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 권고 반영
    산안법 제대로 개정해야"
    위험의 외주화 및 도급 '금지' 취지···실효성 없거나 범위 너무 협소해
        2020년 01월 15일 06: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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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시행을 하루 앞두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한다는 것이 개정 산안법의 취지였으나, 안전한 노동현장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도급금지 범위가 너무 협소한 탓이다. 정부가 도급금지 범위를 대폭 확대하라고 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하고 산안법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노총, 김용균재단,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40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15일 오전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내세운 산안법 개정안은 국가인권위가 밝힌 것처럼 ‘위험의 외주화로 인권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 가치인 생명과 안전이 하청 노동자에게 보장되지 않고’있다”고 비판했다.

    서울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 사진

    인권위는 지난해 11월 6일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안’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권고안을 통해 고용노동부에 “개정 산안법에 따르더라도 2016년 구의역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 2018년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등 위주화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공감대가 컸던 사건에서 사망노동자가 했던 작업은 여전히 도급(하청)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화된 산업구조에서 각 산업별 특수성과 작업요소 (작업장, 작업공정, 작업환경, 기계 및 설비)등에 따라 다양한 유해위험 요인이 존재하나, 개정 산안법은 여전히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짚었다.

    인권위는 “산업구조의 변화 및 각 산업별 특수성, 작업장, 작업환경, 도구, 기계·설비, 작업공정과 같은 물질적 작업요소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도급이 금지되는 유해위험작업의 범위를 확대하기 바란다”고 권고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사내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를 명시하는 등 관련 규정 개정과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 확대 방안 마련, 산재보험료 원·하청 통합관리제도 확대 등도 권고했다.

    노동부는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에 오는 20일까지 답변해야 한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사내 하도급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라는 내용의 (지난해 11월) 인권위 권고안은 2008년, 2012년, 2015년 인권위 권고안에 기초한다. 계속해서 이러한 권고가 나온다는 것은 정부가 이 권고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뜻이고, 인권침해의 가해자 위치에 올라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노동부 이 사실에 반성해야 하고 존재 목적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권고를 적극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하루에도 노동자가 6명씩 죽고 있다. 노동부가 답변을 미루는 동안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이 죽어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만약 법과 현실을 핑계로 희미한 답변을 내놓는다면 노동부는 하청노동자의 죽음의 공범”이라고 경고했다.

    한인임 일과 건강 사무처장은 “외주화로 인해 (정규직보다) 8배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상시지속업무와 위험작업 도급을 금지하겠다며 2년 반을 보냈지만 사내하도급이 없는 기업이 없었고 공공부문은 다 자회사로 바뀌었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도급 자회사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위험은 관리되지 않는 게 아니라, 도급이라는 이름을 통해 위험을 만들어 내고 관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처장은 “도급을 줄 수 있는 사업장은 대체적으로 대형 사업장으로 공공과 민간 다 합쳐도 전체 노동자 수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의 70%의 노동자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의 개정 산안법”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개정 산안법상 도급금지 업무를 하는 사업장에선 일찍이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 현대제철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링크)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실장은 “개정 산안법이 외주화로 죽어가는 노동자를 보호할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 일부 도급금지 범위에 포함된 사업장에서 무력화 시도를 하며 법을 사문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산재사고사망 절반 감소’를 주창한 첫 해인 2018년에는 200명이 넘게 산재사망이 늘었다. 노동부는 ‘산재사고사망 절반 감소’ 핵심대책으로 주창해 왔던 개정 산안법의 현장 무력화 대책을 수립하고, 후퇴와 개악을 반복한 산안법과 하위법령의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그 첫 번째 출발이 국가 인권위 권고 이행”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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