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상선여수] 조국 촛불과 노동 개악
    2019년 10월 08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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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최백호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가사에 딱 걸렸다. 서초동에서, 광화문에서 백만명 이상이 모인다고 하는 데 정작 갈 곳이 없다. 갈 생각이 안 든다. 누군가는 해방 직후 신탁, 반탁 운동처럼 홍해가 갈라지듯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고 우려하지만 그조차 실감이 안 난다.

나만이 아니다. 오늘도 진행되고 있는 “조국 내전”에 대해 노동운동은 말이 없다.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은 민주노총이 안와서 좋다고 하고,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민주노총이 참여해서 문제라고 말한다. 가도 문제, 안가고도 욕을 먹고 있다.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대중투쟁의 고양기(?)에 정작 가장 큰 대중조직인 민주노총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고 있는 모양새다. 뭐가 문제인가?

길거리를 지나다 “노무현 대통령 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라는 식의 결기를 나타낸 현수막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노무현의 좌절은 개혁의 조직적 기반이자 우군이어야 할 민주노총을 적대시하면서 시작되었다. ‘노동을 배제한 민주주의’는 한계가 분명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필름을 조금만 뒤로 돌려 두 가지만 돌아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한 2003년은 ‘열사 정국’으로도 부른다. 배달호, 박상준, 송석찬, 이현중, 김주익, 곽재규, 이해남, 이용석 열사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들의 대량 구속, 노조 탄압, 파업 현장에 대한 빈번한 무력 진압과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노총은 더 이상 노동운동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했었다.

2006년 11월 30일,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억지를 부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통과시켰다. 민주노총과 당시 민주노동당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 제한’ 등을 명문화하자고 그토록 피를 토하며 주장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손잡고 악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던 민주노총에 남은 것은 “이기주의 집단”이라는 매도뿐이었다. 이 법은 그동안 비정규직을 얼마나 보호해 왔는가?

5일 서초동 촛불집회(방송화면)

다시 현재를 얘기하자. 엊그제 2000일을 맞은 세월호 진상규명의 지지부진함 등 개혁의 부재에 대해 숱한 얘기를 할 수 있지만 노동만으로 좁혀서 말해 보자.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투쟁해야만 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전체 상황을 대변한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법대로라면 우리는 차가운 거리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법대로라면 우리는 저 높은 곳에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런 구호는 왜 여전한가? ‘조국 전쟁’을 이겨내면 법무부 장관에 의해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올 것인가?

지난 10월 1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관계법 개정안의 의결이 있었다. 공약이었던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내용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비준하는 대신 국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방안을 현 정부는 선택했다. 이미 ILO가 입법을 비준에 선행하거나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없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했다. 그리고 저 난장판 국회에 공을 넘겨버렸다.

내용은 자주적 단결권에 대한 일부 허용을 포함하는 대신 사용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업장 내 주요 업무시설 등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 점거를 금지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ILO가 수년 동안 직권중재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하자 그것을 폐지하는 대신 공공부문 파업에 대해 필수공익제도라는 악법을 도입한 것과 아주 비슷한 행보다. 법무부장관 조국이 이에 대해 뭐라고 했다는 소리는 들은 바 없다.

솔직히 나는 “조국 수호”를 외치는 수많은 인파를 보면서 그를 지키면 뭐가 달라질 것인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의 좌절은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잘하기를, 그리고 개혁을 위한 조직적 힘을 보태고 싶지만 길은 안 보인다. 여전히 내 마음은 갈 곳을 잃고 있다.

필자소개
이근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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