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궁화=일본꽃' 주장을 비판한다②
    [푸른솔의 식물생태] 『두 얼굴의 무궁화』 단상
        2020년 08월 05일 07: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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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일본꽃’이란 주장을 비판한다①(『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에 이어 2회 글을 게재한다. 원래는 2회 정도에서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필자는 더 많은 지점에서 비판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고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글과 마찬가지고 길의 분량이 조금 길지만 관심과 일독을 부탁한다. <편집자> —————–

    <사진6> 적단심계의 무궁화(경기도 분당)

    4. 일본어 무쿠게(むくげ)는 ‘팽창’ 또는 ‘부종’을 뜻하는데 ‘무궁화’로 오역했다고?

    : 언어학에 대한 무지와 왜곡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말한다. “전 세계가 무쿠게(むくげ)를 ‘팽창’ 또는 ‘부종’으로 번역하여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종일 매국노 윤치호 등에 의하여 ‘무궁화’로 오역되어 왔다.”(p.210) 그리고 또 말한다. “천양무궁(天壌無窮、천황영토의 무궁확장), 영영무궁은 ‘무쿠게’를 무궁화’로 쓰는 것과 같다.- 야마구치대신궁(山口大神宮)(각주 165: 天壌無窮, 永永無窮 ムクゲを無窮花とも書くらしい)”(p.217과 p.408)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궁화’라는 한글명은 영토 팽창을 뜻하는 일본어(むくげ)를 번역한 것이며, 천황의 영토가 무궁확장된다는 뜻의 ‘천양무궁(天壌無窮)’에서 무궁화가 유래했으므로 결국 ‘무궁화’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제2편(Ⅱ)과 제4편(Ⅳ)에서 ‘일본 무궁화 통사’와 ‘천양무궁 무궁화’라는 제목들을 달고 무궁화가 식재된 신사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논리의 전개가 전혀 사실과 관련이 없고 완전히 빗나간 것은 ‘무궁화’라는 한글명은 일본어 むくげ(또는 ムクゲ)의 번역어가 아니며, 일제 강점과 아무런 관련 없이 고려 시대 말엽부터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우리말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무궁화에 대한 한자어 ‘無窮花’ 역시 일본어 むくげ(또는 ムクゲ)와 관련이 없고 우리의 옛 문헌에 등장하는 이름이라는 점이다. 한글명 무궁화가 일본어 むくげ(또는 ムクゲ)의 번역어라는 주장은 『동국이상국집』(1241)을 서술한 문인 이규보, 『향약집성방』(1433)의 저술에 참여한 정치가이자 한의학에 정통했던 유효통, 노중례 및 박윤덕, 『사성통해』(1517) 및 『훈몽자회』를 서술한 학자 최세진,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등 옛 문헌의 저술자 모두를,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종일 매국노’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여기서 그의 주장이 조금이라도 사실과 근접하는 내용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Hibiscus syriacus를 일컫는 우리말 이름 ‘무궁화’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살펴보자.

    무궁화는 아욱과 무궁화속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중국 남부가 원산인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질 치료 등 약용과 화훼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1241년에 이규보(1168~1241)에 의해 저술된 『동국이상국집』에 식물명으로서 槿花(근화)에 대한 우리 이름으로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는 한자명 ‘無窮'(무궁) 또는 ‘無宮'(무궁)이 보이는 것에 비추어 그 이전에 한반도에서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궁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중국명은 꽃이 빨리 피고 지는 나무라는 뜻의 木槿(mu jin) 또는 木槿花(mu jin hua)이다. 중국의 『본초강목』(1596)은 “此花朝開暮落 故名日及 曰槿曰蕣 猶僅榮一瞬之義也”(이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므로 ‘일급’이라 한다. ‘근’과 ‘순’이라 한 것은 한순간의 영화라는 뜻이다)고 기록하여 ‘木槿'(목근)이 한순간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의 특성에 유래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런데 우리의 옛 문헌 『역어유해』(1690)나 『방언집석』(1778) 등 및 기타 한자어 자전류에서 나타나는 중국에서 전래된 한자명 ‘木槿花'(목근화)에 대한 중세 국어 발음이 ‘무긴화’이므로 이 발음이 변화하여 ‘무궁화’라는 이름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국어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식물학계에서도 대체로 국어학계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이러한 견해로 김민수(1887), 백문식(2014), 김무림(2015), 장충덕(2007), 심재기(1999), 조항범(2018), 박상진(2019), 허북구·박석근(2008), 김양진(2011) 등]. 극히 일부에서는 한반도를 무궁화의 자생지로 보고 무궁화를 고유어로 이해하기도 한다[유달영·염도의(1983), 이경선 외(1986) 등]. 그러나 한반도에서 무궁화의 자생지는 발견된 바가 없고 씨앗이 늦은 시기에 발아하여 사람의 관리없이는 대개는 여름 가뭄과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사하므로, 한반도의 기후에서도 야생하기도 어려워 타당성은 없다고 본다.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에서 전래되지 않은 한자어로 옛 문헌에 기록된 표현은 ‘無宮’, ‘無窮花’, ‘舞宮花’ 및 ‘蕪藭花’가 있다. 이들 모두 음(音)은 ‘무궁’ 또는 ‘무궁화’로 동일하고 표현된 한자에서만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한자어들은 대개 이두식 차자(借字)로 음(音)을 빌어 쓸 때 옛 문헌에서 사용하는 표현이었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저술된 『향약집성방』(1433)은 고유명(향명)이 있는 경우 이두식 차자로 표기했는데, ‘無窮花木'(무궁화목)을 ‘鄕名'(향명)이라고 기재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에도 ‘無窮花’라는 한자어는 한글명 ‘무궁화’를 나타내기 위해 음을 차자한 이두식 표기이며, 국어학자들의 견해도 대체로 이와 같다. 일부 식물 관련 문헌에서 ‘무궁화’라는 한글 이름을 꽃이 쉼 없이 핀다는 뜻의 한자어 ‘無窮花'(무궁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無窮花’는 옛 문헌에서 여러 차자 표기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므로 이것에서 한글명이 유래했다고 볼 수는 없다. 식물을 일컫는 우리말 표현 중에 한자어 白菜(백채)에서 ‘배추’라는 이름이, 한자어 生菜(생채)라는 ‘상추’라는 이름이, 한자어 五加皮(오가피)에서 ‘오갈피나무’가 유래한 것처럼 한자어에서 유래한 이름이 다수 있다.

