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결 실패하면 미래 없다
    진보정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인터뷰] 울산 동구의 무소속 김종훈 국회의원
        2016년 08월 17일 03: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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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동구 지역구의 무소속 김종훈 국회의원을 만났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울산 동구 구청장 후보로 나섰고 낙선을 경험을 딛고 당선되기도 했다. 지금은 무소속 국회의원이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누구보다 현재의 진보정치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인터뷰를 하게 됐다. 인터뷰를 하면서 과거 민주노동당에 대한 향수와 미래 진보정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공존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동정치와 진보정치에 대한 뚜렷한 의지와 확신을 가진 김 의원은 진보진영의 자산이기도 하고, 자산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터뷰는 11일 의원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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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 재벌정치 깨진 울산 동구…‘담장 넘은 공장 안 현장여론’
    하청 노동자, 정치 주변인 되지 않도록 함께 가는 구조 만들어야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 : 김종훈 의원이라고 하면 노동자 밀집지역 울산의 지역구 의원, 무소속 의원, 진보정치와 노동정치 지향을 뚜렷이 하는 진보 의원, 동구청장이라는 행정가 출신의 의원. 이렇게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0대 국회의원으로서, 진보정치 국회의원으로서 포부가 궁금하다.

    김종훈 무소속 의원 : 울산 동구는 잘 아시다시피 노동운동의 진흥지이기도 하지만 정경일치로 재벌이 직접정치를 오랫동안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나마 1991년에 지방자치가 되면서 노동자들이 지방의원으로 당선돼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정치를 바꿀 순 없었던 것 같다. 동구에 국회의원 선거구가 생기고 난 후 28년 중, 20년은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이 국회의원을 했고, 그 이후엔 정 전 의원의 사무장 출신인 안효대 씨가 국회의원을 해왔다. 그러니까 28년간 직접 재벌 정치가 이뤄진 곳이다. 이곳이 이번에 뒤집어진 것은 큰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고용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절박함,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단결이 당선의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조선업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졌고 그것을 빙자해 회사는 지난해부터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투쟁이 이미 예고됐었고, 또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도 이번 20대 총선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대 총선은 예전 선거와는 그 형태가 달랐다. 과거엔 공장 바깥의 여론이 담장 안으로 밀고 들어갔던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동구의 경우, 현대중공업이 주부대학 등 여러 사회단체를 장악하고 있다 보니 그런 데서 오는 정치적 영향력이 오히려 현장으로 밀고 들어왔었다. 반면 이번엔 거꾸로 현장 안의 여론이 공장 밖으로 넘어왔다. 그런 것들이 노동자뿐 아니라, 그 노동자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선거운동 초기엔 울산 동구는 잘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던 지역이었다. 서너 달은 수행도 안 붙여줘서 혼자 다니기도 했다. 수행 좀 붙여달라고 해도 일점돌파 해보라고 하더라(웃음). 아무튼 제가 혼자 열심히 했다기보다 구청장 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한 과정에 대한 신뢰,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낙선했던 것에 대한 부채 심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중심이 되긴 했지만 선거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제가 새벽 5시에 회사 정문에 서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맞으면 눈을 마주치며 얘기해도 초기엔 따뜻한 말을 잘 안 해줬다. 한참 지나니까 “고생합니다. 열심히 해보소” 이런 정도였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서 뭔가를 바꾸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커졌던 것 같다. 그때부턴 “단일화 안 합니까” 이렇게 인사가 바뀌었다. 단일화가 이뤄지고 나니까 “잘 될 거다. 해봅시다” 이렇게 격려해줬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게 다 녹아 있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당선된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론 단결한 노동자들의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게 진보정치의 큰 자양분이라는 걸 느꼈던 선거였다.

    정종권 : 현대중공업은 공장 내외의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 않나. 선거를 하면 거의 공개 투표를 한다거나 투표 결과를 보고하게 하는 등 선거 때마다 그런 개입들이 있어서 논란이 많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좀 어땠나.

    김종훈 : 이번 총선에선 회사의 전면적인 개입은 없었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관리자들도 고용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천명 이상이 해고되는 것을 보면서 결국은 관리자들 자신의 생존권도 위기에 몰리고 자기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관리자들은 거의 회사 정문으로 출근을 하는데, 정문에서 이렇게 악수를 많이 하고 인사를 많이 들어본 것은 이번 선거가 처음이었다. 부장, 때로는 상무들도 “열심히 하십시오, 우리도 챙겨주십시오” 이런 농담 삼아 건네는 이야기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느껴졌다. 이런 부분들이 회사가 선거에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으로 작용한 것 같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예전에 비해서 사측의 선거 개입을 막아내는 역할도 많이 했다.

