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식 제도 아니라
‘진보정당’답게 선출해야
[기고]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개방형 경선제 도입은 부적절하다"
    2019년 11월 23일 08: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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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는 당내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할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쟁점에 대해 정의당 당내 의견그룹인 ‘평등사회네트워크’가 기고문를 보내와서 게재한다. 평등사회네트워크는 당 전국위원회가 개최될 때마다 주요 안건에 대한 검토 의견을 공개해 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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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비례후보 경선에 필요한 것

11월 21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에 의한 비례대표 후보 직접 선출’을 내걸고 ‘국민공천심사단’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거대 정당들은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라고 해서 국민에 의한 후보 직접 선출 방식이 심심찮게 있었다. 선거가 돌아올 때마다 유권자들이 직접 당의 공천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이벤트이자 유행인 것이다. (과거 거대정당들, 특히 민주당은 개방형 경선, 국민참여경선을 주로 지역구의 국회의원 후보나 단체장 후보 선출과정에 활용하다가 내년 21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편집자)

그러한 유행에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편승하려 하고 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진보정당의 기치는 “당원”이었다. 진보적 이념과 노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고, 그 당원들이 사회의 여러 현안에 결합하고, 그 속에서 만난 시민들과 연대하며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선순환의 중심에는 진성당원이라고 불리는 “당원”이 있었다.

2020년 21대 총선을 5개월여 앞둔 지금,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 “당원”이라는 개념을 희미하게 만들 개방형 경선제가 논의되고 있다.

원래 우리나라의 기성정당에는 당내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당대표가 지역위원장을 임명하고 지역위원장은 대의원을 임명했으며 임명된 대의원이 총선 후보를 선출하는 기이한 제도 하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줄을 서는 것이 당연했다.

기존 정치권의 이런 풍토에서 진보정당의 진성당원 제도는 다른 기성정당들의 당내 민주주의를 자극했다. 그 과정에서 기간당원제도나 각종 당원 참여 제도가 생겨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성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불완전했고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특정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닌 일반유권자들을 참여하게 하는 개방형 경선제도(국민참여경선)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논의되는 개방형 경선제도는 다른 정당의 방식을 단순하게 이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의 정의당에 정말 필요한 처방이 아닌 것이다.

당에서 발굴, 훈련, 성장한 활동가와 정치인 아니라 외부 명망가에 의존

개방형 경선은 당내에서 꾸준히 당원들과 소통하며 성장한 당 활동가보다 언론에 많이 나오는 명사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우리는 정치권에 ‘독일식 선거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당에서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식 정당시스템은, 오픈프라이머리와 같은 이벤트로 외부인사 영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식과 확연히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민당의 빌리브란트, 슈뢰더, 현 총리인 기민당의 메르켈까지 모두 십대부터 당 활동을 시작해 당에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과연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한 정당에 이런 인물들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부동산 사업자가 대통령 후보로 갑자기 등장하거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유명 변호사나 기업인이 당의 얼굴이 되지는 않을까?

또한 개방형 경선에 참여하는 비당원들이 선거기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후보들 간의 노선, 정책 등의 차별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가능할까? 결국 TV나 신문기사에 자주 나온 유명인에게 인기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언론 노출이 가능한 사회적 배경이 없는 청년이나 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는 벽을 쌓는 제도가 될 것이다. 할당 등 다른 방식으로 대안을 찾는다고 해도 모든 사회적 약자를 할당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후보 간의 노선과 정책보다 개인의 유명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먹고살기 바쁜 평범한 노동자가 정의당의 개방형 경선에 스스로 참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많은 비율이 중산층 이상이라는 조사가 있듯이 스스로 개방형 경선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활동가이거나 정치적으로 입장이 어느 정도 명확한 사람일 것이다. 정의당이란 작은 정당의 비례후보 선출까지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활동가이거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에도 참여하고 정의당의 경선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정당의 경선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정의당의 비전을 보여주는 결과를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개방형 경선과 어떤 차별화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거대 정당들과 선거인단, 후보 규모 등이 비교될 것이다. 여러 정당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후보 선출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우리는 굳이 이 경쟁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개방형 경선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진정 정의당의 정체성과 비전을 내세울 후보를 뽑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여러 당의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대변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선거 날 일하다가 사용자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투표장에 나와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일이 바빠서 투표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의당의 역할은 그들이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투표할 수 있을지, 선거 날에 한 사람이라도 더 쉬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유권자에게 여러 번의 결정권을 부여할수록 오히려 유권자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권자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날 가장 크고 강한 최종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이 유권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조직이 아닌 정당의 당원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왜 정당인가? 좋은 후보를 공천하는 것은 정당으로서 갖는 권리이자 책임이다. 왜 우리가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를 저버리려고 하는가? 왜 우리가 지어야 할 책임을 유권자에게, 시민에게 돌리려고 하는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한 바와 같이 개방형 경선은 정당보다 개인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제도이다. 개인만 남고 정당의 역할은 약화되어 한국사회에 한줌 남은 진보정당의 역할마저 바래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유명한 스타가 아닌 진보정치를 이끌 리더가 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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