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스트 레이디와 정상국가
    [세상만사] 대통령 배우자 바라보는 시각들
        2018년 10월 12일 06: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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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가지 연구소’ 김성진 씨가 앞으로 부정기적 칼럼을 게재하기로 했다. 김성진 씨는 민주노동당과 정의당의 인천시당 위원장을 지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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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오랜만에 만난 남매처럼 살가운 포옹과 행사 도중의 귀엣말, 서로를 배려하는 스스럼없는 모습들은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두 정상의 배우자들이 보여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언론들은 북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라며 이설주 씨를 집중 조명했고, 하다못해 입은 옷까지 기사화하면서 숱한 화제를 만들어 냈지만, 그러나 결론은 ‘이설주 내조 외교를 통한 정상국가의 면모 부각’이라는 대동소이한 기사 제목을 달았다. 부부가 동반한 북중정상회담 때에도 똑같은 기사 제목은 마찬가지였다,

    이 헤드라인은 되짚어 이야기하면 퍼스트 레이디라고 불리는 대통령 혹은 국가수반의 배우자가 외교, 혹은 국내 정치에 전면으로 나설 때 비로소 정상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적어도 이제까지는 정상국가가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평양의 음악종합대학 음악당에서 귀엣말을 하는 남북 양 정상의 배우자들

    뭐가 정상국가일까?

    이렇게 되면 ‘정상적이란 어떤 것일까? 정상적인 국가란 어떤 나라일까?’라는 물음을 한번 쯤 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에서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 나머지 여성들은 세컨드 레이디 (Second Lady), 써드 레이디(Third Lady) 쯤 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 라고 부르는 대통령 부인을 우리나라에서는 영부인(令夫人)이라 불러왔다.

    영부인이라 부르건 여사라고 부르건, 대통령의 배우자는 대통령 못지않은 공직을 수행한다. 온갖 공식 행사에 배우자와 나란히 앉아 있어야 하고, 배우자의 비어 있는 일정도 채워야 한다. 때로 외교 순방에 함께 나서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그야말로 일심동체의 전형이자 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투표했지 그 배우자에게 자신의 권한을 한 번도 위임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대통령의 배우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랏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여사 사업, 여사 예산이라 불리는 것도 있단다. 말하자면 대통령 배우자가 직접 챙기는 사업이요 예산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배우자 못지않은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고, 꼭 필요한 관행이라면 ‘대통령 배우자의 예우에 관한 법률’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 월급도 주고 정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닐까?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인 멜라니아 씨는 트럼프 대통령의 배우자이다. 비행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손을 흔들며 트랩을 내려오는 뉴스만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패션이 가십거리가 되거나, 배우자의 손을 잡으려 했는데 멜라니아 씨가 뿌리쳤다는 뉴스 같은 것을 들을 때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뭐, 미국에서는 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여성이다. 독일의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은 양자화학자이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교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뿐, 정상적 국가에서 마땅히 행해져야 할 정상적인 관행을 무시하고, 총리인 배우자를 보좌하지 않고 있다. 이 사람, 혹시 자신이 남성 배우자라고 본분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정상일까? 정상국가 혹은 정상적인 나라란 또 어떤 것일까?

    대명천지 21세기에 여왕을 모시고 사는 나라가 있다. 입헌군주제란 명목상으로 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헌법으로 국가가 유지되는 제도라는 것을 사회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지만, 굳이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왕실을 위해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축내고, 누가 왕세자비가 될 것인지가 세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나라가 정상국가일까? 어느 누가 배짱 좋게 영국에 가서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

    지구상에는 아직도 왕을 모시고 사는 나라가 수십 개나 된다. 천황의 이름으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강점했던 일본은 헌법 1조에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아직도 천황을 모시고 살고 있다. 전범 가문의 천황을 국민통합의 기제로 삼고 있는 일본이다. 이런 나라에다 대고 그 무슨 사죄를 요구하는 한국 사람이 어쩌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나라이다. 10년을 주기로 주석이 바뀌다가 시진핑 주석이 들어서,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주석에 절대 권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도체제에 시동을 걸었다고 한다.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양강의 중국이 다당제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고 해서 누가 정상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 나라가 각기 다른 정치 제도를 가지고 살아가기까지는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민중들의 투쟁이 있었고, 승리와 패배, 혹은 타협이 있었다. 나아가 한 나라 민중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정상인지 아닌지, 정상국가인지 아닌지는 그 나라 국민들에게 물어 보면 된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 왔고,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필자소개
    오만가지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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