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직투쟁 나선 12년차 보육교사
    “꼭 복직해 철학 있는 교사로 현장에 다시 서고 싶다”
        2017년 10월 13일 10:0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23일 토요일 낮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보육노동자한마당’ 행사 때다. 현장발언을 한 3명의 보육교사 중 한 명이었다.

    “국공립어린이집은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보육을 해야 합니다. 어린이집이 원장들의 철밥통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지자체는 어린이집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국공립 보육교사로 6년 동안 피를 토하며 지키려고 했던 그 원칙과 신념을 제 존재로써 증명해 낼 것입니다. 많은 보육교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남아 주십시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달뜬 목소리는 울분에 차 있었지만 카랑카랑했다.

    보육노동자한마당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앞줄 가운데가 이현림 교사다. ⓒ 이정호

    울분에 찬 달뜬 목소리

    이현림 씨(37)는 경기도 수원시가 민간위탁한 시립호반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6년을 일하다가 이달 초 해임됐다.

    이날 행사는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와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교사회, 어린이집교사상담전문밴드, 인천보육교사협회, 장애아동지원교사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보육교사와 학부모 약 350여명이 모인 이날 행사는 ‘보육공공성과 인권보육 실현을 위한 전국보육노동자한마당’으로 진행됐다.

    지난 11일 이현림 교사를 다시 만난 강남역 반올림농성장 ⓒ 이정호

    행사장에서 명함을 주고 따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역 반올림농성장에서 이씨를 다시 만났다.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날 반올림농성장 야간지킴이를 자원했다.

    이씨는 자신을 ‘노조하는 보육교사’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지난달 20일 수원시청으로부터 유기방임 혐의로 자격정지 2년을 통보 받은 뒤 이달 1일 해직됐다. 이씨는 자신의 자격정지를 수긍할 수 없어, 가처분신청과 함께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래 너 열심히 하고 있어’

    이씨는 보육을 전공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꿈이 디자이너여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4년을 그 계통에서 일했다. 20대 초반 때다. 그런데 디자인 일이 워낙 열정페이가 심해 2006년 꿈을 접었다. 혼자 되신 어머니와 자리를 잡지 못한 남동생이 유일한 가족이라 생업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다니던 교회 전도사가 “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일손이 부족하다”며 “석 달만 도와 달라”고 해 보육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너무 힘들어 2주 만에 도망가려고 했지만 1년을 꼬박 채웠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다른 일을 찾아보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자폐를 앓던 한 아이에게 마음이 꽂혔다”고 했다. 별 준비 없이 뛰어든 보육 일은 고난도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처음엔 그 아이가 손에 붙인 대일밴드를 떼면 왜 그렇게 우는지, 머리 모양을 예쁘게 바꿔주면 왜 그렇게 역정을 내는지 몰랐어요. 사실 자폐아를 처음 봤으니까요.” 자폐아는 대화하는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너무 힘들어 그만 두려 할 어느 날 그 아이가 자신과 눈을 맞췄다. 마치 “그 아이가 ‘그래 너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보육교사들은 박봉에, 원장과 행정기관이란 층층시하에 질식할 듯이 잡무에 시달리면서도 이런 기억 하나 때문에 보육 일을 놓지 못한다. 4~5년 하다가 온 몸에 기가 다 빠진 보육교사들은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보육현장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이씨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첫 어린이집을 나온 뒤 1년간 교육원에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지난 11일 반올림농성장에서 만난 보육교사 이현림 씨 ⓒ 이정호

    자격증을 딴 이씨는 2008년 용인시립어린이집에서 첫 국공립어린이집 경험을 쌓은 뒤 2011년 현재의 수원시립호반어린이집 개원 때부터 일했다. 그때쯤 아들(7)도 태어났지만, 친정엄마에게 맡긴 채 어린이집이 우선이었다.

    지금 보육현장은 1989년 전교조 출범 때 정부와 학교장이 퍼뜨렸던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는 케케묵은 논리가 팽배하다. 보육교사들이 교육관과 철학을 가진 걸 이해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교사만을 원한다. 근로기준법은 보육현장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도 횡횡한다. 이씨는 “제가 6년 동안 겪은 국공립어린이집은 민간어린이집보다 더 못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관할 지자체는 교사들의 문제제기를 하극상으로 치부했단다.