    정종권 : 단일화 경선을 현대중공업 조합원 총투표(전화여론조사)로 했다.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 사업장 조합원의 총투표로 진보단일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 조합원만이 울산 동구의 유권자가 아니고, 오히려 규모가 더 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지역 내에 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는지 궁금한데, 분위기는 어땠나.

    김종훈 : 울산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민주노조, 현대중공업까지 해서 총투표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자, 이런 논의가 있었다. 당초 민주노총과 현대중공업 노조, 하청 노조를 포함한 총투표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현중 노조와 하청 노조를 분리해서 투표하고 다시 그 결과를 합치자, 이런 얘기도 나왔었다. 그런데 선거법 등 이런 저런 복잡성이 있었다. 신속하게 정리하려면 현중 노조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하청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의제기가 많았다.

    현중 조합원이 1만 7천명이라면 하청 노동자는 5만 명이다. 하청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총투표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조직적으로 투표를 담보할 상황이 안 되었고, 조직력도 안 됐다. 또 투표를 한다 하더라도 선거법상 문제도 있었고.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할 수 없는’ 측면이 컸다. 향후 보완해야 할 측면이 많다고 본다.

    하청 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려도 많았다. 또 다시 정치의 주변인이 되고 소외감을 느끼고 ‘니들끼리 잘해봐라’ 이런 반응들이 초기엔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선거 중반까지도 그런 흐름을 많이 느꼈다. ‘정치해봐야 우리한테 뭐 힘이 되노’ 이런 냉소적인 얘기도 있었지만, 선거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래도 이번에 내가 투표할 테니 똑바로 하소” 이런 말도 많이 해주셨다. 선거운동 마지막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마음을 열어준 것 같다. 이번 선거가 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 살리기이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현중 노조가 중심이 돼 선전을 잘해주신 것도 있고, 그런 부분을 잘 대변해줄 것이라는 하청 노동자들의 믿음, 이것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마음을 열어주신 게 아닌가 싶다.

    정종권 : 그래도 이번 선거가 잘 풀려서 다행이지, 선거 막판까지 ‘니들끼리 잘해봐라’ 정서 그대로 갔다면… 고민 많이 해봐야 할 문제다.

    김종훈 : 나의 삶을 조직적으로,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약속 없이 간다면 하청 노동자들도 아마 계속 마음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후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의원실 배정 꼴찌, 회의 일정 전날 문자 통보…무소속 의원의 ‘설움’
    “힘 있는 진보정당 필요성 실감”
    “새로운 진보정치 맹아 만든다는 심정으로 무소속 출마 결심”

    정종권 : 2014년 선거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로 동구청장에 출마해 낙선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서 이갑용 노동당 후보와의 경선을 거쳐 진보단일후보로 당선됐다.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서 강제해산을 당하면서 일부 세력들은 민중연합당을 창당해 출마했고,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도 존재하는데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당 중심의 국회 운영에서 무소속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 같은데.

    김종훈 : 당이 해산되고 이런 저런 과정 거치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외부적 요인에 저항하고 싸워야 할 문제도 있었지만, 그 반면에 우리 자신의 문제부터 출발해 성찰해야 할 것들,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할 지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번 총선이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당을 만들어서 출발하면 좋은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여러 정치세력과 논의할 시간도 없었다. 또 노동자들에게서 그런 급조 정당의 정당성을 획득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진보정치의 맹아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됐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난 이후에 선거를 치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어쨋든 우리가 가진 정당성과 이후 진보정치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또 이런 여건 속에서 다른 정당을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종권 : 추혜선 정의당 의원도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 문제로 곤란을 겪고 본인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상임위 배정을 받았다. 소수정당도 힘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에서 무소속 의원으로 상임위 활동 등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김종훈 :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체 국회의원 중 내가 가장 꼴찌로 의원실을 배정받았다. 저한텐 사무실 배정 관련 연락도 안 왔다. 왜 연락 안 주냐고 항의하니까 정당 배치가 우선이고 정당 배치 후 비교섭단체 의원 중엔 다선 의원들이 우선, 그 다음은 나이순으로 해서 제가 꼴찌였다. 윤종오 의원은 299번째다. 그나마 윤 의원에게는 연락이 왔다. 남은 방 2개 중에 어떤 거 선택할 거냐고(웃음). 또 의제를 확정하거나 일정을 조정하는 데에 어떤 개입도 할 수 없다. 때문에 내일 회의를 오늘 저녁에 문자로 통보 받는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무소속 의원으로서 힘든 점이 많다.

