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추방·죽음의 역사를 넘어
일러스트로 보는 페미니즘 세계사
[책소개]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마리아 바스타로스, 나초 M. 세가라/ 롤러코스터)
    2020년 07월 11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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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 인물정보는 15%밖에 안 되는가?

전기(傳記)의 대부분은 남성이며, 영어 위키백과 인물정보 중 여성 인물정보는 15%에 불과하다. 남성이 주류였던 세계, 남성이 기록한 역사 속에서 여성은 기록되지 않거나 주석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으며, 남성의 보조적 역할로 설명되는 경우도 많았다.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는 이렇게 숨겨지고 침묵당했던 여성의 역사를 찾아내고,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사건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런 작업들을 운동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페미니즘의 흐름과 양상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

이 책을 쓴, 큐레이터이자 소설가인 마리아 바스타로스, 역사가이자 젠더 전문가이며 문화평론가인 나초 M. 세가라는 자신들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역사적 사건과 인물뿐 아니라, 시대와 영향을 주고받은 책, 영화, 미술, 연극, 공연 등 문화콘텐츠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또한 기존의 양식을 깨는 신세대 일러스트레이터로 주목받는 크리스티나 다우라는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강렬한 일러스트로 여성의 역사와 페미니즘의 흐름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화려하고 초현실적이며 대담한 일러스트, 입체적이고 단단한 구성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에서 눈에 띄는 건 단연 일러스트다.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스티나 다우라는 두꺼운 검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원색을 위주로 화려하게 색깔을 입혀 독자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때로는 만화를, 때로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다우라의 대담하고도 독특한 일러스트들은 인물이나 상황 묘사를 넘어, 그만의 해석이 더해진 각각의 독립된 작품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초현실적이면서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미지들은 페이지 밖으로 뻗어나갈 듯 꿈틀거리면서, 그동안 침묵당하고 외면당했던 여성의 역사를 현재의 우리 삶 속으로 끌어올린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시대순으로 진행되는데, 각 시대는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에서는 해당 시기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여성사적 사건과 인물을 작은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한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내용들이 긴 텍스트와 심플한 아이콘과 함께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개별 사건과 인물이 만들어낸 해당 시기에 대한 평가, 현시대까지 생생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여성과 그들이 해온 싸움, 페미니즘의 주요한 흐름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크리스티나 다우라의 일러스트가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속에서 “백인이 우리 언어를 뿌리 뽑아버렸다”고 말한 멕시코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안살두아는 백인의 손에 의해 혀가 뽑히고 있으며, 주류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었다가 쉽게 버려지는 여성의 노동력은, ‘리벳공 로지’ 캐릭터가 점차 갈라지며 산산조각나는 이미지로 표현된다.

역사를 바꾸고, 역사에 의해 지워진 전 세계의 여성 인물과 사건들

여성해방을 내걸고 성평등을 주장하며 전면에서 싸운 여성들만 이 책에 등장하는 건 아니다. 어떤 시기, 어떤 분야에서는 여성들이 존재를 인정받는 것 자체가 투쟁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마저 잊히기도 했다.

14세기 프랑스의 조산사 자코바 펠리시는 남자 의사에게 차마 진료를 받지 못했던 여성들을 돌보다가 무허가 의료행위로 재판에 넘겨졌고,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올랭프 드 구주는 자코뱅당의 공포정치에 반대했다가 처형을 당했다. 이집트의 후다 샤으라위는 1923년 수백 명의 여성 앞에서 히잡을 벗음으로써 아랍 페미니즘사에서 잊히지 않을 행동을 보여주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코란 사본을 불태웠다며 거짓 고발당한 뒤,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사망한 27세 여성의 장례식 때, 여성 활동가들이 이슬람 전통을 깨고 관을 직접 옮기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다른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운동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린햄 커먼 여성평화캠프 여성들의 미사일 반대운동과, 스웨덴 출신 영국 의대생 리찌 린드 아프 하게비가 1903년 동물 생체실험에 반대하며 일으킨 ‘갈색 개 사건’은 지금까지도 평화운동과 동물권 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참정권 운동, 성소수자 운동, 인종차별 철폐 운동 등에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지역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등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스페인에 맞서 싸운 콜롬비아의 재봉사 폴리카르파 살라바리에타, 나이지리아 반식민지/페미니즘 투쟁의 중요 인물이었던 푼밀라요, 남편을 잃은 인도 여인들의 자살 의식 등 세계 곳곳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책 속에 실려 있다.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읽다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에서는 역사적 사건, 인물과 함께, 최근 몇 년간 부쩍 관심이 부쩍 커진, 운동 및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의 흐름과 주요 인물, 주목할 만한 사회문화적 변화와 콘텐츠 등을 충실하고 깔끔하게 소개한다.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앤절라 데이비스, 주디스 버틀러 등의 활동과 주장을 상징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으며, 이집트, 스페인, 칠레 등 세계 곳곳의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인상적인 활동들도 실려 있다. 또한 사회주의와 페미니즘, SF소설과 페미니즘, 제3의 물결 페미니즘, 백래시, 페미니즘 예술 작품 등 주목할 만한 주제와 이슈를 간명하게 정리해내고, 최근 몇 년간 세계를 바꾸고 있는 #MeToo와 #BlackLivesMatter 운동의 과정을 소개하고 의미를 짚어보는 작업도 잊지 않는다.

평등과 자유의 물결을 거대한 파도로 만든 사람들

페미니즘 관련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어떤 이들의 기대처럼 여성의 목소리가 쉽게 잦아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 콘텐츠가 늘어나고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일시적인 유행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수천 년간 이어온 싸움을 통해 이제 겨우 작은 공간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격리되거나 추방되고, 때로는 죽임을 당한 긴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구조가 한순간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는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더 크게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또한 과거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싸워왔고, 또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의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자신의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채, 남성의 부속물로 여겨지며 사회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역사가 지금도 차별과 혐오로, 우리 사회와 일상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이어져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억압을 당하고 지배를 당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소수자와 비주류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얻기 위해 해온 투쟁이 인류의 문명을 조금씩 발전시켜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성은 가장 오랫동안 소수자와 비주류의 딱지를 붙이고 살아온 존재 중 하나이며, 그러하기에 여성의 투쟁은 인간해방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여자의 역사가 모두의 역사인 이유다.

지금 우리는 법적 절차와 언론, 해시태그가 필요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있다. 공공의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 더는 개인적 상처를 고백할 필요가 없는 세상, 마침내 #미투가 없는 세상을 말이다. _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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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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