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 없는 평등한 연대,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어”
    [어쩌다 노학연대③] ‘숙명여대 만년설’ 나수빈 씨와의 대화
        2020년 08월 11일 10:0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노동자-학생 연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이 노학연대 학생 활동가들의 생각을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노학연대에 속해있는 학생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요? 그들은 왜 노학연대 활동을 할까요? 대학이라는 공동체와 그 너머의 사회를 배제와 분리가 아닌 이해와 공감, 연대로 다시 정의하는 그들의 항해에 주목해 주세요.(인터뷰어)
    ——————————-

    숙명여대 만년설 나수빈 / 나수빈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숙명여대 법학부에 재학 중인 나수빈입니다. <만년설 : 숙명여대 노동자와 연대하는 만 명의 눈송이> 실무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년설은 어떤 단체인가요?

    만년설은 숙명여대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연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학연대로 2017년 임금·단체협상 투쟁을 함께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학생과 노동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부한 적이 있습니다. 투쟁이 없는 시기에도 주기적으로 학내 노동자분들과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며 어떤 고충이 있는지 듣고 학생들 의견을 전달합니다.

    -만년설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입학할 때는 학교에 노학연대가 없었어요. 노학연대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입학한 것도 아니고요. (웃음). 그런데 2017년 4월, 학교를 다니다가 노동자분들이 매일 학교 정문에서 시위를 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피켓팅 중이시던 노동자분께 물어봤는데, 처음에 설명을 들었을 때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했어요. 나중에 학교가 임금협상을 거부하며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는 숙대 언니들에게 연락을 해서 학생들을 모았어요. “노동자분들 상황이 이렇다고 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라며 고민을 공유했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게 ‘만년설’이 되었어요. ‘무슨 일이지?’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해 만년설을 만들고 노학연대 활동을 하게 된 셈이죠.

    -당시 투쟁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때는 숙대에 노동조합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던 때예요. 학교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노조를 와해시키려고도 했어요. 그러니 학교/업체/노조가 함께 임금 협상을 하기도 어려웠어요. 협상을 하면 노조를 인정하는 게 되니까요. 다른 학교는 다 협상이 이루어졌는데 우리 학교만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다른 학교와 임금격차도 적지 않게 나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숙명여대는 빨리 협상에 응하라고, 다른 학교와 동일하게 임금을 인상하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었어요.

    2017년 숙명여대 청소∙경비 노동자 집회 당시 만년설 학생이 제작한 피켓 / 나수빈

    -만년설이 처음 함께한 투쟁의 결과는 어땠나요?

    타 대학과 동일한 임금인상을 위해서는 1080원을 인상해야 하는데, 협상 결과 930원의 인상이 이루어졌어요. 아쉬운 결과였지만 타 대학과의 임금격차가 250원에서 100원으로 좁혀졌다는 점에서 기뻐했어요. 매년 임금협상에 관심을 가지고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당시에도 투쟁 상황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학생은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피겟팅 외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는 크게 압박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후 투쟁부터는 만년설이 조직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노동자와 학생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강력하게 투쟁할 수 있었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년설이란 단체가 체계를 갖추고 강력해졌나요?

    2017년 투쟁을 함께할 때는 가끔 연대하러 오는 학생도 있고, 실무를 하는 학생도 있는데, 동아리는 아닌 학생모임이었어요. 이 학생모임을 제대로 조직하여 단체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단체의 형체를 잡는 회의를 몇 차례 진행했어요. 2017년 여름부터 2018년 초까지 10명 정도가 참여하여 논의한 끝에 만년설이라는 이름과 회칙, 운영방식(실무팀-연대회원 제도) 등을 정하고 지금의 체계를 갖출 수 있었어요. 운영진끼리 자주 만나서 회의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투쟁 및 사업 계획을 세웠고, 노동자분들과도 자주 만나 의견을 공유하면서 더 강하게 연대하고 투쟁할 수 있었어요.

    -대학 사업장에서의 투쟁은 원청 숙명여자대학교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만년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숙명여대에 만년설은 어떻게 맞서 싸웠나요?

