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위태로운 지지자가
정의당에게 보내는 편지
[기고] 임한솔 사건과 비례 전략할당에 대한 생각과 소회, 걱정들
    2020년 01월 19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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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지금은 정의당에 애정이 있는 지지자, 하지만 (정의당의 행태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위태로운 지지자의 기고글이다. 당의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본인 동의를 얻어 익명으로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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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정의당 당원집회 모습(사진=정의당)

안녕하세요. 전 당원은 아닌 30대 직장인입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이기중씨가 조직해 2004년~2007년 민주노동당 당원 활동을 했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의당에 소액의 후원금을 보내는 수준의 지지자입니다. 당원도 아닌데 그것도 익명으로 전국위원회에 비레할당 관련 의견을 말씀을 드려도 될까 걱정스러웠고 지금도 주제넘은 일이 아닌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한솔 사태를 보면서 말씀을 안 드리면 후회할 거 같아 글을 전합니다.

대학생 시절, 서울 지역 민주노동당 학생 교류모임을 통해 임한솔씨도 2006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그를 오래 봐온 지인으로서 전두환 쫓아다닐 때부터 무언가 찜찜하긴 했는데 탈당 소식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말렸을 텐데. 그런데 말렸다면 내 말을 들었을까.’ 이 생각 때문에 묘한 죄책감마저 들고 있습니다.

지금 정의당에 대한 제 심정이 똑같으며 적어도 지금 글을 보내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 당을 위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보낸다는 점이 다릅니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이 글은 저를 진보정당의 지지자로 최초 조직했던 이기중씨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는 제가 글을 보낸 사실을 모릅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알고 지냈던 다른 이를 통해 전달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논의되는 비례대표 선출방식에 반대합니다

민주노동당 이후 한 번도 당적을 가진 적 없었습니다. 이유는 (1) 진보신당 창당 시절 전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은 하지 못한 백수였고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당비를 내기 너무 미안했습니다.(2008년 총선 때 노회찬 의원에게 2만원 후원한 게 당시 제 경제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2) 취업을 했는데 당적이 원천 금지된 직장은 아니지만 이해충돌을 고민해야 하는 곳이라 선뜻 당원이 되겠다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3)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던 진보정당 행태에 실망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4) 민주노동당 당원 활동을 4년 해보니 당원이란 게 굉장히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 달에 1만원씩 당비만 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당직선거도 하고 당내 이슈도 파악해야 하고 등등 제대로 당원활동을 하려면 자기 시간을 따로 내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 당적을 가진 사람들과 또 그 당원들을 조직하는 활동가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권한과 비전을 주는 정당에게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의당을 보면 비관적입니다.

투표권 획득 이후 2012년 총선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진보정당을 찍었습니다. 진보정당을 찍고 싶지 않다는 수많은 논리적 이유가 있었지만 다른 정당을 찍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이기중, 임한솔 때문입니다. 제가 본 직업정치인이 꿈인 첫 번째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통해서 정치인이라는 것이 ‘검사나 교수 등 전문직으로 유명세를 떨치다 당에 영입되는 높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됐고, 그런 이들이 정치인이 되는 게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지역 활동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진보정당 정치인들은 더욱 힘들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전혀 찍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당원-지지자이기 전에 인간적으로 유대관계가 있는 이기중, 임한솔 고생하는 게 눈에 밟혀서 진보정당 찍었습니다. (2012년에는 그 임계점을 넘었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도 솔직히 2020년 총선을 기권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립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정의당의 젊은 전현 구의원들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가 바로 ‘지역에서 조직된 유권자’의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이슈로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한 악재가 터져도 조직화 과정에서 맺어진 끈끈한 인연 때문에 당을 못 떠납니다. 뭐 한마디로 ‘의리’겠죠. 제가 아는 사람이 이기중·임한솔일 뿐이지 전국에 그러한 활동가들 많을 것이고 그렇게 조직된 유권자도 적지 않은 수이며, 진보정당의 종자 같은 유권자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진보정당 경쟁력도 거기 있었습니다.

이기중·임한솔이 26세쯤이던 시절 모임에서 ‘진보적인 외교 정책이 가능할까’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습니다. 외교란 철저한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영역인데 여기서 진보적인 정책이라니. 머리 얻어맞은 듯 충격적이었고 신선했습니다. 지금의 저보다도 훨씬 어린,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이들은 자신들이 40대쯤 되면 당은 집권을 노릴 정도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집권정당이 되려면 진보정당이 강점이 있던 노동, 환경, 복지, 성평등 등의 이슈뿐 아니라 외교, 안보, 국방까지 나름의 담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얼마나 패기 넘치는 20대입니까.

