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핵협상 복귀, 그 미래
    핵 문제 해결, 입구는 보이지만 아직 출구는 멀다
        2018년 04월 20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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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달 늦어도 6월에는 북미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지금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북미정상회담의 길잡이, 평화와 번영의 디딤돌로 만들자고 했다. 이 정도의 포괄적 위상으로 설정했다면, 성공적인 회담이 점쳐진다.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를 북한에 보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폼페이오 내정자를 만난 김정은 위원장이 “매력적이고 회담 준비가 잘되어 있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일이 잘 풀리지 않는데 매력적이다, 준비가 잘되어 있다고 평가할 리가 없을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전후하여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목표와 북한의 목표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이다. 여기에는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ICBM의 포기 혹은 무력화를 포함한다. 북한의 목표는 안보 위협을 제거하고 대미 수교 등 정상적 대외관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핵무기를 우선 폐기하면 모든 것이 열릴 것이다”라는 것이 미국의 기본방침이다. 이는 실현불가능하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30년의 북핵 관련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신뢰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포괄적 합의와 일괄타결, 단계적 이행은 기본이다. 다만 그 속도와 폭이 쟁점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른 시일 내에 북핵 폐기를 완료하겠다고 했다. 1년 내, 늦어도 2년 내에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합의들이 북한의 약속 불이행으로 무산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2년은 그가 재선에 도전하는 대선 전에 끝내겠다는 계산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일정만을 본다면 북한도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합의 이행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권교체라는 변수가 개입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일정만을 본다면”이다. 북한은 안전이 확보된다면 핵을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한이 보는 안보 위협 해소는 무엇일까.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북미 접촉에서 5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①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 철수, ②한·미 전략자산 훈련 중지, ③재래식·핵무기 공격 포기, ④평화협정 체결 ⑤북·미 수교이다.

    이 조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북한과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당신들의 핵무기가 문제야”라고 하는 것이고 북한은 “당신들의 핵무기도 문제야”라고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최근에는 오랜 대화조건이었던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묵인한 바 있는 북한이 이를 협상조건으로 고수할지 두고 봐야 한다. 그럼 북한이 미국의 핵 자산을 한반도에 들여놓지 말라는 조건을 고수한다면 미국은 동의할 수 있을까. 만약 미국이 이에 동의한다면 협상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노선은 긍정적 환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빠른 시일 내,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기간 내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국이 핵 자산의 한반도 전개라는 동북아 패권의 주요 군사적 수단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부 갈등은 한국의 남남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핵 폐기의 반대급부로서 군사적 양보, 동북아에서 전략 변경과 함께 대북 경제지원 조치는 미미 갈등을 필연적으로 낳을 것이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 때도 미국의 조야가 환영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 북한 원조계획을 승인하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 북한과의 조약에서 양보하다”라는 표제를 달았다. 곧이어 진행된 의회선거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합의 이행도 난관에 봉착했다. 정치적 기반이 허약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설사 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여론을 잠재울 뱃심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미국도 미국이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의 미래는 북한에게 달려 있다. 북한은 국제정치가 불리한 게임의 규칙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북한으로선 강대국이 만든 게임의 규칙을 바꿀 힘은 없다. 그 규칙에 들어 올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북한은 서 있다.

    북한의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대의 유훈”은 과거부터 해 오던 얘기다. 특별한 얘기는 아니다. 수령의 교시와 말씀, 유훈이 변함없이 행동지침이 되는 사회이긴 하지만, 유훈은 ‘창조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 다시 ‘유훈’을 불러낸 것은 대외적으로 핵협상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핵협상에 나선 것에 대한 설득 논리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협상용’으로 개발했다는 시각이 많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해 혹은 미국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대립되는 의견을 예외로 하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의 핵개발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힘의 균형”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직접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안보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는 문제와 관련된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다. 작년에 특사 자격으로 온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주지 않았으면서도 이번에는 그를 국빈처럼 대한 북한의 행동에서도 엿 볼 수 있다. 한반도 주변 강국이 강요한 질서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것, 그 판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 훨씬 앞서 있는 남한과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유지함으로써 1990년대를 거치며 한쪽으로 완전히 기운 남북한 역관계에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아니라, 그 가치에 걸 맞는 ‘등가교환’이 성사되지 않으면 핵 폐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문제 해결의 입구는 보이지만 아직 출구는 멀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와 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핵협상에 나선 것은 갑작스러운 사태 전개인 듯 보이지만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2017년 11월 북한은 화성-15형을 발사하고 나서 핵무력완성을 선언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정면 대응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협상국면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메시지로 예측했다.

