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정사상 최초, 전직 대법원장 구속
    자유당 외 여·야 정당 “당연한 귀결”
    김명수 대법원장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
        2019년 01월 24일 11: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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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구속됐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다음날 오전 2시경에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된다”며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결과와 피의자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 수감된 대법원장이 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방송화면)

    앞서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양 전 법원장이 받고 있는 대표적인 혐의는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인 김앤장 변호사와 독대하는 등 일제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 밖에 각종 노사 문제 관련 재판 등에도 개입하는 등 혐의가 40여개에 달한다.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선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 이었다. 박병대·고영환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물론, 재판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까지도 줄줄이 기각해왔기 때문이다. 법원이 기존 잣대로 판단할 경우 양 전 대법원의 구속영장도 발부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검찰이 확보한 물증이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의 심복으로 불리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 일본 기업 대리인을 직접 만나 일제 강제노역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 지연을 논의한 정황이 담긴 문건, 특정 성향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도록 한 문건 등을 확보했다.

    사법부에 신뢰 추락에 대한 우려나 양 전 대법원장이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하고 후배 법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 또한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의 혐의 부인이 오히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판단의 근거를 줬다는 것이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후배 법관들이 ‘대법원장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에 대해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거나, 이른바 ‘이규진 업무수첩’에 대해서도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나중에 조작됐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은 또 기각됐다. 박 전 대법원에 대한 피의자심문을 진행한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의 수사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고,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며 기각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양승태 구속에 대국민 사과 “참담하고 부끄럽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9시경 출근길에 “국민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는 말씀 드린다.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 저의 마음과 각오를 밝히고 또 국민 여러분께 작으나마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저는 찾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동요하는 사법부 구성원에 대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며 “그것만이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이고, 그것만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승태 구속영장 발부
    여야 4당 “당연한 결정…사법부 신뢰 회복 계기로 삼아야”
    자유한국당 “현 정부의 사법부 장악 시도, 무리한 적폐청산을 중단해야”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와의 재판 거래, 법관 사찰과 인사 불이익, 일선 법원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의 최종 책임자에게 내려진 당연한 귀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변인은 “그 동안 사법부는 사법부의 정치 권력화를 추구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위 법관들에 대해서는 ‘제 식구 감싸기식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양 전 대법원장 구속 결정으로 사법부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법원이 ‘의리’가 아닌 ‘정의’를 선택했다. 단죄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김 대변인은 “사법농단 의혹의 화룡점정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확정하면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추락한 위상을 조금이나마 되찾게 되었다”며 “사법부 스스로 사법농단을 극복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나라의 근간인 3권독립을 책임져야 할 사법부 수장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독립 모두를 깡그리 무너뜨렸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사법부 독립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것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공동책임을 져야 할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 또다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사법부 책임을 축소하려는 것으로서 온당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 또한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국민들은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있다. 당연한 일이 당연히 일어나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너무나도 불안정한 세상임을 말하는 것”이라며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이제껏 법원은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하면서 양 전 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무리들을 비호하기 바빴다”면서 “오늘 결정은 양 전 원장의 범죄가 빠져나갈 여지가 없이 명백하기도 했지만 법원이 결국 압도적인 국민들의 목소리에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 전 원장이 구속되었지만 단죄를 받을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국회는 서둘러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구성과 법관 탄핵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중당도 논평에서 “양승태 구속은 사법적폐 청산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며 “법의 존엄성이 뿌리 채 흔들린 흑역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무리한 적폐청산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위법행위가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하다”면서도 “이 사건이 현 정권의 사법부 장악시도에 따른 수단이라면 또 다른 적폐로 역사적 심판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2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됐다. 문재인 정부의 과거지향적인 적폐청산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새로운 적폐를 양산할 수 있는 무리한 적폐청산을 중단하고 미래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을”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발부를 환영하며, 사법농단 사태에 관여한 법관들에 대한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너무나 당연한 결정에 이같이 안도해야 하는 상황 역시 이해할 노동자, 시민은 얼마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민주공화국 헌법의 기본원리는 삼권분립에서 시작한다고 아직은 가르칠 수 있음에 안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잊고 정권 입맛에 맞춰 한 손엔 노동자 목숨을, 다른 손엔 헌법정신을 쥐고 흔들던 추악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주권을 가진 국민의 힘으로 강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철저한 사법적폐 청산을 위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즉각 행동에 돌입할 것을 요구한다”며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과 사법농단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마련 등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사법농단 사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제 시작됐다”며 “철저한 수사와 재판은 물론이거니와 사법농단 사태에 관여한 법관들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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