    한편 무궁화에 대한 일본명 무쿠게(ムクゲ)는 중국에서 전래된 한자어 ‘木槿'(목근)을 옛 일본어로 읽은 것에서 유래했으며, 일본에서도 무궁화는 일본 식물학의 대부 마키노 도미타로(牧野部太郞,1862~1957) 이래로 중국 원산의 재배하는 관상용 식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이에 대해서는 牧野部太郞, 『日本植物圖鑑』, 北隆館(1940), p.333 참조). ​결국 Hibiscus syriacus라는 식물에 대한 한국명 ‘무궁화’나 일본명 ‘무쿠게(ムクゲ)’는 중국명 ‘木槿花'(목근화) 또는 ‘木槿'(목근)을 각자의 발음대로 읽은 것에서 유래했으며, 어원이 중국에서 기원한다는 것 외에 우리말과 일본말이 다른 것만큼 서로 다른 것이다. 앞서 살폈듯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無窮花’라는 한자 표현이 한글명 ‘무궁화’를 한자로 표현한 차자(借字)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이를 식물명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한국명 ‘무궁화’와 ‘無窮花’는 일본명을 번역한 것도 아니며, 이것을 오역으로 해석할 여지도 없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무궁화’라는 이름을 일본명과 연결시킬 매개가 부족하자, 다시 한번 황당무계한 논리를 구사한다. 어느 날 새벽에 문득 히라가나 むくげ(무쿠게)를 중국어 번역기를 비롯하여 외국어 번역기로 돌려보니 ‘팽창’ 또는 ‘부종’의 뜻이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팽창이나 부종의 뜻이 있는 ‘무쿠게'(むくげ)를 ‘무궁화’로 오역했다고 하는 주장이 그것이다. 히라가나 むくげ로 하든지 가타가나 ムクゲ로 하든지 상관없이 일본어의 뜻은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그것을 반영한 일본어 사전에 따라 해석된다. 이것을 번역기가 다르게 해석하고 번역했다면 그것은 번역기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우리말 ‘무궁화’는 우리의 일상 용어와 사전에서 식물명으로만 사용하는데, 어떤 번역기가 ‘팽창’이나 ‘부종’으로 번역을 했다면 그 번역기가 잘못된 것이지 우리말 ‘무궁화’가 팽창이나 부종의 뜻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백번을 양보하여 저자가 주장하듯이 히라가나 표기 일본명 むくげ에 그런 뜻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말 ‘무궁화’나 한자어 ‘無窮花’에 그런 뜻이 없는데 무슨 오역이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일본어 ‘天壌無窮'(천양무궁)이라는 보통명사에 대해 ‘천황영토의 무궁확장’의 뜻이라며, 무궁화에도 그런 뜻이 있고 그것을 상징한다고 주장을 이어간다. 그러나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우리의 옛 문헌에서 식물명으로 사용된 ‘無窮花’는 ‘무궁화’를 나타내기 위한 여러 이두식 차자 표기 중의 하나이었을 뿐이고 일본 천황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뜻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일본어 ‘天壌無窮'(천양무궁)이 『일본서기』(日本書紀, 720)에서 유래했거나 그래서 군국주의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한들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그는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 야마구치다이진구우(山口大神宮)에 “天壌無窮, 永永無窮 ムクゲを無窮花とも書くらしい”(천양무궁, 영영무궁은 ‘무쿠게’를 무궁화’로 쓰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있다는 주장으로 성큼 나아간다. 위 일본어 문구도 그것을 번역해 놓은 말도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와 무궁화를 계속 연결 짓고 있으므로 저자는 위 문구를 근거로 ‘天壌無窮'(천양무궁)은 천황의 무궁한 영토확장을 뜻하고 그것은 곧 ‘無窮花’의 뜻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로 일본명 무쿠게(ムクゲ)를 한자어로 ‘無窮花’라고 쓴 문헌이 있다면, 이것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상당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일본에서 무궁화에 대한 무쿠게(ムクゲ)라는 명칭이 나타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인 반면에 앞서 살펴듯이 우리의 옛 문헌에서 차자 표기로 ‘無窮 ‘또는 ‘無窮花’라고 한 것은 1241년의 『동국이상국집』과 1433년의 『향약집성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일본명 무쿠게(ムクゲ)가 중국명 ‘木槿'(목근)이 아니라 발음이 유사한 우리의 표현 ‘無窮花'(무궁화)에서 유래했다고 볼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야마구치다이진구우(山口大神宮)의 공식홈페이지와 관련 자료 등을 모두 찾아 보았으나 도무지 위와 같은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책 p.144에 “천양무궁(天壌無窮)은 무쿠게(ムクゲ)를 무궁화(無窮花)로 쓴 것과 같다.”라는 완전히 같다 싶을 정도의 유사한 표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다만 이번에는 문구의 출처가 야마구치다이진구우(山口大神宮)가 아니라 “일본 기후현 소재 진메이(神明)신사”로 되어 있는 것이 차이였다. 어찌 된 일인지 일본 기후현(ぎふけん) 소재 신메이진자(神明神社)의 공식홈페이지와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았으나 이 역시 그 출처는 커녕 내용조차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의 책에서 야후저팬(Yahoo Japan)이나 기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출처로 인용한 자료가 많아 야후저팬에서 그의 책 p.408에 기재된 일본어 원문 “天壌無窮, 永永無窮 ムクゲを無窮花とも書くらしい”를 검색어로 하여 검색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일본 기후현(ぎふけん) 소재 신메이진자(神明神社)와 관련되어 있는 다음과 내용이 검색되었다.

