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언제까지?
한일 갈등, 그 배경과 전망
[좌담]역사·경제·사회적 갈등의 격화
    2019년 08월 12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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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가해기업인 신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신일본제철의 재산을 압류하고 현금화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은 일본이 반도체 관련 3개 품목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실행한 결정적 이유가 됐다. 물론 일본은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근거가 이 판결 때문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제대로 봉합되지 못한 채 1965년부터 이어져온 역사문제가 2019년, 경제문제로까지 번진 것이다.

대법원 판결 후 일본은 제3국중재위원회를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거부했고, 한국 정부는 일본과 한국기업이 배상금을 모금하는 ‘1+1’안을 제안했지만 이번엔 일본 정부가 거부했다. 물러설 곳 없는 양국의 경제전쟁은 곧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으로 안보전쟁까지 확산될 위기에 있다.

이에 <레디앙>은 지난 6일 남종석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오준영(필명) 근대사 연구자를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일본 수출규제의 배경과 원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이후부터 이어져온 한일 양국의 상반된 입장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의미 ▲향후 전망 등에 대해서 들어봤다.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레디앙은 이후 후속 좌담이나 인터뷰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정종권) :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칭가스·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 레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조치가 한국경제에 어느 정도 타격을 주는 건가.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남종석) :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를 포함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반도체 산업 성장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과 일본 전범기업의 자산동결에 대한 경고조치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자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전자의 분석은 틀렸다고 본다. 타국의 경제성장을 막기 위해 수출규제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유주의 무역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행위를 하는 아베 총리 포함 일본 우익을 미친 사람으로 보는 것인데, 우리 마음 편하자고 내놓은 지나치게 한국 중심적인 해석이다.

정종권 : 타국의 경제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무역규제를 한 사례가 없다고 했는데, 최근 미중갈등이 그런 것 아닌가.

남종석 :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이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적국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한일이 경제적 맥락에 있어 그런 관계는 아니지 않나.

한국은 이미 반도체 최종재에 있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이 최종재의 부품 대부분을 제공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반도체 산업에서의 수요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 고객을 잃게 되면 일본도 데미지(손해)가 크다. 일본과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 경제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무역보복을 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견제를 일본이 자국 기업의 출혈까지 감수하면서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정종권 : 한국과 일본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화이트리스트를 실제 시행하게 되면 일본이 받는 타격은 어떻게 하나? 일본 기업의 반발을 정치적 맥락과 이유 때문에 일본 정부가 누른다고 봐야 하는 건가.

남종석 : 그렇다. 일본이 과거엔 수출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밖엔 안 된다. 일본에서 소재 산업은 다양한 주력업종 중 하나에 불과하고, 이번 규제와 관련된 기업은 중견기업 규모로 서너개 정도다. 이들 기업이 중요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내수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특정 업종, 특정 기업의 수출 문제가 일본 전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반면 한국은 수출 비중이 40% 이상이고 특히 반도체 산업은 한국의 완전 주력업종이다. 수출규제는 일본 기업에도 출혈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 기업에 더 큰 출혈이 있다는 것이다.

정종권 : 일본 입자에선 최소 출혈을 감수하면서 최대효과를 노릴 수 있는 지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면 화이트 리스트 제외 조치는 어떤가.

남종석 :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전자업종 관련 소재에서 더 나아가 설비재까지 포함해 1100여개 품목에 대해 수출을 규제하게 된다. 일본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쪽이 화학 소재, 기계 특히 로보스틱스 분야는 설비자동화의 핵심이다. 반도체 생산은 전부 자동화로 이뤄지고 사람은 완전 자동화된 것을 검사하는 정도다. 제가 속한 부경대 연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반도체 산업 가치사슬 관련 연구)에서 삼성 디스플레이와 엘지 등에 설비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파악된 20여개 기업 중 12개가 일본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한국이며, 특히 일본이 공급하는 설비재가 굉장히 중요하다. 해당 설비재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돼있다.

정종권 : 상당한 경제적 타격이 있을 것 같다.

