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인간의 본성인가?
    [책소개] 『평화는 처음이라』 (이용석(지은이)/ 빨간소금)
        2021년 04월 10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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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는 평화 교과서

    스마트폰 메모장을 엽니다. 스톱워치 앱도 켭니다. 시간을 재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쟁 열 개를 적어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이번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시간을 측정하면서 전쟁을 막거나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들, 평화운동들을 써봅니다. 이번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아마 대부분 전쟁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게 훨씬 쉬웠을 겁니다. 평화보다 전쟁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죠. 우리는 평화보다는 전쟁에 대해 더 많이 배웠으니까요.

    이 책은 평화활동가가 쓴 평화 교과서입니다. 나도 모르게 평화보다 전쟁을 더 많이 배운 사람, 스스로 평화주의자를 자처하지만 평화에 대한 공부는 처음인 사람이 읽으면 좋습니다. 활동가가 쓴 책답게 평화에 관한 이론보다 ‘평화의 렌즈로 세상을 다시 읽는 방법’을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데 집중합니다. 우리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적은 평화의 사전적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평화로운 곳으로,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평화활동가가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저는 평화활동가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이라는 평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평화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대학생 때 우연히 병역거부라는 것을 알게 되어 병역거부자가 되었고, 그러고 나니 평화에 대해 뭐라도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때부터 공부도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평화운동은 무척 재미있고 때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자아내지만 아주 대중적인 사회운동은 아닙니다. 평화운동이 주장하는 바와 그 활동을 조금이라도 접한 사람들은 평화운동의 매력에 공감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소수의 활동가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한정적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더 재밌고 신나게 평화운동을 하며 세상의 전쟁과 폭력을 중단시키고 싶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저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공부이자 여정입니다.

    1부는 평화활동가들이 주로 받는 질문을 다뤘습니다. 이제 아홉 살, 여섯 살이 된 조카들이 몇 년 뒤에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부는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과 구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전쟁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우연히 일어난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무수한 기둥들이 전쟁을 떠받치고 있을 텐데 그중 대표적인 것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3부는 전쟁과 맞서고 평화를 일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가진 힘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룹니다.

    그리고 부록의 ‘쟁점’에서는 평화 이슈 가운데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병역 제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민감한 이슈를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를 살펴보았습니다.

    평화에 대한 오해 깨기

    내 글의 장점과 단점 혹은 특징이 무얼까를 생각했어요. 평화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다거나 혹은 미학적인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건 애시당초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평화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론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면 좋겠지만 아름다운 문장에 신경쓰다보면 겉멋만 든 글이 나오더라고요. 말했듯이 저는 활동가 정체성으로 글을 썼어요. 그게 제 글의 장점이나 특징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구자가 작가는 쓰지 못하는 이야기를 활동가는 쓸 수 있으니까요. 제가 평화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들, 고민한 흔적들을 담고자 했어요. 평화운동 현장에서 보고 듣고 나눈 이야기들을 쓰니 연구자들의 글보다는 생동감 있고 재밌을 것이고, 작가들의 글보다는 논리정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가령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면, 평화를 ‘갈등이 없는 상태’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운동 또한 어떤 종류의 갈등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화운동은 국가폭력이 때리면 그냥 맞기만 해야 한다거나, 불합리한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화내지 않고 착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갈등이 없는 평화 상태는 결국 지배자의 평화입니다. ‘팍스 로나마’의 시기에 로마에 정복당한 땅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에 사는 노예들에게는 오히려 ‘폭력의 시대’였던 것처럼요, 갈등은 평화운동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평화운동이 늘 착하고 얌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평화롭게 풀어가는 과정이에요. 우리의 노력과 저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이렇게 평화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오해를 깨보고 싶었어요.

    캡틴아메리카와 타노스가 등장하는 평화 입문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학자들이 부러 어렵고 생소한 단어 사용해서 쓴 어려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쉬운 글도 좋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다루는 주제나 내용에 따라 다르긴 하죠. 하지만 세상의 보편적인 인식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책은 어느 정도는 불편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쉬운 책은 자극이 없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죠. 게다가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어려워죽겠는데 그걸 쉽게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도 쉽게 쓰려고 무진장 노력했어요. 입문서잖아요. 평화 이슈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관심을 갖게 하려면, 관심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관심이라고 생기게 하려면, 일단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재미없거나 어려워서 바로 내려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재밌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썼어요. 평화 이슈라고 무겁고 진지하게만 접근하지 않았고 유명한 영화, 소설 같은 것도 많이 인용했어요. 캡틴아메리카와 타노스가 등장하는 책입니다.

    적극적 평화와 병역거부운동

    내용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것이 있어요. 요한 갈퉁이 말하는 ‘적극적 평화’, 혹은 전쟁없는세상식으로 말하면 ‘건설적 대안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책에서 다루질 못했어요.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부정의에 대한 저항만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삶의 양식들이 필요하잖아요. 부정의에 저항하는 것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해요. 전쟁없는세상 같은 단체는 구질서에 저항하고 반대하고 이런 건 잘하지만 건설적 대안을 만드는 것은 잘 못해요. 혹은 적극적 평화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그룹들은 구질서, 구체제에 저항하고 낡은 것을 파괴하는 걸 잘 못하죠. 아무튼 적극적 평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쉬워요. 근데 이걸 다루기엔 제 경험과 고민이 너무 없어요. 제가 쓸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 이건 다른 평화활동가들이 다른 책에서 채워주기를 바랄 뿐이죠.

    또 하나, 이 책에 빠진 내용이 있어요. 병역거부 운동이에요. 이건 일부러 뺀 건 아닌데 책을 다 쓰고 보니 빠져있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일부러 뺀 건 아니에요. 목차 짜고 써내려가면서도 병역거부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는 걸 꺠닫지 못했어요. 제가 가장 오랫동안 하고 있는 활동인데 말이죠. 부록으로 한국의 병역제도에 대해 살짝 다룬 게 전부예요. 병역거부운동은 특히 한국에서는 평화운동에서 중요한 위치인데 어쩌다 빼먹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는데 그 책은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책이에요. 첫 번째 책에서 병역거부를 다루지 않은 덕에 쓸 이야기가 한가득 남아 있습니다.

    활동가들에게 글 쓸 기회를…

    네 있어요. 여러 차례 말했는데 활동가들에게 글쓰기가 의무라고 했잖아요. 저는 다른 평화활동가들이 책을 쓰면 좋겠어요. 아니,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각을, 주장을, 경험을 글이든 영상이든 뭐든 아무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의 경험, 사유, 주장은 개인의 것이지만 활동가라면 그것을 사회적인 것,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여기서 겸손함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 방기예요. 특히 평화활동가는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소수인데, 그들의 경험 사유 모든 게 사회의 공적인 자료죠. 꼭 글을 쓰면 좋겠어요.

    모든 글이 다 책이 되진 않겠죠. 책으로 나오려면 어쨌든 어느 정도는 팔려야 하니까. 하지만 평화활동가들의 많은 글이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회를 못 만났을 뿐이죠. 저는 출판인들이 이 지점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에게 글쓰기가 사회적인 행위이고 의무라면, 출판인들에게는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책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인 행위이고 의무잖아요. 출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가들에게 책을 내자고 제안하고 겸손 떨면 설득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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