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어떤 기시감
    이들은 과연 그들과 다른가?
    [시선] 파업·무정차·차벽, 코로나
        2021년 10월 22일 1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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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이 대통령이었던 1987년 6월 10일의 일이었다. 충무로에서 구파발로 가는 3호선 열차에 탑승했던 나는 이런 일을 겪었다. 나의 목적지인 독립문역까지 단 한 번도 열차가 정차하지 않았고, 독립문역에 이르자 열차의 문이 열렸다. 을지로3가, 종로3가, 안국, 경복궁 네 역을 열차는 ‘무정차 통과’했다. 열차에 타고 있던 시민들의 절반 이상이 독립문역에서 내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2021년 10월 20일에 다음과 같은 공고문이 지하철 역사에 등장했다.

    2021. 10.20 어느 역의 공고문

    읽어보자. “대규모 도심 집회로 코로나 19 확산 우려가 있어, 경찰 및 서울시 요청에 따라 광화문역 등 주요 역에 무정차 통과가 실시될 수 있습니다.” 대상역은 경복궁, 광화문, 시청, 종각, 안국역 등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실제로 무정차 통과가 일어났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30분부터 경복궁역, 광화문역, 시청역(1·2호선), 종각역 5개 역을 대상으로 실시된 무정차 통과는 오후 2시 40분 종료됐다.” (관련 기사 링크)

    서야 할 열차가 역을 그냥 통과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이는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억누르는 일일 뿐 아니라, 정부가 서울교통공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 공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코로나19로부터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생각해 보자.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특히 출퇴근 시간대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다. 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이낙연 전 국회의원의 사진을 보자.

    사진: 이낙연이 ‘체험’한 출근 시간의 수도권 지하철 ⓒ 연합뉴스

    반면에, 실외 집회에서 사람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거나 이동한다. 만일 일방적으로 집회를 금지하지 않고 민주노총과 대화하려는 의지가 정부에 있었다면, 아래 사진과 같은 평화로운 집회 모습이 서울에서도 가능했을 것이다.

    사진: 10.20. 창원시청 앞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실외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코로나 확산과 관련하여 더 위험하리라는 근거는 없다. 99명의 결혼식 하객이 대규모 식당에서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는 것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진행하는 실외 집회가 위험하다는 근거도 없다. 또, 이미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의 관중 입장도 30%까지는 허용된 바 있다. 야구장이나 축구장보다 거리나 광장이 더 위험할 것이라는 근거도 없다.

    내 판단으로는 이러하다. 문재인 정부는 반정부적 집회 자체를 역병으로 여기고 있다. ‘민주’ 정부라 자칭하는 이들은 전두환 시대 수준으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 ‘방역 독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시감(데자뷔)을 일으키는 일은 지하철 무정차 통과나 지하철 입구 폐쇄만은 아니다. 악명 높았던 이명박 정부 시절의 ‘차벽’이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했다.

    사진: 2009년 서울시청 광장의 차벽. ⓒ머니 투데이

    사진: 2021년 광화문 광장의 차벽. 왼쪽 10월 3일. 오른쪽 10월 20일. ⓒ 뉴시스/ 연합뉴스

    차벽의 설치에 관해 2011년에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경찰이나 일부 정치인들은 “방역을 위한 조치이므로 그 당시와는 다르다.”는 논리로 이를 옹호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관중 입장이 허용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관람석은 66,704석인데 30%를 허용한다고 하니 동시에 2만 11명이 입장할 수 있다. 사실 프로축구 경기에 2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모이는 경우는 코로나 창궐 이전에도 많지 않았고, 관중 평균을 보면 프로축구 관람에는 제한이 거의 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1)

    사진: 2019년 프로축구 관중 현황 출처: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99743

    2만 명이 114m X 70m의 축구장을 둘러싼 관중석에 모이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면, 집회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형평성이 어긋난다. ‘1인 시위 외 집회 금지’는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 같은 말을 정부는 사용한다. 왜 영어를 여기서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다. ‘with Corona’, 즉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는 정부는 왜 노동자 단체와는 ‘함께(with)’할 수 없는가?

    이 정부의 성격에 관한 여러 주장이 있지만, 다음의 사실들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재용을 사면했다. 같은 정부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고 구속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흔히 빈부 격차라고 불리는 ‘자산양극화’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기보다 훨씬 심해졌다. 현 정부는 언론중재법을 추진했다.

    출처: 국가통계포탈(www.kosis.kr), 중앙일보

    현 정부는 전두환 시대에나 있던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부활시켰다. 그들과 상극이라고 보였던 이명박 시대의 차벽을 부활시켰다. 어떤 이들에 의하면 그래도 현 정부는 ‘민주 진영’이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이 지지했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만든 정부여서? 김문수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었다. 심지어 이명박도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던 6.3 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하태경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은 현재의 어떤 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커다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요즘 가장 ‘핫’한 이슈인 대장동 사건은 나에게 이렇게 느껴진다. 이재명에게 죄가 있는지, 어떤 죄가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서로 적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당과 이런저런 ‘꾼’들과 박근혜를 수사하고 기소했던 이들을 비롯한 ‘법조인’들 모두가 하나가 된 불로소득의 카르텔이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국힘이 싫어요. 그래서 더민이에요.”나 “현 정부는 최악이었어요. 그래서 국힘이에요.”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두 당 중 하나를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A가 미워서 B를 지지하거나 B가 미워서 A를 지지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 A와 B는 이제 다르지 않으며, 모두 ‘서민’이든 ‘국민’이든 ‘민중’이든 신경 쓰지 않는 집단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세상은 달라졌다. 정치적인 ‘지형’이 바뀐 것을 인정하기 싫다면 이것은 어떠한가?

    그림: 2021년 9월 일별 최고/ 최저 기온. 출처: https://www.accuweather.com/

    9월만이 아니었다. 10월 16일까지는 낮에는 여름 같았고, 17일에는 겨울 날씨가 왔다. 사시사철이나 춘하추동 같은 말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한반도에 도래했다. 6월에서 8월까지가 여름이라는 옛 지식이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는 삼성과 카카오와 같은 대기업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노동자와 자영업자와는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지 않는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같은 것은 이제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명백해 보이지만, 많은 이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다.

    글을 끝내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2016년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역사에 남을 ‘필리버스터’를 한 바 있다. (관련 글 링크)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 이후 ‘위성정당’을 흡수하며 180석을 차지하였고, 테러방지법을 폐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법을 없애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지난 9월 23일(2020) 더불어민주당 이병훈(광주 동구남구) 의원이 ‘고의로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테러에 포함하는 내용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하 테러방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관련 글 링크)

    국민의힘이나 그 전신인 정당들도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테러’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다. 왜 2016년에 악법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법률이 된 것일까? ‘우리’가 집권했으니까?

    눈을 뜨고 귀를 열자. 그들과 다른 이들은 다르지 않다.

    <주석>

    주1) 물론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만 입장이 허용되고,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인원이 10월 20일 기준 34,593,403명이므로(관련 링크), 30% 정도의 시민은 축구 관람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비접종자 중 0세~18세까지의 비중이 높고, 이 연령대가 프로축구에 참여하는 것도 흔하지 않으므로, 축구장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들의 비율은 30%보다는 매우 낮을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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