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대항하고
불평등 구조에 균열 내야”
[어쩌다 노학연대①] ‘연세대 비정규 공대위’ 이연재 대표를 만나다
    2020년 07월 27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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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학생 연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이 노학연대 학생 활동가들의 생각을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노학연대체에 속해있는 학생들은 어떤 무슨 고민을 할까요? 그들은 우리는 왜 노학연대 활동을 할까요? 대학이라는 공동체와 그 너머의 사회를 배제와 분리가 아닌 이해와 공감, 연대로 다시 정의하는 그들의 항해에 주목해 주세요.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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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회학 공부하고 있는 이연재라고 합니다.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 사회과학대학 교지 연희관 015B, 그리고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비정규 공대위)에서 활동 중입니다. 현재 비정규 공대위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 활동 중인 비정규 공대위는 어떤 단체인가요?

“비정규 공대위는 2008년에 만들어졌어요. 학내 비정규 노동문제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노동자와 학생들이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입니다. 최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 그리고 노동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인식개선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비정규 공대위의 활동 목적이 담긴 회칙이 만들어졌어요.

회칙을 만들기 전에는 주로 학내 이슈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학외 이슈에도 관심을 갖고 타 대학 노학연대 단체들이나 저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과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비정규 공대위 이연재 대표 ⓒ 이연재

– 처음 학내 노동문제에 관심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9년 하반기에 연세대학교 청소 용역업체인 코비컴퍼니(이하 코비) 퇴출 투쟁이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사실 왜 코비가 퇴출되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냥 오다가다 캠퍼스에 게시된 코비 규탄 현수막을 보며 ‘저건 뭘까?’ 하는 단순한 궁금증 정도만 있었죠.

그러다가 ‘아직도 반복되는 청소·경비노동자 문제와 코비컴퍼니 사태의 해결에 디딤돌이 되길 바라는 언론 모임'(이하 아코디언)이 주최한 청소노동자 공개 간담회를 가게 됐어요. 아코디언은 코비 사태에 관심이 있던 학내 언론출판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만든 모임인데, 처음에는 제가 속한 연희관 015B와 연세중앙교지 연세,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 이렇게 세 단체가 있었고 돌아가면서 코비 사태를 취재해 기획기사를 작성했어요.

저는 당시 기사를 직접 쓰지는 못하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우리 학교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정도만 알고 있었죠. 그러다 나중에 아코디언이 청소경비노동자 공개 간담회를 진행하게 된 거예요. 간담회를 SNS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하기로 해서 제가 카메라 설치를 맡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어요.

그렇게 청소노동자분들이 하시는 얘기를 직접 들어 보니까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던 거에요. 노동환경도 너무 열악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됐어요.

2019년 11월 아코디언 청소노동자 공개 간담회 ⓒ 아코디언 페이스북

– 청소노동자와 직접 함께하는 간담회를 통해 느낀 점이 또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단순히 그 자리에서 듣고 느낀 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날 준비한 의자보다 학우 분들이 더 많이 와주셔서 서서도 듣고 그랬었거든요. 그때 조합원 한 분께서 이렇게 학생들이 많이 와서 관심 가져주니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듣고 학생들이 같이 목소리를 내는 게 실제로 어떤 힘을 가지는지 확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노동자들이 싸우고 학생들이 시혜적인 태도로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같이 싸우고, 같이 목소리를 내고, 같이 공론장에 들어가서 대화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로고

– 그러다 어떻게 비정규 공대위에서 노학연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아코디언이 간담회를 진행할 때 중간 매개 역할을 해준 게 비정규 공대위였어요. 아코디언 사람들은 노동자 분들을 모르니까 섭외가 어려울 수 있었는데 비정규 공대위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와 연결해줬죠. 그 뒤에는 코비 문제가 끝나가는 듯하자 아코디언 활동도 함께 일단락됐어요. 그러다 연말에 비정규 공대위 측에서 아코디언 내 단체들에 같이 활동해 보자며 연락을 주셔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 비정규 공대위에 합류하던 당시, 연세대 내 전반적인 노학연대 상황은 어떠했나요?

