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전』⑧
    민수, 마르크스를 만나다
        2021년 05월 04일 08: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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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유정을 만나다(7회차)

    (8회차) 민수, 마르크스를 만나다

    유월 이십사일에 유정은 대구로 내려갔다. 한 달 후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고 집에 가서 단식투쟁이라도 해서 이대 앞에, 아니면 이대 후문으로 마을버스가 오는 독립문 쪽에 자취방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민수가 속으로 말했다. ‘아니 무슨 이런 예쁜 애가 있어. 독립문이라니. 거긴 내 놀이터잖아.’

    유정은 내려갔고 민수는 학교로 갔다. 과 사무실에 간 그는 친한 편인 일 년 선배 김현우를 만났다. 그는 약간 마르고 키가 큰, 금테안경을 낀 진짜 공부 잘할 것 같은 분위기의 남자였다. 그는 전라남도 출신이었고, 80년대 중반에 대학에 입학한 많은 그곳 출신들이 그러했듯, 소위 ‘과격한 운동권 학생’이었다.

    소리에, 혹은 발음에 민감한 민수에게 그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에게서는 ㆍ(아래아) 음가의 발음이 느껴졌었다. 예를 들어 그는 파리를 ㅍ·리라고 발음했다. 그것은 이를테면 포리와 파리가 합쳐진 음이었다.

    김현우가 말했다. “우리 담배 한 대 필까?”

    그들은 3동 앞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87들도 이제 서른일곱 중 절반 넘게 가두집회에 나갔다. 너는 혹시 집회 나간다든가 그런 것들은 생각 안 해 보았냐?”

    “저는 폭력을 되게 싫어해서 별 생각 없어요. 전두환 정권이 나쁜 건 알지만요.”

    “그럼 나쁜 걸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냐?”

    “글쎄요. 사실 형 말이 맞을 거예요. 청록파보다는 이육사 같은 시인들이 더 훌륭한 거겠죠. 하지만 저는 윤동주나 이상 스타일인가 봐요. 사실 무서워요. 저는 폭력이 많이 무서워요.”

    “야. 너 알고 보니 대단한 문학청년이구나. 청록파나 이육사 애기를 이런 식으로 연결하는 건 또 처음 듣네. 그렇지. 청록파는 그 태평양 전쟁 와중에, 그러니까 일제의 수탈이 정점에 이르던 때에 자연이 아름답다고 노래한 거니 방관자를 상징하겠네. 이육사는 저항 시인이고.”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민수야. 일단 너는 가두에는 나가지 말고 공부는 같이 계속하자. 그러다 생각이 바뀔 수도 있잖아? 아니어도 상관없고.”

    “그래요. 책 읽는 것은 좋아요.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다 읽었고 다른 책도 읽고 싶어요.”

    “그래. 내일모레 큰 행진이 있을 거야. 그거 지나고 다시 한 번 얘기하자. 아, 술 먹으면서 얘기하자.

    “예.”

    사진: 1987. 6. 26. 숭례문 부근 시위 현장.

    선배와의 술자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6.26 국민평화대행진’은 유월 항쟁의 절정이었다. 서울에서만 20만 혹은 30만 이상의 시민들이 시내로 모여들었고, 십만이라던 경찰 병력은 곳곳에서 무력화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특히 학생들이 패배의식을 버리고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움츠리고 살았던 고학년들은 최초의 승리에 감격했고 많은 어린 87학번들은 민중들이 경찰을, 공권력을, 정권을 곧 압도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착각이었지만 그것은 이 학번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고 몇 년 간 싸울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6월 29일에 노태우의 6. 29 선언이 있었다. 그 핵심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고, 이 선언은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던 이들과 ‘직선제로’를 외쳤던 이들과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를 외쳤던 이들을 분열시켰다. ‘직선제로’를 외쳤던 이들은 이제 반독재 투쟁을 한다기보다는 대선 준비에 빠져들 것이었다.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던 영문과 선배들은 ‘직선제로’를 외쳤던 이들을 비난하며 향후 대응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김현우와 민수의 술자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수는 그러려니 했다.