남종석 : 1100여개 부품 중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품목 1~2개 품목에 대해 규제를 할 수도 있고, 1100여개 제품 중 상당 부분을 규제할 수도 있다. 만약 상당 부분에 대한 규제를 실행한다면 한국이 치명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100개 핵심 소재·부품·장비에 대해 5년 안에 공급 안정화를 한다고 하는데, 5년이면 다른 나라에서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추격자인 대만이 한국만큼 경쟁력이 없는 이유가 기술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단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규제가 이어져서 소재 공급에 차질 있으면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가 독점했던 분야에 대만 등도 경쟁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다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결정한 것이 바로 1100여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한다는 게 아니다. ‘수출규제를 할 수 있다’는 카드를 오픈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고, 한국을 향해 쉐도우 복싱을 하는 거다. ‘우리는 한국이 전범기업의 자산 동결하는 것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자산동결을 하면 우리도 세게 나가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거다.

정종권 :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결정은 실제적 효과를 발휘하기 전단계라는 건데, 전범기업 자산동결 시도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라는 것은 이번 경제보복 조치가 정치적 논리에 따른다는 것인가.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임필수) : 아베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취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지만, 대법원 판결과 그에 따른 사법적 집행과정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하는 것이 단순하지만 가장 정확한 해석이라고 본다.

대법원 판결 관련 방송화면 캡처

2018년 대법원 판결…그 의미는

정종권 : 이번 한일 갈등의 핵심은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에 있다. 우선 대법원 판결의 의미부터 좀 짚어보자.

오준영 근대사 연구자(오준영) : 일본 최고재판소는 청구권 협정에서 다 해결됐다며 일본기업이 강제노역에 대해 보상할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 법원의 1, 2심도 마찬가지 판결을 했는데, 2012년 대법원은 다른 판결을 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국가 간 보상이 이뤄졌더라도) ’식민지배 불법성에 직접적으로 기인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하여 개인이 그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권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2018년 두 번째 대법원 판결도 동일하게 강제 동원돼서 노역을 한 분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서 법적인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핵심은 ‘불법적 식민지배와의 직접적 연관성’, ‘반인도적’이라는 표현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 65년 청구권협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협정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다르게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식민지배 자체가 불법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가져왔고 대법원도 그렇게 판단한 거다. 그런데 일본은 이런 판결 자체가 청구협정이라는 조약을 한국이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순 있지만 틀렸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국가 간 정치적,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남종석 : 전후 역사에서 제국주의를 경험한 국가들 중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나라는 없다. 그런데 한국 대법원은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결이 보편화된다면 세계사에 굉장히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이고, 역사적으로 대단한 판결이라고 본다. 전후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큰 도전이기도 하다.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노동자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포괄적 사실이 인정되는 가운데 대법원이 ‘식민지 불법성에 기인한 반민족 행위’라는 표현을 쓴 것은 결국 식민지 피해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판결을 하기 위해 (적절한) 문구를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즉 기존의 외교조약, 국가 간 협정, 세부 조항들을 피해가면서 이런 저런 것을 만들어간 거다. 사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응징이라고 본다. 상징적 차원의 응징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독립적인 국가로서 일본과 대등한 입장으로 국가 조약을 존중하는 속에서 식민지배 불법성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65년 체제를 전환하려는, 일종의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판결이 동아시아 갈등을 만들어 냈고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대법원 판결에 무역규제까지…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일본이 대법원 판결의 어떤 지점을 우려한 것인가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일본이 만든 전후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는 의견, 대법원 판결 이후 진행 중인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동결이 일본을 움직이게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한국 대법원이 적법 절차에 따라 국내 법인의 재산을 압류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의 지나친 행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종권 :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수출규제라고 본다면, 판결의 어떤 지점이 일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걸까.

임필수 : 지난번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대담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집행 과정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에 앞서 박근혜 정부가 맺은 2015년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백지화됐다. 이 두 개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 느꼈다고 해석된다.

특히 일본이 이번 대법원 판결에 더 크게 반응하는 이유는, 한일청구권협정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게 되면 동아시아 각국과 맺은 전후 처리 과정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도미노 현상을 우려한 것이라고 본다.

남종석 : 한일은 개인청구권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중국의 경우 정부가 보상조차 받지 않아서 개인청구권이 완전히 살아있다. 일본 입장에선 일종의 카오스가 열리는 셈이다. 한국의 주장을 인정하면 전 아시아에서 개별적인 청구권 인정해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동남아에도 일본의 생산기지가 있고, 중국에도 많이 들어가 있다. 만약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한국이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동결까지 하게 되면 일본 입장에선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적 지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준영 : 두 분의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 동남아 등 다른 나라들은 전후에 별도로 따로 처리했기 때문에 한국의 소송이 일본과 다른 국가와의 외교관계에 영향 미칠 가능성은 없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 때문에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이건 한일 간의 문제다.