유권자로서 당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저를 붙잡았던 게 그런 기억들이고, 또 유권자로서 당이 원망스러울 때가 그렇게 큰 꿈을 꾸었고 젊음을 당에 갈아넣었던 활동가들을 당이 헌신만 요구한다고 느낄 때였습니다. 저 사람들이 중진이 되면 당이 좀 달라질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임한솔씨는 그때도 한탕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서울대생이던 저에게 외무고시를 봐서 ‘우리 쪽 사람’으로서 외교부 고위 관료가 되라는 것을 주문하긴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해당행위를 한 걸 떠나서 스스로의 정치생명을 끊어먹었고 여기에 대해 추가로 논평할 필요조차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의 선택과 당의 전략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아

문제는 임한솔씨가 극단적으로 행동했을 뿐 제 눈에는 임한솔씨의 개인 영달을 위한 전략과 정의당의 전략이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당 지도부에서는 개인 영달이 아니라 당의 미래를 위해 숙고하고 선택한 전략이겠지만 알맹이가 같습니다. 꾸준한 지역활동을 통해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지상전. SNS에서 화제가 되는 정당이 되는 것. 그리고 거기에 기여한 사람들을 우대하는 것 등등이 제가 느낀 창당 후 정의당의 모습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하셔도 유권자가 그렇게 느낀다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비례 논란만 보더라도 실제로 그러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지 못할 것입니다. 14년 전 민주노동당에 인생을 바칠 각오가 돼 있던 20대 당원들이 ‘진보정당만의 외교안보 전략’을 고민했지만 2016년 정의당은 김종대 의원을 영입하는 것으로 국방전략을 ‘갈음’했습니다. 김 의원 개인은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한 것과 별개로, 지금 정의당만의 외교안보 전략이 있느냐 하면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풀뿌리 지역조직과 진성당원제는 진보정당의 출발점이자 특색이지만 시대적 환경이 변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정치와 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개방형 국민경선 등을 겪은 유권자 집단 전체가 유사한 형태의 참여를 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외부인사 영입은 당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상전 없는 공중전의 결과는 어떠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졸업하고 취업한 이후 제가 사는 지역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해 보고자 지역 당원모임에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위에 기술한 (1)~(4)의 이유로 당원 가입은 늘 망설이는 상태였지만 지역조직이 괜찮았다면 가입도 좀 고려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초기 당원으로 초기 시의원을 했으며 평판도 좋았던 지역 활동가가 민주당으로 넘어간 상태라 지역에 지역위가 없었습니다.(아마 있었더라도 제가 모를 정도로 사실상 활동정지 상태였습니다) 몇 년의 공백 끝에 새로운 인물이 정의당 지역위원회를 부활시켰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한 것은 인정하지만 똑똑하다, 한국당을 싫어하는 것 말고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인간적으로는 좋아할 수 있었으나 정의당 후보로 시장선거에도 출마했던 그 역시 2017년 선거 때 조직 전체를 이끌고 민주당으로 넘어갔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순 없습니다. 당이 그런 선택을 합리적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지역위가 이렇다 보니 지역에서 전혀 당원이 조직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당원 가입 생각을 접었습니다. 당원 생활을 하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지역위 사람들인데, 지역위 잘 안 돌아가는데 가입하면 의미 있는 경험은 없고 피곤하기만 할 뿐. 제가 좋아하는 정치인들 개인적으로 후원하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당원들만 할 수 있는 비례후보 선출까지 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저를 당원 가입시킬 방법에 대해 지역위는 신경 안 써도 되고 중앙이슈만 쫓아가며 당원활동 할 수도 있다고 설득하는 것인데, 그쯤 되면 이미 진보정당하고 멀어졌다 볼 수 있으며 중앙에 불쾌한 이슈가 있으면 진작에 탈당했을 것입니다.

정의당은 매력적인 정당인가? 그렇게 나아가고 있나?

그건 그렇다치고, 정의당이 투표할 만한 매력적인 정당이 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유권자로서 제가 설득하려 해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묻곤 합니다. ‘일단 한국당의 집권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어?’(한국당을 떨어뜨리자가 한때 정의당의 선거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전 오비이락 캠페인 별로였습니다.)