    그는 7월 9일에 생애 처음으로 가두시위 비슷한 것에 참가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가두시위는 아니었다. 이한열 장례식에 참가한 것이었으니까. 그는 그 날 고등학교 동문들과 그 행사에 참가했다. 독립문에서 연세대는 금화터널을 통하면 버스로 5분 거리였고, 그는 그 먼 서울대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고교 선배들과 동기들과 함께 그 행사에 가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진: 1987. 7. 9. 이한열 장례식. 서울시청 앞.

    연세대에서 출발한 운구 행렬은 신촌 로터리를 거쳐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그는 아현 고가도로 위에서 혹시 그것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날에 사람들은 경찰의 위협을 별로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마 몇 만이 넘는 인원이 그 고가도로 위에 동시에 올라서 이동했다. 시청 앞에서 그는 감동했고 경악했다. 시청 앞과 거기서 남대문으로 가는 길, 광화문으로 가는 길을 백만이 채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고등학교 동문들은 얼마 후 대학로로 이동해 술판을 벌였다. 나중에 듣고 보니 광화문 쪽에서는 페퍼포그 차들이 엄청나게 많은 지랄탄들을 쏘아 ‘중앙청’ 쪽을 향하는 이들을 해산시켰다고 했다. 민수는 그 날 고등학교 동문선배들과 많이 친해졌고 그 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선배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다.

    드디어 유정이 돌아왔다. 유정은 그러나 독립문 쪽에 자취방을 구하지 않았다. 민수는 실망했지만 결과는 더 나았다. 공덕동에 있는 오피스텔이라는 곳에 유정이 들어간 것이다.

    공덕동에서 만난 둘이 어느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유정이 말했다. “나도 오피스텔이라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어. 뜻은 오피스랑 호텔을 섞었다는 거니 이해는 쉽지만.”

    “살기 편할 것 같아?”

    “그럴 것 같은데 아직은 모르지. 일단 반찬은 엄마가 많이 주셔서 먹는 건 문제 없어 보이고, 학교 가는 건 버스로 10분이면 가니 개포동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 경찰서랑 파출소 가까우니 도둑이나 그런 걱정은 없겠고. 외롭긴 하겠지. 혼자 사니까.”

    그러면서 민수의 얼굴을 보는 유정의 미소는 그를 기절하게 만들 뻔 했다. 민수의 머리에서 ‘외롭긴 하겠지. 혼자 사니까.’가 수십 번 다시 재생되었다. 하지만 그는 허튼 생각을 품지는 않았다. 듣기에 유정은 ‘골수’ 보수 집안에서 자랐고, 민수는 유정이 자신의 아버지를 점점 더 싫어하는 것으로 보아 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보수적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성과 관련해서는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유정은 모든 의미에서 더 이상 보수적인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아빠와 엄마가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는 것을 본 그는 바로 민수의 집으로 전화했다. 부모님이 갑자기 수원이나 천안에서 내려 서울역으로 돌아와 공덕동에 들이닥칠 가능성은 거의 영이었다. 민수는 8월의 첫 날 유정의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둘만 있는 공간, 둘 다 약간 긴장했다. 유정이 긴장을 풀려고 한 것인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했다. “남자들만 있는 고등학교는 어때?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중학교까지 다녔고 거기는 그 뭐냐, 남녀…”

    민수가 말했다. “남녀공학.”

    “응. 맞아. 남녀공학이었고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여자 학교를 다녔어. 남자만 있는 학교는 어떨지 궁금해.”

    “최악이지. 얕보이면 안 돼는 일종의, 음, 정글이지. 내가 약해 보이면 어떤 놈이 나를 공격해. 돈을 뜯기도 하고, 꼬붕으로, 아니, 부하로 삼으려고도 하고.”