임필수 : 도미노적 현상이 개인이 배상을 청구하는 그런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전후 미국의 주도로 연합국은 일본에 배상받는 것을 포기했고, 일부 동아시아 국가인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은 점령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했다. 나머지 많은 경우엔 배상 청구와 함께 경제협력을 했다. 한국의 경우 경제협력만 한 사례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전후 처리 과정에서 역사 문제를 정리를 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협력적 질서를 만들었다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한국이 계속해서 역사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본이 전후에 형성한 이 합의를 지속적으로 불인정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일본 입장에서) 이런 한국의 태도가 동아시아 역사전쟁이라는 형태로 한중일 청구권 역사전쟁을 가속화한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종석 :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청구권협정에 대한 양국의 해석 차이는 계속 있어왔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동결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무역상대국의 동의나 합의 없이 타국 기업의 자산을 동결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경우다. 1945년 이전에 역사적 사건을 이유로 자산을 동결하는 건 처음이다.

오준영 :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났고, 신일본제철 국내법인이 피해자에게 돈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판결에 따라 변호사랑 원고 측에서 집행을 하려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 상황은 한국 사법 체계에선 정상적인 사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A국의 기업이 B국에 법인 설립했을 때 A국의 B법인이 잘못을 했을 경우 B국의 판단에 따라 압류 가능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만 특수할 뿐이다. 사안의 문제일 뿐, 집행의 문제가 특이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일본 입장에선 한국의 정상적인 사법체계라고 할지라고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한일조약 위배라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태도는 우리 국내 사법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정종권 : 일본의 태도는 한국의 사법질서에 대해 타국 정부가 문제제기한 것(내정간섭)으로 이해될 수 있는 태도라는 건가.

오준영 : 추정컨대 일본은 ‘한일관계 재조정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을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고 본다는 뜻이다. 일본도 우리 사법부 판결에 대응할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무역규제라는 상상하기 힘든 조치를 했고) 일본 총리의 논점을 보면 한국 사법 체계에 대해 무시 내지는 공격으로 보일 수 있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정종권 : 해석 갈등의 역사는 1965년 이후부터 계속되는 것 같다.

임필수 : 역사학계, 사회운동진영에서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 갈등은 있었지만 정부 공식 채널에서 갈등이 불거진 것은 최근 일로 봐야 한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을 더 우선하면서 징용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미루기는 했지만 청구권협정의 논리에 따라 1975년도에 징용자에 대해 보상 절차를 실시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 자금에 ‘징용자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포함’하는 성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 따라 위로금 등을 지급했다. 그런 것을 보면 정부 차원에서는 한일청구권협정에서의 기본 내용을 수행해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 간 갈등의 역사라고 보기 어렵지 않나 싶다.

사법부 판단에 대한 우리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

정종권 : 대법원 판결에 대한 문제제기에 문재인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임필수 : 문재인 정부가 “사법부 존중”이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아베 만나서도 “한국 사법부 판단을 이해해달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정치의 사법화라고 생각한다. 사법부의 영역이기 때문에 행정부와 입법부가 관여할 수 없다고 하는 게 과연 확고한 진리일까.

미국은 연방대법원에서 이런 외교적인 사안의 같은 경우 법적 조언자 제도라고 해서 행정부에 의견을 구한다. 실제로 위안부 관련 문제가 미국 재판에 갔을 때 법적 조언자 제도에 따라서 판결을 내리지 않고 각하했다. 한국 법원에서도 필요하면 행정부나 지자체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법부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사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과도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정종권 : 판결이 나오는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임필수 : 그렇다.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피해자 구제 등 사전적 조치도 취할 수 있고, 여론 조성 노력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안이 흘러오게 된 과정엔 문재인 정부가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재판거래, 사법부 적폐청산 프레임과 위안부 관련한 박근혜 정부 합의를 일종의 피해자 의견을 무시한 밀실합의라는 프레임을 만들면서 결국엔 그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씌운 셈이 됐다고 본다.