    만년설은 투쟁이 ‘그들만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학우들에게 알리고,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어요. 집회 때는 같이 노래를 부르고, 카드뉴스를 제작하여 협상 및 투쟁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어요. 여러 언론 인터뷰도 했고요. 그때부터 학교가 만년설을 의식했고, 만년설 회의 현장을 몰래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기도 했어요. 2018년에는 학교-노동자 협상 자리에 만년설이 함께 하기도 했어요. 노동자분들이 만년설 학생들도 들여 보내라고 하셨고, 저와 두 명의 학생이 함께 들어가서 학교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직접 보았던 기억이 나요.

    -만년설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을 텐데, 활동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2018년에 <숙명여대 미화∙경비 노동자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어요. 인권가이드라인은 노동자와 학생이 평등한 동지로서 연대하려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한 책자예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나이권력 파트로 구성되어 여러 혐오 발언, 예를 들면 “여대 나오면 시집 잘 가겠다.”, “학생, 남자친구 있어?”와 같은 발언과 반말을 왜 하면 안 되는지, 학생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제작을 완료하고 배포하기 전, 책자 실물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노동자분들이 참고하셔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지금 <나침반>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된 것 같아요.

    숙명여대 미화∙경비 노동자 인권 가이드 라인 / 만년설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살아온 환경과 생각이 다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갈등이 생기기도 했어요. 저희 학교에는 외부인이 침입하여 학생들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밤에 외부인이 학교에 출입하면 학생들은 경비실에 신고를 하는데, 경비노동자분들은 학생들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까짓 것 가지고 왜 그러냐.”라는 말을 직접 들은 학생도 있다고 해요. 또 야간노동 특성상 육체 피로가 엄청나잖아요. 그러다 보니 밤에 경비노동자분이 초소에서 자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어요. 그러니까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쏟아지고, 경비노동자분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퍼졌어요.

    그 시기에 만년설 연대회원 한 분이 가입하시면서 메시지를 남기셨어요. “자신은 학교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인데 우리 학교 경비노동자분들이 일하고 있는 내게 반말과 불쾌한 언행을 한 적이 있다. 나는 2016년도 숙대 노동자 해고 저지 연대 성명에 참여했고, 나 역시 학생이자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를 동지로 대하지 않는 노동자분들이 계셔서 안타깝고 속상하다. 만년설이 학생들과 노동자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점을 계속해서 고민하며 학내 분위기 개선을 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면서 만년설 회비는 그 해의 최저시급인데, 본인의 하루치 임금에 달하는 금액을 후원하셨어요. 이에 정말 감동을 받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고, 거기서 비롯된 오해가 학생과 노동자가 연대하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연대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통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래서 노동자분들에게 학생들이 불편해하는 말들, 무엇이 혐오 발언이고, 왜 하면 안 되는지를 인권가이드라인을 통해 알려드리기로 한 거예요.

    -옛날의 노학연대는 엘리트 지식인인 학생들이 불쌍한 노동자를 도와준다는 시혜적인 관점에서 운동을 했다면, 만년설이 인권가이드라인을 제작하여 배포한 것은 학생과 노동자가 평등한 주체임을 강조하며, 노동자에게 제안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활동인 것 같아요. 그런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연대를 고민하면서예요.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과 노동자가 서로를 평등한 주체로 보는 것이 연대의 시작이고, 이를 지속가능하게 하니까요. 학교 안에서 계속해서 투쟁하려면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데,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혐오 발언, 이로 형성된 학내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는 연대를 막는 큰 장애물이었어요. 만년설로 활동하며 자주 노동자분들을 만났던 저도 반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어요. 평등한 동지로서 연대하기 위해서, 안 할 수가 없는 활동이었죠. (웃음).”

    -만년설이 제작한 인권가이드라인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노동자분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변했어요. 만년설로 활동하며 만난 노동자분들이 예전에는 저희한테 “예쁘고 착한 학생들”이라며 고마워하셨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으시고, 학생들 생각이 어떤지 많이 물어보시기도 해요. 그런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를 동지로 대하고 있음을 느껴요.

    -외부인 침입사건을 언급하셨는데, 2019년에는 숙명여대 학생회관에 마약사범이 침입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이 시기의 만년설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겠어요?

