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들의 광화문 농성 5년,
    사회의 인식 바꾸는 끝나지 않은 투쟁
    [인터뷰] 1조원의 사나이,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
        2017년 10월 03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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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번 추석 황금연휴에도 노숙농성을 한다. 1년에 2번 있는 설, 추석 명절마다 전장연 회원들은 장애인에게도 이동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한다. 과거엔 광화문 사거리에 휠체어를 줄지어 대고 교통을 가로 막으며 이동권을 외쳤다. 휠체어를 탄 채로 몸에 쇠사슬을 묶고 대교를 건넜고, 또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라면 갈 수 없다며 버스에 쇠사슬을 묶기도 했다.

    최근엔 5년 동안 해온 광화문 농성장을 철수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인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위한 공동의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정부와 합의하면서다. 물론 정부에 완전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큰 성과다. 3대 적폐를 보는 대중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도 그들이 투쟁으로 해낸 결과물이다.

    <레디앙>은 지난 달 27일 저녁 종로구에 있는 노들야학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만나 광화문 농성의 성과와 장애인 이동권 투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리는 유하라 기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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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겹게 버텨낸 5년, 결과보단 과정을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 3대 목표를 내걸고 지난 5년간 해온 광화문 농성을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농성 투쟁의 성과와 의미에 대해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나.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 100점 만점이라면 150점은 넘었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방식으로 성과를 결과로 따진다면,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 기준은 폐지 안됐다. 대충적인 방향과 논의기구를 꾸리기로 한 정도다. 그리고 이 논의기구도 한방에 무력화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150점이냐, 중요한 건 과정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언제나 포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5년을 버텼다.

    노동조합에서도 장기농성이 많지만, 신체적 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들이 장기농성을 버틴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많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화장실 문제부터 덥고 추운 문제들까지. 그런 것들을 견디면서 전장연 지역조직 전체가 돌아가면서 이 농성을 분담했다. 포기하지 않고 박근혜 5년을 견뎠고, 또 우리가 선택해서 이 농성을 중단했다. 그리고 투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 투쟁의 과제를 남겼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농성 마무리 시점이 되면 ‘목표가 실현되지 않았으니 농성을 접으면 안 된다’ 등 늘 강경한 목소리들이 나오기 마련이라 오히려 내부가 조정이 힘든 경우가 많다. 우리도 내부 갈등이 있었지만 신뢰를 갖고 제대로 논쟁해서 잘 마무리했다.

    정종권 : 농성 처음에 내걸었던 목표의 달성 정도로 평가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목표의 달성의 정도가 아니라 5년의 과정 속에서의 단결과 참여가 더 중요했다는 말씀, 우문현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경석 : 너무 점수를 후하게 줬나요?(웃음)

    정종권 : 노동계에서 최임 1만원 투쟁 과정에서도 그런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역대 최대의 인상폭은 이뤄냈지만 계속 주장해온 1만원에 비하면 미달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최대 상승폭을 이뤄냈는데 의미 있게 평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오갔다. 양 쪽의 문제의식은 이해가 되지만, 사실 싸움은 한 번에 끝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일련의 과정들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 지점이 장애인운동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경석 대표(사진=유하라)

    마침내 손에 쥔 ‘3대 적폐’ 폐지를 위한 위원회

    정종권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라는 3대 요구 내걸고 시작한 농성이었다. 과정이 중요하지만 굳이 결과를 짚고 넘어간다면 어떻게 봐야할까.

    지난 8월 10일 문재인 정부는 ‘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20)’을 발표했다.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2018년 10월까지 폐지하기로 했지만, 생계·의료급여는 사실상 유지하고 있다. 단 소득·재산 하위 70%에 속하는 가구만 해당된다. 장애인·빈민단체들은 1차 종합계획안이 폐지안이 아닌, 완화안이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1차 종합계획안이 나온 후 청와대 앞에서 1주일 동안 ‘3대 적폐(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장애인수용시설) 청산’을 위한 노숙농성을 벌였고, 그 결과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을 찾았다.