정종권 : 위안부 관련 피해자들이 일본에 소송을 제기한 경우 극히 일부 하급심에서 승소하기도 했지만 최종심에 가서는 일관되게 패소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관련 재판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재판부에 법적 조언자 자격으로 공식 비공식으로 개입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닌가? 그런데 이번 판결과 한일 쟁점이 된 강제징용자 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어떤 정치적 해법을 모색했나?

임필수 :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자 문제는 해결됐다고 해석하되, 위안부, 사할린, 원폭 피폭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위안부 문제는 논란 끝에 2015년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가 ‘군부에 의한 일본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이와 관련해 정부 차원에선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금을 공식적으로 마련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청구권협정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본이 공식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 정부가 봤을 때 강제징용자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같이 해석할 수 없다고 보는 거다.

남종석 : 개인적으론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과 관련한 배상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해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 정부는 그럴 의사가 없었던 것 같다. 일본 기업의 참여 요구한 것이고 일본은 일본대로 그것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현재 대립이 확대되고 있는 거다.

양국이 합의한 사실들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주로 한국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임 정부가 한 합의여도 그 내용은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수정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현 정부가 보기에 문제가 있으니 폐기 혹은 전환시키려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준영 :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현 정부 들어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 외에 말을 바꾼 것은 거의 없다. 65년 청구권 협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취한 조치 등을 따져보면, 노무현 정부 때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 관한 지원책을 만들었지만 일본한테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조사해야 한다고 한 거다. 이런 과정 자체가 일본에 대해 말을 바꿨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번 대법원 판결 역시 ‘식민지배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반인도적 행위’라고 표현을 쓰면서도 임금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미지급 임금 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본 거다. 식민지배에 직접 연관된 반인도적 범죄로 피해를 본 개인이 일본기업이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소멸됐느냐, 라고 물었을 때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지, 그 전에 협정 내용까지 부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즉 속아서 끌려갔고, 구타도 있었고, 임금도 안줬다는 이런 피해에 대해 개인이 기업에 청구하지 못하는 건 곤란하다고 본 거다. 이렇게 사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한국정부가 지금가지 어색한 일을 해왔다고 보지 않고, 대법원이 이러한 역사적 피해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일본이 짜증낼 일도 아니다.

임필수 : 일본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런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본다. 하지만 일본이 그런 정서 하에서 이번 건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결국 반일 민족주의가 정당하다는 결론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준영 : 생각보다 세상이 복잡하다. 제가 말한 것과 반일 민족주의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담 모습(왼쪽부터 임필수 남종석 정종권 오준영)

양국 정부는 정치적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정종권 : 경제 문제와는 별개로 공식적인 해법으로 나온 것이 일본이 제안한 청구권 협정에 근거한 제3국 중재위원회였고, 우리 정부는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한국기업+일본기업)안’을 제안했다. 여기에서 진전된 건 없나.

오준영 : 더 나아갈 수 없는 게 양국이 각자 안을 제안한 직후 문제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일본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공격해버렸으니 초점이 바뀐 거다. 지금 시점에선 (양국이 물밑에서) 뭔가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공식적으론 국면이 달라진 상황이다.

남종석 : 저는 그와 다른 생각이다. 현 상황 자체가 협상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일부 등에선 협상 국면이 지났기 때문에 한판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야 할 일을 일본이 무역분쟁으로 돌렸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외교적 해법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일본에 무릎 꿇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데미지를 입더라도 일단 싸우고 다시 외교적 해법을 취해야 한다는 거다.

오준영 : 사실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을 만한 게 없다. 이 때문에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하는데 일본이 국제적인 기본 질서를 어기면서 한국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겠다는 얘기하는 거다. 누구라도 그 말밖에 못하는 상황이고 논리적으론 잘못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임필수 : 하지만 일부 보도를 통해 일본 정부가 ‘1(일본기업)+1(한국기업)+알파(한국정부) 안’이 나왔을 때 청와대는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굉장히 강한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해결책은 이것(1+1)밖에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런 점을 봤을 때 한국 정부가 외교적 해결책을 실제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정종권 : ‘1+1안’만 강조하고 ‘1+1+알파 안’은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 정치·외교적으로 해결의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라는 건데…그렇다면 일본은 정치·외교적 해법의 의지가 있다고 보나. 있다면 징표는 무엇인가.