    2019년에 용역업체가 바뀌었는데, 새로 들어온 업체가 단체협약을 인정하지 않고 고용승계를 거부했어요. 이에 만년설, 총학생회, 노동자가 함께 경비업체, 학교에 대응했죠. 그러던 중 3월, 학생회관 여자화장실에 마약사범이 침입하여 이를 발견한 학생과 몸싸움을 벌이다 도망간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건 이후 만년설과 총학생회가 <캠퍼스 안전 강화 4주체 간담회>를 공동 주최했어요. 교내 안전 관련 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외부인 출입 통제 규정 마련, 경비인력 추가채용, 고용승계 과정 공개, 경비노동자 교육 메뉴얼 제작 등 학생 요구안을 마련하여 학교/경비업체/노동자에게 전달하는 자리였어요. 학생회관 외부인 침입 사건이 학교 안팎에서 이슈가 된 상황이었고 노동자, 만년설, 총학생회는 계속해서 업체와 학교를 압박했죠. 결국 단체협약과 고용승계가 받아들여졌어요.

    그런데 2017년에도 동국대 남학생이 야간에 학교에 침입해 우리 학교 학생을 위협한 사건이 있었는데, 또 외부인이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하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경비노동자에 대한 여론이 정말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학생들과의 소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이에 총학생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와 함께 <대학구성원들과 함께 평등하고 안전한 대학 만들기 간담회>를 열어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했어요. 또 인권주간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권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고, 만년설 연대회원 총회를 개최하여 그동안의 만년설 활동을 보고하고 연대회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학생들과 여성 노동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오픈 세미나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을 열기도 했고요.”

    대학 구성원들과 함께 평등하고 안전한 대학 만들기 간담회 포스터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도 서울지부 페이스북

    -전반적으로 학생들 반응은 어땠나요?

    별로였죠. (웃음).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대학생들은 연대의 가치를 잊고 자본과 이윤, 자기계발 등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동화되기 쉽잖아요. 그래서 만년설의 활동에 학생들의 큰 관심과 참여가 있진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활동한다면 한 번은 뒤돌아볼 것이라고 믿고 활동했어요. 실제로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만년설이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고 연대 회원이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실무팀으로 활동은 못 해도 집회나 큰 투쟁이 있을 때마다 함께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당장은 학생들 참여가 안 좋아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학교에 외부인 침입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안전에 대한 걱정과 경비 노동자 업무 태만 이야기가 나와요. 그때 “늙은 남자 경비원 다 잘라라”와 같은 혐오 발언이 나오기도 해요. 그럼 우리는 노동자분들에게는 학생들 의견을 전달하고, 학생들에게는 혐오 발언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가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한 데에 있다는 점, 경비 인력을 줄이고 CCTV로 대체하니까 외부인을 발견하고 초소에서 사건 현장까지 출동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 따라서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해요. 하지만 보통 이런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아요. 남자 경비 편드는 학생들이라고 조롱당하고 욕을 먹는 경우도 많아요. 노동자분들과는 인권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배포하여 많이 가까워졌지만, 같은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직도 힘든 점이에요.

    만년설 연대회원 모집 포스터 / 만년설 페이스북

    -활동하면서 학교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예전에 학교는 학내 노동자 문제를 취급도 안 하려 했어요. 학교 총무팀은 동의 없이 만년설 현수막을 뜯어가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끝까지 싸운다는 것을 알고 공청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우리 의견을 듣는 척은 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노동자와 노학연대를 대화 상대로는 보는 것 같아요. 여전히 노조 사무실도 없고 휴게실도 매우 열악하지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거예요. 학생들과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이를 극복하여 우리는 연대해야 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나침반 활동도 그런 의미에서 하고 있어요. 내가 노동자와 연대하여 활동하는 것을 당장의 목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왜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가 필요한지를 알림으로써 더 많은 학생들과 연대하는 것, 노학연대를 지속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수빈님이 생각하는 노학연대란?

    이정표요. 우리가 어느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나침반이죠. 대학이 자본화되고 학생과 노동자는 도구화되고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 대학의 본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대학의 의미를 다시 찾도록 하는 이정표이자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학연대의 새 길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우리 프로젝트 이름을 <나침반>이라고 지었는데, 노학연대 자체가 새 길을 찾기 위한 나침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어쩌다 노학연대 ②]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 김서룡

    나침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kclaqks
    인터뷰 진행 : 강건 주현정
    기사 작성 : 주현정
    책임 편집 : 박혜리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