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 조끼’와 유럽 정치
    [국제정치] 기존 정치에 불만 표출
        2018년 12월 11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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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류세 인상과 ‘노란 조끼’ 운동

    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노란 조끼’ 운동으로 집권 1년 6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 정책에 반대하는 온라인 시위로 시작된 이 운동은 11월 17일 이후 네 차례에 걸친 대규모 주말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12월 1일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직후에도 유류세 인상 철회는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던 마크롱 정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12월 4일에는 6개월 유예를 발표하더니 급기야 하루 만인 5일에는 인상안 철회로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였다. 그런데도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12월 8일 네 번째 시위에는 유류세 인상 철회 발표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약 13만 6천여 명이 노란 조끼 시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시위보다는 다소 규모가 줄었지만, 프랑스 정부가 전국적으로 9만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원천봉쇄에 나선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였다. 이날 파리에서는 최루탄과 물대포, 장갑차로 무장한 경찰병력과 1만여 명이 넘는 시위대 사이에 크고 작은 공방전이 이어졌다. 8일 시위 이후 SNS에서는 벌써 15일의 시위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혹자의 말처럼 지금 프랑스에서는 1968년 이래 최대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의 발단이 된 유류세는 탄소세의 이름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집권 직후부터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천명한 마크롱 정부는 저탄소 정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상을 추진해 왔다. 과세를 통해 석유와 경유 등 화석연료의 소비 비용을 증가시켜 대체 연료로의 전환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마크롱 정부 집권 이후 석유 가격은 약 15%, 경유 가격은 약 23% 정도 인상된 상태였다.

    저탄소 정책을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탄소세 도입은 다른 문제였다. 유류세 인상으로 트럭 운전자를 포함한 운수업 종사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는 농촌과 도시 외곽지역 거주자들도 포함된다. 파리와 같은 대도시와는 달리 대중교통이 미비하여 통학과 출근 등 일상적인 활동을 차량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도에 유류세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마크롱 정부의 계획은 이들의 누적된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노란 조끼가 이들의 상징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법률상 모든 운전자는 차량에 노란색 형광 조끼를 비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란 조끼 시위 모습(방송화면)

    불평등에 대한 민중의 저항

    그러나 유류세 인상은 노란 조끼 운동의 촉매제에 불과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노란 조끼 운동은 불평등의 근본적인 해소와 마크롱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 운동으로 발전했다. 마크롱 정부가 서둘러 유류세 인상 철회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노란 조끼 시위대의 눈에 유류세 인상은 마크롱 정부가 가난한 이들의 곤궁함은 안중에도 없는 부자들의 정권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다. 노란 조끼 운동의 배후에는 집권 이후 마크롱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반민중적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2017년 5월 출범 이후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 경제의 재도약이라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노동과 조세 개혁을 단행했다. 마크롱 대통령 스스로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명명한 노동 개혁은 대규모 저항을 우려하여 여름 휴가철에 비밀스럽게 그리고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해고 요건과 비정규직 고용 요건을 완화하고 산업별 협상 대신 기업별 협상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였다. 조세 개혁의 요체는 ‘부자 감세’였다. 금융 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자산을 대상으로 하던 부유세를 부동산에 대해서만 징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였다. 자본 소득에 대한 누진 과세를 일률 과세로 전환하는 조치도 뒤따랐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유럽연합으로의 진출을 모색할 런던 금융가의 자본을 파리에 유치한다는 명분이었다. 마크롱 정부가 단행한 부자 감세의 규모는 32억 유로에 달했다. 이에 따른 세수 부족분은 간접세 인상과 정부 지출의 축소로 충당되었다.

    마크롱식 경제개혁의 효과는 너무도 자명했다. 부자 감세로 일반 민중의 삶은 곤궁해졌다. 프랑스 노동자의 월평균 중위 가처분 소득, 즉 세금 등을 공제하고 실제 집에 가져가는 월급은 1,7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22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중위 소득이니 노동자의 절반은 22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꼴이다. 물론 프랑스는 국내총생산의 33% 이상이 사회보장비용에 사용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프랑스 노동자들은 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세금을 내고 있다. 프랑스 중위 노동자의 가처분 소득이 우리 돈으로 220만원 정도에 불과한 이유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부가가치세는 20%에 달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먹고 살기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관련 기사 링크)

    물론 이 모든 것을 마크롱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마크롱의 경제개혁 이전에도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다섯 배에 달하고, 상위 1%가 전체 부의 20%를 독점할 정도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었다. 프랑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는 이미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마크롱 정부의 잘못이 있다면 울고 싶은 프랑스 민중의 뺨을 때린 것뿐일지도 모른다.

    노란 조끼 운동과 2019년의 유럽

    노란 조끼 운동이 향후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예단할 수는 없다. 불평등과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불만을 제외하고 이 운동의 이념적, 조직적 색채를 특정하기도 현재로서는 곤란하다. 특정의 정치세력이 주도했다기보다는 SNS를 통한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직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정형적이지만 또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란 조끼 운동이 기존의 사회질서와 기성의 제도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노란 조끼 운동은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포퓰리즘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와 같이 극우 포퓰리즘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오래전 프랑스 혁명이 그러했듯 평등과 연대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느 방향으로 귀결되든 노란 조끼 운동은 향후 프랑스 정치의 향방은 물론 2019년의 유럽 정치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란 조끼 운동 이전에 이미 추락하고 있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 운동을 계기로 최근 20%대로 내려앉았다. 사실상의 정치적 파산 선고나 마찬가지이다.

    마크롱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동안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국민연합(국민전선의 명칭을 올 6월 변경)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여 왔다. 급기야 한 달여 전에는 내년에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전선이 제1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이 이웃 국가들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2019년 유럽의 정치지형을 어떻게 바꿀지 지켜볼 일이다.

    필자소개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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