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등 데이터 3법,
    개인 정보인권 침해, 기업은 최대수혜
    공청회도 없이 추진···'의료민영화 수순' 비판도 제기
        2019년 11월 12일 09: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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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데이터 3법’ 중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개인정보의 ‘보호’보단 기업의 ‘활용’에 무게를 실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와 관련해 공청회 등 사회적 논의는 이뤄진 적이 없다. 여야 비쟁점 법안이라 상임위는 물론 본회의까지 큰 무리 없이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데이터 3법 중 해당 상임위 통과가 임박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현행법에 없는 ‘가명정보’라는 개념을 신설해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상업·산업적 목적으로의 활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명시돼있지는 않지만 기업이 사익을 위한 상품 개발 과정을 ‘과학적 연구’라고 주장하면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정부는 전문기관을 통해 서로 다른 기업의 고객정보를 결합하고 외부 반출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는 해당 개정안을 혁신성장의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개인정보에 관한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보인권 침해 논란이 제기된 이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는 기업이다.

    정부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민생법안’이라고 규정하며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시정연설에서 국회에 데이터 3법 등의 시급한 처리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춰 민주당도 데이터 3법의 국회 통과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생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당-정-청-지방정부 합동회의’에서 “당정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규제를 혁신하며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데이터경제 3법’ 등의 입법도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자유한국당은 데이터 3법을 비롯해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를 약속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본회의 일정을 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또한 지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데이터 3법 처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인정보를 상품화하는 것은 국민을 이윤수탈의 대상으로 삼는 것”

    그러나 노동·시민사회계는 해당 개정안에 대해 “개인정보 상품화”라고 규정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노총, 민변, 참여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는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처럼 공공기관이 나서서 기업들의 고객정보를 결합해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 어디도 없다”고 이같이 비판했다.

    이들은 “영국의 개인정보 감독기구인 ICO는 과학적 연구는 상업적 연구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인 GDPR은 프로파일링에 대해 정보주체의 거부권이나 설명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민간 기업도 개인정보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며, 개인정보를 중심에 두고 설계를 해야 하는 원칙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하며 “현재의 개인정보보호법이 너무 강력해서 경제혁신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유럽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참여연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업이 제한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해 이윤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혁신성장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정보인권사업단장은 “실제로 기업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정보를 빼가는데, 이와 똑같은 일을 정부와 국회가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한 단장은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 제도로 인해 특히 개인정보 보호가 취약한 구조”라며 “정부와 기업은 가명화라는 이름으로 개인정보가 보호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모든 개인정보를 수집, 연동하는 키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잘못된 관리 체계로 인해 개인정보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 제대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정보를 상품화하는 것은 국민을 이윤수탈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개인정보는 일부의 사익 추구가 아니라 인류의 복지증진을 위해서만 활용해야 하며 그마저도 익명으로 가공처리해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 규제가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심하다거나, 이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인 GDPR과 같은 내용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가짜뉴스”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한 단장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유럽의 GDPR에 합치된다는 것은 거짓뉴스”라며 “GDPR은 상업적 연구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과학적이고 공익적인 목적에 의해서만 개인정보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4차산업혁명위원회 주관으로 관계부처·시민단체·산업계·법조계 등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해커톤’에서 이 개정안에 합의했다는 정부의 주장 역시 “거짓”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간사인 서채완 변호사는 “정부는 데이터 활용 찬성 전문가 일색의 기울어진 논의 장에서 해커톤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은 ‘가명정보 활용’을 마치 합의된 것처럼 꾸몄다”며 “유럽 표준에서 요구하는 정보주체의 권리는 데이터 3법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감한 법안에 대해 정부여당이 사회적 논의 한 번 제대로 거치지 않고 졸속처리하려는 데에도 비판이 많다.

    한 단장은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 핵심인 개인정보를 함부로 왜곡, 남용하는 법안을 공청회조차 하지 않은 채 통과시키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이제부터라도 개인정보보호의 필요성을 각성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채완 변호사는 “빅데이터 사업은 필연적으로 개인정보 침해를 야기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 상업적 활용의 폐해 등 충분한 숙의가 필요한 일”이라며 “이런 법이 아무런 논의 없이 졸속 통과되면 국민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영리화를 위한 개인정보인권 보호법제 파괴”

    개인정보호법 개정안 처리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보건의료계다. 일각에선 의료민영화 수순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월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에서 공공기관(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 등)이 보유한 의료 빅데이터를 가명처리해 민간기업에 개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 아산병원이 환자의 전자의무기록, 임상시험 정보, 예약기록 등을 활용해 카카오와 함께 의료 빅데이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 등 기업에 팔아넘기려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악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운동본부는 “어떤 방식의 가명처리를 한다 해도 의료정보와 건강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 시 그 개인이 누군지 알기 쉬운 정보다. 법은 기업에게 이런 정보를 개인들 동의도 없이 상업적 목적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료와 관계없는 온갖 영리기업들도 임신, 분만, 유산, 성폭력 피해, 정신질환 치료정보, 가족력이나 유전병 등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기업들은 이 정보들을 결합·가공해 팔아 수익을 내거나, 고용 상 불이익을 줄 수 있고 예측하기 어려운 여러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누군가에게는 혁신적인 돈벌이 창출이 되겠지만 국민들은 우리의 모든 민감정보를 쥔 돈벌이 기업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심사평가원이 2014년부터 3년간 KB생명보험 등 8개 민간보험사 등에 6420만 명분의 국민 진료데이터를 팔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운동본부는 “보험사는 수익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의 신규 보험 가입이나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개인의 건강ᄋ의료 기왕력 등을 내세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목적으로 진료정보들을 사들인 것”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부 뜻 대로 개악되면 규제는커녕 이를 합법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정보 규제완화의 실체, 의료영리화를 위한 개인정보인권 보호법제 파괴”라고 질타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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