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수처와 조희연
    도둑맞은 수사, 정치피싱의 시대
    [서울 이야기] 권력형 비리는 없다?
        2021년 05월 13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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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처 1호 대상은 조희연 교육감이며 그 의혹은 ‘해직 교사 특혜채용’이라는 속보를 봤을 때,무심코 떠올린 소설이 있다. 에드가 엘런 포에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였다. 이 소설은 다소 황당한 내용이다. 왕비가 도둑맞은 편지를 찾는 이야기고 그 편지는 엄청난 추리 끝에 누구나 버젓이 보이는 벽난로 위에, 떡하니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의미하는 바가 허무한 소설만은 아니다. 하지만 공수처 수사대상 1호 기사를 본 뒤, 나는 문득 보이스피싱 비슷한 정치피싱을 당한 기분이었다.

    무수한 논란 끝에 출범한 공수처, 멍하니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공수처장의 인사말은 이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직무범죄 등에 대한 독립적 수사기구로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척결하여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재고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투명성과 신뢰성. 인사말만 읽어보면 당장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척결될 것 같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검사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막강한 기구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공수처의 공은 공갈의 ‘공’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실상 공수처의 조직과 권한이 취약하다. 공수처의 등장으로 기소독점주의가 깨졌다고 하는데 말이야 거창하지 ‘고위공직자범죄 등’의 주체가 사법권력자가 아닌 경우 공수처는 수사권만 있는 경찰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실무적인 차원에서 조직과 인원도 소규모고, 공수처 검사와 공수처 수사관은 검경 수사를 받아야 하며, 디지털포렌식 수사 또한 검.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앞서 비장한 ‘인사말’과 달리 현행 공수처는 해석적 체계적 난점이 많은 기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공수처 1호 수사대상이 교육감이며 그 사유가 ‘해직교사 특혜채용’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선 악질적이다. 형식상 공수처가 교육감에 대해선 수사만 할 수 있을 뿐, 기소를 할 수 없고 기소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검찰이 진 상태에서 교육감 임기도 얼마 안 남았으니 정치적 부담이 덜한 대상을 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고위공직자 비리로 가리킨 것이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당한 위헌적 법률에 의해 해고된 노동자들을 복직시킨 일이라는 점이다. 공수처의 기능을 차치하고라도 그 내용이 가진 무언의 암시는 대단히 수상하다.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보면 1988년 4․26 총선 이후 조성된 여소야대 구조 속에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하고, 청문회가 도입되어 5공 청산 작업이 진행되며 수세에 몰렸던 노태우 정권은 12월 28일 「대국민 민생치안 특별지시」를 통해 각종 불법시위․ 노동쟁의에 대한 강력한 공권력 행사방침을 밝혔다.(한겨레 신문 1988/12/29).

    노태우 정권은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을 계기로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민주화운동 진영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자행하는데 1989년 3월 22일 ‘공안관계장관회의’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폭력시위에 대한 강력대응을 지시하였고, 이러한 정부방침에 따라 노동자 파업현장, 농민시위, 학생시위 등이 공권력에 의해 강경 진압되었다. 1989년 4월 12일 부산교대생 이경현이 전경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공안탄압의 절정기에 정부는 교사들의 전교조 관련 단체행동을 교사들의 권리문제가 아닌 안보적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하면서 프레임을 형성했다.

    안기부가 개입해 공안 차원에서 교직원노조를 내사하고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핵심교사들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하고, ‘반상회’까지 동원하여 대국민 홍보심리전을 펼치는데 색깔론은 당연히 동원된다. 무자비한 탄압 앞에 내몰리면서 교사들은 대량 해직된다. 그 후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는 어두운 터널로 들어간다.

    21년, 공수처 1호로 부당하게 해고된 교사 운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교육개혁을 막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과거 공안당국이 자행해 온 상식 이하의 폭압적 탄압은 전적으로 군부 권위주의 정권에 책임이 있지만, 그런 비극을 제때에 청산하지 못한 후과는 사실, 깊어진 갈등으로 엉킨 실타래, 즉 지속적으로 해직 노동자 교원이 받게 될 탄압과 내몰림, 또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 무수한 잠재적 탄압을 낳았고 교사들의 일상적 자기검열로 이어졌다.

    촛불로 교체한 정권에서 세워진 공수처는 부당하게 해고된 5명의 해고 노동자를 원상 복귀시킨 교육감을 수사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맥락이 있다고 느낀다. 2020년 노동절 ‘노동자는 주류’라고 말하며 소위 ‘노동자는 꿇고 들어와라’를 은밀히 종용해 온 정부, ILO 협약을 끝끝내 무시 중인 한국형 노동탄압의 지리멸렬하고 잔혹한 현실가 맞닿아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공수처에 바라는 국민적 요구는 선출되지 않았지만, 그 권한이 막강한 판·검사들을 집중 견제하라는 뜻이었다. 그런 기능은 온 데 간 데 없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준 교육감만 두들겨 패는 언론과 무책임한 정치는 이 지경까지 왔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은 집단적 정동을 동원해 유명무실한 각종 ‘처’들을 남발해온 정부와 여당의 관성일지 모르겠다. 특히 검찰개혁이란 명분을 앞세워 공수처 출범만 밀어붙이고 정작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 갖추는 것을 등한시한 권력, 개혁의 실현 가능성에는 정작 무관심 한 채 지지율 상승이라는 목적 달성 후 개혁과제를 걷어 차버리는 전형적 정치피싱 말이다.

    공수처 출범 후 3개월여 만에 1000건 넘게 접수된 사건 중 유독 이 사건을 택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녕 정말 권력형 비리가 없단 말인가.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검색하라. 단 하루도 ‘권력형 비리’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은 날이 없을 터이다.

    주인공의 ‘도둑맞은 편지’는 누구나 잘 보이는 곳에 버젓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권력형 비리가 없다는 듯 수사마저 도둑맞는 시대. 뻔뻔한 일명 정치피싱의 시대가 아닐까 싶다.

    필자소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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