 있다. 오리 압(鴨)자에 장원급제를 뜻하는 갑(甲)자가 들어 있어서 이 그림은 장원급제를 비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오리와 함께 그려진 연꽃 중 연꽃 열매인 연과(蓮果)는 연속해서 합격한다는 연과(連科)와 같이 발음되어 연달아 시험에 합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쏘가리를 그린 그림이 있다면 이는 입신양명을 상징한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어(鱖魚)라고 하는데, 이 ‘궐(鱖)’과 대궐 궐(闕)자가 통하기 때문이다. ‘약리도’라고 불리는 그림도 있는데, 큰 잉어가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무슨 염원을 담은 것일까? 이것은 큰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장면, 즉 등용문 고사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는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입신출세한다는 상징을 담았다.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라고도 한다.

    고양이와 나비가 같이 그려진 그림도 있다. 흔히 묘접도(猫蝶圖)라고 부르는 이 그림은 단순히 동물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고양이를 칭하는 묘(猫)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와 나비를 뜻하는 접(蝶)과 80세 노인을 뜻하는 질(耋)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일흔, 여든까지 오래 오래 장수하라는 염원을 담았다. 묘접도는 흔히 모질도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민화의 세계는 상징의 세계이다.

    [사진] 위는 민화 약리도이다. 입신 출세의 염원을 담았다. 아래는 민화 묘접도로 장수의 염원을 담았다. 그림 속 바위도 장수를 상징하는 도상이다. (인터넷 사진, 소장처 미상)

    민화의 간판 스타, 까치호랑이 그림

    컬렉터도 민화를 여러 점 수집해 소장하고 있다. 그중 절반은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컬렉터가 민화 중 특히 까치호랑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상징이 무엇보다 좋기 때문이다.

    대입 시험 한국사 문제에 민화가 사진으로 나오면 거의 대부분 까치호랑이 그림이 소개될 정도로 민화를 대표하는 것임에도 이 속에 담긴 상징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어떤 사람들은 호랑이는 포악한 양반과 관리를, 까치는 이를 비판하는 서민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양반들을 놀리는 서민들을 풍자하는 그림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동의하기 힘든 해석이다. 그렇다면 까치호랑이 그림에는 어떤 상징이 담겨 있는 것일까?

    [사진] 조선후기 다양한 모습으로 까지 호랑이 민화가 그려졌다. 호랑이를 그린 것, 표범을 그린 것, 두 동물을 섞은 것처럼 보이는 그림도 보인다.

    보통 까치호랑이 그림(일명 호작도虎鵲圖 또는 작호도鵲虎圖)에는 소나무, 까치, 호랑이 세 개의 도상이 결합된다. 먼저 소나무는 ‘새해’를 상징한다. 흉조로 인식되는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까치는 길조인데 ‘기쁜 소식’을 상징한다. 그럼 소나무와 까치를 결합하면 ‘새해의 기쁜 소식’이 된다. 이제 ‘새해에 기쁜 소식을 알린다’라는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알린다’ 혹은 ‘전한다’의 의미를 표현해야 하는데, 여기에 부합되는 한자가 ‘보(報)’이다. 이 ‘報’의 중국어 발음이 ‘bao’이고, 같은 발음을 가진 것이 표범 ‘표(豹)’이다. 표범이 까치, 소나무에 결합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래서 까치 호랑이 그림은 원래 소나무, 까치와 함께 호랑이가 아닌 표범이 들어가야 신년희보(新年喜報), 즉 ‘새해에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정확한 의미를 구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 표범이 우리나라에서는 개체 수가 적어 점점 우리에게 익숙한 호랑이로 변하게 된다. 예부터 호랑이와 표범은 가리지 않고 함께 두루뭉술 ‘범’으로 불렀기 때문에 두 동물이 섞여 나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 산포수들은 호랑이는 줄범, 표범은 불범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호랑이든 표범이든 모두 ‘범’이라는 동류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까치호랑이 민화에서는 호랑이의 표현이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온전히 표범으로 그려진 것도 있고, 또 호랑이로 그려진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호랑이 같기도 표범같기도 한 반호반표(半虎半豹)의 동물이 그려진 것도 있다. 컬렉터는 이것을 농담삼아 ‘표랑이’라고 부른다.

    표현이 약간씩 다르긴하지만 어쨌든 옛사람들은 ‘새해에 기쁜 소식을 전한다(또는 알린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서 까치호랑이 민화를 연초에 집에 걸거나 붙였던 것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Happy New Year” 혹은 “Best wishes for the new year”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그 시대의 꿈과 희망이 이 시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컬렉터가 아끼는 물건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몇 년 전 까치호랑이 민화 목판을 하나 수집하였다. 아끼는 김환기 판화 작품을 지인에게 팔고 거기에 돈을 좀 더 보태서 구한 것이다. 제작 시기는 100년에서 200년 정도 된 것으로 보이는데 2cm 정도의 두꺼운 나무목판 위에 호랑이 한 마리와 까치 두 마리를 새긴 것이다. 크기는 가로 43cm, 세로 54cm이다. 나무재질은 정확히 모르겠다. 보통 까치호랑이 민화는 그림으로 그린 것을 벽에 걸거나 붙였는데, 연초 이 그림을 붙여 복을 비는 것이 하나의 세시풍속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이런 그림을 일일이 그리기보다는 아예 목판을 만들어 찍어 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컬렉터가 아끼는 까치호랑이 민화 목판은 신년에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는 그 의미도 의미이거니와 이런 까치 호랑이 그림의 대량 수요와 그에 발맞춘 대량 생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꽤나 의미있는 유물로 보인다.

    [사진] 왼쪽은 까치호랑이 판화를 위한 목판으로 조선후기 까치호랑이 그림이 대량 소비되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사진 오른편의 30cm 자를 통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은 목판의 호랑이(혹은 표범)의 얼굴 부분을 확대한 사진이다. (박건호 소장)

    컬렉터는 요즘 이 까치호랑이 목판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까 고민 중이다. 아예 이 목판 전체를 액자로 표구해서 보존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무게도 무게지만 이제 더 이상 판화를 찍을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은 상태가 좋으니 저 상태로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 민화 판화를 찍어내는 방법도 있다. 매년 연말쯤 목판에 먹을 발라 몇 장의 판화를 찍어 주변 친한 지인들에게 신년 선물로 주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목판 속의 까치와 호랑이가 매우 좋아할 것이다. 목판 속 죽어있는 까치와 호랑이가 오랜 시간을 뚫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애초 만들어진 그 용도로 쓰일 때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발하는 법이다.

    마침 2022년 새해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내년 3월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자질이 의심스러운 대선 후보들이 자신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소리치고, 언론들은 연일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시민들의 눈과 귀를 흐리고있는 이때, 이 까치호랑이 그림을 찍어 벽에 붙여 놓으면 진짜 기쁜 소식이 찾아올까? 훌륭한 대통령이 선출되어 국태민안하고 국운이 비상하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연말까지 컬렉터의 고민은 이어질 것이다.

    * <컬렉터의 서재>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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