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중대한 시험’ 발표···ICBM 연관?
    정세현 “북한, 새로운 길 갈 가능성 커”
    미-러-중-북의 동북아 핵군축 협상 제안 가능성도
        2019년 12월 09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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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지난 7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전략적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히면서 북미 간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동창리 엔진시험장은 과거 비핵화 조처로서 북한이 영구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곳으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도 관련이 있다.

    북한이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으면 북미 대화를 중단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미국에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전날인 8일 담화에서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 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고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대변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했다”며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변인은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동창리에는 서해위성발사장과 엔진시험장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처로 이들 시설의 영구 폐쇄를 약속한 후, 미국에 상응조처를 요구해왔다. 특히 동창리 시험장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ICBM 엔진 개발과도 관련이 있다.

    이번 시험은 북한이 과거 약속했던 비핵화 조처를 모두 거둬들이겠다는 미국을 향한 압박인 셈이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도 시험 당일 낸 성명에서 미국이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며,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김정은은 너무 영리하다. 그리고 그가 적대적 방식으로 행동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미국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를 무효로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내년) 11월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상황 어렵게 만들고, 한국에 달래라는 거는 비현실적”

    북한의 시험이 진행된 당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에게 ‘북한 달래기’를 제안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9일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 “지난 5일부터 동창리 미사일 발사, ICBM 발사 현장의 동향이 미국 위성에 잡혔던 것 같다.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우리 시간으로 7일 오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한테 먼저 전화를 걸어서 ‘금년 안에 북한이 좀 위험한 짓을 할 것 같다’, ‘한국 정부가 무슨 중간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리라고 본다. 문 대통령한테 뭔가 미션을 줬을 것”이라며 “특사를 보내든지 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이야기 같은데 지금은 미국이 셈법을 바꾼다는 보장이 없으면 북한은 입장을 못 바꿀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작년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에서 합의했던 것들을 미국의 견제로 하나도 이행 못 했다. 유엔 대북 제재를 핑계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도 못 하게 했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작업도 착공식만 하고는 그 이후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며 “북한이 이걸 보고선 ‘이미 한국 정부에 기대를 접었다’는 험악한 말을 했다. (미국에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북한이 위험한 짓을 할지 모르니까 어떻게 좀 달래 봐’ 하는 식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 셈법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확실하게 해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든지 아니면 특사를 보내서 셈법을 바꿀 테니까 일단 나와라, 하는 식으로 보장을 해 준다면 몰라도 그게 없으면 북한은 결국 새로운 길을 가는 쪽으로 이미 방향 설정을 해 놨기 때문에 그 입장을 바꾸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수석부의장은 미국이 북한에 쓸 카드도 사실상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의 내용은 뻔하다. 경제제재나 압박을 더 강화한 것 아니면 군사행동인데 군사행동은 어차피 못 한다. 한반도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하면 중국이 절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를 트럼프가 모를 리가 없다”며 “그럼 경제제재밖에 없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라가서 모닥불 피우고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더라도 이게 끝이 아니다’, 말하자면 잘 참고 견디면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략적 실패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 자신은 말을 바꿔도 되지만 독재 권력이고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의 최고 권력자의 말은 뒤집을 수 없다”며 북한이 정한 시한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이 정치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게 전략 실패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에 관한 부정적 전망이 많다.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북한이 미국의 한계를 건드리고 있다”며 “실무 협상 정도는 올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얘기를 해 왔지만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고 있다. (북한이 연말로 시한을 정했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고 북한과 미국이 판은 깨지 않았지만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 실제적인 협상이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미국이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까지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예고한 대로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 사거리가 더 나가는 ICBM이라든지, 고체연료를 써서 ICBM을 여러 대를 한꺼번에 발사하는 장면을 보여줄 거다. 그리고 ‘우리는 핵 강국에 이어서 ICBM 강국,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강국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협상 안 한다’며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등 네 나라의 동북아 지역에서의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황교안과 심상정, 정반대 기조로 북미관계 정부 개입 요청

    정치권에선 북한의 도발을 우려하는 한편 미국의 입장 전환을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가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상무위원회의에서 “어렵게 헤쳐 온 고난의 길이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설령 북한이 미국의 셈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핵무장의 길로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의 판 자체를 깨버리겠다는 북한의 행태는 평화의 염원을 간직해 온 민족에 대한 중대한 배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협상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재자가 아니라 방관자가 되는 것”이라며 “더 이상 동맹의 등 뒤에서 기다리는 자세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 평화의 창문이 닫히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정부의 역할을 촉구했다.

    심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 일괄타결과 선비핵화 만을 내세워 온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며 “아예 집무실을 판문점으로 옮기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끝장을 보겠다는 결기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시험이 ICBM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도발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것”이라며 “북한이 그동안의 비핵화 협상에서 폐기하기로 했던 동창리 발사장에서 도발을 감행한 것은 우리와 미국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북핵 폐기 협상이 진행되면서 북한의 이런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제재를 푸는 데만 관심을 뒀다. 이런 인식과 태도로는 북핵문제 해결에 한걸음의 진전도 없으리라고 하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책전환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대화 제스처와 도발을 반복하는 행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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