    박경석 : 보건복지부와 함께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위원회, 장애인수용시설 관련한 탈시설위원회 등 3대 요구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결코 장애인의 복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낸 것이고, 정부도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만든 거다. 결과적으로 평가하면 이 점이 지난 5년 투쟁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박능후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와 부양의무제 기준에 대한 복지부와 전장연의 방향이 같다면서, 위원회를 구성해서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년~2023년)’ 때엔 완전 폐지하자고 했다. 경제부처 논리에 대응할 공동의 단단한 안을 내자는 것이 박능후 장관의 제안이었다.

    탈시설·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 요구만 5년
    달라진 사회의 시선…“투쟁주체들의 절실함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경석 : 지난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에선 장애인의 탈시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탈시설 문제의 가장 중요한 점은 심한 중증장애인이라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는 데 있다. 활동보조 문제만 따지면 24시간 활동보조가 지원이 돼야 한다. 이런 요구를 했더니 당시 박근혜 정부의 모 장애인정책국장은 ‘활동보조 24시간이 필요하면 시설에 들어가는 게 맞지 왜 지역사회에 나옵니까?’ 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탈시설 정책이나 인식 자체가 전무했다.

    그런데 지난 5년의 투쟁을 통해 대통령 후보들이 장애인 탈시설과 관련한 공약을 걸게 했고, 당선된 후보의 중앙정부가 탈시설을 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실제로 예산에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 이건 질적인 변화이고 방향의 변화다. 물론 방향의 변화를 통해서 앞으로 얼마나 나아갈 것이냐는 문제는 향후 우리 투쟁의 과제다.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와 관련해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똑같았다. ‘빈곤의 사각지대 해소’. 18대 대선 때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공약을 내건 후보는 심상정과 그 외 진보정당 후보뿐이었다.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은 ‘빈곤의 사각지대 해소’라고만 했다.

    당시 대선 때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갖고 나오지 못한 후보들의 경우, 이 정책을 하는 데에 예산이 많이 든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컸을 것이다. 예컨대 도덕적 해이 문제.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부양의 의무를 없애자는 거니까, 보수언론에서 일부의 케이스를 뽑아서 공격하면 자기들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땐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가 아니라) ‘빈곤의 사각지대 해소’라고만 했다. 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약은 표로 잘 돌아오지 않는다는 계산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5년 투쟁과 이번 대선 투쟁 이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혹은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중 가장 먼저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공약을 낸 사람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다. 유 후보는 “대한민국처럼 복지의 책임을 가족과 개인에게 떠넘기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보수우파 중에도 유승민이 인정할 정도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는 알려낸 거다. 유승민 후보가 공약을 발표하자마자, 우리가 민주당 (내부 경선) 후보들을 쫓아가면서 공약으로 걸라고 요구했는데 이재명 (예비)후보만 수용하고 안희정, 문재인 (예비)후보는 계속 피해 다니면서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우리는 몇 번이나 후보들을 찾아가서 요구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재인 후보가 (지난 3월 22일 복지, 노동,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 ‘개발국가, 재벌독식을 넘어 돌봄사회, 노동존중 평등사회로’ 축사에서) 맥락 없이 부양의무제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들으니 캠프에서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내부 논쟁을 했는데 후보가 이 자리에서 돌연 부양의무제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정리가 됐다더라. 이는 5년의 대중적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이 부양의무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게끔)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힘엔 당사자 등 투쟁 주체들의 절실함이 반영됐다고 본다.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복지정책의 1호 공약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있다. 과거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하면, 장애인 문제를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왜 1급과 6급이 똑같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느냐’고 공격했다. 그런데 인권적 측면, 사회적 분위기, 정부의 인식과 태도 모두 바뀌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우리 광화문 농성을 지지하며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권고했다.