    ‘교사가 노동자냐’ 해묵은 논리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어린이집 원장 사전직무교육’에도 근로기준법은 영유아보육법, 아동복지법과 함께 보육 관련 주요법규로 지정돼 있는데 어린이집에선 근로기준법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됐다. 원장을 놓고 교사들은 양분됐고, 몇몇 교사들은 거칠고 과격한 보육 태도를 보이기 시작해 학부모들도 이를 인지할 지경이었다. 결국 어린이집은 아동학대 전수조사를 받았다. 이씨는 있는 대로 증언했지만 옆에서 엿들은 교사로 인해 원장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조사기관도 이씨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이씨에겐 업무지시란 이름으로 서류폭탄이 떨어졌다. 서류처리는 보육시간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급기야 이씨는 2014년 4월 동료교사 4명과 함께 노조를 만들었다. 원장은 교섭 도중에 조합원 전원을 징계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징계를 결정을 내렸지만 갈등을 계속됐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끝에 어렵사리 화해했다.

    2015년 여름 메르스가 한창일 땐 원장이 메르스 확진환자가 있는 병원에 병문을 다녀왔다. 이씨는 어린이집 학무보 운영위원과 이 내용을 공유했다. 원장은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경위서를 요구했다. 갈등이 깊어지자 노조에 가입했던 교사들이 자의반타의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이씨만 남았다.

    검찰도 기소유예 했는데 2년 자격정지

    지난해 12월 29일 이씨가 21명의 원생을 돌보면서 서류처리를 하는 사이에 발달장애 원생이 1층 창문 밖으로 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원내 뜰에서 놀던 아이를 발견하기까지 5~7분이 걸렸다. 아이는 약간의 찰과상도 없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씨가 아동방임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수사를 받자 아이의 부모는 이를 안타까워하면서 ‘형사처벌 불원서’를 제출했다. 아이 부모는 6년 동안 두 아이를 이 어린이집에 보냈기에 어린이집 사정을 잘 알았다. 부모는 탄원서에서 “이현림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다른 교사들보다 훨씬 살뜰하게 챙기는 분이셨다”고 적었다. 부모는 여러 차례 어린이집 원장과 시청을 찾아가 보조인력 충원을 요청했다. 부모는 “시청이 이현림 교사에게 2년 자격정지 처분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보조인력 충원 대책을 세워달라고 찾아 갔을 때마다 시청 소관이 아니라며 일축해놓고 그 책임을 이현림 선생님께 모두 전가하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씨의 대리인인 원영주 변호사는 행정심판 청구서에서 “이번 사건이 아동방임의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고 아동에게도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데다가, 아동의 부모가 ‘평소 담임도 아닌데 담임보다 아이에게 더 신경써준 이현림 교사가 이 사건으로 어린이집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검찰도 기소유예 처분했기에 시청의 자격정지 처분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의 엄마도 결혼 전 보육교사였다.

    12년차 어린이집 교사인 이씨는 지난 6년의 갈등을 되돌아보면서 “4살 때부터 엄마 손잡고 교회를 다녔는데, 횡포를 부리는 원장들 대부분이 교인이라 최근엔 교회 나가는 것도 포기했다”고 했다.

    이씨는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살았다. 숭인동은 지금도 자주동샘에서 비우당을 거쳐 영도교까지 골목길이 살아 있다. 여기저기 도심 골목길 도보 관광코스로 인문학 책에도 자주 언급된다. 이씨는 지금의 수지로 이사 갈 때까지 골목길이 살아있는 동네에서 살았다. “우리는 대문만 열면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노는 환경에서 자랐는데 요즘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갇혀 지내잖아요. 보육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만난 반올림농성장엔 송경동 시인의 ‘우리도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는 시가 걸려 있다. ⓒ 이정호

    이씨는 “꼭 복직해 철학 있는 교사로 현장에 서고 싶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공립어린이집 확대를 공약했지만, 단순 확대보다 ‘어떤 국공립이냐’가 더 중요하다.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 실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