남종석 : 일본 역시 없는 것 같다.

오준영 : 청구권 문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지만 어떻게든 지내왔고 이번 건으로 한일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대법원 판결이 밝힌 식민지배에 따른 직접적인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개인이 문제제기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일반적 합의 내용이고, 한국정부는 이를 일본이 동의하기보다, 협상할 여지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의 관계 재조정은 하루 이틀 안에 되는 일이 아니다. 막연한 느낌으로만 판단한다면 이 갈등이 꽤 오래갈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우선 일본의 한국 인식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보면 곤란한데, 생각보다 일본 주류의 한국에 대한 멸시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 한일청구권협정 협상 때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 관료와 정치인은 ‘한국이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배는 정당하다. 한국은 자립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편다. 일본 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런 정서가 지배적이라는 것이고 여전히 한국을 정치 문화적으로 하위 파트너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한일관계를 대등하게 보고 있다. 일본이 스스로의 정서를 깨고 한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단시간 내에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본관계가 유지되는 틀 안에서 이런 식의 갈등은 오랜 기간 상당히 반복될 것으로 본다.

정종권 : 상황을 보면 일본 입장에서의 레드라인은 한국이 법원 판결에 근거하여 일본기업의 자산을 강제매각하는 절차에 돌입하는 것이고, 한국 입장에서의 레드라인은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강화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가동하여 경제 보복을 실질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논의로 이 방대한 주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까지 다 담기는 무리로 보인다. 오늘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를 하자. 이번 사태가 주는 함의에 대해 한마디씩.

남종석 : 상대를 인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일본이 비상식적 사고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저들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문제를 대하고 있다는 규정으로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언론은 끊임없이 아베와 일본 우익을 이상한 집단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분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일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이 일본 극우파를 제어하는 데에도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전후 자본주의에서 한일관계를 통해 양자 모두 혜택을 봤다. 한일관계를 통한 성과를 우리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등한 한일관계라는 것 자체가 상호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보면, 일본의 레드라인을 한국이 건드릴 필요까지 있었냐는(마찬가지로 일본도 한국의 레드라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고, 70년 전 과거를 현재 쟁점화해서 그것으로 한일관계를 깰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든다.

임필수 : 합리적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현재 분위기를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2012년 대법원이 ‘새로 건국하는 심정으로 한다’는 표현을 썼고, 대법원과 행정부, 입법부가 이런 판결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정부가 하는 대응도 스스로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인데, 이런 식으로 계속 밀고 가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경협을 통해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발언 자체가 단순한 정치적 수사라고 얘기하기엔 심각한 수준이라고 본다. 이는 한일관계의 실질적인 단교에 가까운 상황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읽힌다. 결국은 동아시아 구조에서 일본을 제외하고도 한국이 자립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반세계화적 아이디어까지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국의 브렉시트와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와다 하루키 등 일본 내 진보지식인들은 ‘한국이 적이란 말입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청구권협정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무역 보복 방식 아닌 해결책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일본에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게 결코 아니라는 점, 한국에는 피해자에 대한 법률 제정 등 일정 책임을 인정한 것 등을 언급하며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국내 언론이) 그런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준영 :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65년 조약을 맺은 후 한일관계는 지금까지 지속됐다. 그간 수많은 갈등을 해결해왔기 때문에 이번 건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충분히 눈에 보인다.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적 권한 자체가 침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고, 이것에 근거해서도 힘들겠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해결책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한텐 ‘약자적 합리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 반일 민족주의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현재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

또 다른 생각으론 일본 사회의 변화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 내에 자유주의적인 권리침해 눈에 많이 띄는데, 약자적 합리성이 일본에 전혀 먹히지 않는 순간이 최악의 상황도 예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사회의 변화에 대해 신중하고 장기적으로 관찰할 필요 있다.

(앞서 임필수가 지적한) 한국정부의 일본과의 관계에 관한 발언들은 레토릭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과의 단교를 통한 한국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 분노하는) 대중적인 정서를 민족주의 정서라고 해석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고 본다. 이는 일반의 감성을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불매운동 등에 관해선) 공동체적 흐름으로 보이고, 반일 민족주의와 정서적 결이 다른 (일본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한 데 묶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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