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발생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27] 2014년 4월 16일
    2017년 10월 13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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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가 열린 날이었다. 나는 한 달 넘게 안한다고 버텼으나, 결국 사무부총장으로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그 탓에 회의 준비하고 참석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SNS에 사고 소식이 뜬 것을 보기는 했다. 어디선가 배가 침몰하고 있다 했다.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걸핏하면 사고가 발생하는 대한민국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저녁 6시 40분께였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 위원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정회하고, 경향신문사 9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 벽에 걸린 TV에선 진도 앞바다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일반인 승객들을 비롯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 중에 유람선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200명 이상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고 했다. 일부 학생과 탑승객이 스스로 탈출했고, 정부와 해경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듯했다. 배는 아이들을 가둔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가족들의 통곡과 절규가 고스란히 화면에 비쳤다.

어마어마한 참사였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숨을 죽였다.

살려 달라 울부짖는 아이들의 비명과 몸부림이 연상되었다. 심장이 벌렁대며 쿵쾅쿵쾅 요동쳤다. 1987년 초 어느 날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벌거벗겨진 채 고문당하면서도 떨지 않던 심장이었다. 대로에서 쇠파이프로 무장한 백골단과 맞붙어 육박전을 벌일 때도 냉정하고 차분하던 심장이었다. 화면을 차마 더는 볼 수 없었다. 밥도 넘길 수 없었다. 난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심호흡을 하며 담배를 연달아 태웠다. 진정되지 않았다. 회의가 속개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심장이 벌벌 떨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뇌는 자꾸만 나의 일처럼 연상하고 있었다. 바다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 무리에 딸아이가 겹쳐졌다. 딸의 수학여행은 5월 13일부터 여수로 예정돼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제시한 여행지는 제주, 통영, 여수였다. 아이들은 투표로 여수를 선택했다. 프로그램과 일정과 음식이 좋았단다. 딸아이 반은 대부분 여수에 투표했다고 했다. 여수도 배 타는 일정이 있었다. 애초 보성여고 아이들은 제주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었다. 딸아이 사고가 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난 몸서리치며 참사 현장의 상상에서 딸아이를 지우려 기를 썼다.

아이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끔찍할까. 세상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회한으로 몸부림칠 것이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잠들면 아이들이 나타나 살려 달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아이와의 추억이 머릿속을 채우며 심장을 쥐어뜯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죽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내 막내가 죽고 나서 우리 가족이 겪었던 고통의 나날들이 떠올랐다. 부모보다 앞서는 죽음은 남겨진 가족에겐 지옥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의 술자리에서 인사불성으로 대취했다. 사무실에서 잤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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