‘정의당과 민주당이 별 차이가 없는데 그러면 당선가능성 높고 힘있는 정당 찍어야 하는 것 아니야?’, ‘정의당은 심상정 말고 인물이 있어? ’정의당 사람들은 다르다고? 뭐가 다른데. 당췌 만날 수나 있어야지.‘ 이 모든 반박에 저는 반론을 할 수가 없고 그건 전국 각지의 활동가들이 더 절절하게 느낄 것입니다. 그 반박을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적 유대를 쌓아서 ’너 때문에 찍는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뿐이고 수많은 활동가들이 그렇게 살고 있고 한때는 임한솔씨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활동가들 중 중앙당의 이재영, 오재영씨는 진보정당의 암흑기를 온몸으로 버텨내다 생을 일찍 달리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석패한 40대 중반(추정) 활동가는 제가 페이스북으로만 봐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때 이후로 의욕을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임한솔씨가 원래 한탕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해도 이런 환경들이 그의 한탕주의를 아주 나쁜 형태로 부추겼다고 생각합니다. 그 면에서 이 사건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이벤트나 공중전을 통해서도 유권자들을 모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모은 유권자는 쉽게 떠나갑니다. 공중전도 자금동원력이 더 큰 민주당이 더 잘하는데 굳이 공중전을 보고 당에 유입됐다면 당의 철학을 제대로 공유했다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선명성 경쟁‘을 기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시에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벤트로 입당했다고 하더라도 지역활동을 하면서 당에 대한 애정을 쌓아나가는 것이 당원이 오래 가는 비결입니다. 2014년 무렵 페미니즘 논쟁으로 당원들이 우수수 탈당한 사례를 벌써 잊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위가 탄탄하게 조직됐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보통은 지역위에서도 아수라장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잠시 갔던 저희 동네 지역위도 ’정의당은 동성애 옹호 아니에요?란 질문에 지역위원장이 제대로 답을 못해서 제가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민주당 1호 공약이 ’무료 와이파이 확대‘일 정도로 의제가 보이지 않는데, 보수정당은 지리멸렬한데, 조국에 실망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 좋은 조건에서 사람들이 정의당에 그 호응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선거법이 개정됐고 비례시장이 활짝 열린 거 같지만 사실 정의당은 아래로부터 무너지는 중인지 모릅니다.

“정의당에 심상정 말고 누가 있냐?” 다른 분도 아니고 엄마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종철 있잖아요”라고 말하기엔 그분조차 비례대표가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없고 일반 유권자의 세계에서 철저히 무명입니다. 이거 진보정당의 비극입니다. 대학생 때 강상구씨 책으로 세미나를 했는데 저번 선거에서는 김제에 가더니 여전히 당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구로에서 3선한 김희서 의원, 국회의원 되면 누구보다 잘할 거 같은데 당은 너는 계속 구로에서만 출마하다 장렬히 전사하라고 할 거 같습니다. 진보정당에 인생을 갈아넣은 ’70년대생‘들이 양보만 하면서 아직도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을 저 같은 ’80년대생‘들이 당 안팎에서 보고 있습니다. 당을 젊은이들의 정당, 미래 정당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자스민, 박창진 이런 분들의 입당을 저도 환영합니다. 솔직히 정의당에 대한 애정이 바닥을 향해 가다가 이자스민 영입 때문에 다시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에게 호감을 가질 만한 유권자라면 당이 내부조직을 탄탄히 하지 않고 이벤트만 반복하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뼈대가 튼튼해야 영입된 분들도 힘을 발휘합니다.

왜 정의당에서 싸워가며 선출직 지방의원으로 경력을 쌓은 분들이 그 자체가 ’핸디캡‘이 돼야 합니까. 소선구제를 개혁하지 못한 것은 힘이 부친 결과라고 해도 당은 활동가들을 지역에서 갈아넣는 것을 반복해서 봐야 합니까. 저처럼 ’의리‘ 때문에 당을 못 떠나는 유권자의 인내심이 이렇게 바닥으로 가고 있습니다. 심각한 사인인 것을 당은 알아야 합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그나마 못 떠나게 붙잡고 있는 것이 ’풀뿌리로서 조직된 경험‘입니다. 당은 그걸 홀대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작에 임한솔씨에게 충고하지 못한 한으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나마 말씀드립니다. 집권하면 제대로 된 ’진보적 외교정책‘ 펼쳐보자고 저더러 외무고시 권했던 임한솔씨는 이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습니다.(제가 외교관이 됐다면 나중에 임한솔, 이기중 다 제치고 제일 먼저 비례공천을 받았을까요. 그것도 생각해보면 대단히 씁쓸한 일입니다) 그간의 행적에도 문제가 좀 있었고 당의 가능성이자 리스크이기도 했던 그였지만, 헌신적인 모습도 봐 와서 대단히 속상합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임한솔의 노선과 정의당의 매번 선거전략 노선은 정도의 차이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정당이 되려면 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당신들의 가능성은 거기 있습니다.

필자소개
아직은 정의당을 지지하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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