    완성이 의심되는 ‘완성선언’,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도착했다고 크게 소리치는 것은 빨리 만나 얘기하자는 메시지 아닌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 두 축의 ‘병진’은 국제적 환경에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핵무기는 자체의 힘으로 되지만 경제는 자체의 힘으로 곤란하다. 제재로 인한 경제적 난관과 대외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흔히 얘기되는 핵 보유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핵 보유의 딜레마가 협상의 입구를 만들었다면 핵 폐기의 딜레마는 출구를 어렵게 한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배경을 “조미 사이의 힘의 균형”이라고 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북미 협상이 성공해서 핵무기를 폐기하게 되면 균형을 만든 힘은 사라진다. 평화협정은 안보위협을 해소하지 못한다. 흔히 예로 드는 우크라이나나 리비아 사태가 그 예이다. 미국에게 리비아 방식은 독재권력 유지를 위한 무기 사용을 사전에 예방한 ‘선’의 사례이고 북한에게는 외부 개입을 방조한 ‘악’의 선례다. 북한은 “우리가 자위적 핵 보유의 길을 버리고 굴종했더라면 이라크와 리비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세계 이르는 곳마다에 흐르는 피와 눈물, 재난과 불행의 비극이 그대로 재현됐을 것”라고 했다. 그 교훈은 틀린 말은 아니다. 평화협정은 약속에 불과하며 국제정치가 강대국 중심의 이익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안보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리비아와 북한을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리비아의 주변 환경은 북한과 다르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미국과 경쟁 혹은 대립관계에 있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더라도 남한과 일본에 대한 공격 능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일방적으로 미국이 공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안보 위협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공격 포기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안전보장, 다자간 안보협력시스템을 통한 평화체제의 정착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북한이 진정으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내부정치다. 리비아 사태는 미국의 일방적인 개입이 아니라 내부 분규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안보를 과장하여 이를 빌미로 국민을 괴롭히는 정권을 향하여 우리는 흔히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 때, 국민이 지키고 싶은 나라를 만들 때 진정한 안보는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북한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외부의 위협과 관련해 북한 정권 담당자들이 느끼는 진정한 위협은 미국의 핵 선제공격이 아니라 정부 전복 활동과 내부 분규 시의 군사적 개입일 것이다.

    핵협상으로의 복귀라는 북한 대외정책의 변화를 대내 정책의 연장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진정 주목할 것은 대내 정치의 향방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핵문제와 평화체제의 수립을 포함한 북한 대외정책 변화의 폭과 깊이, 속도를 가늠하게 해 준다.

    지금 일련의 대외정책 변화의 목표는 경제발전에 유리한 대외적 정치 환경의 조성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외적 개방과 대내적 개혁이 필수적이다. 젊은 지도자의 개혁의지가 이를 적극 추진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핵 폐기를 포함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도 훨씬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그러나 젊은 지도자의 자신감과 달리 여전히 북한은 외풍을 견뎌내기에는 약한 체제인 것도 사실이다.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도 불완전한 개혁에 그쳤다. 그들이 국부를 키우고 인민들의 풍족한 삶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경제개혁은 정치, 사회적 개혁을 동반한다. 시장화를 요체로 하는 경제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의식의 변화를 동반하며 이는 수령 중심 사회주의라는 북한 정치체제에 불안요소를 강화한다. 북한에서 수령체제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다. 북한은 수령체제가 냉전의 전시체제가 아닌 교류와 개방의 평화체제에서도 작동 가능한가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라 대외정책의 변화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을 개혁군주라고 가정할 수 있다. 허풍으로 가득 찬 혁명가가 아니라 실용적인 정치인으로의 변신이 그가 원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지배엘리트 계층의 이해관계가 문제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간부들에 대한 장악력을 키워왔고 그의 정치적 권위는 상당히 안정화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이익동맹이 지속될 때이다.

    개혁은 일반적으로 기존제도와 관행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지배계급의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지배엘리트의 기득권을 적절하게 보장하고 통제해나가면서 새로운 개혁을 해나갈 수 있는 리더십을 김정은 위원장이 확보하고 있는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시장화를 제도화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전후한 논쟁처럼, 1990년대 외교부와 당, 군부 엘리트 간의 힘겨루기처럼 젊은 지도자와 신중한 노간부들 사이에서, 그리고 지배엘리트 사이에서 벌어질 대내외정책의 변화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작년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가시 돋친 설전으로 불안해했던 우리에게 지금의 상황 변화는 가뭄 끝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단비는 단비일 뿐 해갈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해갈이 되지 않고 농사를 망칠 가능성도 많다. 비상한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땅 한반도는 구조적으로 평화 농사가 쉽지 않은 땅이기 때문이다. 줄탁동기(啐啄同機)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알 속의 새끼와 밖의 어미가 함께 껍데기를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남북한을 비롯해 한반도 주변의 모든 국가, 구성원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필자소개
    정의정책연구소 정책자문위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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