    <사진7> “天壌無窮 永永無窮 ムクゲを無窮花とも書くらしい”라는 문구에 대한 야후저팬 검색 결과

    내용을 살펴보니, 일본인으로 보이는 한 블로거가 2013.6.18.에 기후현(ぎふけん) 소재 신메이진자(神明神社)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고 그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올려놓았는데, 일종의 여행기를 사적으로 기록한 일기 같은 글이었다. 그 블로거는 신메이진자(神明神社)의 어느 신사 건물 앞에 이르러 ‘国家安泰’과 ‘賓祚無窮’이라고 적은 현판을 보고서 ‘국가안태’는 해석을 했으나 ‘빈조무궁’에서 ‘祚’에 대한 해석이 되지 않아 ‘賓?無窮’ 이 무슨 뜻일까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원문은 “無窮は果てしないこと…天壌無窮、永永無窮 ムクゲを無窮花とも書くらしい”이었다. 문맥과 당시 상황에 맞추어 취지를 살펴보면 “무궁은 끝이 없다는 것이고… 천양무궁, 영영무궁의 뜻일까? 무쿠게(ムクゲ)를 ‘無窮花’라고도 쓰는 것과 같은 느낌인 걸?”라는 정도로 해석되는 문구이었다. 그리고 해당 블로거가 2015.4.28.에 그에 대한 후기(追記)를 올렸는데, ‘다른 건으로 알아보았더니 천손강림신화(天孫降臨神話)의 삼대신칙(三大神勅)에 나오는 ‘賓祚無窮'(빈조무궁)이더군’이라는 정도의 훈훈한(?) 마무리 글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jinjabu.blog.fc2.com/blog-entry-183.html?sp 참조).

    2013년도 일본인 한 블로거가 적은 위와 같은 글이 일본어 [‘天壤無窮'(천양무궁)=’無窮花'(무궁화)]로 되고 [무궁화=일본의 군국주의]가 되는 주요한 논거 중의 하나라면 이 얼마나 황당한 논리이며 괴기스러운 행동인가?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2013년에 일본인 한 개인의 중얼거림이 우리말의 뜻조차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인 하나하나가 우리말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를 쉼없이 살펴보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저 검색 자료가 책에 인용된 문헌의 출처가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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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4>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동의보감』(1613)에 버금가는 한의서라며 자랑으로 여기는 문헌 중에 오노 란잔(小野蘭山, 1729~1810)이 저술한 『본초강목계몽』(本草綱目啓蒙, 1804)이라는 책이 있다. 그곳의 ‘木槿'(목근) 부분에 일본명으로 ムクゲ를 기록하면서 별칭의 한자명으로 ‘無窮花木'(무궁화목)을 기록한 것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명 ムクゲ의 한자명이 ‘無窮花木'(무궁화목)이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일본명 ムクゲ에 대해 ‘木槿ノ音轉'(목근의 음이 변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無窮花木'(무궁화목)에 대해 ‘鄕藥本草'(향약본초, ‘향약본초’는 우리의 옛 문헌 『향약집성방』의 약재를 정리한 부분을 말함)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본초강목계몽』(1804)은 우리나라의 『향약집성방』(1433), 『촌가구급방』(1538) 그리고 『동의보감』(1613)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문헌의 곳곳에 인용되어 있다.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궁화를 검색하면 ‘無窮花’라는 한자어를 한국명으로 해설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이러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우리의 옛 문헌에 ‘無窮花木'(무궁화목)이 있었다는 것은 식물에 관심이 있는 식자라면 일본인도 아는 사실인데, 어느 날 새벽에 검색한 문제의 번역기와 일본어 보통명사 ‘天壤無窮'(천양무궁)과 무궁화를 한자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無窮花(무궁화)의 ‘無窮'(무궁)에 일치하는 표기가 있다는 이유로 ‘무궁화’라는 한글명이 일본에서 왔다고 하면 이게 정상적인 사고인가? 이런 논리로 국가상징을 재검토하자고 하는데 이것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하는 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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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무궁화 ‘히노마루’를 형상화한 것이 일장기(히노마루)라고?

    : 재배식물에 대한 무지와 왜곡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무궁화=일본꽃을 입증(?)하기 위해 제5편(V)에서 ‘왜색 자연과학의 꽃 무궁화’이라는 제목으로 무궁화=일장기(히노마루)라는 도식을 이미지화한다. 그 첫 출발은 “일본에서도 무궁화하면 으레 일장기와 욱일기의 원형인 백단심계 무궁화을 일컫는다”(p.263)라고 하면서, 백단심계의 일본 품종 중의 하나(!)인 Hibiscus syriacus ‘Hinomaru’를 소개한다. 일본 문헌을 확인하기 어려운 독자로서는 맞다고 가정하게 된다.

    그런데 독학으로 식물학을 공부하여 일본 최초로 식물의 학명을 발표하고, 일황의 식물 스승이 되기도 했으며, 그가 만든 식물도감은 아직도 반복하여 출판이 되고, 일본인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식물학의 대부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 1862~1957)는 1940년에 그가 저술한 『목야일본식물도감』에서 무궁화에 대해 “普通紅紫色ナレドモ, 又白色, 低紅ノ品アリ”(보통은 홍자색이지만, 또한 흰색과 연붉은 색의 품종도 있다)라고 기록했다. 우리도 그러하다. 대개는 붉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꽃(적단심계)이지만 꽃잎이 흰색(백단심계)도 있다.

