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망한 욕망과 삶의 본질
    [그림책] 『가난한 사람들』(레프 톨스토이. 키아라 피카렐리/ 담푸스)
        2019년 12월 09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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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캄캄한 밤입니다. 바닷가 오두막에 작은 불빛이 피어오릅니다. 파도가 세차게 밀려옵니다.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기세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어부의 아내인 잔나는 촛불을 켜고 남편을 기다립니다.

    남편은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늦은 밤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쏴~ 철썩, 쏴~ 철썩. 소름끼치도록 매서운 파도 소리가 들립니다. 잔나의 시름이 깊어갑니다. 낮에는 바람만 세차게 불더니 밤이 되지 폭풍우가 밀려옵니다.

    잔나의 가족은 가난합니다. 남편은 날이 좋거나 나쁘거나 쉬지 않고 바다에 나갑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여전히 가난합니다. 먹을 거라곤 남편이 잡아오는 물고기뿐입니다. 그리고 많은 어부들이 폭풍우를 만나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만약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잔나는 두려운 마음에 밖으로 나옵니다.

    때마침 바람에 날린 물건이 이웃집 문을 두드립니다. 그제야 잔나는 아픈 이웃이 생각납니다. 아픈 이웃은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잔나는 등불을 들고 이웃집으로 향합니다. 문을 밀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침대 위에 누운 이웃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21세기에 다시 보는 『가난한 사람들』

    19세기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서사시 『가난한 사람들』은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톨스토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소설로 각색합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마침내 『가난한 사람들』은 이탈리아 작가 키아라 피카렐리에 의해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만약 오늘날 누군가 이웃집에서 죽은 이웃과 살아있는 아이들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죽은 이웃의 장례가 치러지고 아이들은 친척이나 보육원에 맡겨질 겁니다. 참 편리하고 현대적인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진심으로 해야 할 일을 제도가 기계적으로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21세기 다시 만들어지고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사회복지제도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회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제도에 맡긴 채 방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역마다 노숙하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우리는 대부분 모른 척하고 넘어갑니다.

    무엇보다 21세기에도 빈곤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어마어마한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한쪽에서는 몸 하나 누일 집이 없어서 얼어죽는데 한쪽에서는 빈집들이 쌓여가는 현실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신성하게 그리다!

    키아라 피카렐리의 그림은 기독교 성서의 내용을 다뤘던 수많은 명화들을 닮았습니다. 헐벗고 가난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모두 신성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닮고, 때로는 마리아를, 그리고 때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닮았습니다. 잔나의 가족들은 마치 천사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천국은 어떤 곳일까?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아무 고통도 없는 곳이 천국일까? 또한 천사는 누구일까? 전지전능한 힘으로 나를 도와주는 존재일까?

    저는 그 답을 『가난한 사람들』의 그림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천국은 함께 사는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천사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천사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우리 모두가 천사인 것입니다.

    허망한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그림책 『가난한 사람들』은 허망한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 모두에게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노래한 서사시가 레프 톨스토이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 이야기로 탈바꿈하더니 이제 키아라 피카렐리의 손으로 아름다운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직원들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계약직은 사라지고 모두 정규직이 되겠지요. 금융업을 하는 사람들도 고객들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자는 사라지고 모두 사람에게 투자하겠지요. 건설업을 하는 사람들도 집 없는 이웃들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겁니다. 투기는 사라지고 이웃을 위한 집만 지어지겠지요.

    누군가는 저를 공상가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상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되어야할 우리의 꿈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가난이나 이윤이 아니라 바로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특정한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자연을 위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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