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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이야기] 『왕자와 드레스메이커』(젠 왕/ 비룡소)
        2020년 01월 13일 1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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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친구

    어린 시절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지만 너무 예쁘게 생겨서 가장행렬 때마다 여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유쾌하고 농담도 잘해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남녀 공학인 초등학교 때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남자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그 친구는 우울해졌습니다. 아마도 그 친구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도대체 누가 왜 그 친구를 힘들게 만들었을까요?

    왕자가 무도회를 연대!

    아르투아 지방의 클레멘타인 백작 부인이 조카인 벨기에 왕자 세바스찬을 프랑스 파리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왕자를 위해 무도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무도회 전날, 파리의 솜씨 의상실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소피아와 엄마가 찾아옵니다. 말을 타다 드레스를 망친 소피아를 위해 당장 새 드레스가 필요하게 된 거죠. 의상실 사장은 내일 아침까지 드레스를 만들어 주겠다며 말단 재봉사인 프랜시스에게 일을 맡깁니다. 프랜시스는 소피아에게 어떤 드레스를 원하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잔소리쟁이 엄마 때문에 심통이 난 소피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몰라. 알아서 해. 아니, 그냥 완전히 무시무시하게 만들어 줘. 악마의 새끼처럼 보이게”

    -본문 중에서

    다음 날 소피아의 드레스는 무도회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프랜시스가 만든 드레스는 소피아가 요구한 대로 정말 무시무시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드레스 때문에 프랜시스는 의상실에서 해고됩니다. 프랜시스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드레스를 만들었지만, 진짜 고객은 돈을 내는 소피아의 엄마였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프랜시스가 해고되는 그 순간, 또 다른 사람이 의상실로 프랜시스를 찾아옵니다. 프랜시스의 드레스가 마음에 든 어떤 귀부인이 프랜시스를 전속 드레스메이커로 고용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도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그 무시무시한 드레스를 좋아하는 귀부인은 누구일까요? 이제 프랜시스는 어떤 드레스를 만들게 될까요?

    귀부인이 아니라 왕자라고?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바로 이 귀부인이 바로 왕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귀부인이 왕자가 아니라 정말 귀부인이라면 아마도 이 작품의 제목은 귀부인과 드레스메이커였겠지요. 이 작품은 여성 드레스를 좋아하는 왕자님과 타고난 패션 디자이너 프랜시스의 이야기입니다. 편견과 계급을 초월한, 사랑과 우정의 드라마입니다.

    작가 젠 왕은 드레스를 좋아하는 세바스찬 왕자를 통해 성 소수자 가족의 사랑과 슬픔을 발랄하고 유쾌한 코미디로 그려냈습니다. 더불어 시대를 앞서간 패션 디자이너 프랜시스의 아픔과 성장도 담담하게 담아냈지요. 젠 왕의 이 발랄하고 기발한 이야기는 독자에게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컨대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알렉산더나 칭기즈칸이 여성의 옷을 좋아하는 성 소수자였다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많은 왕들이 여성의 옷을 좋아하는 성 소수자였다면 아시아의 역사는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 또, 패션과 디자인은 단지 유행일 뿐일까? 아니면, 패션과 디자인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정작 시장을 움직이는 건 패션과 디자인으로 포장된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해 말고 존중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일 뿐 꽤 많은 성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선배이고 친구이며 후배이며 가족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만난 성 소수자 친구들은 모두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보고 그 친구들을 이해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말고도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외모가 왜 남들과 다른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처럼 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지는 않습니다. 더불어 남들에게 제 외모를 닮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존중의 영역이라는 것을 날마다 배웁니다.

    제가 수염을 기른 것은 약 일 년 전 어느 날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베면서부터입니다. 그전에도 수없이 베였지만 그날 처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원래 털이 많은데 왜 나는 날마다 털과 싸우고 있을까?’ 그날 처음 저는 저의 외모를 존중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북극곰이 인간을 존중하듯이

    작가 젠 왕은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라는 코믹 순정만화의 재미 안에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담아냈습니다. 무엇보다 독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는, 낙천적이고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외모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고 있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외모도, 취향도, 성격도, 배경도, 꿈도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영혼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입니다. 태양이 지구들 존중하듯이, 바다가 고래를 존중하듯이, 북극곰이 인간을 존중하듯이, 사람들이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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