    저자는 이렇게 먼저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비틀어 말을 던진 후에 다시 몇 가지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언급한다. “1972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국내 육성 무궁화 중에서 ‘신태양’을 선발했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신태양은 1960년대 유달영 서울대 농대 교수팀이 일본 오사카 식물원으로 도입한 ‘히노마루(日の丸)’ 무궁화를 이름한 ‘신태양’으로 바꾼 것이다.(『두산백과사전(doopia)』참조)”, “1990년 11월 5일 한국무궁화연구회(산림청 농촌진흥청 관리감독 사단법인, 1985년 설립)는 ‘신태양’과 ‘히노마루’는 특성상 차이가 없는 동일 품종으로 공식 확인했다. 즉 국내 무궁화 관련 텍스트들은 한국 대표 무궁화 품종 ‘신태양’이 일본대표 무궁화 품종 ‘히노마루’ 짝퉁이라는 이 기막힌 사실을 이처럼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다.”(p.264) 이것이 사실일까? 이 역시 일반적인 독자들로서는 확인이 쉽지 않으니 맞다고 받아 들이게 된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자체 육성한 품종 Hibiscus syriacus ‘Sintaeyang’ 을 발표한 해는, 1972년이 아니라, 1983년이다. 뒤에 이어지는 논리의 비약과 왜곡에 기여하도록 먼저 연도를 실제가 아닌 것으로 기술한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송희섭, 「우리나라 무궁화의 품종명에 대한 고찰」,『화훼연구』(2019), p.197 참조). 또한 유달영 서울대 농대 교수팀이 Hibiscus syriacus ‘Hinomaru’를 비롯하여 52종의 외국 분포(또는 재배) 무궁화 품종을 수입한 주된 이유는 한반도에서 세계적으로 재배하는 무궁화 품종의 꽃모양과 색깔 그리고 추위에 견디는 내한성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도입 시기는 1969년부터 1970년 1월 사이였다. 그리고 Hibiscus syriacus ‘Sintaeyang’ 을 발표한 것은 1983년으로 10년 이상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Hibiscus syriacus ‘Hinomaru’의 도입 시기와 도입 이유에 대해서는 유달영·염도의, 「Hibiscus syriacus L.의 화형과 색채에 관한 기초연구」, 『한국원예학회지』(1972), p.57 및 유달영·염도의, 「도입 무궁화의 내한성에 관한 기초연구」, 『한국원예학회지』(1972), p.65 참조). 유달영·염도의(1972)는 Hibiscus syriacus ‘Hinomaru’의 꽃의 형태와 특성을 스스로 모두 밝혀 놓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바꾼다는 말인가?

    그 후 1990년대에 이르러 Hibiscus syriacus ‘Sintaeyang’와 Hibiscus syriacus ‘Hinomaru’의 두 재배품종이 구별할 특징이 뚜렷한지에 대해서 논란이 발생했는데, 『국제재배식물명명규약』(ICNCP)에 따라 독자적인 재배품종으로 충분한 구별성이 있는지에 대한 식물학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었다(후술 내용 참조). 마치 의도적으로 두 품종을 바꾸었다고 저자가 괄호를 쳐서 근거로 제시한 『두산백과사전(doopia)』의 ‘무궁화’ 관련 부분에는 아예 그런 내용이 없다!

    또한 Hibiscus syriacus ‘Sintaeyang’이 Hibiscus syriacus ‘Hinomaru’의 짝뚱(!)이라는 사실은 공식 확인(?)된 바가 없다. 『국제재배식물명명규약』(ICNCP)에 따라 독자적인 재배품종이 되기 위해 다른 재배품종과 식별되는 충분한 구별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와 관련하여 학자와 단체별로 식물학적 견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한국무궁화연구회는 Hibiscus syriacus ‘Sintaeyang’이 Hibiscus syriacus ‘Hinomaru’와 충분한 구별될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견해를 취한 것일 뿐이었다. 한국무궁화연구회는 사단법인이고, 영리가 목적이 아닌 모든 사단법인은 민법 제32조 및 제37조에 따라 설립 시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감독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산림청/농촌진흥청으로부터 관리 감독을 받는다는 것이 그 사단법인의 견해에 대해 공신력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현재 여전히 ‘국가표준식물목록’과 ‘국가표준재배식물목록(개정)’은 Hibiscus syriacus ‘Sintaeyang’와 Hibiscus syriacus ‘Hinomaru’를 별도의 재배품종으로 보고 있다.

    그가 그토록 일본 제국주의 화신인 것처럼 여기는 재배품종 Hibiscus syriacus ‘Hinomaru'(ムクゲ ‘日の丸’)도 Hibiscus syriacus ‘Soutan'(ムクゲ ‘宗旦’)과 사이에 일본에서도 구별이 쉽지 않고, Hibiscus syriacus ‘Soutan'(ムクゲ ‘宗旦’)에 포함된다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식물에 관하여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독자들의 머리 속을 잔뜩 흐트려놓은 다음 드디어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던진다. “일본학계는 『만엽집』에 나오는 일곱 가지 초목 가운데 하나인 조모(朝貌)가 나팔꽃처럼 흰색 꽃잎 바탕에 중심부가 붉은 무궁화 히노마루를 지칭함을 고증한 바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시 히노마루 무궁화를 형상화한 깃발을 내건 함대를 부산 앞바다로 출진시켰다. 1872년부터 일본 국기로 공식 사용한 히노마루 기는 히노마루 무궁화를 평면에 펼쳐 국기로 형상화한 것이다.”(p.264)

