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만주철도의 본진,
    국제도시 다롄(大连)을 걷다
    [동아시아]공간사반 2017여름만주답사 트래블로그①
        2017년 10월 06일 1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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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은 어떤 곳인가요? 아무래도 거긴 중국 같은 곳일까요? 여긴 말만 중국이지, 조선이나 마찬가지예요. 하긴 이젠 여기도 일본 땅이 됐지만……”

    “야마토 호텔, 니혼바시 도서관, 요코하마 마사카나 은행, 조선은행…… 대련 대광장에 서면 거기도 일본이나 마찬가지죠. 물론 러시아 거리에 가면 다른 풍경을 볼 수는 있지만”

    김연수의 소설 ‘바람은 노래한다’의 한 대목이다. 다롄에 있는 남만주철도 본사에서 측량기사로 일하던 김해연에게 용정의 여인, 정희가 다롄은 어떤 곳이냐 묻는 장면이다. 1930년대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곳, 다롄. 그러나 러시아거리만큼은 또 다른 풍경을 보이는 다롄이라는 묘사를 보며 그 시절의 다롄은 어떠한 곳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김해연처럼 다롄의 남만주철도 본사에서는 이천승 건축가 같은 사람들이 건축기사로 일을 했고, 해방 후 그들은 한국의 건축계를 이끌어나갔다. 이처럼 국제적 정취와 풍경을 가졌으면서도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멀지 않은 땅, 다롄. 그 다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국제도시 다롄의 시작

    중국 동북의 남쪽 끝, 랴오둥 반도의 항구 도시 다롄은 인구 669만, 면적 13,237 km2의 랴오닝성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다. 청나라 시절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다롄은 1898년 러시아의 관동주 조차 이후 이곳에 항구도시를 건설한 것이 그 시작이 된 것으로, 당시에는 러시아어로 다리니(Дальний Dal’nii, 먼 곳)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에 있어 다리니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부동항(不凍港)이자 하얼빈에서부터 이어지는 시베리아철도의 지선이 연결되는 종착점이었다. 러시아는 1898년 이후 다리니에 본격적인 도시계획을 하기 시작했으며, 하얼빈까지 이어지는 철도부설을 시작하였는데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로 러시아의 도시 건설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러일전쟁 이후 다리니는 일본에 점유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다리니라는 러시아식 지명을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다롄(大連)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러시아의 도시계획에 더해 다롄을 근대도시화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인들이 사용하던 공간들은 일본인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만주철도는 일본의 남만주철도회사의 소유가 되었다. 일본의 점령 이후 관동주의 중심은 뤼순(旅順)에서 다롄으로 옮겨 갔고, 다롄은 관동주의 중심이자 남만주철도의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림1은 1920년대 발행된 남만주철도회사의 홍보 엽서인데, 여기에서 보면 다롄은 러시아로부터 철도로 이어지며, 중국의 상하이와 일본의 시모노세키와 해로로 이어지고 있어 곧 육로와 해로의 접속점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945년 이후에도 다롄은 소련의 점거하에 있다가 1951년에서야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었다.

    그림. 1920년대 발행된 남만주철도회사의 홍보엽서, South Manchuria Railway Co. Published by John Barnes &Co. Ltd, London, in the 1920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outh_Manchuria_Railway_Promotional.jpg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진 다롄이기에 다롄의 곳곳에는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심지어 소련의 흔적까지 남아 있다. 시간축에 따라 다롄의 공간을 살펴보면, 러시아거리와 다롄항, 중산광장, 남산 부근의 일본인 거주지, 그리고 서측의 철도부속지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러시아거리

    1910년 작성된 다롄 지도에는 다롄항 주변과 현재 러시아거리라 부르는 부분, 그리고 중산광장에서 러시아거리를 잇는 부분이 중점적으로 그려져 있다. 러시아거리는 1898년 러시아가 다롄을 점령하게 되며 차지한 곳으로 현재는 러시아풍 건축물들이 가로를 따라 줄지어 있다 하여 러시아거리라 불린다.

    러시아거리는 바닷가의 원형광장에 위치한 옛 만몽물자참고관(1900년 이전 지어진 건물로 다롄시청으로도 사용되었다.)부터 원래 러시아선박회사 건물이었던 다롄예술전람관을 대각선으로 잇는 거리이다. 2017년 여름 이 곳은 본격적인 리노베이션 중으로, 조만간 관광지로(?) 재탄생할 듯하다. 리노베이션 이전의 모습, 그러니까 날 것의 러시아거리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랄까. 관광지가 되고 나면, 왠지 이 시간이 가득 묻은 모습은 보기 어려울 거 같아 아쉬워진다.