    또 민주노총 의원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한데 많은 요구에 비해 정책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소화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런 부분들을 잘 분담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보단 민원 해결하는 곳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내가 당선된 이유는 노동자들,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정책, 법안을 만들어서 통과시키는 것인데 집중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통과시킬 수 있을지도 막연한 상황이다. 정말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정당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 정치적인 힘으로 발현될 뿐 아니라 실질적인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정당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종권 : 개인의 불이익과 고단함은 감수하면 되지만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번 무소속 출마와 당선이 새로운 진보정치 만드는 맹아가 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그 바람이 진척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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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 구조조정을 통한 정부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정종권 : 조선업 구조조정에 관한 질문이다. 상임위도 산자위 소속이고 지역구가 현대중공업이 소재하는 울산 동구이기도 하다. 거제와 울산 등 조선업종 노동자들의 실업문제가 심각한 상항이다. 현재의 실태와 어떤 정책적 대안을 고민하고 있나.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의견도 궁금하다.

    김종훈 : 울산의 경우 회사에서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에서만 물량팀을 비롯해 노동자 1만 2천 명 정도, 그 이상이 고용 위기에 있다. 어제 건강보험공단에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올해 직장건강보험 가입한 수를 확인해보니 울산 동구에서만 4천 명 정도가 줄었다. 이 사람들은 그나마 사내하청 단위라고 봐야 한다. 물량팀은 4대 보험 가입을 거의 안 했으니, 그렇게 보면 3~4배는 나갔다고 봐야 한다. 전체 조선업 종사자가 24만 정도이고 정부는 6만 명 정도가 실업으로 갈 거라고 보고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실업 상태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는 노동자들의 고용, 생존권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소위 언론이 바람을 잡고 정부와 채권단은 부추기고 떡본 김에 제사지내려는 회사까지, 3자가 찰떡궁합이 돼서 밀어붙이는걸 보면서 ‘참… 나라가 무엇인가’, 과연 이들이 국민의 운명과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당선되고 난 후에 조선업, 노동자, 회사 모두를 살리는 길이 없을까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회사 사장단, 노조, 채권단, 전문가들을 다 만났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위기 정도가) 이 정도는 아니라고 얘기한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나 유가 하락에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조선업이 결정적으로 사양 산업이냐, 하면 어느 누구든 ‘아니’라고 얘기한다. 심지어 노동부 장관, 산자부 장관도 그렇게 얘기한다. 정말로 문을 닫을 정도로 위기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고용 위기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산자부 장관은 조선업이 4-50년간 효자산업이고 국가에 기여도도 있는데 이 많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의견을 내고 고민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물으면,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해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만 답을 한다. 그게 국가가 할 얘긴가.

    박근혜 정권이 여소야대로 노동5법 통과가 어려워지자 총선 이후 내놓은 게 조선업 위기론이다, 전체 조선소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던 상황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대우조선을 구조조정 추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것도 분식회계 등 전반적인 경영의 문제, 낙하산 인사로 인한 정부 실책으로 드러난 대우조선 상황을 가지고 위기라고 포장하고 과장하고, 이렇게 해서 전체 조선소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거다. 그 과정에서 2대 노동 지침을 관철해서 확대하려고 하는 기본 방향을 잡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중향 평준화를 얘기하면서 – 우리는 그것을 하향 평준화라고 얘기하지만 – 연봉 7~8천만 원 받는 정규직 노동자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려운 것처럼 말한다. 중향 평준화해서 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거다. 조선업 구조조정도 새누리당의 그런 뜻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경제적으로 상황이 더 나아진 게 없다. 지금 상황에서 출구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은 내년 대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또 다시 경제 살린다고 해봐야 믿어줄 국민이 없고, 정부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상당히 심판 받았다. 그래서 노동자 간 갈등을 유발하고 갈라치기 하면서 마치 대기업 노동자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줄고 청년고용이 안 되는 것처럼 이렇게 몰아가는, 그러니까 구조조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종권 : 어찌됐든 지금 그런 정부여당의 전략이 일정 부분 통하고 있는 것 아닌가.

    김종훈 : 맞다. 상당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그런 논리와 전략에 어느 정도 기대 심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엄청난 임금을 받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정규직 노동자들 임금을 보면 잔업특근까지 다 해서 평균 30년, 35년 된 노동자들이 그렇게 받는 거지, 4~5년 정도 된 노동자 연봉은 3천만 원 정도다. 잔업특근까지 다 포함해서.