    이쯤 되면 많은 독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종일 매국노'(?)에게 속아 왔구나, 분개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만엽집』에 가을의 7가지 풀(秋の七草) 중의 하나로 기록된 ‘朝杲'(あさがお)가 어떤 식물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일본식물학계는 (i) 도라지(桔梗, キキョウ)라는 견해, (ii) 나팔꽃(朝顔, あさがお)이라는 견해, (iii) 메꽃(昼顔, ヒルガオ)이라는 견해 및 (iv) 무궁화(木槿, ムクゲ)라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그 중 주류적 견해는 도라지의 꽃으로 보고 있으며 무궁화로 보는 견해는 극히 일부의 소수 견해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본학계(!)가 무궁화를 지칭한 것으로 고증했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무궁화의 꽃이라고 보는 견해조차 재배품종 무궁화 ‘히노마루’을 지칭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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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5> 8세기경 저술이 완료된 일본의 옛 시가집 『만엽집』은 가을의 7가지 풀(秋の七草)의 하나로 “朝杲 朝露負 咲雖云 暮陰社 咲益家礼”(현대 일본어: あさがおは、朝露あさつゆ おひて、咲くといへど、夕影にこそ、咲きまさりけり)라고 기록했는데 ‘아사가오는 아침 이슬을 맞으며 핀다고 하지만 저녁의 어두컴컴한 빛 속에서 더욱 빛나지요’라는 뜻의 노래이다. 일본 식물학의 대부 마키노 도미타로를 비롯한 주류적 견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사전인 『신찬자경』(新撰字鏡, 895~901)에서 도라지를 일컫는 ‘桔梗'(길경)에 대해 ‘阿佐香苧'(아좌향저)로 해설했다는 점, 가을에 피는 초본성 식물로 기록한 점 및 저녁에도 꽃이 핀다고 한 점 등을 근거로 도라지를 지칭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극히 일부의 견해가 무궁화로 보기도 하지만, 무궁화는 목본성 식물이고, 가을에 피지 않으며, 꽃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기 때문에 『만엽집』의 기록과 생태에서 맞지 않은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무궁화로 보는 견해로는 원예학자인 工藤和彦,『作例と解説 いけばな花材ハンドブック 夏(二)』, 八坂書房(1985), p.126~1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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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일본의 국기를 일본인이 흔히 부르는 이름은 ‘日章旗'(にっしょうき, 일장기) 또는 ‘日の丸の旗'(ひのまるのはた, 일의환기)이다. 말 그 자체의 뜻이 태양 모양의 깃발 및 태양의 둥근 모양의 깃발이고, 태양신을 숭배한 일본의 고대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가 흔히 쓰는 방법대로 야후저팬을 검색하면, 일본인들도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만든 재배품종 ムクゲ ‘日の丸'(히노마루)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것에 대한 별도의 증거가 없는 한, 1953년 이후의 어느 시기에 무궁화의 흰색 계열 재배품종 중에 그 모양이 일장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식물학자가 인위적으로 붙인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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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6> Hibiscus syriacus ‘Hinomaru’라는 학명은 끝이 작은따옴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궁화(Hibiscus syriacus L.)라는 종(species) 중에서 인위적으로 선별된 특정한 재배품종(cultivar)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재배품종은 ‘어떤 종 내에서 특정한 특성 내지는 특성의 조합을 지녀 이의 활용을 위해 선발된 집단으로서, 해당 특성 내지는 특성의 조합에 있어 구별성과 균일성, 안정성을 지니며,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를 유지한 채 번식시키는 것이 가능한 식물 집단’을 일컫는 용어이다. 재배품종은 1953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국제재배식물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Nomenclature for Cultivated Plants, “ICNCP”)에 따라 규율받는다. 1953년 이전의 식물군이 유효한 학명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려면 해당 문헌이 기록된 시기부터 다른 재배품종과 구별되어 선별될 수 있고, 그렇게 관리가 되었으며, 그 이름도 별도로 부여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8세기에 저술된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의 그 어디에 꽃이 흰색인지 꽃의 크기와 모양, 꽃 안의 붉은색의 크기와 정도, 잎의 모양과 전체적인 크기 등에서 다른 재배품종과 구별될 수 있도록 나타나 있다는 말인가? 그외 달리 1953년 이전에 별도 재배품종으로 별도 관리된 명확한 기록과 증거가 없다면 Hibiscus syriacus ‘Hinomaru’라는 학명은 1953년 이후에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차문화를 수립하는데 기여한 千宗旦(1578~1658)이 좋아했다고 하여 ムクゲ ‘宗旦’이라는 이름이 붙은 종과 식별도 쉽지 않은 재배품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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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가 일본인들이 고대로부터 숭배해 온 태양이 아니라 500여년 후에나 생겨난 『국제재배식물명명규약』에 따른 학명이 무궁화의 재배품종인 Hibiscus syriacus ‘Hinomaru'(ムクゲ ‘日の丸’​)이라는 이름이 생겨날 것을 어떻게 알고서 그 형태를 펼쳐 일장기로 만들 수 있었을까? 물론 일본인은 너무나 위대해서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독자를 우매한 선동 대상자로 취급할 때나 가능한 논법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일장기와 비슷한 모양의 깃발로 군선의 지휘기로 사용한 사람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임진왜란 때 참전한 수군 장수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1542~1600)이고 그의 휘하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왜곡의 최고점에서 마무리하며 점잖은 투로 말한다. “현재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온·오프라인 텍스트에는 히노마루(일장기) 무궁화가 대한민국 국가문화 상징으로 게재되어 있다”(p.265). 앞에 쓴 그의 주장을 수긍하면서 따라온 독자들은, 이제 무궁화는 일본 군국주의 것이고 당장 국가의 상징으로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느껴진다. 이 문구도 얼핏 보면 그럴싸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닌 왜곡이다. 무궁화 중 꽃잎이 흰색인(백단심계) 재배품종의 하나로 Hibiscus syriacus ‘Sintaeyang’이 1983년에 국내에서 신품종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이 소개된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실제 내막은 기존에 일본에서 먼저 개발한 Hibiscus syriacus ‘Hinomaru’와 충분한 구별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는 것뿐이다. 누가 Hibiscus syriacus ‘Hinomaru’를 대한민국 국가 문화의 상징이라고 했다는 말인가? 누가 수많은 재배품종 중에 특정한 종에 대해 그러한 특권(?)을 부여했다는 말인가?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권위와 입을 빈 주장인가?