“가입 후 회원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던 공대위 0차 회의 때 분회장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제 기억엔 저를 포함해 꽤 많은 개인과 단위들이 회의에 참석했어요. 그때 분회장님이 공대위가 다시 활력을 얻은 것 같아 좋다고 한 게 기억이 나요. 그 말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이전의 상황은 열악하지 않았었나 싶네요.

사실 저도 대학을 들어오고 4년이 지났는데 비정규 공대위란 단체를 잘 알지 못했거든요. 2015년 바람개비 투쟁(연세대 국제캠퍼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2014-5년 진행된 노동권 투쟁)처럼 규모가 크고 유명했던 투쟁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주체가 비정규 공대위였다는 건 몰랐었어요.

그런데 각자 정확히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함께 분노를 했고 또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해서 모인 단체나 사람들이 2019년 말에 많았어요. 이를 계기로 분회장님 말씀처럼 다시 활력을 얻지 않았나 해요.”

– 공대위 활동 초반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모든 게 처음이었어요. 투쟁 현장에서의 발언도 부담스럽고 기자회견도 처음이고. 아, 발언을 정말 못하겠는 거에요. 해본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 말할지조차도 모르겠고요.

그 정도로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하며 활동을 시작했는데 막상 집회나 투쟁 현장에 가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매 순간 무겁고 엄중하고 격하지 않았어요. 즐겁고 부드럽고 ‘으쌰 으쌰’ 하는 현장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갖고 있던 고정관념도 깨지고 연대의 힘도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 그런데 어쩌다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대표까지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대표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활동하는 건 좋은데 대표는 다르잖아요. 사실 이미 연희관 015B 편집장도 맡고 있고,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아서 ‘두 단체의 장을 맡는 건 불가능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부담스러웠죠. 당장 방금 들어왔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표를 맡나 싶고… 자신도 없고 겁이 났어요.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부담스러워서.

‘내가 너무 모르고, 투쟁 경험도 없어서 무언가를 기획을 한다거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동아리도 하다 못해 한 학기는 해 보고 대표를 하는데! 난 신입인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결국 내부 사정상 맡게 됐는데, 사실 내가 만일 진짜 하기 싫었으면 어떻게든 안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후회하진 않아요. 많이 배우면서 하고 있어요. 저는 판단을 내리는 대표가 아니라 질문하는 대표에요. ‘이거는 왜 그렇게 돼요?’ ‘왜 이런 방향이 아니라 왜 저런 방향으로 해요?’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해요.”

연세대 백양관 벽 한 편에 학생들의 코코투쟁 연대 메세지가 담긴 메모지들
(이하 사진은 연세대 비정규 공대위)

– 최근 ‘코코투쟁: 코로나 시국 코비의 만행에 들고 일어서다’를 마무리 지었잖아요. 투쟁에 대한 설명과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이야기 해 주세요.

“코코투쟁은 2019년 말에 끝난 줄 알았던 코비 퇴출 투쟁의 연장선이에요. 당시 학교가 코비 퇴출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코비와의 계약이 두 번이나 연장됐어요. 그것도 정식적인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요.

안 그래도 화가 잔뜩 난 상태였는데 결정적인 일이 있었죠. 학교가 코로나를 핑계로 코비의 계약을 2020년 12월까지 연장하면서 코비 소속 노동자들도 12월 만료되는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데요, 그중 조합원 한 분의 계약서에만 계약이 6월에 만료된다고 적혀있었어요.

노동자 전원의 계약기간이 12월까지 연장됐다는 총괄반장(회사 중간관리자)의 말을 듣고 계약기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셨던 해당 조합원 분은 5월 말에서야 영문도 모른 채 해고 통보를 받으신 거죠. 정황상 명백한 노조 탄압이었고 공대위도 해고 철회 투쟁에 함께했어요(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약 2주간 지속된 투쟁은 코비가 해당 조합원을 2020년 1월 1일 복직시키며 해고기간 동안 생계보전 차원으로 3개월치의 임금을 지급한다는 합의안과 함께 마무리되었습니다).