    “그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고 여학교에서도 마찬가지야. 인간관계는 참 어려워. 왜 그렇게 서열을 만들려고 하는지. 여학교에도 예쁨 서열이나 공부 서열이 있어. 아버지 부의 서열도 있고. 그 세 가지가 합쳐지면 아주 복잡해지지.”

    유정은 특이한 용어를 쓰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보통은 ‘미모 서열’이라고 얘기하겠지만 예쁨 서열이라는 말을 썼다. 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 것일 것이라고 민수는 생각했고 그 특이한 말에 매료되었다. 자신 역시 특이한 말을 많이 쓰니까.

    “그렇구나. 너는 살만한 서열이었겠네. 예쁨 서열은 일등이었겠고 공부 서열도 높았겠고…”

    “아버지 부 서열 얘기는 안 하네.”

    “그건 실례일 수도 있으니까.”

    “어쩜 너는 이렇게 스윗(sweet)할 수가 있지?”

    민수는 목이 탔고 입이 말랐다.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어찌할지 몰라 이상한 얘기를 했다. “근데 남학교에서는 이름이 그 서열에서 되게 중요해. 이를테면 너는 기껏해야 봄봄이라고 불렸을 거야. 나쁘지 않은 별명이지.”

    “와. 맞아. 어떤 애가 나를 봄봄이라고 불렀어. 김유정이니까.”

    “물론 나처럼 책도 많이 읽고 사악한 애를 만나면 점순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

    “진짜 매력적이야. 자기를 사악하다고 부르다니.”

    “본론으로 돌아가면 이름이 참 중요해. 너는 나중에 아들 낳으면 절대 이름을 은호라고 짓지 마.”

    “은호? 예쁜 이름인데.”

    “그럼 그 아이는 십중팔구 별명이 폴이 될 거야. 그리고 힘들어 할 거야.”

    “폴? 흔한 이름이잖아. 뭐가 문제지?”

    “폴. 은호. 포르노.”

    유정이 뒤집어졌다. 한참을 웃은 유정이 말했다. “절대 은호라고 짓지 않을게.”

    민수는 갑자기 유정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유정은 민수의 눈을 보며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의자에서 일어나 유정에게 다가간 민수가 그의 왼쪽 볼에 뽀뽀했다. 그리고 오른쪽 볼에 뽀뽀했다. 그러더니 유정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슬쩍 빨아들였다. 유정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입술이 열렸다. 그의 혀가 유정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민수의 정신은 구름을 탔고 영문과 학생보다는 한문학과 학생에 가까웠던 그는 ‘운우지락’의 ‘운’ 까지는 그 순간 이해하게 되었다. 유정은 난생 처음 느끼는 쾌락에 흥분하다가 십구 년 간 형성된 소위 순결에 대한 집착을 소환했다.

    그는 민수를 살짝 밀며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민수야. 나에게 맹세할 수 있어? 우리 결혼할 때까지 내 순결 지켜줄 수 있어?”

    민수는 황당했다. 이 낭만적인 첫 입맞춤에 대한 이 반응은 무엇인가. 아무리 그가 유정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는 만 열여덟이고 유정은 열아홉이었다. 갑자기 결혼 애기가 왜 나오는가. 그 또한 당장 성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도 빨라야 칠팔 년 후일 텐데 그때까지 순결을 지키라니. 그것은 자신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십 수 년 간 온갖 폭력배들과 도둑놈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던 그였다. 일단 유정의 마음을 안심시키고 또 그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민수에게 거짓말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맹세할게. 우리 결혼할 때까지 너의 순결을 지켜줄게.”

    유정은 그를 껴안았고 민수는 뒤로 몸을 살짝 빼서 유정이 오해하지 않도록 딱딱해진 부분이 유정의 배에 닫는 것을 가로막았다.