    한 번은 조기축구회를 갔더니 3년차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와서 임금명세표를 휴대폰으로 보여주더라. 거기에 135만원이 찍혀있었다. 이게 진짜냐고 물으니 진짜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들도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위해 최소한 하청업체에서 4~5년은 일해야 하고, 그 다음 기술연수원에서 임금도 거의 받지 못하고 봉사활동 수준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있어야 한다. 그게 끝나고 나면 바로 정규직 고용이 되는 게 아니고, 다시 2년 동안 회사가 정해주는 하청업체에 있어야 한다. 정규직 채용되기까지 보통 10년 정도 걸리는데 그렇게 정규직이 되고나면 다시 최저임금에서 출발한다. 나이 30대 중반이 돼서 결혼하고 애 낳으면 그 돈으론 생활이 안 된다. 이게 중공업 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봉 7~8천만 원을 받는다? 왜곡된 얘기를 계속 만들어내서 노동자들의 근본적이 삶을 뒤흔들고 있다.

    정종권 : 정규직, 사내하청, 물량팀, 돌관팀 이런 단계 중 가장 힘든 층이 물량팀, 돌관팀이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 대안도 필요하고, 진보정치와 노동진영이 이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정부의 노-노 분열 이데올로기에 넘어갈 수 있다. 즉 고용과 생존권의 위기와 불안 속에서 이런 상황이 정권과 자본 탓이 아니고 정규직 노동자의 탓이라고 여론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과 논리에 대한 대안은 있나.

    김종훈 : 물량팀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보면 된다. 4대 보험도 안 되고 제일 먼저 해고된다. 정부에서 실업급여 지원 등을 해준다고 하는데 물량팀 노동자들은 회사에 다녔다는 증명을 할 수가 없어서 그 지원을 못 받는다고 말한다. 노동부에선 생계 지원이나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노동자들이 일한 것을 본인들이 직접 증명하라고 했다는 거다. 그런데 회사에 가서 증명을 해달라고 하면 세금 문제 등 때문에 잘 안 해줄 것 아닌가. 그런 것들도 실제적으로 보면 고용노동부에서 현장의 출퇴근 카드만 확인하면 해결될 문제다. 증명은 고용노동부가 해줘야지 개인이 찾아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나. 이런 제도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 정부와 공공기관의 의지가 있으면 작은 것에서부터 쉽게 풀어갈 문제들이 많다.

    가령 제가 구청장 할 때 임금체불 문제와 관련해서 조례를 만들었다. 구청과 업체가 계약하면 첫째 노동자 임금부터 지급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지급된 것을 확인하고 돈을 내려주는 거다. 그러니까 임금체불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러면 공사 대금을 못 받으니까.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런 것조차 실행이 안 되고 있다는 거다. 이런 것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론 조선업 내에 물량팀을 없애고 하청이 있다하더라도 최소한 고용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구조가 되도록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

    80억 조선업 희망센터, 하루 10명도 안 와…“차라리 헬기로 라면을 뿌려라”
    “정부, 노사정 논의 테이블 만들어 노동자들의 요구 들어야”

    김종훈 :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야당들이 중심이 돼서 청문회를 좀 해보자고 하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현장에선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있고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정치는 말로만 가고 있고 행동으론 가지 않고 있다. 준비된 사람부터 빨리 해보자, 그래서 제안해 만든 것이 경남 울산 전남 등 관련 지역을 중심으로 국민의당 박지원‧채이배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정의당 노회찬 의원, 그리고 제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조선업 발전과 조선업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정의당 이정미 의원, 더민주 이용득 의원 등 함께 할 의원들이 있어 확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우리의 요구는 하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일단 중단하고 조선업 어려움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조선업 발전 전략이 무엇인지, 회사, 정부, 노동자가 할 일은 무엇인지, 전체적인 협의와 논의를 통해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논의 테이블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논의 테이블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종권 : 현재의 고용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김종훈 의원이 제안하는 핵심적인 행동 플랜, 정책이 있나.

    김종훈 :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첫 모임을 가졌다. 해당지역 이해당사자를 만나 협의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을 통해서 근본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제도화할 부분에 대해 노력을 하자, 이런 정도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또 그게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번 조선노연(조선업종 노조연대)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토론회도 했다.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해보자고 했는데 각 당 내 입장 등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서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래서 우선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먼저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자고 한 거다. 나는 이 모임이 유의미할 거라고 본다. 기자회견 한 번 하고 마는 성격으로 가선 안 된다고 보고, 여러 가지를 협의하는 중이다. 어찌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적 행동으로 나서는 데 기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종권 : 두 달 전만 해도 언론 등 모든 곳에서 조선업 고용 위기와 구조조정이 핫이슈였다. 그런데 사드 한국 배치 이슈가 뜨고 나선 이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고 있다. 사드 이슈도 중요하지만 조선업 고용 위기와 실업 대란이 사람들의 관심과 중심 의제에서 멀어지는 것도 걱정이 된다.