투쟁이 끝난 직후의 일화가 하나 있는데, 코코투쟁이 마무리된 바로 다음 날 연세대 분회 총회가 있었어요. 저도 참석해서 마무리 발언을 했고요. 사실 그 전날 공대위 회원들 모두 다 같이 낙담했었거든요. 너무 투쟁이 갑자기 끝나기도 했고, 결과를 둘러싼 맥락이 너무 복잡했어요. 저도 집에 가서 왠지 기분이 안 좋았었고요.

그 상태로 총회에 갔는데, 어쨌든 그 자리에서 학생 동지가 하는 발언으로부터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그래도 같이 싸워서 좋았다!’처럼 낙관적인 말들이요. 저도 분위기를 띄우고 싶단 마음으로 발언을 하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나왔는데 어떤 조합원 분이 저한테 빠다코코넛을 건네 주시면서 ‘학생들이 맨날 선전전에 와주고 같이 싸워줘서 너무 고맙다고 너무 힘이 됐다’고 얘기를 해주시는 거에요.

저 혼자 엄청 낙담하고 있다가 그 순간 낙관, 희망, 긍정적인 힘을 받았어요.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를 생각할 때, 은연 중에 학생이 노동자에게 원동력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때 제가 그 분께 동력을 얻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 그럼 최근 투쟁 외에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무엇인가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연세대학교 노학연대의 기록을 담은 책 <빗자루는 알고 있다>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를 진행했어요. 노동법이나 관련 법률 용어들을 함께 배우는 세미나도 있었고요. 회칙 제정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지난했던 그 과정,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것과 같던 시간들… 노학연대 단체인 숙명여대 ‘만년설’이랑 홍익대 ‘모닥불’의 회칙을 많이 참고했어요. 거의 베끼다시피 해서 도움을 정말 받았죠.”

– 반면에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 있나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항상 모여야 하는 최소 횟수로만 모이고 총회도 못했어요. 회의 외적으로 학생 동지들, 노동자 동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서 아쉬워요. 저희가 원래는 운동 소모임이나 휴게실 방문, 나들이 등 기획한 게 많았거든요.

그리고 또 아쉬운 점은 공대위의 실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회가 인력난을 겪고 있어요. 어느 단체나 동아리에도 있을만한 사정인데 여기도 똑같아요. 입장문 작성, 소식지 공유, 투쟁 현황 공유 등 일은 계속 쌓이는데 실무를 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다 보니 특정 인원에게만 일이 몰려서 힘들었던 적이 많아요.”

– 활동하며 힘들었던 기억도 있나요?

“취지에 공감하고 동의해서 비정규 공대위라는 플랫폼에 모인 사람들이더라도 서로 생각이 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비전도 다르니까요. 목표는 같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목표 자체가 좀 다를 수도 있고요.

사실 이건 외부 발제를 다니면서 느낀 건데요, 공대위 외부 사람들도 문제의식 자체에 공감을 안 하진 않아요. 이런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방식이나 목표를 되게 다르게 생각해요. 그렇다면 최소한의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에 기반을 두어서 연대를 넓혀나가야 운동이 힘이 생기고 성공을 할 수 있잖아요? 쉽게 말하자면,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한 번은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 발제를 다녀오고 너무 현타가 왔어요. ‘이 사람들은 운동의 필요성에도 공감하고, 학생을 대표하는 사람들인데 왜 목소리를 안 내려고 하지? 왜 이런 방식에 이렇게 반감을 갖지? 이 사람들을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데리고 오는 게, 같이 싸우자고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설득 자체가 힘드니까 차라리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하고만 운동을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죠.

그런데 그러면 공론화 없이 우리끼리 하는 걸로 끝날 것 같고요. 하지만 저희 목표가 그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세상을 바꾸고 싶은 거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도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건데… 설득이란 과정이 필수일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딜레마에요.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페미니즘도 그렇고 다 비슷한 거 같아요.