    예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이게 가장 힘든 투쟁이 될 것 같다. 장애등급제는 어차피 예산(돈) 때문에 만들어진 거다. 장애등급제는 복지예산이 10원밖에 없던 시절에 그 10원 중에서 누구한테 먼저 줄 것이냐를 의학적인 잣대로 순위를 정하고 자르기 위한 도구였다. 애초에 형평성을 가지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런데 10원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과 1만원을 가지고 고민하는 건 고민의 무게가 다르지 않나. 88년도엔 10원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100원의 예산이 있다면, 우리는 1만원 (복지예산을) 만들어야 한다, 1만원을 만든 후에 장애등급제를 의학적 손상이 아니라 개인의 필요성, 처해 있는 환경, 욕구 등 나의 필요에 맞게끔 서비스와 예산이 운용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다. 참 어려운 사투다.

    장애인운동의 상징, 이동권 투쟁…“올해도 우린 싸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시작은 지난 2001년이다.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 추락으로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애인단체들은 휠체어와 몸에, 그리고 자신들을 태우지 못하는 버스에 쇠사슬을 묶고 장애인에게도 이동할 권리를 달라고 외쳤다.

    지난 2002년 장애인이동권 쟁취 연대회의는 “장애인들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 등 관계 당국의 공권력의 불행사로 인해 헌법에 보장된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등을 침해당했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다른 다양한 국가과제에 대하여 최우선적인 배려를 요청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 헌법의 규범으로부터는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의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국가의 행위의무를 도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 시외 이동권에 대한 국가 의무가 없다는 취지다. 장애인들은 버스와 지하철에서 점거 투쟁을 벌였다.

    2005년 국회에선 교통약자편의증진법이 제정됐다.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고작 19% 정도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시내버스 일부 저상버스 정도가 전부다. 여전히 장애인들은 시외버스, 고속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를 탈 수가 없다. 국회의 법률제정은 소중한 투쟁의 성과였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난달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도록 2층 저상버스를 도입하거나 교통사업자들이 버스에 장애인 편의 시설을 설치할 때 드는 비용을 지원하도록 고시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전장연은 이번 추석 연휴에도 어김없이 농성에 돌입한다. 연휴가 긴 이번 추석은 무려 10박 11일 동안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천막을 치기로 했다. 요구사항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면담이다.

    정종권 : 장애인 운동의 눈에 보이는 상징은 이동권 투쟁이었던 거 같다. 2017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성과는 과거에 비해 얼마나 진척됐다고 평가하나.

    박경석 : 성과지표로 봤을 때 점수로 치면 대략 30점 정도.

    정종권 : 나머지 70%도 실패한 게 아니라 70%의 과제로 남아 있는 거죠?(웃음)

    박경석 : 그렇죠. 우리야 즐겁죠. 삶의 즐거움.(웃음)

    정종권 : 한편으론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주장하는 쪽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언급하기도 하더라. 환경적으로 장애인의 접근성이 막혀 있으니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는 논리를 개발 정당성의 하나로 들더라. 이런 식으로 장애인을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거 같다.

    박경석 : 개발 문제에 있어서 장애인을 많이 이용한다. 장애인을 이용하는 아주 나쁜 예다. 다른 예로, 용역깡패 쓸 때 장애인을 써서 비장애인과 싸우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양아치 같은 방식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꼭 달나라에 가야만 하나? 기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선 우선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환경을 파괴해서라도, 산을 다 깎아서라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느냐는 거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가치의 우선순위는 명확해야 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들이 설악산 정상에 가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개발한다고 하는데, 그런 거 할 돈 있으면 고속버스에 저상버스나 도입해 달라. 우리는 설악산까지 갈 수 있는 자동차도 없고 탈 수도 없다. 그들의 주장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장애인들이 설악산을 그 근처에서라도 볼 수 있도록 저상버스부터 도입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들 돈 벌려고 장애인을 팔아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강서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논란, 님비현상이라는 비판으로 그칠 문제일까.

    최근 서울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강서 지역에 신설할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일부 비장애인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장애인 자녀의 부모들은 비장애인 부모들에게 학교 설립을 허락해달라며 차디찬 강당 바닥에 무릎을 꿇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정종권 : 현안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의 3대 권리, 이동권을 비롯한 교육권, 노동권. 교육권과 노동권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최근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박경석 : 님비 현상이 문제가 됐다. 강서 지역 주민들이 잘한 것은 없다고 보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것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특수학교를 짓는 방식보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통합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 더 강조돼야 했다. 그리고 (언론은 국가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한) 비판을 가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강서 특수학교 설립 논란의 과정을 보면, 국가는 그 책임에서 피해버리고, 한 지역의 님비문제로 이 문제를 덮어버리고 있다. 문제가 이렇게까지 오게 만든 건 정부인데 이제와선 마치 선한 중재자처럼 굴고 있다는 거다.

