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산업을 둘러싼
    어둠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
    [책소개]『어둠의 세계』(앤드루 파인스타인/오월의봄)
        2021년 02월 27일 1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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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시민들 대다수는 무기거래가 ‘국가안보’에 불가피한 필요악이라는 절충적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방어로서 무기의 개발과 구매,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세계 무기산업을 20년 이상 조사한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전 세계 무기거래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분석해 그 실체를 밝혔다. 《어둠의 세계》는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을 폭로하며, 무기산업이 초래했던 수많은 분쟁·전쟁과 그에 따른 민간인들의 참상을 되짚어본다. 미국과 중동,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아프리카 대다수의 국가들의 수많은 정부 공식문서와 언론탐사보도, 그리고 저자가 직접 대면한 무기밀매업자들과의 인터뷰까지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했다. 분쟁 중인 양국 모두에 무기를 판매한 전설적 무기딜러에서부터 무기거래에 통달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저지른 ‘국가 수탈’까지, 산업이 된 전쟁과 부패한 정치가 만나 무엇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파헤친다.

    무기거래를 지탱하는 부패의 구조

    이야기는 어느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우디의 왕자이자 전 주미 대사인 반다르는 이 책의 주연이나 마찬가지인 인물로, 현대 국가 간 무기거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논쟁적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202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우디와 영국 그리고 미국 간의 무기거래를 주선하면서 여러 패악을 저질러왔다. 이 책은 반다르 왕자뿐 아니라 영국의 바실 자하로프(현대적 무기거래의 창시자)에서부터 미국 오바마와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벌여오거나 눈감아온 추악한 거래들을 고발한다. 각국 정부의 공식 통계와 양심적 언론인들의 르포르타주, 내부고발자의 증언을 씨줄 삼고 현대 무기거래 연구자들의 치밀한 논증과 각종 판결문을 날줄 삼아, 멀게는 1900년대 초반부터 가깝게는 2020년 현재까지 100여 년 동안의 사건·사고와 각종 문헌들을 샅샅이 뒤져내 가히 ‘무기거래의 대서사시’를 엮어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무기 생산 및 거래 국가는 미국,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중국 등 다양하다. 무기의 거래는 이 같은 국가 간 협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거래를 실질적으로 성사시키는 것은 무기제조업체들이다. 이때 업체들은 제3자를 거쳐 거래를 진행하는데, 문제는 그 제3자가 반란군이나 테러리스트 같은 반국가·비국가 행위자를 비롯해 때로 실체마저 의심스러운 중개인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간에 이뤄진 최대 무기거래인 ‘알야마마’ 사업은 이 같은 비밀스러운 무기거래와 비리가 얽히고설킨 최악의 문제적 사건이다. 반다르 왕자로 대표되는 사우디의 왕족들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국의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에 이르는 수상들과의 공식적 거래 이면에서 각국의 정부, 정보기관을 비롯한 비밀스러운 네트워크를 통해 뇌물을 주고받으며 거대한 ‘알짜배기’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들이 사업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짜낸 지급 체계는 이들의 관심이 양질의 최신 무기가 아니라, 각 거래에서 커미션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에 쏠려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94쪽 도표 참고).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사우디의 반다르 왕자가 알야마마 사업의 대가로 받은 뇌물만 해도 20여 년간 총 10억 파운드(1조 8,000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같은 거대 뇌물수수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 영국의 중대비리수사청(SFO)의 조사가 영국과 사우디 정부의 방해에 굴복하게 되는 장면들은 무기거래를 지탱하는 부패의 구조가 상당히 치밀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보여준다.

    팬데믹 시대에 무기거래는 과연 필요한가, 라는 질문

    2021년 전 세계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중동에서는 이라크를 정점으로 민간인 대상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크고 작은 극단주의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시민들이 맞닥뜨린 불안정과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 분란의 원인이 무분별한 무기거래에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하지만 대다수의 무기제조국들은 자국의 방위산업 육성을 옹호할 뿐 분쟁이나 테러 상황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여전히 느슨한 규제, 허술한 감시, 불투명한 거래 등으로 끊임없이 비리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무기산업은 그 산업이 생산하는 물건이 생명을 위협하거나 파괴한다는 도덕적 문제 외에도, 시민사회의 기회비용을 박탈한다는 문제도 있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쓰여야 할 돈과 자원이 군비 지출로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시급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정이 부족해져 시민들의 삶이 더욱 불안정해지는 문제다. 이러한 기회비용의 극명한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HIV/에이즈 예산이 무기구매 예산으로 전용되었던 일이다. 1990년대 후반 남아공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HIV/에이즈 감염인 600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의약품을 구매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영국 등 무기제조국의 강권에 따라 필요하지도 않은 무기를 사는 데에는 약 60억 파운드를 쏟아부었다. 당시 무기거래의 커미션만 3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아프리카국민회의와 여타 정치인들에게 흘러들어갔다. 향후 5년간 남아공 국민 35만 5,000명 이상이 HIV/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무기산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기회비용의 박탈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신음하는 2021년 현재 더더욱 두드러진다. 국방예산 지출 비중이 막대한 미국과 영국이 코로나19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극명한 예다. 일례로 2020년 미국의 국방 관련 실제 지출액은 1조 2,00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체계를 확충하는 예산의 두 배에 이를 정도다. 또한 영국은 2020년 하반기 코로나19 2차 유행이 한창 진행 중일 때에도 국방예산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160억 파운드로 늘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의료진은 기초적인 방역물품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경기침체가 가속화될수록 무기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무기 역류 현상, 안보가 아닌 폭력과 학살의 불쏘시개가 되는 무기들