    만몽물자참고관(1900년 이전 다롄시정청)은 러시아거리의 서남측 끝, 원형 광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열린 ㄷ자형으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지난 8월에는 리노베이션 중이었다. 리노베이션 후의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전시관이나 관광 관련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까.

    만몽물자참고관(1900년 이전 시정청)이 있는 원형 광장 주변. 원형 광장을 따라 건물들도 둥글게 배치되어 있다. 아시아의 파리를 꿈꾸며 건설했다는 이 도시는 유독 원형광장들과 그 광장들이 연결되는 방사선 도로들이 눈에 띈다. 러시아식 바로크 도시계획이 일본 제국에 의해 실행되어 현재에 이르는 다롄의 풍경은 이 원형광장들에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련예술전람관 (러시아선박회사 1900년 이전). 러시아선박회사가 사용했던 이 건물은 러시아거리로 들어가는 옛 니혼바시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여, 여기서부터 러시아거리의 시작임을 알려준다. 붉은 벽돌과 노출 목조가 인상적인 이 건물의 뒤편으로는 복도가 이어져 부속 건물과 연결되고 있다. 관람시간이 4시까지이니 시간에 맞춰 가야 전시를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 팀은 시간에 늦어버려 내부는 보지 못했다.

    러시아거리. 러시아가 다롄을 점령했을 당시, 즉 1900년을 전후하여 지어진 상점, 교회 등 러시아식 건축물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러시아거리의 동측 블록에는 동청철도에서 건설한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그 중 철도직원기숙사였던 大山寮(왼쪽 사진)는 현재 다롄대학부속중산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주변에는 오래된 옛 집들도 많아, 관광지화된 러시아거리보다 오히려 더 생생히 이 지역의 풍광을 보여준다.

    2. 다롄항

    여전히 무역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는 다롄. 다롄항은 중국 동북도시의 남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일본, 한국 등으로 수많은 선박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다롄항은 러시아거리의 서측, 그리고 중산광장의 북서측에 위치하며, 철도가 항만까지 이어져 육로에서 해로로 이어지는 교통의 결절점이다.

    다롄항 터미널과 다롄항에서 떠나는 페리. 항만을 향해 길쭉하게 뻗은 터미널과 터미널들을 잇는 육교가 항만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대련항공부판공루(1916-26)는 만주의 현관이라 불리던 만주부두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다롄항으로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이 건물은 처음에 지었던 목조 건물을 철거하고 1916년부터 26년까지 10여년에 지은 건물로, 연면적 12,336m2에 이르는 규모로, 당시 사무소 건축으로서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다롄항공부판공루의 서측 항만교를 지나면 역시나 원형광장인 항만광장이 나온다. 항만광장의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현재는 다롄은행으로 사용중인 교역소 건물이다. 그 옆의 건물 역시 항만관련 건물로, 이 광장은 항만으로 접근해서 처음 만나는 도심 광장으로 이 길을 쭉 따라 가면 중산광장과 만나게 된다.

    3. 중산광장

    누가 뭐래도 다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공간은 바로 대광장, 현재의 중산광장이다. 아침에는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밤에는 춤추는 사람들도 가득찬 장소. 해가 떠 있을 때에는 일제시기 지어진 고전주의 양식들의 건물들이 그 위용을 뽐내고, 해가 지고 나면 그 뒤편의 마천루들의 입면이 미디어파사드처럼 변하며 광장을 둘러싼 건축물들의 배경이 되는 공간. 이곳이야말로 백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역시 다롄의 중심이자 다롄의 정체성이 아닐까.

    그림. 1912년의 다롄 지도를 보면, 러시아 거리가 있는 러시안 지역과 행정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산광장 주변, 그리고 그 서측의 중국인 지역을 볼 수 있다.