    민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은 일종의 집들이였다고 생각해. 우리 되도록 밖에서 만나자. 여기에는, 음, 나 집에 가기 직전에 오 분 간만 있을게.”

    유정도 그의 말을 이해했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8월 중순에 그는 이백이나 두보만큼이나 글을 잘 썼던 어떤 이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칼 마르크스였다. 아직은 머리에 뿔이 나고 피부가 빨갛다는 빨갱이들에 대한 공포가 마음에 남아있던 그에게 마르크스는 글 엄청나게 잘 쓰는 학자로 다가왔다. 그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저작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이었다. 단 두 페이지의 복사물을 그는 읽고 또 읽었다.

    민수의 고등학교 2년 선배이고 사회학과 3학년이었던 김영철은 민수에게 가장 많이 술을 사 주는 사람이었고, 아주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술 마시는 시간 외에는 사회과학 인문학 책들을 끼고 살던 사람이었다. 민수는 그에게 읽을 만한 글들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그가 그 문서를 구해주며 읽을 것을 추천했었다. 영철은 민수에게 처음으로 ‘마 선생’의 글을 읽은 소감을 물었다. 민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 지금까지 하던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6번 테제는 이렇게 말해요.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그러니까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것들은 다 헛소리라는 거죠.”

    김영철이 그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계속 말해봐.”라고 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어떤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사회적인 영향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아요.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태어나면 이슬람교도가 될 가능성이 높죠. 그들은 메칸가, 암튼 어딘가를 향해 매일 절을 하겠죠. 중남미에서 태어나면 가톨릭교도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사람들은 콘돔 사용을 잘 안하겠죠? 여자들은 애를 줄줄이 나을 거고.”

    “그래. 그래서 어렸을 때 엄청 예쁘던 이들이 서른만 되면 다 매력 없는 아줌마가 된다고 하더라고.”

    “예. 그리고 한 집 건너 하나씩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살 거예요. 북한에서 태어나면 김일성이 진짜 영웅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커지겠죠? 우리 고등학교를 나오면 지리를 되게 싫어하게 되겠죠?”

    “그렇지. 꼴자 때문에. 소나타도 싫어하고.”

    ‘꼴자’는 지리 선생의 별명이었고, 소나타는 교장의 승용차였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질은 어떠어떠하다는 말은 헛소리죠. 착하게 태어나는 것도, 악하게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착해지거나 악해지겠죠.”

    그런데 민수는 이 저작을 칭찬하다가 김영철을 놀라게 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 저작은 완벽하게 나가다가 마지막 열한 번 째 테제에서 신뢰를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그의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그런데 제가 아까 얘기했던 6번 테제나 7번 테제, ‘따라서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사실은 일정한 사회형태에 속해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와 같은 것들은 객관적인 사실, 혹은 진실을 얘기하고 있어요. 종교인들은 항의할 수 있겠지만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반박할 수 없는 진리죠. 하지만 11번은 진실이나 진리라기보다는 그의 생각, 그리고 소망 같아요. 그러니 완벽하게 완성되던 예술작품이 역 화룡점정을 당한 거죠.”

    “너 진짜 똑똑하다. 한 시간 만에 철학자 하나 태어났네.”

    “철학이라. 이 글도 철학이라면 철학은 뜬 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과학에 가까운 것일 수 있겠네요.”

    “어려운 애기이긴 한데, 마르크스의 철학은 사회과학과 직접 연결돼.”

    “형. 부탁이 있어요. 혹시 그 종교는 인민의 아편 어쩌구 하는 거 나오는 글 구할 수 있어요? 마르크스의 종교 이론이 마음에 드는데 그것도 볼 수 있으면 해요.”

    “그게 번역본들이 다 조잡해서 읽어도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될 거야. 독일어는 못할 테니 영어판으로 구해줄게.”

    그는 며칠 후 영어판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을 구해주었다. 오랜만에 민수는 영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오일 후 그는 거의 완벽하게 그것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었다.<계속>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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