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은?
    [비판과 비평] 재벌 탓하는 게 해법 아냐
        2018년 11월 24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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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한국이 재벌중심 체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정체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관련 기사 링크) 그는 대안으로 시장 중심의 개혁을 외친다. 재벌 욕하는 것은 너무 일반화되어 이제는 저잣거리의 범인들도 다들 한마디 한다. 금속노조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재벌을 비판해야만 정의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재벌의 존재가 진정으로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벌이 잘못한 것을 봐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벌들이 노동법을 어기고, 기술 탈취를 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면 현행범으로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봐주기 관행은 병을 깊게 한다.

    한국은 재벌과 함께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이다. 그 빠른 성장이 이제 정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정체의 원인은 세계 수요의 감소와 ‘선두주자로 진입하면서 발생하는 혁신의 지체다.’ 그 의미를 안다면 재벌 어쩌구 하는 말은 함부로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우리는 빠른 기술주기를 갖는 산업들에서 상당부분 캐치업에 성공했지만 숙련과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 첨단산업 부분에서는 여전히 선도 국가들(독일, 일본, 미국)에 한참 미달한다. 그러나 이런 국가들의 축적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를 비교해 보았을 때 그 격차는 당연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혁신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퉁치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지적 게으름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까지 빠른 생산성 상승률, 실질임금 상승률, 높아진 생활수준-소비수준, 혁신적인 투자와 자본스톡의 증가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 성과로 인해 한국인들이 삶은 또 얼마나 변했는가? 그것을 모두 부정하면서 재벌탓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와 같은 세계 수요의 감소로 인한 정체는, 수출 주도 성장을 해온 한국의 근본적인 한계와 맞물려 있다. 수출주력기업들의 주요 산출물들은 국내시장에서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없다. 당연히 수출주도 산업의 선도기업과 중소기업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자체 시장의 규모가 워낙 크기에 수출을 내수로 상당 부분 돌릴 수 있었다. 독일은 원래 최고의 기술수준에다가 유로존이라는 넓은 시장을 지녔으며(노동력 풀, 단일시장, 화폐통합의 혜택), 미국은 첨단산업-금융산업 압도적 1위다. 그 기반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군수산업과 세계화폐로서의 달러 발권력이 있으며 세계로부터 인적 자원을 끌어들일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적인 문화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다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비해 기술적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생산 글로벌화를 통해 동남아시아 등에서 넓은 생산기지를 개척하고 있었고, 국내 산출의 수출 의존도를 매우 낮춰서 세계 수요의 변화로부터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난 20년간 지속되어 온 노동시장 구조변화-실질임금 정체로 많은 부분에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한 상태다. 기술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었지만 가격 경쟁력은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현재를 헤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재벌 탓 하는 것은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시장친회적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과연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가? 1980년대 이후 시장친화적 개혁으로 경제성장을 제대로 이룬 나라 한 두 곳이라도 예를 들어준다면 그 주장에 동조하겠다.

    물론 얼치기들처럼 중국을 봐! 시장친화적 개혁으로 이렇게 성공했잖아! 하는 식의 주장은 그만두시라. 중국은 한국과 일본 모델을 자신의 위상에 맞게 가장 잘 활용한 사례이다. 아일랜드나 싱가포르-홍콩, 룩셈부르크처럼 되자고? 아니, 그것은 국제적인 자본도피처나 조세천국으로 가자는 소리다. 독일형? 그럼 우리에게도 1세기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 무엇?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질문이다. 여기에 누군가 답을 주었으면 한다. 재벌탓 하는 한가한 소리 그만두고 말이다.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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