    (지도출처: http://www.lib.utexas.edu/maps/historical/dairen_dalny_1912.jpg)

    1898년 러시아의 점령 이후 계획된 중산광장의 처음 이름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의 이름을 딴 니콜라이 광장(Николаевская площадь)이었다. 1905년 일본의 점령 이후 이 광장은 바로 서측의 우호광장보다 크다는 의미로 대광장(大広場)이라 불렸다. 1945년 이후 비로소 이 광장은 중산광장(中山广场)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중산광장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은 일본 점령기 당시로 1908년에 독일풍의 민정서 건축을 시작으로, 1910년 츠마키 요리나카가 설계한 요코하마정금은행, 1914년 건축된 만주철도 소유의 야마토호텔(현재의 다롄빈관), 덕수궁 안에 있는 이왕가미술관을 설계하기도 한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1920년 건축한 조선은행 다롄지점, 중산광장을 둘러싼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에 비해 다소 모던한 외관을 가진 1936년에 건축된 동양척식회사 다롄지점, 그리고 소련 점령시절 건축된 다롄문화구락부까지 차례로 들어서 현재도 원형의 중산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중산광장을 둘러싼 건축물군 중 단 1개, 옛 영국공사관 건물만 철거되었을 정도로 나머지는 거의 20세기 중반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각 건물을 꼭지점으로 하여 총 10개의 대로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며 중산광장과 다롄의 각 지점으로 이어진다.

    야마토호텔에서 바라보는 중산광장의 모습. 중산광장에는 1910년대의 풍경부터 2017년의 풍경까지 약 100여년의 풍경이 중첩되어 있다. 1910년 지어진 요코하마정금은행의 뒷면으로는 푸른색 유리커튼월로 된 고층건물이 마치 거울처럼 그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처럼 중산광장을 둘러싼 첫 번째 켜에는 20세기 중반의 시간이, 그리고 그 후면의 켜에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시간이 쌓여 양식주의 석조 혹은 목조 건축물들과 그 후면의 커튼월 고층빌딩이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산광장을 기준으로 북측에는 요코하마정금은행, 그 맞은편인 남측에는 야마토호텔이 위치하고 있다. 요코하마정금은행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러시아거리가, 야마토호텔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남만주철도병원인 다롄대학부속중산의원과 남산 아래 일본인 거주지역이 나온다.

    1914년 지어진 야마토호텔(다롄빈관)은 건축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현재도 운영 중이다. 철을 휘어 만든 아르누보 스타일의 게이트웨이를 지나면, 커다란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로비가 나오고, 오래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야마토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곳을 방문했던 유명인사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어, 이 호텔이 지난날 가졌던 위상을 확인해볼 수 있으며, 이곳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중산광장의 풍경이 볼만하다. 밤에는 중산광장을 둘러싼 다소 화려한 야간조명과 함께, 이 곳을 가득 메우고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중산광장의 밤. 춤추는 사람들과 그 배경이 되는 야마토호텔

    중산광장에서 루쉰로를 따라 이동하다보면, 거대한 신전 파사드를 가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이 건물은 바로 남만주철도 본사건물인데, 현재도 철도회사가 사용하고 있다. 남만주철도 본사는 쌍둥이 같은 두 개의 건물이 양측에 있고, 그 가운데를 중정과 일자형 건물이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를 만들며 배치되어 있는데, 사실상 쌍둥이 같은 두 개의 건물 중 서측의 건물은 1908년 러시아가 학교로 사용하려 지었던 건물이었으나 일본이 이곳을 차지하게 되며 남만주철도 본사로 사용한 것이었다. 이어서 이 건물과 거의 유사한 규모와 형태의 건물을 하나 더 지어 전체 건물군을 이루게 되었다. 자세히 보면 입구나 창호 등 디테일들이 달라 비슷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무게감도 다르게 느껴진다.

    남만주철도 본사 주변에는 여전히 만철도서관, 만철에서 운영하던 학교 등이 남아 있어 남만주철도의 본진이었던 다롄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핑크빛으로 채색된 도서관 건물에도 역시 신전 파사드와 거대한 사이즈의 이오닉 기둥이 있어 무게감있게 대로변을 점유하고 있다.

    만철도서관

    야마토호텔(다롄빈관)을 끼고 남측 언덕으로 조금만 오르면 바로 다롄대학부속중산의원이 보인다. 이 병원은 원래는 철도병원으로 지어진 것이었는데, 철도병원은 철도공사 혹은 철도운영 시에 발생한 부상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도 했지만, 철도에서 일하는 직원과 그 가족의 건강을 위해, 좀 더 넓게는 철도가 있는 지역의 일본인들의 의료를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1925년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로 지어진 이 병원은 거의 대학병원급의 크기와 수준을 자랑한다. 스크래치 타일이 붙어 있는 외관에 핑거형(손가락처럼 건물이 계속 튀어 나와 있는 구조) 평면을 가진 이 건물은 현재도 병원으로 잘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철도병원이 아닌 다롄의 중앙 병원으로 역할을 하는 중이다.