    그리고 그는 책의 곳곳에 위의 내용을 조금씩 사실관계를 비틀면서 반복적으로 배치해 둔다. 꽃을 좋아한 옛사람조차 “槿花則不知其白 只知其紅 而非紅非段”(무궁화는 흰 꽃은 몰랐고, 일반적인 붉은색이 아니면서 아주 짙은 붉은색도 아닌 꽃만 알았습니다)고 한 것이나(유박, 『화암수록』, 18세기 말), 길가나 공원에서는 보이는 무궁화의 다수가 붉은빛이 나는 적단심계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제 오로지 무궁화는 흰색이고 그것은 곧 일장기라는 이미지만 남는다. 그러나 살펴보았듯이 선조들이 심고 가꾸어 우리에게 전해진 무궁화는 최소한 고려 말기부터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일장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6. 일제강점기에 발권된 지폐의 문양과 일본 가문의 문양이 무궁화라고?

    : 식물과 문양에 대한 무지와 왜곡

    (1) 조선은행권 화폐의 문양에 대한 검토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말한다. “1932년 6월 1일 대장성 인쇄국은 “천양무궁을 상징하는 꽃. 즉 천양무궁의 약칭 ‘무궁화’를 조선은행권 10원권의 도안으로 넣어 발행했다. 지폐 중앙부의 ‘십원(문자)’의 배경 도안으로 지폐 상단에는 일본 정부의 상징 오동이 보조문양으로 삽입되었다.”(p.189)

    <사진8> 일제강점기에 조선은행 명의로 발행된 100원권

    ​위 조선은행권의 오른쪽 상단(노란색 원 표시)의 문양이 오동나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다. 위 일제강점기의 지폐 상단의 무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가문의 문양이었고, 이후 일본 황실과 조선총독부가 사용한 문양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발권된 지폐의 안쪽에 있는 꽃 문양(붉은 화살표)은 어떤 종의 식물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이 문양을 무궁화로 보고 일제가 천황의 영토 확장을 뜻하는 천양무궁(天壤無窮)을 주창하기 위해 이 문양을 넣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어 천양무궁(天壤無窮)과 우리말 ‘무궁화’ 및 그 음의 차자로서 ‘無窮花’는 전혀 관련이 없음은 살펴본 바와 같다. 하나만 덧붙이면, 보통명사로 ‘無窮'(무궁)이라는 표현이 일치하기 때문에 뜻도 같다고 한다면 식물 무궁화가 아닌 ‘無窮’이라는 한자어는 『조선왕조실록』에서만 100여회가 넘게 기록된 단어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도 천양무궁스러운 기록이 될 판이다.

    ​식물을 의복, 도자기, 가구 및 기와 등의 문양으로 사용할 때 그 문양은 대개 식물의 특징을 단순화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어떤 종의 식물을 나타내는지를 식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 경우 식물의 형태적 유사성, 그 문양이 만들어진 역사적 목적과 배경, 글자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에 식물명을 문자화할 경우 그 뜻, 문화권의 인식과 문화적 코드, 그 문양을 만든 사람의 인식과 그에 관한 자료 그리고 기타 유사한 형태의 문양에 대한 비교 등 여러 복합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별하여야 한다.

    먼저 위 지폐에 나타난 문양이 식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가정하고 식물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마도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위 지폐 문양의 꽃잎이 5장이라는 점을 근거로 무궁화로 인식하는 것으로 추론되지만, 매화(梅花), 복숭아꽃(桃花), 살구(杏花), 배꽃(梨花), 벚꽃(櫻花)과 오얏꽃(李花) 같은 장미과 식물의 대부분도 꽃잎이 5장이라는 점에서 이를 무궁화라는 근거로 볼 수는 없다. 꽃잎의 특징으로 보자면 위 지폐의 문양에서 개별 꽃잎의 끝부분이 오목하게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현재 국내에서 재배하는 무수한 무궁화 품종을 두루 살피더라도 무궁화의 꽃잎이 파여 나타나는 형태는 없다[국내에서 재배하는 무궁화의 재배품종을 망라하여 정리한 것으로는 권해연 외, 『무궁화; 국내 육성 품종 현황 밑 특성』, 국립산림과학원(2017) 참조]. 오히려 5장의 꽃잎을 가진 식물 중에서 일본인들이 사랑받아 일본의 국화(國花)처럼 알려진 벚꽃(サクラ)의 꽃잎 끝 부분이 안쪽으로 파인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형태적으로만 본다면 위 지폐의 문양은 무궁화보다는 벚꽃(サクラ)에 가깝다.

    다음으로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은행권은 일본인에 의해 도안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문양에 관한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5개의 꽃잎의 끝이 파인 형태의 문양은 옛적이나 지금이나 일본에서는 벚꽃(サクラ)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했다. 『두 얼굴의 무궁화』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야후저팬(www.yahoo.co.jp)에서 벚꽃 문양을 뜻하는 ‘櫻花紋'(앵화문) 또는 ‘櫻紋'(앵문)을 검색을 해 보시라. 위 지폐들의 문양과 아주 유사한 형태를 옛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을 셀 수 없을 만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무궁화의 문양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木槿紋'(목근문), ‘槿花紋'(근화문), ‘ムクゲ紋’을 검색해 보라. 온통 최근에 담은 무궁화 사진뿐이고 지폐들에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문양은 커녕 아예 문양 자체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저자가 ‘天壤無窮'(천양무궁)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無窮紋'(무궁문)을 넣어 검색을 해보시라. 그들의 황실을 뜻하는 국화(菊花) 문양 몇 개만을 간신히 볼 수 있을 뿐이다. 일본 문화에 근거하더라도 위 화폐는 벚꽃(サクラ)이라고 볼 수 있을지언정 무궁화로는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두 얼굴의 무궁화』, p.102는 꽃잎이 5장으로 끝이 파여 있는 있는 일본의 옛 가문의 문양을 벚꽃을 형상화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위 지폐의 안쪽 문양이 무궁화와 관련이 없고 벚꽃 종류(サクラ)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유력한 증거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조선은행 명의로 10원권 화폐를 발행할 때 그 뒷면에 위 지폐들의 안쪽 문양과 동일한 문양을 사용한 바 있는데(아래 사진10의 붉은 화살표 참조), 이와 관련해 조선총독부 1915년 10월 1일자 관보는 그 도안을 게재하면서 뒷면 도안의 문양을 설명해 놓았다. 여기에는 ‘櫻花形'(앵화형; 벚꽃 모양)을 본 떠 넣었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10>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1915.10.1.자 관보의 내용(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관보)