그런 것도 있어요. 외부 단체로 발제 들어갈 때 느끼는 건데요, 노동운동에 시혜적으로 접근하는 게 나쁘다는 걸 알지만 다른 이들을 설득할 때 그게 잘 먹히는 걸 아니까 이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전략적으로 얘기할 때가 있어요.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특정한 부분을 앞세우는 게 효과적이니까요.

시혜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말자고 계속해서 얘기하면서도, 한 편으로 대중의 관심을 확 받기 위해 그런 걸 앞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한 모순을 느껴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설득을 하려면 너무 힘들죠. 설득의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 보고 싶어요.“

제20차 연세대학교 중앙운영위원회 정기회의 의결사항 공유 카드뉴스
ⓒ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 학생들과 활동하며 겪은 어려움을 말해주셨는데 노동자들과 활동을 하며 오는 어려움도 있나요?

“가끔씩 제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집회 발언에서 ‘노동자를 탄압하면 안 된다는 것은 귀머거리도 알고 말 못하는 벙어리도 안다’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가 지금 노동의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장애인, 여성, 퀴어 의제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잖아요. 계속 같이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육’이라 말하긴 그렇지만 교육에 관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반대로 우리가 그런 표현을 사용하거나 행동을 할 때도 있고요.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그럴 시간과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아요. 세미나의 형식이든 단순히 경험 나누기, 대화해 보기 이런 식으로라도요. 그런 시간을 통해 또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 있을 거고요.”

–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학내 노동자들과 연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노학연대 활동을 시작하고부터 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옛날엔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어딘지 몰랐고요. 일단 평소에 잘 안 마주치니까요. 왜 못 마주치는지도 몰랐죠. 사실 뭐 그런 거잖아요, 주로 학생들 수업 시간에 청소를 하고 업체 측에서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시간에는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니면 이동경로가 다르다거나… 교묘하게 비가시화 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도 저랑 노동자들은 진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겪는 문제를 내 문제라고 생각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비정규 공대위 활동을 통해 우리 사이에 겹쳐지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의 범위가 되게 넓어졌음을 느껴요.”

“인원감축반대” 적힌 빗자루 들고 집회 참석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

– 요즘 가장 크게 다가오는 고민이 무엇인가요?

“아까 말했듯이 어떻게 연대를 넓혀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에요. 또 다른 고민은 하반기 투쟁이 있겠네요. 한 번 진짜 확 승리했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비정규 공대위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2학기는 잔뜩 바빠질 예정입니다. 열심히 배우면서 활동 해야죠. 그리고 공대위 덩치가 엄청 커졌잖아요. 지금 연대 회원이 50명을 훌쩍 넘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고 계신 만큼 회원들과 내부적으로 기반을 단단히 다질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코코투쟁 현장에 연대방문한 나침반 학생 동지들

–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에 기대하는 점이 무엇인가요?

“노학연대라는 말은 생긴 지 오래되었으나, 노동자와 학생의 진정한 연대, 좋은 관계맺기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나침반 활동이 노학연대의 새로운 모습에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노학연대 단체 없이 비정규 공대위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외롭고 앞이 캄캄했을 것 같아요.

게다가 나침반에 꼭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노학연대에 관심 있어서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 만나서 얘기 듣고 고민 나누고 하는 과정 속에서 ‘다음’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나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난 활동의 기억을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랜만에 제대로 되돌아보았는데요. 길면 길었고, 짧으면 짧았던 시간들이었는데 결코 저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던 것들,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우리’였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간의 투쟁과 연대의 순간들은 즐겁기도 하고, 물론 때로는 힘들고 제자리를 공전하는 듯한 순간들도 있었죠.

그러나 감히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차별에 대항하고 불평등한 구조에 균열을 내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꼭 말하고 싶어요.”

▲ [나침반] 노학연대를 하는 학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 나침반 학생 인터뷰 1부 ⓒ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

나침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kclaqk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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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학생 연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노학연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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