    일반학교에서의 장애인-비장애인 통합교육이 잘 안 돼 있기 때문에 장애인 특수학교 짓는 거다. (일반학교에서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은 별도의 대규모 학교를 지을 수밖에 없고, 또 그런 학교에 가려면 한 두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데 그 조차도 힘드니까 내가 사는 지역 내에 짓겠다는 거다. 학교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놓으면 편하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비장애인과 더 가깝게, 함께 교육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1조원의 사나이’ 박경석…장애인 운동의 박경석 그 이후

    정종권 : 별명이 ‘1조원의 사나이’라고 들었다. 장애인운동과 박경석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장애인 관련 제도, 정책, 시설을 고쳐야 하는 것이기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의미인 거 같다. 하다못해 박경석을 교도소로 잡아넣으려고 하더라도 교도소 내 환경을 바꿔야 하니.

    박경석 : 그래요? 내 별명은 ‘어깨꿈’인데. ‘어차피 깨진 꿈’.

    ‘1조원의 사나이’는 다른 활동가가 붙여준 별명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만들고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을 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내년 중앙정부에서 6천 7백억 정도 예산이 편성된다. 지방정부까지 하면 1조 정도 될 거다.

    정종권 : 장애인 단체의 싸움은 돈의 규모가 굉장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시혜성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장애인 단체가 앞장서서 이런 싸움들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 복지사회로 가는 대단히 중요한 행동부대 같다는 느낌도 든다. 예컨대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도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박경석 : 맞다. 장애인 운동은 복지사회로 가는 일종의 마중물적인 운동.

    “모든 국민은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때 박경선 대표가 무대에 올라 한 말이다. 새하햔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성. 너무나도 간절하지만 그것을 언제나 당당한 그 모습 때문에 박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는 늘 큰 울림을 준다.

    정종권 : 한국 사회운동의 큰 흐름을 대략 보면 70년대 농민운동, 80년대 학생운동, 90년대 이후 노동운동이 전체 사회운동을 주도해왔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빈민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도 등장하고 발전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의 한국 사회운동, 특히 민중운동은 장애인운동과 노동운동이 쌍벽을 이루는 것 같다. 장애인운동이 빈민, 노인, 청소년,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운동을 끌고 가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장애인운동을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박경석 :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칭찬을 (웃음).

    정종권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포함해서 장애인 운동에서도 다양한 조직과 투쟁의 역사가 있다. 그 과정에서 성과도 있겠지만 약점과 앞으로의 과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제 중 하나가 앞으로의 장애인 운동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리더십의 문제라고 본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운동은 지도부 임기 등의 이유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고 리더십이 바뀌어 간다. 그 리더십의 이전과 계승이 제대로 또는 발전적으로 이뤄지고 있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장애인 운동에서 박경석이라는 인물의 비중과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너무 박경석 한 사람으로 모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박경석 : 저를 너무 많이 평가해준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동하고 싶은데 안 할 순 없잖나. 어떤 위치에 있든, 운동은 할 거다. 그리고 밖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적으론 (리더십의) 폭이 굉장히 많이 넓어져 있다. 10년 전에 비하면 특히 중증장애인들이 전면에 많이 나서고 있고, 아무것도 없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지역적인 자기 기반을 가지고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머리도 길고 하얗고 내 스타일이 이러니까 남들의 눈에 더 잘 보이는 측면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역사회 내에서 자기 활동을 하며 단단히 뿌리 내린, 내공이 깊은 활동가들이 많다. 때가 되면 (새로운 리더십도) 자연스럽게 바뀌고 세워질 거다. 난 내가 할 만큼하고 가버리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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