    무기거래가 지닌 문제 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무기가 예상치 못한 이들의 손에 잘못 들어갈 경우 발생하는 ‘역류’ 현상”(728쪽)이다. 무기 생산과 거래 자체가 비밀계약, 이중계약 등으로 점철되니 부패한 무기딜러들이 이에 개입하는 일이 흔하고, 이들은 철저히 경제적 이익만을 좇기 때문에 무기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하원의원 찰리 윌슨이 아프가니스탄에 무분별하게 무기를 공급했는데, 그 무기들이 나중에 탈레반 등 이슬람 반군 세력에게 유입되어 결국 미국에 맞서는 용도로 쓰였던 일이 대표적 예다. 당시의 무분별한 무기공급은 “2001년 9·11 테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류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며, 미국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미움받는 나라로 만들었다”.(371쪽)

    본래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한 부족 규모의 구식 군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급되는 미국의 무기는 정식 군대의 위용을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냉전 시기 소련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았던 경험은 미국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버렸다. 결국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무기공급은 제 발등에 도끼를 찍는, 역류 현상에 불을 지핀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사실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이 같은 역류 현상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의 무기 제공으로 인해 끊이지 않는 분쟁의 장이 된 곳은 아프리카 전역에 이른다. 《어둠의 세계》에서 소개하는 대표적인 무기밀매업자 빅토르 부트, 조 데르 호세피안, 니컬러스 오먼 등은 모두 아프리카에 무기를 공급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서구의 무기밀매업자들이 아프리카에 뿌린 무기들은 현대 아프리카의 수많은 비극적 분쟁들을 직접적으로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 일례로 르완다 대학살을 보자. 흔히들 이 사건을 벨기에 식민 세력에 의한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 간 분쟁으로 알고 있지만, 《어둠의 세계》 저자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르완다 대학살의 민간인 피해가 다른 분쟁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커졌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무기거래에 있었다고 고발한다. 당시 학살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단 3개월 만에 최소 8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1994년 르완다가 연간 예산의 70%를 무기구매에 지출했고 당시 프랑스가 르완다에 무기를 적극 공급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무엇이 20세기 최악의 대학살 광풍을 더욱 부채질했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미국이 만들어낸 ‘분쟁의 민영화’

    미국은 세계 최대의 무기 제조국이자 판매국, 구매국이다. 미국이 판매하는 무기의 양은 세계 판매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미국의 군비 지출은 9·11 테러 이후 10년간 81퍼센트 증가했고, 이는 《어둠의 세계》가 출간된 201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군비 지출액의 43%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이 결자해지하고 나서는 것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기존의 헌법은 무시되고 폐기되었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은 땅에 떨어지고 제왕적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기형적 국가가 되어갔다. 이때 미국이 군대를 전반적으로 민영화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2010년대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의 절반 이상이 블랙워터(현 ‘지서비스’) 등 민간용병으로 채워진 것이 단적인 예다. 이후 감독체계는 느슨해지고 낭비가 심해졌으며 효율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은 본격적으로 안보를 ‘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방산업체들은 “입법부·사법부·행정부에 이은 정부의 네 번째 기관”(437쪽)이 되었다. 조지 W. 부시 시절의 국방부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민간업체에 자금을 제공했다. 일례로 2003년 한 해에만 민간과의 계약에 정부 재량 지출의 40%에 달하는 금액을 지출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군비로 지출하는 나라가 관련 부문을 민간업체에 맡겼으니, 군비 지출의 대부분이 민간업체로 들어간 것이다. 국가의 통제 밖에서 민간업체들이 벌이는 수많은 이익추구 행위 속에는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극단주의 테러 세력에 파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역류 현상의 불쏘시개가 끊임없이 투여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세계’를 끝내는 방법

    《어둠의 세계》는 미국의 정치인 중 존 머사, 찰리 윌슨, 달린 드루이언, 랜디 커닝엄 등이 연루된 무기거래 스캔들을 다루며 그 스캔들이 야기한 엄청난 비리도 폭로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비리 스캔들이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방관 속에서 자행되어온 관행의 일부라는 점이다. 미국의 행정부가 민간기업과 뒤엉켜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입법부와 사법부가 옹호하는 체계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이처럼 공고하게 얽히고설킨 구조적 폐해는 부패와 비리의 책임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조차도 어렵게 만든다. 간혹 제기되었던 무기거래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 몇몇 비리 스캔들을 다루는 데서 그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많은 해외언론이 《어둠의 세계》에 대해 “무기산업 전체를 다룬 역사상 가장 완전한 기록” “독보적” “담대한 걸작”이라 평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한 사건이나 인물이 아닌, 무기산업 전체를 총괄해 종합적으로 파고들며 분석했기 때문이다.

    저자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세계의 무기산업이 이 지구 전반을 불안정하게 만든 주요 원인임에도 어떤 제약도 없이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당부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기산업의 폐해에 맞서는 것이며, 실질적 감시와 통제 역할이 가능한 무기거래조약 체결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이다. 대량학살, 민주주의의 후퇴, 빈곤 심화를 막기 위해 무기산업은 끊임없이 감시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주길 청한다. 무기거래에 관해 지금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정치인, 군, 정보기관, 검찰과 경찰, 무기제조업체와 딜러까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더 많은 책임성과 투명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는 ‘어둠의 세계’를 끝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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