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은산분리 ‘원칙’
    대가와 폐해는 국민들에게
    [금융정의] 민주당, 강령엔 은(금)산분리 강화, 현실에선 무력화 추진
        2018년 10월 15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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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의원 여러분, (민주당은) 19대 국회와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은행법 개정안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에 대해서 어떠한 은산분리 완화도 안 된다며 논의를 거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면 몰수하고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기 하셔도 되는 겁니까? 민주당은 금산분리 강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모두 다 포기하시는 겁니까?”

    -9월20일 정기국회,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지난 9월 20일 열린 정기국회에서는 열띤 반대토론 끝에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통과되었고, 10월 8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통과되었다. 사회 곳곳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산분리 완화’에 합의한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이 금융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산업자본(기업)과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아놓은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금산분리에서 은산분리로 이슈가 전환된 것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가 보험, 증권, 저축은행의 영역까지 진출해 있기 때문에 은행업에 한해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이다.

    9월 21일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사진=참여연대)

    민주당의 상반된 주장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부당 내부거래 해소 등의 재벌 개혁을 추진하며, 불법적 경제행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한다

    더불어민주당 강령–5.경제-(공정한 시장경제)의 내용 중 일부이다. 강령에는 금산분리(은산분리) 강화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왜 강령을 무시한 채 은산분리를 완화하려는 것일까.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대한 반대가 심해, 9월 20일 정기국회 특례법 처리 당시 반대 26표 중 15표가 민주당 의원이었다. 또한 민주당은 특례법 처리 전 3차례의 의원총회에서 특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했음에도 ‘원내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이라며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물론 민주당과 정부는 이에 대해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규제를 완화하면서 원칙은 지킨다는 민주당과 정부의 말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이미 지난 정권에서 보여줬다. 지난 2015년 6월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를 50%까지 허용하는 내용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안을 발표했다. 당시 민주당 정무위 간사였던 김기식 의원은 이에 대해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은산분리에 예외를 둘 수 없다. 정부안(박근혜 정부)은 산업자본의 은행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은산분리의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19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반대로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법안이 폐기되었다.

    국민들은 은산분리 완화를 끊임없이 주장했던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늘 그렇게 소신 있게(?) 그것을 주장했고, 경제민주화 실현에 대한 요구가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은산분리 강화’를 외치는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를 해명하고 무너진 신뢰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은산분리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는가.

    인터넷전문은행은 은산분리 무력화를 위한 방패막이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다만, 대주주의 사금고화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주주의 자격을 제한하고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간담회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내용 중 일부다. 그럴싸한 발언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가 안 된다. 현 제도와 규제가 ‘신산업의 성장’을 어떻게 억제하고 있다는 것인가. ‘신산업’은 아마도 K뱅크, 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을 의미할 것이다. 여기서 K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신산업인가하는 것과, 이들이 규제 때문에 성장을 못하고 있는가 하는 2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필자는 K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신산업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점포만 없을 뿐 엄청난 혁신기술이 도입된 새로운 산업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핀테크 시장 활성화에 인터넷은행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기존에도 이미 각종 페이를 비롯한 핀테크 혁신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카카오뱅크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8월 말에는 카카오뱅크의 자산이 10조 원을 돌파했다고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는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가 규제완화 없이도 빠른 성장을 하고 있고, 자본 확충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다.

    반면, 9월 1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2018년 2분기 말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현황)에 따르면 전체 인터넷전문은행의 2분기 부실채권비율은 1분기에 비해 2배나 높아졌고, K뱅크(0.22%)가 카카오뱅크(0.08%)보다 거의 3배나 높다. 또한 자산규모도 카카오뱅크의 1/10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K뱅크가 빠른 속도로 부실화되고 있어, 증자를 통해 주 수익원인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경영난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똑같은 은산분리 규제 하에서 카카오뱅크는 성장하고, K뱅크는 부실화된 상황으로 볼 때, 현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말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K뱅크의 자본 확충을 위해 은산분리를 완화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신산업 성장을 위해서라는 말은 규제완화를 위한 허울뿐인 것이다.

    또한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의 문제는 특례법의 가장 큰 우려지점이었다. 정부와 금융위원회는 특례법에 규정한 대주주 자격 제한(개인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배제)과 대주주와 거래 금지 조항 등을 통해, 은행의 재벌‧대기업 사금고화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특례법은 예외적 형태여서 전반적인 은산분리 원칙 훼손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안일한 생각이다. 예외조항이 있다고 해도 대기업이나 특히 금융시장의 규제완화에 부정적인 이유는 법 집행이 강력하지 않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강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월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법부는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로 인해 구속된 3명의 직원에게 보석을 허가해줬다. 결국 엄청난 금융 범죄를 저지른 삼성증권은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놓고도, 사법부와 금융당국으로부터 솜방망이 제재를 받았을 뿐, 오직 돈으로써 죄를 씻었다.

    또한, 그 예외조항을 법령이 아닌 시행령으로 둔다고 하는 것은 정부가 재벌‧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제재할 의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시행령은 정권에 따라 대통령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데, 시행령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번 특례법이 은산분리 자체를 목적으로 재벌에게 은행 소유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임을 정부와 여당이 인정하는 꼴이다. 결국 은산분리 무력화 자체가 목적이었고, 인터넷전문은행을 방패로 삼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후약방문적 제도, 실패한 정책일 뿐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정책의 실패는 그 대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 2013년 동양증권 사태는 은산분리가 완화(이명박 정부 때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비율이 4%→9%로 완화됨)된 사이에 지분을 늘린 대주주들이 금융자본을 사금고화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동양증권은 당시 동양그룹 경영진들과 공모해 자사의 부실회사채를 우량한 것처럼 속여 판매했다. 이 사태의 피해자는 모두 개인투자자들이었다. 당시 은산분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후 금융당국의 제대로 된 조치조차 없었다. 원칙을 무너뜨린 대가는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 대신 국민들이 혹독하게 치러야 했고, 규제완화는 그저 금융시장의 실패한 정책일 뿐이었다.

    금융관련 규제는 한 번 허물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현 금융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만 완화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각종 경제 정책들이 실패를 거듭해 친 재벌 정책으로 한발 짝 돌아서려는 신호가 아닌지 의심된다. 이미 은산분리 규제는 풀렸다. 정부와 민주당이 확언한대로 대비가 잘 되었는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원칙 없는 실용주의는 아니었는지, 정권이 바뀐 후 자신들은 재벌에게 은행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리화시키지는 않을지.

    필자소개
    금융정의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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