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공약이며 국정과제,
    금융권 ‘노동이사제’ 좌절
    문재인 정부의 포기? 금융위 독단?
        2019년 03월 23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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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이 물 건너간 분위기다. 금융권 노동자들은 ‘노동이사제’보다 한 단계 낮은 ‘노동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금융개혁’을 외쳤던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사실상 돌아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가운데, 금융개혁에 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요구되고 있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이사회의 추천에 따라 지난 11일 신충식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금융위원회에 제청했다.

    앞서 기업은행 노조는 ‘노동자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기 위해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박 위원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CEO의 전횡을 막고 금융 공공성을 실현할 적임자로 꼽힌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 정의당 중소상공인본부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정릉신협 이사장, 신협기금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최종 임명권자인 최종구 금융위 위원장의 임명 절차가 남아있지만,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은 사실상 좌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 위원장 자체가 노동자 추천 이사제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KB국민은행 등 시중은행에서도 노동자 추천 이사제 도입 노력이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를 경험했다.

    정부 국정과제의 하나로 명시된 노동이사제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가해 회사 경영 사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며 노동자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금융권 채용비리 문제나 셀프연임 등도 ‘기득권’인 경영진의 부패와 전횡을 막을 제동장치가 없어 발생한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이에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공공 금융기관엔 노동이사제를, 민간 금융기관에는 노동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권 경영진은 “노동 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할 경우 경영권이 침해되고 기업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리라며 노동자 추천 이사제를 반대하고 있다. 최종구 위원장 역시 금융행정혁신위의 권고가 나오자마자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더해 최 위원장은 지난 7일 “노동이사제든 근로자추천이사제든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한다는 것과 은행 직원들의 복지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 은행권 종사자의 급여, 복지수준을 볼 때 다른 분야에 앞서 금융권이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할 만큼 열악하다고 보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노동이사제 도입 요구를 금융노동자 복지 문제 차원으로 축소한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 안팎으론 금융위가 앞장서서 노동자가 회사경영을 감시·견제하는 것을 전적으로 막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더욱이 노동자 추천 이사제는 문 대통령이 당초 공약했던 노동이사제보다도 낮은 수준의 요구다. 노동이사제란 노동자 대표가 의결권을 갖고 직접 경영 사안에 참여하지만, 노동자 추천 이사제는 노동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대선 공약과 금융행정혁신위가 권고한 사안을 부정하는 금융위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금융개혁을 위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은행에 노동자 추천 이사제가 도입될지 여부는 사실상 문 대통령의 금융개혁 의지를 시험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의연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민생경제연구소는 22일 낸 공동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노동이사제’ 보다 한 단계 낮은 ‘노조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짚었다.

    이들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문재인 정부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금융위원회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국민들 앞에 나와 정부의 입장을 정확히 표명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위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면 문재인 정부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면 공약을 위반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시민사회계는 노동자 추천 이사제마저 좌절된다면 금융권 부패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들은 “소수경영진의 막강한 권력으로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금융회사의 금융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성 있고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해 경영진을 감시․견제하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대로 금융회사의 경영이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린다면 금융권의 부패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IBK기업은행에 ‘노조 추천 이사제’라도 도입해야 하고, 다른 금융회사들도 이를 본보기 삼아 독립성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해 투명한 경영과정을 확보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번 IBK기업은행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함으로써 공약 이행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여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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