    중국인의 친구 노먼 베쑨 박사의 동상이 놓여 있는 다롄대학부속중산의원.

    4. 남산 부근 일본인 거주지

    철도병원을 지나 언덕으로 계속 오르면 일본 점령 이후 주거지로 개발된 남산 언덕 일대의 일본인 거주지로 갈 수 있다. 행정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산광장을 지나 남산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은 산 위에 동본원사, 서본원사, 신사 등을 건립하여 종교적 중심으로 삼았고, 산 위에 배수지를 만들고 물을 끌어 남산 아래 주거지까지 공급하였다. 일렬로 늘어선 블록들에는 단독주택들과 연립주택들이 자리 잡았으며, 그 중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동본원사였던 건물은 경극극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공사중) 3-4층 규모의 연립주택이 들어섰던 곳들에는 여전히 비슷한 규모, 비슷한 유형의 연립주택군들이 분포하고 있다. 일본점령기 중앙공원이었던 곳은 현재는 라오둥공원(노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다롄 구도심의 중앙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공원의 맨 위에는 텔레비전타워가 있어 다롄 시내를 한 번에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다. 텔레비전타워로 오르는 케이블카는 남산도로 위를 그냥 지나는! 아찔한 경험까지 제공한다.

    5. 철도부속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다롄의 구도심에서는 서측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1928년 지도에서 보면 서쪽 끝에 위치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철도공장과 철도관련 부속지, 즉 철도노동자사택이 한 단지를 이루며 위치하고 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일제점령기에 지어진 그대로 남아 있다. 철도는 사실상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도시기반시설이기에 철도부설뿐 아니라 운영에도 수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였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주택의 수요와 공급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롄철도병원이 위치한 남산의 일본인 거주지의 상당 부분도 철도사택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철도공장이 위치한 도시의 서측에는 대규모의 철도노동자사택이 분포하였다.

    노동자주택을 방문했을 당시, 이곳에서 살고 계신 조선족 어르신을 만나 운 좋게 내부 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노동자주택단지는 노동자의 계급에 따라 1호주택, 2호주택, 연립주택 등으로 분류되는데, 고급관리들은 북측의 1호주택 혹은 2호주택에서 거주하였다. 우리가 방문했던 집은 2호주택으로 원래는 한 가족이 살아가는 규모이나 해방 이후에는 이 집을 여러 개로 분할하여 4개의 가구가 살고 있었다. 이 주택보다 남측에는 2-3층 규모의 집합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이 중 벽돌로 되어 있는 몇 개 동은 일제점령기 당시의 건물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철도노동자주택단지 전체를 철거하고 대규모 재개발을 한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적으로 한 동씩 새로 지었기에, 한 단지 내에서 비슷한 규모와 비슷한 형태를 한 집합주택들이 각기 건축연대가 다르다는 점이다. 철도공장과 맞닿은 주택단지의 서북쪽 끝에는 이 주택단지의 중심시설이었을 구락부 건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20여년의 시간 동안 러시아와 일본, 소련과 중국이라는 다양한 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다롄은 그 시간의 켜를 다양하게 쌓아 왔다. 러시아거리와 중산광장, 다롄항 일대의 작은 항구도시였던 다롄은 서측과 남북측으로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조선산업, 금융업 등을 기반으로 중국 동북도시의 경제 중심지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대광장과 대규모쇼핑몰, 그리고 고층빌딩들이 가득찬 다롄의 모습은 국제금융도시로서의 화려한 외양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롄에는 여전히 20세기 중반의 건물들과 장소들이 남아 있고, 그 당시의 분위기 역시 남아 다롄에 쌓인 시간의 켜를 보여주고 있다.

    * 이 글은 그 시간의 켜를 찾아 떠났던, 2017년 여름 만주답사의 시작점, 다롄의 풍경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이다. 앞으로 2회에 걸쳐 만주철도를 타고 하얼빈, 그리고 장춘의 도시 풍경을 소개할 예정이다.

    필자소개
    연세대 공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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