    김종훈 : 맞다. 정부에서 얘기하는 예상 실업자 수만 6만 명이니까 그 가족까지 감안하면 20만 명 정도라고 봐야 한다. 그 사람들을 재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고민되고 있지도 않고 또 있다고 해도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번 추경 같은 경우도 정부는 조선업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한다고 했지만 추경 예산 내용에 그런 내용이 어디에 있나.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도 않고 대안을 내놓을 수도 없는 근본 이유가 어디 있겠나. 정부가 고용 불안과 위기의 당사자들과 논의를 해본 적이 없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정부는 당장 쫓겨나는 당사자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의 고민을 들어보지도 않고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보호하고 어떤 방향으로 안내할지에 대한 대안도 없이 전시성 정책을 펴고 있다. 울산만 해도 남들이 보면 그럴 듯한데 80억 예산 들여 ‘조선업 희망센터’라는 걸 만들었다. 거제도와 경남도에도 만들겠다고 한다. 이 센터를 통해 실업급여 등에 대한 상담도 해주고 일자리도 안내한다고 한다. 교육을 받으면 한 달에 60만원 씩 준다고 한다. 그런데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인데 누가 60만원 받자고 거기에 가서 교육을 받겠나. 300평 규모의 센터에서 노동부, 울산시 등 30명의 직원이 있지만 하루에 상담자가 10명이 안 온다. 그 돈이면 차라리 라면을 사서 헬기로 뿌리는 게 도움이 될 일이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그런 일을 왜 하고 있나. 모든 근본 원인은 진짜 당사자들과 논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진짜로 필요한 게 뭔지를 모르고 있는 거다.

    정종권 : 거제시장, 울산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기 지역의 현안인 고용 위기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없는 건가.

    김종훈 : 단체장들도 움직이고 있기는 한데 여전히 ‘기업 살리기’ 중심으로 가고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사고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거다. 물론 그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데 기업도 살리고 노동자도 살린다는 관점에서 출발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현재 기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1, 2분기에 9천억 정도 순이익을 남겼다고 떠들고 있는데 왜 자꾸 그 사람들한테 지원을 한다는 건가. 당장 하청업체는 얼마 전 임금 10%를 삭감했고, 휴가 기간에 추가로 10%를 더 삭감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임금의 20%가 삭감되면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하지 않고, 해결책이랍시고 기업 살리기 운동으로 가는 건 문제라고 본다.

    위축된 진보정치와 민주노총
    “기층과 진보정치 중심의 기초 만든 후 확장성 고민해야”

    정종권 : 이런 위기 속에서 진보정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한다면 한편으론 진보정치의 성장과 발전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러기엔 진보정당의 준비 정도와 역량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김종훈 : 개인 진보정치인으로 보면 다들 역량이 있는데 종합적인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정치적 힘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종권 : 진보정치뿐 아니라 민주노총도 정치적 권위나 힘이 반 토막이 난 상태로 봐야 할 것 같다. 총연맹 위원장이 총파업과 총궐기 투쟁을 이끌었다고 중형을 선고 받은 것을 봐도 그렇다. 한 나라 노동자들의 대표자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없고, 그냥 일반 파렴치범 취급을 하고 있는 게 이 나라 권력과 사법부의 인식인 것 같다.

    김종훈 : 당선된 후에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특별면회를 하겠다고 신청을 했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특별면회가 안 되는 사유에 대해서 정확하게 제시하라고 했더니 사유가 불분명했다. 사유서를 내지도 않고 ‘아직까진 어렵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더라. 의원실에서 그러면 어떤 사람이 특별면회 대상인지, 지금까지 진행한 3년 치의 전체 특별면회 기록을 다 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특별면회를 한 것인지를 알아보고 형평성 등을 비교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받아놓은 것도 있다. 그랬더니 바로 법무부에서 전화가 와선 ‘특별면회를 꼭 하셔야 한다면 하시라’고 하더라. 이게 참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정치적인 힘도 그렇지만 참 부당한 일인데도 우리가 한편으론 이런 것에 너무 무뎌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거에 치열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 않나, 생각해봤다.(김 의원은 언젠가 이 특별면회를 한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과 실상을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종권 : 울산의 지역적 조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후보 결정, 민주노총의 전략 후보로 당선 등 민주노총과 노동운동과의 관계가 중요할 것 같다. 민주노총에선 이번 정책대의원대회(8월 22~23일)와 내년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사실상 폐기됐던 정치방침을 다시 확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과 정치방침 등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

