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산별노조에서
    해고되고 퇴직금 받아내기
    [조카에게 들려주는 이모의 분투기-1] 1년여의 싸움, 프롤로그
        2019년 10월 15일 10:1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한국에서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국제연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노총이나 국제산별, ILO 관련 등 노동조합의 국제적 네트워크 활동 외에는 그 경험과 인식이 아직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오랜 기간 국제산별노조에서 활동하다가 1년 전 해고되어 국제조직과 퇴직금 관련 분쟁을 벌이고 있는 정옥순 씨의 사례는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국제연대, 국제운동이라는 게 낭만적인 게 아니며 여러 이해관계와 고민, 지향, 모순들이 부딪히는 삶과 실천의 공간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몇 차례에 걸쳐 정옥순 씨의 퇴직금 받아내기 분투기를 연재한다. 이 분투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시야가 조금 더 확장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

    I. 프롤로그

    식품, 농업, 호텔, 요식, 캐터링서비스, 연초 및 유사산업 국제노동조합연맹(국제식품연맹; IUF)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산별노동조합(Global Union Federations; GUFs)이다. 국제산별노조의 가입대상은 동일/유사 산업 업종/직군의 노동조합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양대 노총에 가맹하는 산별연맹/노조가 그 조직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 여덟 개 국제산별노조들은 각국의 총연맹들이 가맹하는 국제노총과 함께 국제노동계의 양대 산맥이다. 국제노동기구 노동자그룹(ILO Workers’ Group)과 경제개발협력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 TUAC) 등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 국제산별노조 로고와 명칭

    필자가 IUF에 일을 시작한 2006년 6월, 한국의 회원조직은 담배인삼공사노조, 서비스연맹, 전국여성노조, 코카콜라 2개 노동조합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 두 개 노조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맹비 미납 상태였고 결국 한 곳은 3년치 가맹비 미납으로 최종 탈회 처리됐다. 한국에 회원조직을 둔 다른 국제산별노조들과 달리 (앞서 언급한 조직 명칭에 있는 산업의 노동자들을 주로 조직하는) IUF는 코카콜라노조처럼 기업별단위노동조합을 회원으로 두게 된다. 이유 중 하나는 국내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었고, 이미 양대 노총 소속의 산별연맹/노조들이 유사한 국제산별노조에 가맹했으므로, 추가 예산을 산정하기에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당시 (2013년 6월 말 은퇴한) IUF 아시아태평양 지역총장은 ‘언어장벽’이 가맹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라고 판단, 한국 내 ‘소위’ 조직 확대를 위해 사무국 설치를 결정했다. 2005년 WTO 홍콩 원정투쟁 시기 좋은 관계를 맺은 당시 공공연맹과 IUF는 한국사무국의 시설편의를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홍콩원정투쟁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 등 한국대표단 (사진=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최초 한국사무국 설치에 관여했던 필자의 선임자를 통해 들은 얘기지만, 당시 IUF 가맹조직 혹은 잠재/미래 가맹조직 등에 한국사무국이 설치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양대 노총 소속 노조들도 아울러야 했기에 IUF 조직대상과 크게 상관없는 제3의 지대가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 한국사무국 설치의 다른 목적은 (소위 인건비가 높은 한국에 스탭을 두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당시 지역총장을 견제했던 일본 가맹조직들의 또 다른 견제구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유효할 수 있겠다는 정치적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정이지만) 혼자 일했던 필자가 해고되기 이틀 전, 현 지역총장이 한국사무국 폐쇄를 11개 가맹조직들에 일방 통보할 수 있었던 ‘오만한’ 자신감의 한편에는 일본 가맹조직들이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생각에도 있는 것 같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역시’ 추정이지만, 전임 지역총장이 은퇴한 뒤 어느 시점에, 일본 가맹조직들의 요구가 아닌) 본부 차원에서 ‘돈’ 많이 들어가는 한국사무국에 대한 구조조정 언질이 있지 않았나 싶다. 시절 좋았을 때 얘기지만, 일을 나름 (잘)했던 필자를 구조조정하기보다는 2014년 8월, 한국담당에서 호텔업종 아태지역담당으로 보직을 변경, 예산 편성과 집행의 묘미를 발휘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또한 굳이 어떤 ‘의도’가 없었다면, 한국사무국 폐쇄를 통보하는 서한에 (필자가 일했던 기간의 13년치 회계장부를 전부 뒤져 1단위까지 계산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이 한국에 지출됐는지 아느냐는 식으로 이용됐을까? 한데 필자가 아태지역 보직을 맡았던 때에도, 번역을 주로 하는 한국 전담 파트타임 스탭이 약 2년간 고용되기도 했으니,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그들만이 알 뿐이다. [관련 글 링크]

    필자가 아태지역 총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은 2018년 3월 30일이다. 근로계약서에 3개월 전 해고 통보 조항이 있어 IUF와의 고용관계가 끝난 것은 6월 30일이었다. 전임 지역총장의 휘하에서 2006년 6월 15일부터 일했으니 4,399일을 그곳에서 일한 셈이다. 2018년 6월 27일 광화문에서 열린 전국여성노조(여성노조) 집회에 마지막 인사차 갔다가, 노조 가입을 권유받았다. 그렇게 2018년 7월 1일 IUF의 오랜 가맹조직인 여성노조의 조합원이 됐다. 내 생애 최초의 노동조합이다.