    ​이상의 이유에서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지폐의 앞면 안쪽에 있는 문양을 무궁화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식물을 추상화하여 문양으로 도안하면 원래 어떤 종을 나타낸 것인지 판정이 쉽지 않으므로, 혹자에 따라서는 위 지폐들의 문양을 무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두 얼굴의 무궁화』 저자의 주장처럼 무궁화=일본의 신화(神花)이고 무궁화를 통해 조선 민중에게 천황의 무궁한 영토확장을 주입하는 것이 일제의 목적이었다면, 그들의 역사에서 지폐에 있는 문양을 무궁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한 적도 없는데, 누구도 알아보기 쉽지 않게 굳이 저런 애매한 형태로 화폐에 표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심을 가지겠지만 『두 얼굴의 무궁화』 저자는 그런 의심이라고는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실제 사실과 아무런 관련없이 오로지 무궁화=일본꽃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2) 일본의 가문과 일본회의 배지의 문양에 대한 검토

    ​<사진11> 일본에서 식물을 근거로 만든 것으로 이해(?)되는 문양들

    ​위 사진은 일본에서 사용했거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문양들이다. 위 사진의 (i) 첫 번째 문양은 일본 전국시대 장수이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속한 가문의 문양이었는데 흔히 木瓜紋(もっこうもん)이라고 한다. (ii) 두 번째 문양은 벚꽃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의 일부 작은 가문들이 문양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iii)은 일본 최대 규모의 극우단체인 일본회의(日本會議)의 회원들이 사용하는 배지(badge)이다. 그런데 『두 얼굴의 무궁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두 번째 문양은 일본의 나라꽃으로 알려진 벚꽃(サクラ)을 형상화한 것이지만(p.102 및 p.261), 첫 번째와 세 번째의 문양은 무궁화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책 곳곳에 위 문양을 근거로 무궁화=일본꽃라는 등식을 던지고 있다.

    첫 번째와 세 번째의 문양은 같은 식물을 형상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꽃잎의 모양이나 전체의 형태에서도 차이가 뚜렷하고, 세 번째는 오히려 두 번째 문양의 벚꽃(サクラ)과 모습이 비슷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에서는 이를 무궁화 문양으로 인식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왜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첫 번째와 세 번째의 문양을 모두 무궁화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는 것일까?

    먼저 세 번째 문양 일본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회원 배지가 무궁화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주장만 있을 뿐이고, 책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식물 형태적 분석, 기타 과거의 사용한 사례 또는 일본회의가 그 문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설명하는지 등에 대한 분석은 어디를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책에서 이유로 언급된 것은 (i) “일본회의의 배지의 핵심 문양인 무궁화를 일본에서 ‘무쿠게(むくげ)라 부르는데, 이를 번역하면 ‘팽창’이라는 뜻이다.” (ii) “사실상 무궁화는 천황영토의 무궁한 팽창을 형상화하는 것인데, 한국에서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모시면 찬송하고 있다”(p.250)는 내용뿐이다. (i)은 이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번역기의 오류에서 비롯한 것에 불과하다. (ii)의 天壤無窮(천양무궁)도 ‘無窮花'(무궁화)의 ‘無窮'(무궁)과 연결시키지만 식물명으로는 ‘無窮花’는 한글명 ‘무궁화’를 한자로 나타내기 위한 음차에 불과하므로 둘을 연관 지을 수 없다는 것도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결국 세 번째 문양이 무궁화를 형상화했다는 주장은 번역기 오류와 서로 유래가 다른 말에 대해 단지 한자 표기가 같다는 이유로 억지로 연결한 것에 불과하고, 문양과 무궁화의 형태비교, 일본에서 문양으로 사용한 역사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일본인의 실제 인식 등을 고려하여 무궁화로 판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 저자의 주장과 달리 일본회의의 회원 배지는 우리의 식물명 ‘무궁화’와 전혀 관련이 없다! ​

    ​다음으로 첫 번째 문양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첫 번째 문양이 오다 노부나가 가문의 문양으로 木瓜紋(もっこうもん)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있다(p.102 및 p.128 참조). 이 문양은 마치 오이(또는 木瓜)의 단면을 잘라 놓은 것으로 이해되어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었고, 일본의 무사들이 오다 노부나가를 기리면서 오이를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만큼 그렇게 인식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오이가 아니라 새의 둥지를 본뜬 모양의 문양이라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2017) 참조]. 그런데 이 문양은 꽃의 모양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전래된 당화문(唐花紋)의 일종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당화문(唐花紋)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인데, 실재하는 꽃이 아니라 상상속의 꽃을 문양화하여 도자기, 의복 및 기와 등의 장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꽃이 아니라 식물의 줄기와 잎으로 나타날 경우 흔히 당초문(唐草紋)이라고 하고 꽃과 잎(줄기)가 모두 있으면 당초화문(唐草花紋)이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사용되어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래 <사진12>를 보면 아래쪽의 꽃 문양이 <사진11>의 오다 나부나가 가문의 문양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진12> 기와 암막새에 나타난 ‘당초화문’, 통일신라시대 제작; 동국대박물관 소장

    그는 이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도래한 당화’라니, ‘당화’는 도대체 무슨 꽃인가? 당화의 정체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해설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당화는 바로 당나라에서 건너왔다는 목근, 즉 무궁화로 오다 가의 가문 ‘모과(오과에 당화)’ 문양은 기존의 야사카 신사와 츠시마 신사 등 약 5만 여개소의 신사의 무궁화 신문(神紋)과 똑같다.”(p.128).