    김종훈 : 민주노총도 어려운 상황이 있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사정이 있을 거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공조직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는 진보정치를 해나가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8월에 정책대대가 이뤄진다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본다. 어려운 진보정치의 상황, 진보정당들이 빠르게 논의할 수 없는 여러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기층 단위에서 먼저 이 논의를 시작해 흐름을 만드는 데에 역할을 해준다면 전체의 힘을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번 논의가 잘 이뤄져서 새롭게 단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다만 여기서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런 논의가 중층적으로 될 필요가 있다. 진보정치 내 다양한 세력 간 논의도 필요하고 때로는 그 동안의 아픔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힘을 모아나가는 노력도 동시에 있어야 한다.

    정종권 : 다시 한 번 조직적인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민주노총이 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한 편으로는 이미 상처받고 갈라져 있는 진보정치 상황에서 공감대 없이 밀어붙인다면 오히려 민주노총의 조직력, 실천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김종훈 : 그런 우려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상황을 잘 보면 대중들보다는 오히려 정치세력 간 아픔과 갈등이 더 많은 것 같다. 기층으로 내려가면 단결의 요구가 많은 게 사실이지 않나. 여러 가지 생각들의 차이가 있더라도 하나로 단결해 어려운 삶을 보장하고 정치적으로 안내할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때문에 어찌됐든 첫 발을 뗄 수 있는 힘과 동력은 기층에 있다고 보는 것이고 조직화된 민주노총에서부터 첫걸음을 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종권 : 최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조합원 정치의식 여론조사에선 20대 총선 방침에 관한 조사도 있었다. 새로운 정치방침이 필요하다고 보는 답변이 60% 정도였는데, 새로운 방침이 어떤 것인지는 묻질 않았다. 노동현장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애정이 옅어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새누리당에 반대하기 위해 더민주나 국민의당에도 표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까지 정치방침의 폭이 열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만큼 진보정치가 조합원들에게 희망,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종훈 :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이 있을 거다. 당이 분열되고 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보정치가 실제로 수권으로 갈 수 있겠나, 이런 우려도 있는 반면 어렵지만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한편으론 있다. 또 하나로 모인다 한들 과거 같은 행동이 반복될 거라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진보정치가 확장성을 갖기 위해선 그 기초가 어디에 있어야 하냐는 것은 분명하다. 기층과 진보정치를 노력해온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먼저 그 기초를 만든 이후에 확장성을 가지기 위해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거지, 그런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진보정치의 방향이 수정돼야 한다고 하는 건 조급하거나 비약이 있다고 본다.

    정종권 : 그래서 과거를 성찰하려고 하고 또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김종훈 같은 정치인들이 잘해야 한다고 본다.

    김종훈 : 그래서 힘들기도 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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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 다시 하나로 만날 수 있을까

    정종권 : 정의당부터 민중연합당까지 다시 만나는 플랜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나. 민주노총에선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노동 농민 빈민, 대중조직의 단결과 지지에 근거한 ‘진보대통합’이라는 표현도 제기되는 거 같다. 핵심은 사분오열된 진보정당이 모여 새로운 합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내에서도 그렇고 김종훈 의원과 친화성이 있다는 소위 울산연합에서도 그런 주장들이 나오는 것 같다.

    김종훈 : 이 복잡한 정치 현실을 민주노총 내로 던져서 오히려 단결과 투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치세력 간 논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정치세력 간 논의라는 것이 정치 공학적으로 힘이 있을 때에는 나름 잘 되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흩어진 진보정당들 모두) 큰 틀에서 함께 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상처들이 깊다. 어떻게 치유하고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또 어떻게 내려놓고 제대로 성찰하고 함께 갈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깊은 신뢰가 없는 상황이다. 시간을 가지고 끊임없이 논의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그리고 사람들,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그래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기층에서의 흐름을 만들면서 단결의 요구, 진보정치는 하나가 돼야 한다는 대의와 명제에 충실한 논의를 진행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국회에 들어와 보니 더 힘들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집회장 가서 고함 지르는 것 외엔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말은 현장 정치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의정치를 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제도화해서 삶을 책임져야 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하다간 요원하고 갈수록 지치기만 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실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얘기들을 다른 진보정당들에게 하지만 개인적인 공감은 있어도 집단적으로 보면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정종권 : 대중조직과 기층대중 속에서의 그런 흐름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정치세력이나 정치인들은 그 역할을 안 하면서 오히려 대중에게 그 책임과 역할을 떠넘기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도 가능하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 정치집단, 개인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게 먼저 필요하다는 거다. 기층 요구와 흐름만 얘기하는 건 실제 진도가 안 나간다는 비판도 있다.

