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평도 실종 어업 공무원 피살 사건
    북한 규탄 한목소리···정부·군 대응 비판도
    정부 "북한 만행 규탄, 해명과 책임자 처벌 강력히 촉구"
        2020년 09월 25일 01: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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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47)가 지난 22일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군과 청와대는 A씨가 생존했을 당시 북한군에 잡혀 있는 것을 첩보 등을 통해 파악해놓고 피살되기까지 6시간 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첩보를 보고 받은 문재인 대통령 또한 예정했던 ‘종전선언’ 유엔 연설을 그대로 진행해 파장이 예상된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24일 오전 국방부에서 발표한 ‘서해 우리국민 실종사건 관련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며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지도관리단 공무원인 A씨는 실종 신고 접수가 이뤄진 다음 날인 22일 오후 3시 40분 경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A씨는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1명 정도 탈 수 있는 부유물에 탑승하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 선원은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에서 실종자와 거리를 유한 상태에서 북측 해역에 표류하게 된 경위를 들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 A씨가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우리 군은 추정하고 있다.

    북한군 단속정은 같은 날 오후 9시 40분경 A씨에게 총격을 가했다. A씨가 실종 후 북측 해역으로 흘러간 사실을 우리 군이 파악한 지 6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이어 오후 10시경 방독면을 착용하고 방화복을 입은 북한 군인이 시신에 기름을 뿌리고 불에 태웠고 이런 정황은 연평도 감시방지에서 관측된 북측 해상의 불빛으로 확인됐다.

    실종된 A씨의 생존을 확인하고 북한 군에 의해 피격되기까지 우리 군 북한 측에 어떠한 구명조치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군 당국은 A씨가 사망한 다음날인 23일 오후 4시 35분경에서야 유엔사를 통해 북측에 대북 전통문을 보냈으나 지금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A씨가 피살되기 전인 22일 오후 6시 36분경에 첫 서면보고를 받았고, 다음날 오전 8시경에 국방부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았다. 이날 오전은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때다. 청와대는 당시는 첩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았던 때라 연설 내용 수정 없이 그대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남한인 피격이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밝혀 비판을 자초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4일 오후에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9·19 합의는 해상완충구역에서의 해상 군사 훈련, 중화기 사격 등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라며 “그런 부분 하나하나에 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서주석 NSC 사무처장도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에서 “9·19 합의 위반은 아니라고 본다”며 “9·19 합의는 해상 완충 구역에서 해상 훈련 사격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지, 그런 부분 하나하나에 대한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적대 행위라든지 군사적 신뢰 구축에 장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일련의 사건은 이날 밤 11시 정보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한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A씨를 애타게 찾던 유가족은 이 언론 보도를 보고 A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A씨의 친형인 이래진 씨는 2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부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고 전화를 해도 연락도 잘 안 됐다. 총격 당시 저는 약 8마일 이남에서 안타깝게 동생을 찾고 있었다. 사살의 정보는 지인들이 연락을 해줘서 방송을 보고 알았다”고 전했다.

    방송화면 캡처

    정부, 월북 가능성 부각… 북 해역 체류 확인 후 사망 전까지 6시간 무대응

    우리 군 당국이 A씨가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 피살되기까지 6시간 동안 대북 접촉조차 하지 않았던 것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6시간 동안 북한 측에 구명조치도 하지 않은 점’에 대해 “NLL 이북의 북한수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첩보가 조각조각 나온다. 군은 그것을 종합한 확실한 사실을 정보라고 하는데, 확실한 사실로 확증하기까지는 굉장히 어렵다. 미군과도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첩보라도 신속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북한에 대해 표류한 실종자가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같이 구조를 하자든지 협조를 구한다든지 이런 절차가 필요한 건 맞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우리 군 당국 간의 통신 수단이 단절돼있다”고 해명했다.

    A씨가 월북을 시도했다는 발표에 대해선 “군의 여러 추정과 근거에 의한 판단”이라며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어업지도선을 이탈할 때 본인 신발을 유기했다. 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북한군 쪽하고 최초 접촉을 했을 때 월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군이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언론에선 A씨가 2천만 원 가량의 빚이 있었고 수개월 전에 이혼한 가정사까지 거론하고 있다. 빚과 이혼 때문에 월북을 시도했다는 주장을 풀이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한 유엔연설이 그대로 진행된 것과 관련해서도 “유엔연설 15일에 이미 녹화가 됐고, 18일에 녹화들을 UN으로 보낸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A씨가 사살된 사실을 유족에게 먼저 알리지 않은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선 “우리 군이 관리하는 첩보의 보안 문제는 군의 생명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룬다. 단순한 하나의 조각조각의 첩보만으로 즉각 반응을 일으켜버리면 상대방이 또 완전히 체계를 바꿔버리기 때문에 군의 고충도 있다”며 “아주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정확한 정보 판단이 됐을 때 발표하려고 했던 과정이었던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태경 “국민 생명보호, 첫 번째 국가 임무인데 최선의 노력 하지 않아”

    국민의힘은 군 당국과 여당의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어제 국방위에서 ‘서면보고 후 청와대에서 구출하라는 지시가 있었느냐’고 했더니 ‘구출하라는 지시는 없었다’, ‘구체적인 지시가 없었다’고 했다. 군에선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답변했다. (국방부는) 북한에서 코로나 때문에 무단침입자가 있으면 무조건 사살하는 사례가 있다고 밝혔었는데 최악의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행동 조치를 짜야 하는 군이 치명적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남북의 군 간 통신수단이 없어 6시간 동안 북한에 구명조치 등을 하지 못했다는 해명에 대해선 “우리 방송사를 이용해 공개적으로 ‘실종 사건이 일어났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고 북한하고 접촉도 시도 중’이라는 방송을 해도 됐고, 통일부는 전통문을 보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 생명보호가 첫 번째 국가의 임무인데 그걸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3일 이상 첩보 파악, 분석만 했다. 군이 군대가 아니라 첩보부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첩보였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유엔 연설을 그대로 진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첩보도 등급이 있다. 이거는 상당히 신뢰할 만한 첩보”라며 “정보는 하드 팩트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바다에 버려졌다는 사진이나 이런 물증은 없다. 그러면 그걸 첩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거의 팩트에 가깝다. 그러니까 믿지 못할 첩보가 아니라 충분히 신뢰할 만한 첩보”라고 반박했다.

    A씨가 월북을 시도했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하 의원은 군의 경계 실패 등 중대과실을 면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하 의원은 “월북으로 몰아가기엔 결정적 증거가 없다. 월북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엉성한 월북이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기획 월북은 절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월북이나 탈북이나 원리는 바다 건너오는 것으로 똑같은데 탈북할 때 가장 조악한 수단이 뗏목인데 A씨는 부유물이다. 이 부유물이 준비된 것인지 바다 위에 떠 있었던 것을 잡은 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서해바다에선 어업을 많이 하니까 (어쩌다 바다로 떨어졌고 그래서) 살려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부유물을 잡았다면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A씨가 북한 군에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것에 대해선 “현장에서 녹음을 한 것도 아니고 대화를 주고 받은 것이다. 그게 바로 첩보”라며 “어쩌다가 바다에 표류해서 북한에 발견됐으면 갑첩이라고 하겠나. 살려고 하면 그 사람들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 의원은 “현재 상태에서는 (월북인지 아닌지를) 단정할 수가 없고 (A씨가) 실종자라는 정도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월북자라고 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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