    그의 말대로 당화가 중국 당나라에서 건너온 목근(무궁화)를 뜻하는 것이 맞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사진12>의 기와 암막새뿐만 아니라 무수한 도자기, 그릇, 가구 등에 엄청난 당초문, 당화문과 당초화문을 새겨 넣었으니, 그가 책의 다른 곳에서 주장한 것과 달리, 우리는 엄청난 무궁화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한가? 당화(唐花)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꽃을 문양화하여 생활에 사용하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런데 그는 또 위 <사진11>의 첫 번째의 木瓜紋(もっこうもん)이 “(일본의) 신사의 무궁화 신문(神紋)과 똑같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일까? 그의 책 p109에서 정확히 적었듯이 일본의 신사들은 토속신앙으로 제례의식에 일종의 부적(護符)인 오마모리(お守り)를 사용한다. 일본의 어떤 신사들은 오마모리(お守り)라는 부적을 제작할 때 <사진11>의 첫 번째 문양을 새기기도 한다. 木瓜紋(もっこうもん)은 전국시대에 일본 통일을 목전에 두고 비명횡사한 오다 노부나가 가문의 문양임과 동시에 오마모리(お守り)에 새겨진 문양이기도 했다. 오이를 자른 단면으로 인식했든, 새 둥지의 나타낸 문양으로 이해했든 또는 당화문으로 이해했든 그것에 주술의 효과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용한 것일 뿐 무궁화와 관련은 없다. 저자는 말한다. “혹시 무궁화가 황실화이자 덴노의 가문인 국화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일본의 신화(神花)이자 신문(神紋)이기에 감히 무궁화를 무궁화라고 못하고 모과라고 불러야 했을까?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것처럼.” 정말 흥미라고는 조금도 생기지 않는 식상한 코메디를 연상시킨다. 너무 일본을 바라보다가 홍길동전마저 일본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인가?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아무도 木瓜紋(もっこうもん)의 문양이 무궁화라고 보지 않는다. 혼자만의 그 망상에서 벗어나면, 굳이 일본 무장 오다 노부나가를 홍길동으로 만들지 않아도 다 이해되고 해결되는 일이다..

    또한 그는 『두 얼굴의 무궁화』, p.109에서 일본 교토에 있는 야사카진자(八坂神社)의 “제수용 꽃이 일본 무궁화 3대 품종의 하나인 ‘시로기온노마모리(白祇園守, しろぎおんまもり)’, 이름 그대로 ‘하얀 토지신의 부적’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일까? 사실(fact)은 이러하다. (i) 일본 교토에 있는 야사카진자(八坂神社)는 토속신앙에 사용하는 부적(護符)을 기온마모리(祇園守り, ぎおんまもり)라고 하는 구별되는 독특한 문양을 사용한다. (ii) 일본에서 개발된 무궁화 재배품종 중에 Hibiscus syriacus ‘Shirogionmamori'(일본명: ムクゲ ‘白祇園守’)와 Hibiscus syriacus ‘Akagionmamori'(일본명: ​ムクゲ ‘赤祇園守’)가 있다. (iii) 이 재배품종들은 겹꽃 형태로 꽃을 피우고 그 가운데 작은 꽃잎들이 많이 형성되는데 일본명으로 ムクゲ ‘白祇園守’라는 재배품종은 흰색 꽃이 피고, 일본명: ​ムクゲ ‘赤祇園守’라는 재배품종은 붉은색 꽃이 핀다.

    기온마모리(祇園守もり, ぎおんまもり) 문양은 <사진11>의 木瓜紋(もっこうもん)과 전혀 다른 별도의 문양으로 아주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국내외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바로 문양의 확인이 가능함). 그래서 위 재배품종에 붙은 품종명 ‘白祇園守'(백기원수)와 ‘赤祇園守'(적기원수)에 있는 ‘祇園守'(기원수)의 유래와 관련하여 기온마모리(祇園守り, ぎおんまもり)로 제례의식을 행하는 야사카진자(八坂神社)에 식재되었기 때문이라거나, 꽃의 모양의 기온마모리(祇園守り, ぎおんまもり)의 문양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견해 등이 있어 왔다. 그것뿐이다. 위 재배품종들이 일본 무궁화의 3대 품종의 하나라거나, 위 무궁화 재배품종을 본떠서 기온마모리(祇園守り, ぎおんまもり)의 문양이 만들어졌다는 따위의 인식은 일본에도 없다. 이것은 쉽게 검증될 수 있다. 무궁화가 일본에서 신화(神花)이기 때문에 토속신앙의 제례의식에서 무궁화를 본뜬 문양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맞다면, 木瓜紋(もっこうもん), 기온마모리(祇園守り, ぎおんまもり)과 櫻花紋(앵화문)으로 검색하면 당연히 해당 문양이 검색되듯이, 무궁화를 나타내는 각종 일본명에 紋(もん)을 함께 검색어로 하여 검색하면 당연히 무궁화를 본 뜬 문양이 있다면 그 문양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확인해 보시라.

    이상에서 일본의 문양을 근거로 하여 무궁화는 일본의 신화(神花)라는 『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살펴보았다. 무궁화는 현재 식물학에 근거하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중국 남부가 원산인 식물이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전래 받아 무궁화를 우리 방식대로 키우고 이해해 왔듯이, 일본은 일본대로 무궁화를 전래 받아 재배하고 그들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무궁화를 신화(神花)로 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거니와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가정하더라도 일본의 신화(神花)라고 해서 우리의 인식이 그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무궁화와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살피고 성찰하는 일이다. 그것을 누락하고 끊임없이 사실도 아닌 허구의 내용을 만들고 일본의 것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애꿎은 식물에 또 다른 과잉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자 하는 욕망에 찬 괴성과 구호만 요란하다.

    다음 글에서는 ​『두 얼굴의 무궁화』가 주장하는 아래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7. 일본이 한반도에 암암리에 무궁화를 심었다고?(식물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
    8. 일제가 무궁화 식재를 탄압한 적이 없다고?(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
    9. ‘무궁화 삼천리’라는 문구를 윤치호가 창작했다고?(무궁화를 둘러싼 우리의 문화에 대한 무지와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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