    김종훈 : 그런 비판에 대해 부정하는 건 아니다. 정치세력, 집단, 개인 정치인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런 노력들이 전제돼야 한다. 중층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언제까지 이 논의를 하자, 이런 게 아니고 함께 시너지 효과를 만들기 위해 병행하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생각이 좀 바뀐 건 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진보정치를 정치세력에만 맡겨놔선 안 된다는 고민들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지지해줬더니 지들끼리 싸우고 분열하고 이런 상황들이 현장 기반이 튼실하지 못해서 또 노동자들이 제대로 직접적으로 정치를 하지 않다보니 생긴 문제 아니냐, 이번엔 노동자의 자기중심성을 분명히 가지고 진보정치를 하더라도 해야 한다, 이런 요구도 있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고 세워 나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진보정치인들이 분파적 입장을 가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주도해서 자기중심적으로 끌어가려는 생각들은 무조건 버려야 한다. 서두른다고 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너무 더뎌서도 안 되지만 실험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이번에 안 되고 다음에 다시 하려고 한다면 정말 요원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돌다리 두들기는 심정으로 가야하고 한 분 한 분을 귀하게 여겨 생각들을 잘 모아가지 않으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종권 : 정의당이 대표적인 원내 진보정당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한계과 빈 지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 정의당 스스로도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도 고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진보정치의 과거와 현재 상황에서 정의당과 민중연합당까지의 스펙트럼이 하나로 담겨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종훈 : 현 단계에선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는 ‘정의당하고 울산하고 경남하고 지역에서 논의와 협의를 잘하더라. 거기서부터 논의해보자’ 이런 얘기를 개인적으로 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들과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고민들이 있겠지만 누구는 되고 누구는 배제하고 이렇게 출발하면 더 어려움이 많지 않나 이렇게 생각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안을 열어두고 고민해야 한다. 만약 정의당을 배제하고 따로 진보정당을 만들어서 다시 뭉친다고 한들 이것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나? 없을 것 아닌가. 그런 만큼 정말 신중하게 가야하고 허심하게 가야할 과제라고 본다.

    한상균 위원장이 제가 면회 간 날 이렇게 말하더라. “참 어려운 문제다. 솔직히 진보정당, 지금 상태론 잘 안될 거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었다. 근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 민주노총 전략후보로 3명이 당선되는 거 보면서 그래도 노동자 의원이 우리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는 구나, 이런 생각에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이 생겼다. 이런 것들을 크게 만드는 노력들을 해야겠다는 고민들이 생겼다. 그러려면 지금 이 논의를 넘어서서 정치세력 간 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좀 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당장 결론을 내는 건 아니지만 민주노총 내에 10~20만 명이라도 모아서 종자돈을 쥐고 있어야 여러 정치세력들에게 우리도 이렇게 할 테니 당신들도 잘해봐라, 얘기할 수도 있고. 한국노총이든 어디든 우리끼리 해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하기 위한 전체적인 고민들을 출발해보자” 대략 이런 기조의 말이었다.

    울산은 과연 진보정치 1번지인가?
    진보 구청장들과 국회의원들의 성과는?