    1999년 한국피자헛노조와 2000년 롯데호텔노동조합을 거쳐 IUF까지 늘 노동조합 상근자로만 살았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머리’에만 있었던 것 같다. 정작 고용/피고용 관계를 맺은 IUF와의 근로계약 과정에서 적법한 주장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반성하고 있다. IUF에서 일방 퇴거 조치된 이후 2018년 10월 16일 여성노조의 지원을 받아, IUF에 체불 퇴직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거부당했다. 현재까지 싸움은 진행형이고, ‘노동자 국제주의’ 간판을 내건 조직들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뭐가 됐든’ 대한민국 정부의 도움을 받은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 IUF 아태지역 전현임 총장과 조직 내부의 흐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여 참고로 첨부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평가로는) 마 웨이 핀(MA Wei Pin) 전임 아시아태평양지역총장은 1973년부터 지금의 IUF 아태지역본부의 꼴을 만들어내는데 큰 공이 있는 사람이다. 원래 싱가포르 국적자로 그 나라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정부와 (기억이 맞다면) ‘이주노동자’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추방돼 호주로 망명했다. 이후 더욱 왕성하게 활동, 최초 1개 조직에서 시작해 40년이 지나 17개국 70개가 넘는 조직으로 확대하며 2013년 6월 말 만65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했고, 현실 노조운동에서는 원칙과 실리를 겸비한 중도주의자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는데, (정치적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 노조를 IUF에 재가맹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본가맹조직들이었다.

    히다얏 그린필드 현 아태지역총장은 호주 국적의 뉴사우스웨일즈(NSW)대학 사회학 박사 출신으로 2000년 전후부터 아태지역을 근거로 활동해온 사람이다. 지역총장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IUF 본부가 주로 관장했던 ‘식품음료업종 초국적기업 프로젝트 아시아태평양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던 경력 외에 그린피스, AMRC, 홍콩노총, 캐나다자동차노조(CAW) 등에서도 활동했다.

    둘 다 본국에 소속 노조가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선출직이라 지역총장 자리를 유지하거나 얻는데 다수 노조의 지지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전임 지역총장은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소속 노조로부터 고르게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주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가맹조직들이 대개는 프로젝트 기금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라, 몇몇 국가를 빼고는 바꿔 말하면 ‘누가’ 지휘부가 됐든 ‘기금’만 돌면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 외에 다른 복합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전임 지역총장이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한일 역사 관계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을 것이다.

    5년마다 한번 씩 열리는 2011년 아태지역총회에서 재선된 전임 지역총장의 은퇴 후 2016년 차기 지역총회까지 잔여 임기를 대신할 후임이 지명됐으니 그가 지금의 지역총장이다. 원래(?)는 차기 아태지역 총장으로 10년 넘게 (돌이켜보면 전임 지역총장과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지만 임기는 보장하며) 기다리던 일본가맹노조협의회 간부가 있었다. 그가 되리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2010년 즈음 (필자의 추정이지만, 현 지역총장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아태지역 식품음료 업종회의 때마다 늘 초청했던) 스웨덴 식품노조 출신 당시 IUF 위원장과 영국 출신 사무총장을 위시한 영연방계 노조들의 모종의 정치공작이 있었지 싶다.

    기본적인 ‘예’를 갖추며 10년 넘게 준비하며 기다리던 이를 주저앉힌 명분은, 가맹비를 가장 많이 내고 있더라도 ‘일본 가맹조직들이 IUF 방침을 성실히 따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필자를 해고한) 지역총장이 당시 내게 했던 말이다. [재밌게도 당시 사무총장이 주장한 논리를, 현 아태지역총장은 ‘가맹조직수에 비해 (대개 소수 혹은 단위노조라) 가맹비는 적게 냈지만 IUF 방침은 충실히 이행했던 한국 가맹조직들’을 지원했던 한국사무국을 폐쇄할 때 써먹는다.] 한편, 대기하다 앞통수를 맞은 일본가맹조직들이 대놓고 반발하진 않았지만 2011년 아태지역 부총장으로 지명된, (2016년 차기 지역총회에서 선출절차를 갖긴 하지만) 사실상 후임으로 그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곧바로 내비치진 않았던 모양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가장 많은 가맹비를 내는데 지역총장도 못하고 위원장직 또한 호주가 만년 독점하고 있으니 꽤나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일본의 침묵에 그는 직무대행을 수행하면서 꽤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마침내 2016년 지역총회를 얼마 앞두고 일본가맹조직들은 지지를 선언했고 그는 ‘큰 한숨’을 돌렸다. 그 과정에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탁월한 일본어 실력이 한 몫은 했을 것이다. (관련 글 링크)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으나 IUF에 일하며 관찰한 필자의 경험에는) 아무래도 영국과 서유럽이 자본주의 모체이다 보니, 국제노동계는 영연방(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여기서도 쫌 다름 등) 마피아 블록을 중심으로, 기금을 지원하고 (IUF에서는) 의장직과 의사결정기구의 주요 의석을 얻었던 (역사적으로 ‘바이킹’ 야만족으로 유럽문명권에 대한 향수가 있지 싶은) 북유럽 ‘호구’노조와 프랑스가 유럽지역본부를 관장하며 본부를 대표하는 영국과 역할분담 체제로 유지되는 것 같다.

    거기에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럽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미국 포함 북미지역 노조는 IUF본부에서 직접 관장했다. 그런데 아태지역은 그런 의미에서 ‘무주공산’인 셈이었다. 전임 지역총장이 국적은 호주였지만 반쪽(?) 정체성을 갖고 큰 무리 없이 아태지역본부를 성장시켰으니 관망했지 싶다. 그러다 ‘일본’으로 집행 권력이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커지자 고심(?) 중 호주 국적의 당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였던 현 지역총장을 내세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추정이다. (사실과 다르다면 전면 교정할 의향이 있으면 누구라도 알려주시라.)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