    정종권 : 울산이라는 지역은 과거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1번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 진보진영에서는 그런 평가에 동의를 안 하는 듯하다. 울산지역에서 수차례 노동자 출신 또는 진보정당 소속의 국회의원과 구청장을 배출하기도 했는데, 본인을 포함하여 진보 국회의원과 구청장들의 활동에 대해 평가한다면 어떤가? 노동정치와 진보정치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김종훈 : 1991년 지방자치가 이뤄지면서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거나 입후보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때는 정치세력화까진 아니고 노동자 대변하는 정치인 한 번 만들어보자 이런 차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아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다 떠나가거나 새누리당으로 갔다. 지역에선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그래서 울산은 선거 때만 진보정치를 외치고 실제로 진보정치의 정책을 구현하고 개인이 그런 삶을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잘했다’고 답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 때도 인사말에서 “울산은 늘 여러분들에게 도움만 받고 늘 진보정치 1번지 이름만 걸고 혜택과 은혜를 입은 곳이다. 제대로 잘 해서 갚아야 하는데 은혜를 잘 못 갚고 있고 그런 성과를 잘 못 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반성의 말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지방자치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비판을 피해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도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라는 게 주민자치는 굉장히 어려운 점이 있고, 또 중앙정부는 예산 등을 지렛대로 해서 자치단체를 통제하는 상황이라 더 그렇다. 제도적으로 보면 지방자치가 행정 관리에서 조금 더 나아간 수준이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고 정부에서 발표했는데 보니까 총액임금제로 묶어 놨다. 지방자치에서 임금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규정을 해놓으니까 그 이상을 넘어서서 지급하면 패널티를 받거나 단체장 제재를 받는다. 그러니까 할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서 지방자치의 제한성이 분명히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제도 탓만 할 수는 없는 게 또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울산이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무상급식이 제일 약한데 이걸 어떻게 할 것인지, 예산 때문에 다 하진 못하지만 단계적으로 해보자, 6학년까지 친환경 급식 확대하자, 이런 논의 과정 등 진보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토론도 하고 주민들과 많이 협의하면서, 단체 자치를 넘어서 주민 자치로 이어지는 일들을 조금씩 쌓아 왔다.

    또 하나는 우리 동구청 내에 비정규지원센터를 설치했었다.(지금은 새누리당이 다시 구청장이 되면서 폐쇄했다) 비정규지원센터를 구청 내에 설치한 이유는, 알다시피 동구는 주민활동에서 기업들의 감시기능이 강했다. 비정규센터를 밖에 만들었더니 회사 경비들이 앞에 지키고 서있더라.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눈치가 보여서 가질 못하고, 거기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측에서 출입을 못하게 하는 등의 일들이 발생했다. 그런데 구청 내에 있으면 센터에 가는지, 구청 내 다른 데 가는지 잘 모르니까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도록 구청 내에 설치한 거다.

    그런데 센터를 구청 내에 설치하는 걸로 새누리당이 반발이 엄청 심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대다수인 구의회에 구청장인 저를 좀 불러달라고 했다. 이 의회의 회의를 관내에 있는 모든 동사무소 모니터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구의회에서의 회의를 다 보게 해놓고 구의원들과 비정규센터가 구청 내에 왜, 필요한지 토론을 벌였다.

    새누리당이 대다수인 구의회에서 이 문제와 무상급식 등의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이튿날 새벽,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모두 모여서 궐기대회도 하고, 또 주민들에게 평가받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동구 지역 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리고 20일도 안돼서 전체 예산을 다 다시 통과시켰다. 우리가 전략적으로 어려울 때는 대중과 함께 갈수밖에 없다는 걸 그 때 직감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노조 탄압을 막는 데에도 직접 나선 경험도 있다. 홈플러스 사측이 노조를 못 만들 게 하는 등 노동 탄압이 이뤄졌고, 그래서 구청에서 직접 회사에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고 우리의 적법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홈플러스 내의 다양한 물품들에 대해 위생검사를 했다. 두부 한 모부터 뒤집어 확인하고 (웃음). 그렇게 해서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을 해결했다. 이런 것들이 작지만 사실 엄청난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예들이 성과로 집약됐다. 그래서 어떻게 소통해왔고 노동자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왔는지, 앞으론 어떤 대안을 가지고 활동할지 구청장 임기가 끝나고 정리해보자, 이렇게 생각했는데 제대로 잘 안됐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어떤 부분이고, 한계와 오류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점들을 직접 느끼고 눈과 귀로 확인하면서 정리를 하고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대단히 부족했던 측면이고, 많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종권 : 정리발언 부탁한다.

    김종훈 : 국회의원이 된 후 국회보다는 국회 앞에 있는 아스팔트 도로 앞에 더 많이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이 나라 현실 아닌가 싶다. 여의도에 이렇게 높은 빌딩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그 빌딩들이 높은 만큼 그 아래 아픈 사람들도 많았다. 빌딩 하나에 천막 하나 정도는 쳐놓고 농성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짧게는 1년에서부터 5년 넘게 투쟁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훨씬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지만 또한 진보정당의 역할,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고 한계가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빠르게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권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단결해도 어려움이 많은데, 이렇게 사분오열돼서 우리가 어떤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를 고민할 때다. 무조건적으로 단결하는 원칙을 세우고 함께 가야 한다.

    국회의원이 된 지금,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고 여전히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분들과 함께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제가 어떻게 하는가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고 거기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말, 그 마음을 잘 간직하고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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